지금 붓을 쥐고 이 무서운 이야기의 첫 장을 쓰려고 하기에 이르러, 나는 새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다. 이 무서운 사건을 활자화해 발표하는 게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너무도 음침한 사건이고 저주와 증오에 가득 차 있어 읽는 사람의 마음을 밝게 해줄 만한 구석이 틀끝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중략).. 분명 책을 덮는 순간 뭐라 말할 수 없이 거무죽죽하고 구제할 길 없이 암담한 상념이 묵직하게 여러분의 가슴을 내리누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기분이 뭐라 말할 수 없이 거무죽죽하고 구제할 길 없이 암담한 ... 그랬냐면, 그렇지 않았다. 아, 재밌었다. 뿌듯한 기분. 맛있는 밥 적지도 많지도 않게, 적당히 먹고 만족스러운 기분. 일찍 푹 자고, 누가 안 깨워도 일찍 일어나서 깨운한 기분,  

워낙 좋아하는 시리즈라, 나쁜 말 할 수가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시리즈중에서는 대단히 재미있었던 작품 한두개와 어쨌든 재미있었던 작품 한두개, 그래도 재미있었던 작품 한두개.. 이 책은 '대단히'와 '어쨌든' 사이의 재미. .. 응? 

에도가와 란포의 엽기괴이 코드는 진심 역겨워서, 난 에도가와 란포의 책을 읽으면, 그 책을 다른 책들과 함께 책장에 꼽아두지 않고, 구석에 안 보이는 곳에 밀쳐 놓는다.

존 딕슨 카의 오컬트/밀실코드는 억지스럽지만, 재밌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코드는 재미나다. 엽기와 괴이와 색기와 유머와 일본전통이 잘 버무러진 한바탕 버라이어트 미스터리..라고나 할까. 인기나 작품성으로 인정 받은 것은 물론이다.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라는 제목은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사양해가는 귀족집안의 플룻연주자인 츠바키 자작이 자살한다. 반년여 후, 자살한 츠바키 자작이 괴이한 모습으로 가족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시체가 한 구씩 쌓이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뭐 시리즈를 쭉 읽어 온 독자들이라면, 예측 가능한 결말이다. 

재미있었던 건 이 책에 나오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긴다이치 코스케는 지금 누워서 책을 읽고 있다. 행동거지가 나쁜 남자라 누워서 책을 읽지 않으면 읽은 게 제대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읽고 있는 것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 말할 것도 없이 미네코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중략)...아무리 읽어도 끝나지 않는 <빌헬름 마이스터>로 인해 그는 샘솟는 분노와 초조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읽고 나서 피식- 했던 것이,  대학다닐때 읽었던 그 많은 독일 소설들을 읽으며 느꼈던 '아무리 읽어도 끝나지 않는' 책들에 대한 분노가 새삼 생각나서이다.  

그나마 헤세나 카프카는 그럭저럭 좋아했지만, 괴테나 만으로 가면, 뜨개질 막판마냥 얼굴이 벌게지며, 땀이 솟기 일쑤였던 것.
지금 읽으면 어떨까 싶다.  도서관에서 읽었던 빌헬름 마이스터가 민음사의 판본으로 나와 있다. 앤더슨의 <타임패트롤>에서 요코미조 세이시의 <악마가..>로 넘어왔는데, 뜬금없이 독일 교양소설로 넘어갈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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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름이면 찾아 오는 긴다이치-
    from little miss coffee 2009-07-24 08:40 
     시공사에서 워낙 유명한 작품 위주로 냈어서, 이제 더 이상 안 나오나 싶었는데, 여름이 되자 어김없이 나와준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기존의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들에서처럼, 일정부분 내용을 담고 있다.(스포는 아님) 뭐랄까, 책을 꿰뚫는 한마디.인 것이다. 긴다이치는 여전히 시체들을 질질 흘리고 다니고, (다 죽고 난 다음에, 범인은 '너'임. 하는건 여전하심.) 이야기의 화자는 언
 
 
Forgettable. 2009-07-22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노와 초조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웃긴다.. ㅎㅎ

이 책은 금요일에 알사탕 천개 이벤트해서 금욜에 주문할라고 기다리고 있어용ㅋㅋ

카스피 2009-07-23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코미조도 재밌지만 에도가와 란포이 엽기(일본에선 변격이라고 하더군요)도 재미있지요^^

하이드 2009-07-23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도가와 란포의 책은 진심 무섭고, 한편 역겹고 그래서, 정말 못 읽어요. <외딴섬 악마> 같은건 재미있게 봤지만,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들은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