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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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여페이지 정도 되는 이 책을 중간즈음 읽을 때까지만해도 나는 책 분량의 짧음과 결론이 나와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리하게 반복되는 팩트들에 좀 짜증이 나고 있었다. 마지막장을 넘기면서 멈췄던 숨을 훅- 내쉬고, 등에 한줄기 식은땀이 쪼르르.

이 끔찍한 이야기는 실화에 기반한다. 『1951년 1월 22일, 콜롬비아 수끄레 시에서 장정 둘이 미남 의대생 까예따노 헨띨레를 칼로 찔러 죽인다. 범인은 여교사 마르가리따 치까 살라스의 오빠들이다. 결혼 첫날밤에 신부 마르가리따가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신랑 미겔 레이에스 빨렌시아에게 소박맞고 친정으로 쫓겨 온 것이 살인의 동기다. 』 마르께스가 살던 동네에서 일어난 절친한 친구 까예따노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건, 그 자체만으로는 처음 보는 이야기도 아니고, 해외토픽감 야만 기사 정도라고 생각된다.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어느 마을에 부자에 잘생기고 젊은 자신만만한 청년 산띠아고 나사르가 있었다.
앙헬르라는 가난한 집안의 무기력한 네째딸이 있었다. 아무도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을때,
외지에서 온 매력적이고, 이국적이고, 부자고, 똑똑하고, 능력있고, 알고보니 집안도 좋은(아버지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바야르도 산 로만이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결혼 첫날밤, 그녀는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박 맞게 되고, 그녀의 엄마는 그녀를 죽도록 패면서 그녀에게 이름 하나를 받아낸다. 그 이름은 바로 산띠아고 나사르. 같은 마을의 잘생기고, 부자인 자신만만한 청년이며, 어릴적부터 약혼녀도 있는 몸이다.

돼지도살이 직업인 그녀의 쌍둥이 오빠둘은 돼지를 도살할 때 쓰는 칼을 들고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를 죽이겠다며 집을 나선다. 죽음은 산띠아고 나사르를 제외한 온 마을에 예고되었다.  그들은 그를 잔인하게 죽였다.

시간이 흘러 화자는 사건 기록들을 찾아보고, 앙헬르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예고된 죽음을 막을 수 없었는가에 대한 것을 조사한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의 제목이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이다.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형식이므로 르뽀형식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더 마르께스의 이 이야기가 왠지 안 어울린다 싶고, 지루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건 나의 큰 착각!

산띠아고를 죽인 것은 누구인가? 빼드로 비까리오와 빠블로 비까리오 형제다. 그들은 그를 칼로 죽였다.
산띠아고를 죽인 것은 누구인가? 마을 사람들이다. 그들은 쌍둥이 형제의 미약한 살인의지를 멈출 수 없게 했다.
그들은 쌍둥이 형제의 예고 살인을 모른척, 숨죽이고 지켜봄으로써 그를 죽였다.
다수의 침묵과 다수라는 벽 뒤에서 쥐새끼같이 숨어 있는 개인의 모습은 얼마나 끔찍한가.

산띠아고를 죽인 것은 누구인가? 진실을 밝힌/ 거짓을 말한 앙헬르다. 평소 그녀에게 관심도 없던 그를 지목함으로써
그를 죽였다.  

마르께스의 이야기는 롤러코스터와 같은데, 그것을 자꾸 잊는다. 올라가는 것은 무섭기보다 편하고, 지루하기까지 한데,
바로 앞에 곤두박질이 있는 줄 안다면, 그렇게 느긋하지 못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 오르막길 앞에 급경사 내리막길이 있다는 것을 잊고 마음의 준비 없이 있다가 훅 떨어진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 그랬고,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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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08-10-07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께스의 이야기가 롤러코스터 같다고 하시니 굉장히 시각적으로 다가와요. 하이드 님이 리뷰를 잘 써서 책은 안 읽어도 되겠는데요. 잘 쓴 리뷰의 얼마 안 되는 폐해이기도 하죠. ㅡㅡ'

하이드 2008-10-07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줄님, 책이 굉장히 얇은데요, 내용도 다 알아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요, 마지막에는 정말 다리에 힘이 쪽 빠져요. <백년동안의 고독> 읽을때도 그랬거든요. 이건 뭐 리뷰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구요;; ㅎㅎ

Joule 2008-10-07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그래요? 그럼 읽어봐야겠어요. (무슨 귀가 이리도 얇을까.)

Forgettable. 2008-10-14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남미 폴더가 있어서 관심있게 보고 갑니다^^ 마르케스의 책이 또 나왔군요- 하하 사야겠다-
그런데.. 중남미 폴더인데 거미여인의 키스가 없다뇨 ㅠㅠ ㅋㅋ
아무튼 읽어보고 싶은 책들 산더미 만큼 담아가요~

하이드 2008-10-14 16:33   좋아요 0 | URL
제가 읽으려고 했던 당시에, 잘 안 넘어갔던;; 것만 기억나네요. ^^
천천히 채워가야죠. 마르케스의 새 책 두 권 나왔는데,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정말 박력있고,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