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트레일러닝 첫 대회를 나가는 날이었다. 10k 였고, 2시간 22분안에 들어왔다. 8분 정도면 아슬아슬한 것 까지는 아니지만, CP도, 완주점도 시계 보면서 마지막 힘 끌어내야 했다.
답사때 갔던 오름길의 가장 극악했던 무한 계단과 오르막 내리막은 같았지만, 답사때 길 잘못 들어 도로로 한참 왔던 것에 비해 오르막 내리막이 더 있었고, 숲길과 흙길로만 계속 뛸 수 있는, 멋진 코스였다.
전전날까지만 해도 10키로 완주는 문제 없지. 근거 없는 자신감에 들떠 있었다. 가을에는 20키로도 할꺼고, 내년에는 37키로, 50키로.. 하면서. 전날은 내리막에 사람들이 몰려서 누구 하나 굴러 떨어지며 다 같이 굴러 떨어지는 참사가 아른거려서 잠을 설쳤다. 당일은 뛰자마자 약간의 과호흡과, 왜지, 왜 이렇게 힘들지, 못 하는거 아냐. 부정적 생각이 마구 들었지만, 그동안 달려본 것, 달려본 길 생각하면서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달리기 시작할 때 종종 드는 마음이다.
나는 내가 멘탈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달리기 하면서 그게 아니라는걸 알게 되었다. 처음 가는 곳에서는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약간의 과호흡이 오고, 심리적으로 힘들어진다. 가끔은 그냥 혼자 달리다가도 온다. 그럴때면 크게 심호흡을 한다. 크게 심호흡 하는 것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있다는걸 글로만 알았는데, 이제 그게 뭔지 알게 되었다.
러닝하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러닝복, 트레일 러닝은 챙길 것이 좀 더 필요하지만, 10키로라 그렇게까지 본격적이지는 않았다. 트레일러닝화, 20키로부터는 트런화 아니면 아웃된다고 한다. 러닝 바지, 대회에서 준 러닝티, 바람막이, 러닝 모자, 고글, 베스트, 스틱, 물 정도인 것 같다. 나는 고글은 안 샀는데 (써보니 좋기는 함) 흙먼지 많아서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스틱은 동생이 들고 다니고 필요할 때만 하나씩 가지고 썼다. 오르막길과 계단은 스틱이 나를 올려줌. 내리막길도 스틱 있으면 덜 무섭다.
러닝복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다. 예쁜 러닝복이어서가 아니라, 숲과 오름을 뛰어 나가기 위한 기능으로서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
10K와 37K와 100K 가 중간중간 섞인다. 10K 출발하기 전에 100K 1등이 들어와서 다들 환호해주었다. 10K 가면서 100K 주자들 들어오는 것 마주친다. 다들 파이팅 해주고, 응원해준다. 두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고 들어오는 주자는 마침 징검다리 앞 병목에 서 있던 10K 주자들이 가장 크게 환호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10K랑 시간차 두고 출발한 37K 숙련 주자들과 10K 꼬랑지에서 뛰던 사람들이 겹친다. 지나가면서 화이팅도 해주고. 나중에는 오름 오는 등산하는 사람들도 화이팅, 힘내요. 해준다. 등산 매너이기도 하고, 트레일러닝 매너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누가 봐도 힘들어 죽는 표정이어서 답은 많이 못했지만, 만, 살면서 육성으로 가장 많은 파이팅과 힘내요를 들었던 날이었다.
분기점마다 스텝들이 종을 딸랑딸랑 흔들어준다. 이것 역시 화이팅의 의미다.
동생 없었으면 못 뛰었을 것 같다. 러닝 메이트의 중요성.
유튜브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뛰는 것 같은 가짜 효능감을 느끼며 부풀어 올랐던 근거 없는 자신감은 펑 터졌지만, 이제 또 차분하게 연습해야지. 오르막길과 계단만 올라가면 숨 넘어갈 것 같아서 더 연습해야지. 트런은 정말 등산하는 사람들 잘 할 것 같다. 동생말로는 러닝 마일리지 쌓이는게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오르막길, 그리고, 숲길 디딜 때 평평한 집 안에서 가장 많이 걸은 내 발이 내가 봐도 비효율적으로 허우적 거리고, 발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주 1회는 숲달리기 해보려 한다. 달리지 않고, 걷기라도 내 발이 숲길, 산길 걷는데 익숙해지게 만들어야지.
일요일 오전, 멍때리며 트위터 보다가 두 시간 순식간에 지나가는거 너무 쉬운데, 일요일 오전, 2시간동안 달리기 열정 뿜뿜한 사람들과 자연 속에서 내 한계를 밀어붙이며 달리고 온 내가 너무 맘에 든다. 사람들과 마주치면서 들었던 화이팅, 힘내요 응원들이 몸과 마음에 착 달라붙어서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주최측이었던 파나고니아 부스에서 Why I Run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왜 달리나 생각해봤는데,
나를 알기 위해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알고, 사람들을 알고, 세상을 더 잘 알게 될 것 같다.
시작은 좀 움직이긴 해야지. 운동을 하긴 해야지. 라는 소극적인 마인드였는데 말이다.
더 강해지고 싶어서, 더 오래 더 잘 달리고 싶어서 달린다. 그 과정에서 나를 더 잘 알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