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차를 마시다 - <오만과 편견>의 제인 오스틴
킴 윌슨 지음, 조윤숙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은 적당히 뻔하고, 비교적 정직한 그런 이야기들인데, 그녀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와 관련된 이야기들 또한 많다. 내 책장에는 제인 오스틴 컴플리트를 제하고, <제인 오스틴 북클럽>과 제인 오스틴에 나타난 19세기 복장에 관한 책이 있고, 이제 <그와 함께 차를 마시다 : Tea with Jane Austen>까지 가지게 되었다. 나는 제인 오스틴의 대단한 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영국인들이 차를 마시는 것은 다음과 같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얼리 모닝티', 아침식사와 함께 '브렉퍼스트 티' 열한시에 '일레븐세스'점심에는  '런치티' 늦은 오후에 '애프터눈 티', 오후 다섯시 경에 '하이티' 저녁식사때 '디너 티' 그리고 술 마시는 시간에 '미드나잇 티'까지. 물론 이 많은 티를 평균적인 영국인이 다 마신다고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마시는 것일까?) 이름만 나열하는데도 지치는 것이, 무슨 호빗족 식사하듯, 차를 마신다.

 
Emilio Sala y Frances 'Mujer'

이 책의 원제는 '제인 오스틴과 함께 차를 마시다' 이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 속에서 나타나는, 그리고, 제인 오스틴이 실생활에서 얼마나 차를 좋아했는가를 이야기하는데, 어쩌면, 당시의 생활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보니, 그녀의 이야기는 19세기 영국의 홍차사랑 이야기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에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 혹은 그 시기에 쓰여진 다른 작품들에 나타나는 '차'에 대한 이야기들과 관습들을 재미있게 풀어 놓았다.

영국인들이 차를 좋아하기 전에, 그들은 아침 식사로 독한 맥주와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7세기 왕실에서부터 시작된 홍차 바람이 상류층의 유행으로 불처럼 번지고, 나중에는 전 계층에 퍼지게 되었다. 그 과도기에, 영국의 남자 중의 남자(?!) 들은 독한 맥주와 고기 대신 깨질듯 연약한 찻잔에 담긴 홍차를 홀짝이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과도기를 지나서, 지금 그들에게 '차'는 없어서는 안될 위안이다. 프랑스인이 절대 포기 못하는 것이 와인이라면, 영국인이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차'일 것이다. 티타임이 주는 깰 수 없는 습관에서 오는 평안일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처럼 소소한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 책은 집 안에서 홍차를 담당한 제인이 런던의 트와이닝스에 가서 차를 쇼핑하는 이야기에서부터 (그러니깐, 트와이닝스 300주년 티가 여기서 나오는구나!) 티와 함께 먹는 티푸드 이야기들, 티쇼핑과 웨지우드에 열을 올리는 이야기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녀의 소설들처럼 나온다. 어떤 작가의 책을 열심히 읽고 난 후 글을 쓰면, 그 작가의 어투를 따라하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많아서 술술 읽히는 책이다. 다만, 중간중간에 나오는 '사악할 정도로 매혹적인 레시피'들은 나의 머리를 있는대로 복잡하게 만들었다.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자기 직전까지 홍차 생각만 하는 지금 나에게, 이 책의 별을 후하지 않게 줄 수가 없다는 핸디캡이 있겠지만, 홍차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제인 오스틴과 19세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봄직한 책이다.

이제 불을 휘젓고 눈꺼풀을 빨리 닫는다.
커튼을 내리고 소파를 돌린다.
보글보글 큰 소리를 내며 끓는 찻주전자가
하얀 김을 내보내는 동안
즐거워하거나 흥청거리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찻잔들은
우리로 하여금 평화로운 저녁을 맞게 한다.

윌리엄 쿠퍼 '책무 : 겨울 저녁' 中

저랑, 차 한 잔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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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8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어제 궁금해서 부탁드렸는데, 정말 단숨에 읽으셨군요. 덕분에 무척 팔랑댑니다. 차를 끓이거나 커피를 끓이는 순간만큼은 평온하고, 따뜻해서 좋아요. 커피보다는 차가 한 수 위인 듯 해요. 넓고 낮은 홍차잔에 우려낸 차를 담을 때, 또르륵, 하는 그 소리가 그렇고 차갑게 마실 경우에는 유리잔 안에서 얼음들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그래요.
잘 써주신 리뷰, 잘 읽었습니다.

하이드 2007-09-19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부지런히 차쇼핑 하러 가는 제인의 모습 같은거, 재밌더군요. 챕터 제목이
cents and sensibility 막 이래요. 크크

Beetles 2007-09-19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마나 도서관에서 빌려봤던 책이예요...티에 갑자기 관심이 생기면서.. 저도 후한 점수 줍니다..홍차를 담당한 제인...ㅎㅎ 하이드님 글 보니 일단 책부터 사야겠어염..

마노아 2007-10-04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훠,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이군요. 축하해요^^

Phantomlady 2009-07-2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가 술이 아니라 차도 좋아하는구나. 요즘은 어떤차를 마시는지? 난 너무 더워서 런던프룻만 마시고 있어 ^^

하이드 2009-07-24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누구야 ^^ 서재 브리핑에도 안 뜨는걸, 이메일로 온 거 보고 왔네- 난 5초전에 런던프룻 복숭아맛 사이다에 냉침 시켜놓고 왔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