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츠 이치라는 작가의 '17세 천재' 타이틀에 미심쩍은 눈길을 던지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썩 마음에 드는 작가를 발견했다는 만족감이 남는다. 그의 소설들을 두 부류로 나누면, 퓨어 계열과 다크 계열이 있다고 한다. <zoo> 와 같은 작품은 호러이므로 당연히 다크계열에 속한다. 하지만, 이 호러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간간히 드러나는 그의 퓨어기질이다. 퓨어계열, 퓨어기질이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수성 여린 글들을 잘 쓰는 것 정도로 이해해두기로 한다. <ZOO>에서 '기진맥진한 인생을 걷고 있던 내게 처음으로 다정하게 대해 준 여자' 를 잃은 주인공에 대한 묘사라던가, <신의 말>에서 반 동무를 담고 싶어 따라한다는 사실이 '자기 자신의 암울함과 작은 그릇을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분했다'는 심리 등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시원하고 분명한 묘사들은 언뜻언뜻 드러나며, 단순하지만 분명하고 정연한 플롯과 기괴한 소재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 책은 호러, SF, 추리, 싸이코드라마, 일인극 등의 열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성찬과도 같은 책이다. 그 성찬은 영화 <큐브>를 떠올리게 하는 <SEVEN ROOMS>로 시작된다. 납치된 여고생인 누나와 열살짜리 남동생은 아무것도 없는 방 안에 갖히게 된다. 그 방 안에는 50cm 정도 폭의 더러운 도랑이 흐르고 있다. 도랑을 통해 상류와 하류를 오가며 납치자와 피랍자의 법칙을 알게 되는데, 그 과정과 결말이 전혀 있을법하지 않지만, 꽤나 그럴듯하게 점층적으로 공포의 단계를 높여간다. 가장 단순한 배경과 단순한 플롯으로 순수한 호러를 추출해낸 수작이다. 이와 같은 순수한 호러단편은 <SEVEN ROOMS>와 <차가운 숲의 하얀집>정도가 아닌가 싶다.

<양지의 시>나 <신의 말>과 같이 SF적인 단편들도 있다. 전작은 그렇게 새로운 소재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작품이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와 같은 로저 젤라즈니의 아름다운 단편들이  생각난다. <신의 말>은 언령을 가지고 있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남자아이의 이야기이다. 겉모습에 신경쓰고,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동시에 그런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괴로워하는 고등학생 남자아이가 주인공이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에피소드들은 기괴하며, 결말에 드러나는 주인공의 심리는 복잡하다.

<Closet>과 <혈액을 찾아라>는 본격추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범작이나, 주인공의 심리만큼은 호러의 톤을 유지한다.

단편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Zoo>와 <카지리와 요코>, <SO-far>는 심리소설, 싸이코 드라마에 가깝다. 가장 무서운건 인간이니깐. 호러단편집에 잘 맞는다.

마지막 작품은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이다. 하이잭을 당한 비행기 안에서 만난 세일즈맨과 복수녀의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예전에 무섭게 봤던 환상특급이란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만일 이게 소설이어다면 마지막에 주인공이 어떤 행동을 일으켜서 저 아이를 처치할 텐데요."
"이 비행기는 정말 떨어지는 걸까요."
"글쎄요. 예를 들면 단편집 마지막에 수록되는 신작 작품이라면 그런 제대로 된 결말이 아니지도 모릅니다. 저는 떨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략>"


강한 호러보다는 서늘한 떨림을 맛보게 해주는 이 단편집은 이 계절에 더욱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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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원도로시 2007-08-24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오즈이치를 발견해서 너무 좋았던 단편집이 었어요...덕분에 오즈이치 퓨어 계열도 다 질러버렸답니다.

보석 2007-08-24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까 말까 망설였는데 하이드님 리뷰 읽고 바로 보관함으로..;

하이드 2007-08-24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1+1 해서 사고는 안 읽고 있었더랬어요. 재밌어요. 재밌어
도로시니, 저도 지금 나머지 책들도 다 보관함에 들어갔어요 ^^ 간만에 또 전작작가 발견.

2007-08-25 0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7-08-25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정말요, 첫번째 소설이 짧으면서도 임팩트가 강하지요? ^^

이박사 2009-09-03 0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ZOO ,GOTH 둘다 좋았지만 암흑동화는 별 재미를 못 느꼈어요. 단편에서 가장 힘을 쓰는 작가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