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첸바크의 <어느 미친사내의 고백> 을 다 읽었다. 한 페이지에 스물 여섯줄에 656페이지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은 천페이지 짜리 <광골의 꿈> 분량과 맞먹는다. 원서로도 580여페이지의 분량이니, 두권으로 나누지 않고 내준 출판사 비채에 땡큐-

그 분량과 무게에 좀 질려서, 사 놓은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루고 있었다. 이번에 나온 역시 만만찮은 분량의 <애널리스트>까지 사 놓고 보니,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맘 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너무나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생생한 캐릭터와 시적이기까지한 라인들은 조금은 약한 스토리를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는다.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오래간만에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이책을 읽자니 생각나는 책 몇권이 있다. 알라딘에서 '어느 미친 사내...' 까지 넣고 검색하면 이 책과 함께 검색되는 책.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어느 미친 사내의 5년만의 외출>이다. 이 책의 원제는 <납골당 미스테리>이긴 하지만, 새로 붙인 제목이 더 맘에 든다. 두 작품 다 정신병원에 있는 정신병자가 탐정이자 주인공이다.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의 프란시스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여리고 섬세한 성격의 정신병자이고, <어느 미친 사내의 5년만의 외출>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름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다. -_-a) 는 '이중인격성 장애, 음란성 정신착란, 요도폐색' 이다. 로스 맥도날드와 같은 하드보일드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이니만큼, 주인공 역시 섬세하고 여린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드보일드 탐정 특유의 염세와 건조에 중남미의 뜨거운 기운을 더해 거침없이(?) 더럽기까지 하다.  1979년 스페인에서 출간된 이 책의 주인공이 정말로 정신병력으로 입원해 있는지, 당시의 복잡한 역사의 수레바퀴의 희생자인지는 알 수 없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_-;;는 5년만에 정신병원에서 외출하여 사건을 해결하고 다시 정신병원으로 돌아간다. 당시의  스페인 사회에서 정신병원 안과 밖중 어느 쪽이 더 미쳐서 돌아갔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는 정신병원으로 돌아간다.

2005년 여름에 근간이었던 <올리브 열매의 미로>, <여자 화장실에서의 모험>, <구브르씨 소식없음>, <불가사의한 것들의 도시>는 과연 나오기는 하는걸까??

존 카첸버그의 작품이 뛰어난 심리묘사와 정상인과(?) 소위 우리가 말하는 정신병자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멘도사의 작품은 미친 세상에서 '정신병자'의 탈을 쓴 정상인의 사회 풍자에 블랙유머를 짭짤하게 곁들였다.

정신병자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존 카첸바크의 삼총사가 싸우는 악惡의 대명사 '천사angel' 의 존재는 얼마전에 읽은 또 다른 소설 기시 유스케의 <천사의 속삭임>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소재는 좀 촌스럽지만(그것 또한 나의 선입견이긴 하지만), 그것만 극복하면, 되새김질 할수록 흥미로운 소설이다. 작품 속에서 아마존에 탐사를 다녀온 탐사단은 '천사의 속삭임'을 듣고 자신의 가장 깊은 공포 속으로 몸을 던진다. 

천사 광신도 같은 무리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명화 속에 등장하는 천사가 순결하고 순수한 중성의 미모로운 모습에, 맹금류, 포식자의 날개를 달고 있다는 것이다. 날개달린 이쁜이로만 인식했던 천사의 모습이 순식간에 '심판자'의 엄정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이 작품에서 천사는 현혹자이다. 아름답고 행복한 상상으로 인간을 유혹하여, 공포의 끝에 다다른 죽음으로 이끌거나, 더 나쁘게는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의 종말을 가져다주는 끔찍한 존재이다. 

카첸바크의 소설 속 '천사'는 악마다. 여리고 여린 정신병자 바닷새가 유일한 친구인 소방수 피터와 정상인 중에서도 법의'집행자'이자 '수호자' 이고, 동시에 희생자인 루시와 함께 싸워 이겨야할 악질적인 강간범이자 연쇄살인범이다. 아이러니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천사' 의 모습은 '공포'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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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8-10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 그렇죠..맨 정신에 천사를 본다는 것 자체가 골로 가버린다는 의미도 있으니까요..^^

하이드 2007-08-10 11:55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가 와서 천사 얘기하니 기분이 이상- ㅋㅋ

Mephistopheles 2007-08-10 12:31   좋아요 0 | URL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잖아요...(말되네..허허)

오차원도로시 2007-08-10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쟁여 두고 있었는데..읽어봐야겠군요.애널리스트나 이책이나 두께가 장난이 아니라 좋아요 ;;;ㅋ

하이드 2007-08-10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도로시냥님, 양에두 혹하시는군요. ^^ 저두요- 이거 책이 크고 행간과 글자크기도 정상이라 진짜루 교고쿠도 시리즈 두권 분량이에요.

비연 2007-08-10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미친사내의 고백은 정말 잘 된 책이라고 생각되더라구요^^
그에 비해서 애널리스트는 좀 약했다는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