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연속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3
사카구치 안고 지음, 유정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에비스의 동경사진전시관의 '일본 전후 사진전'에서 만났던 다자이 오사무의 바에 앉아 찍은 유명한 사진과 함께 걸려 있던 사카구치 안고의 사진이다.배경을 떨어뜨려 놓고 생각해도 예사롭지 않은 눈매와 폼새가 아닐 수 없다.  다자이 오사무와 함께 무뢰파(혼란, 퇴폐, 허탈을 표방)로 이름을 떨쳤다.

<백치,타락론>의 그 사카구치 안고와 <불연속 살인사건>의 작가가 동일인물인지 잠깐 찾아 보았다. 동일인물 맞다. 사카구치 안고는 그 자신이 미스터리 소설의 팬이었고, 반 다인, 엘러리 퀸, 그리고 특히 애거서 크리스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그녀와 비슷하다던가 한건 전혀 아님)

추리 소설 리뷰에 사설이 길었다. 이 작품은 산속 깊은 곳 산장이 배경이다. 그곳에 모이는 자들은 문인, 예술인들이다. 시인, 소설가, 극작가, 불문학자,배우, 화가 등이 산장의 주인 가즈우마에 의해 한자리에 모인다. 명목상 여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 개성 강한 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이 모임의 특징은 연애, 혹은 밀회다.

먼저 말해두면, 주요 등장인물이 무려 스무명에 달하는! 당황스러운 소설이었다.
앞쪽에 나와 있는 '등장인물 소개'를 가끔씩 넘겨가며 도움을 받았고, 분명하고 개성있는 캐릭터 설정에 비교적 쉽게 등장인물과 이름을 매치시킬 수 있었다.

그 많은 등장인물들의 '누가 누구의 부인이었는데, 지금은 누구랑 결혼해서, 누구랑 바람피고, 누구는 누구랑 부부지만, 누구의 애인이고, 그 애인은 누구를 좋아하고,누구는 누구의 아버지의 첩과 도망가고...'    얽히고 얽힌 연애관계로 시작하는 첫 장에서는 정말 땀이 삐질 났다.

심약하고, 예민하고, 거침없고, 무례하기까지한 문인들에 대한 묘사를 보고 있자면, 작가의 배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무튼, 그 심상치 않은 모임에서 한명씩 죽어나가기 시작해 모인 사람들의 반수 정도가 목이 졸려서, 독을 먹고, 칼로 찔리는 등 살해된다. 모든 사건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사람이 좀 많고, 좀 많이 죽었어야지;;)

"글쎄요, 사건의 성격은 불연속 살인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제가 후세를 위해 이 사건을 기록한다면 어쩌면 '불연속 살인사건'이라고 이름 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범인이 노리는 점이 바로 그것이니까요. 다시 말해 어떤 사건에서 자기의 의도가 드러나는지를 얼버무리려 하는 것이 범인의 목적이겠죠. 범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목적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동기가 밝혀지면 범인도 곧 드러나기 때문이죠."

문인, 예술인 외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 중 하나는 교세라 박사이다. 이는 작품 속에서 명탐정으로 소개되는데, 어째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가장 무개성해 보인다.( 그만큼 다른 이들의 개성이 강한지라) 경찰들도 등장한다. 아마 당시의 상황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는데, 등장하는 경찰들이 다 뛰어난 경찰로 좋게 좋게 묘사된다.

사카구치 안고는 "인간성을 왜곡하고, 불합리한 행위며 심리를 무리한 억지로 꿰어맞추는 트릭이 먼저 만들어진 뒤에야 등장인물이 창조되는 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과연, 생생한 캐릭터에 단순하지만 강력한 트릭에 거침없는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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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1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복잡한 소설이군요.^^;

하이드 2007-08-01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었어요. 롤러 코스터 타는 기분

오차원도로시 2007-08-0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많은 인물에 정신없음..이란 반응에 손을 놓고 있었는데...하이드님 리뷰를 보니까 흥미가 소록소록 생겨나는데요? ㅋ

하이드 2007-08-02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혹 읽을때는 그냥 그랬는데, 읽고 나서 생각할수록 괜찮은 책 있지 않나요? 이 책도 그러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