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세계 유명 작가 32인이 들려주는 실전 글쓰기 노하우
몬티 슐츠.바나비 콘라드 엮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이렇게 귀엽고 따뜻한 책인지 몰랐다. 

내 책상 위에 스누피를 세어보면, 스누피 필통, 스누피 알람, 스누피 스티키노트, 스누피 머그컵, 스누피 일력마스킹테이프, 스누피 탁상달력! 까지. 스누피로 한살림이다. 책장에 스누피 북엔드들은 또 어떻고. 


그동안 스누피를 굿즈와 음악으로만 소비해왔었는데, 이 책 읽고나니, 다시 한 번 스누피 책읽기에 도전해봐야겠다. 그동안은 번역본 1권 사두고, 원서 사야지. 멈추고 있었다. 


기대가 전혀 없긴 했다. 그냥 요즘 많이 나오는, 인기 캐릭터랑, 인기 주제(글쓰기 조언) 합한거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아니었다! 


스누피가 개집 위에서 타자기 치는 그림과 굿즈 많이 보긴 했는데, 뭘 의미하는지 별 생각 없었다. 

스누피는 작가지망생이었던 것이다!


찰스 슐츠의 자식인 몬티 슐츠가 쓴 머리말, 첫문장부터 나는 이 책이 매우 좋아졌다. 


"아버지는 독서를 좋아했고 문학을 숭배했다. 아버지의 사무실 벽에는 다양한 주제에 관한 책 3천여권이 꽂혀 있었고, 늘 앉아서 책을 읽으시던 의자 옆 작은 탁자 위에는 읽어야 할 책들이 항상 쌓여 있었다. 아버지는 가장 아끼는 책들의 구절들을 거론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예컨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거북이 장면처럼 유명한 구절이나, 미국에서의 삶에 대해 쓴 토마스 울프의 유명한 소설들에 등장하는 절절한 구절들 말이다. 


아버지가 40년 동안 만화를 그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자기를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만화는 그저 상업적인 것이라고 여기면서, 작가들을 엄청 좋아하고, 존경했다고 한다. 아주 유명해지고 나서도 말이다. 이 책은 피넛츠를 보며 어린시절을 보냈던 유명 작가들이 스누피에게 글쓰기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피너츠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작가지망생으로서의 스누피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 적 없는데, 스누피는 멘탈이 아주 강하고, 개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하고, 수십수만 거절편지에 굴하지 않는, 찐 작가지망생이었던 것이다. 


스누피의 글을 매번 구박하는 역할은 90%가 루시이고, 가끔 거절 편지를 전해주는 찰리 브라운이나 ㅣㅣㅣㅣㅣㅣㅣㅣ 이렇게 의사소통하는 우드스톡이 있다. 다른 캐릭터들도 굉장히 궁금해졌다. 


" 아버지는 작가 지망생 스누피를 통해 창작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고통을 표현하고, 작가와 편집자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동시에, 문학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작가들이 날마나 벌이는 투쟁이 얼마나 역동적인지 보여줌으로써 작가의 삶을 설명한다. " 


슐츠 자서전 급구! 40여년 넘게 꾸준히 인기 만화를 연재하면서,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문학과 작가들을 사랑하고, 존경했던 슐츠가 그리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작가와 편집자 사이의 간극 등등. 슐츠는 첫 달에 만화 연재하고 90 달러 받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원고료 수입은 한 달에 천 달러. 20년 뒤에는 원고료 수입이 하루 천 달러가 됐다고 한다. 


이런 에피도 재미있다. 만화 잡지에서 만화에 글씨 쓰는 일을 하다가 '따라 그리면 받을 수 있는 학위' 라는 제목의 통신강좌에서 강의를 했다고. 그때 강사 중에 '찰리 브라운' 이 있었고, '조이스 해버슨' 이라는 강사가 있었는데, 찰리 브라운은 찰리 브라운이 되었고, 조이스 해버슨이랑은 결혼했다. 인생을 크게 바꿔준 강의였군!


책의 판형도 스누피처럼 길쭉한 판형이다. 처음에는 특이한 판형이군 생각했는데, 스누피 완역본 판형이 이렇게 옆으로 길쭉하더라고. 어떤 독자를 상대로 하냐에 따라 글쓰기 조언이 달라지고, 글쓰기 조언 수십수백번 해봤을 작가들이 '스누피야' 하고 얘기해준다는 컨셉이 굉장히 마음 몽글몽글해지는 책이다. 


아, 리뷰 쓰려고 들어왔다가 알았는데, 옮긴이가 김연수 작가다. 

마음이 풀리는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내 생각에 아버지의 마음은 대중문화의 통속 예술과 문학, 회화, 고전음악 등의 심오한 미학이라는 두 진영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 듯하다. 그런 측면에서 <피너츠>는 이 두 진영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상식적인 독자들의 세계에 아버지가 생각하는 고급 예술을 끌어들이려는 독특한 시도였다. - P8

깨끗하게 정리된 작업실에서 슐츠는 화판 앞에 앉아서 연필로 연습장에다 낙서를 하면서 이야기 소재를 찾곤 한다. 그는 일주일치 연재분을 통째로 생각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매일 여섯 편의 만화를 그리지만, 이 모두가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되는 셈이다. (..) 한 시간 정도면 하루치의 만화를 그릴 수 있다. 일요일판에 실리는 만화는 하루 종일 걸린다. " 그 칸들을 다 채워 넣기만 하면 되는 일이죠. 월요일에 실리면 좋을 그림을 그리죠. 그 다음에는 화요일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고, 또 수요일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누가 배달해 주는 건 아니니까."
- P37

글쓰기는 예술가적 유희가 아니다. 새벽 3시에 내게 찾아오는 영감을 나는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아침 9시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펜과 공책을 들고 책상에 앉아서 몇 시간씩 글감을 찾기 위해 일한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밀어붙이고 이리저리 휘갈겨 쓰다 보면 뭔가가 온다. 그래서 이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타자기 앞에 앉아서 일어설 수도 없을 정도로 온몸이 아파올때까지 타자를 친다. - 다니엘 스틸 - - P42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완고한 사람이기 때문에 물론 그렇긴 해도 내 말이 더 옳을 때가 많다) 나는 아직도 작가라면 모름지기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글을 충분히 써보면 좋은 문장과 설익은 문장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단편소설을 스물다섯 편만 써보면 되는 소설과 안 되는 소설의 차이를 알아낼 수 있다. - 수 그래프턴- - P130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일과 비슷하다. 발을 떼기가 어렵지. 일단 뛰어내리고 나면 중력에 모든 것을 맡기면 된다. - 제이 콘라드 레빈슨 - - P134

시작하는 문장을 갈고 닦으렴. 글은 쓰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다시 쓰는 거야. 그러니까 도입부는 고치고 또 고쳐야 해. 첫 문장을 보면서 이렇게 자문해봐. "내가 독자라면 이런 문장을 보고 계속 읽을 마음이 생길까?" 그리고 기억해. 독자의 마음을 겨눠야 한다는걸! - P140

이 만화에 나오는 장면과 생각이 내게는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수없이 많은 세월을 나느 ㄴ원고를 보냈다가 거절 편지를, 특히 편집자를 대신해 수위가 보냈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일반적인 내용의 거절 편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얼마나 힘들지 이해가 된다. 스누피야.)
그렇다. 나는 여전히 그런 편지를 받는다. 또한 그런 편지를 보면 여전히 괴롭다. 하지만 몇 십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나는 스누피가 배우지 못한 점들을 배웠다. 거절편지는 내가 작품을 보냈고, 누군가는 내 작품을 읽었으며, 내가 운을 시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그 편지들 덕택에 나는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셀리 로웬코프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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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3-16 1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누피 이곳저곳에 있지요ㅋㅋ음악은 뭔지 찾아봐야겠네요. 이 책도 궁금하고 오홋 빨간 만년필도 눈에 들어옵니다. 딸기우유까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사진이예요ㅋㅋ 😊

하이드 2021-03-16 12:39   좋아요 1 | URL
찰리브라운 크리스마스 재즈가 정말 좋아요. 크리스마스마다 꺼내 듣지요.

새파랑 2021-03-16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누피는 책갈피 아닌가요? ^^ 작가지망생 이라는건 첨 알았네요 ㅋ

하이드 2021-03-16 12:39   좋아요 2 | URL
책갈피! 책갈피도 있군요. 저도 처음 알았어요. 작가지망생이라니. 이 책 정말 귀여운 컨셉이에요. 만화 내용은 귀엽기만하지는 않지만요 ㅎㅎ

2021-03-16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6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