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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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오스트리아의 여대제 마리 테레지아의 딸이었고, 프랑스의 루이 16세에게 시집와 프랑스의 어머니가 되었어야했다. 그러나 그녀는 왕인 남편을 무시하고 귀족사회를 쥐락펴락하며 사치와 향락을 일삼다가 프랑스 혁명에 의해 단두대에서 참수형을 당한다. 프랑스에 가면 그 화려하다는 베르사이유궁이 있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트리아농성이 있다.

이 여인과 이 여인을 둘러싸고 미친듯이 굴러가던 역사의 수레바퀴를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조명했다. 워낙에 드라마틱한 그의 글은 오스트리아의 딸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그야말로 펜대가 빛을 뿜고 종이 위를 날아가듯이 현란한 비유와 묘사로 표현하였다. 우리는 이 여인네의 시작과 결말을 모두 알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은 독자를 18세기 프랑스에서 유례없는 사치와 쾌락의 현장으로, 미친 혁명의 돌풍이 부는 바로 그 곳으로 끄잡고 들어간다. 500여페이지가 넘는 힘든 독서였다.

츠바이크의 전기들들은 그 인물들에 대한 열광적인 연서도 아니고, 날카로운 비판서도 아니다. 그녀에 대한 이 책의 어조는 '안타까움'이지 않을까. 모든 퇴폐와 악은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시작된듯하지만, 수 많은 갈림길에서 항상 잘못된 결정을 내렸던, 아니 그보다 더 나쁘게 결정 자체를 내리지 못했던 루이 16세에 의해 혁명은 완성되었고, 왕과 왕비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했다.

'진실이란 대개 그렇듯이 중용에 가까이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권주의의 위대한 성녀도 아니었고, 혁명의 "매춘부"도 아니었으며, 중간적인 성격에 유난히 영리하지도 유난히 어리석지도 않으며, 불도 얼음도 아니고, 특별히 선을 베풀 힘도 없을뿐더러 악을 행할 의사 또한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인일 뿐이었다. (중략) 그렇지만 평범한 혹은 아주 나약한 천성의 인물이 엄청난 운명의 수렁에 빠져들었을 때, 또 무시무시한 개인적인 책임에 몰릴 때에도 비극은 발생한다. 필자는 이런 형태의 비극을 보다 인간적인, 보다 통절한 비극으로 생각한다. '

이 책에서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직선적인 성격의 그녀. 사치와 쾌락을 쫓을 수 밖에 없었던 성적 억눌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들의 공적이 되어, 새로운 국민의회 세력의 좋은 먹이감이 되어 중상모략과 모욕, 사형선고에 이르기까지, 점점 의연함을 찾아가고, 강인한 왕비로 거듭나는 모습들을 츠바이크의 유려하다 못해 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글로 생생하게 접한다.

'지루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 던 그녀는 어머니가 되면서, 진정한 사랑 페르센을 만나면서( 이 이야기는 좀 더 뒤에 나온다) 철 없는 왕비가 아니라, 평범하지만 가장 완벽한 모습의 지고한 존재인 '어머니'와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 의 모습으로 거듭난다. 수 많은 시련과 고통은 그녀의 피에 흐르는 합스부르크왕가의 고고함을 깨웠고, 그녀를 자식에 대한 연인에 대한 사랑과 왕족으로서의 자부심으로 세상 전체에 맞서게 한다.  

그녀의 조력자였던 귀족들, 결국 파멸을 초래한 당사자이고, 오랜 세월 그녀의 무시를 받아왔으나 그래도 돌이켜보면 그녀에게 잘 대해줬던 루이 16세.
프랑스 혁명은 필연이었고, 운명이었다. 왕으로서 왕비로서 그들의 역할은 각각의 평범하지만 극적인 성격들로 인하여 서로의 약점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으며 결국은 프랑스의 왕권을 바닥까지 떨어뜨리고 말았다.

얼마나 많은 우연들과 악의들, 공포들이 모이고 모여, 왕과 왕비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목을 치게 했는지, 책을 읽다보면 놀랄 지경이다.

그녀를 보는 모두를 자기 편으로 만들었던 사랑스러운 열여섯의 소녀는
그 품위와 발랄함과 나긋함으로 감옥에서조차 그의 조력자와 하인과 친구를 만들었으나,
한 번 쏘아진 혁명의 화살은 그녀의 목을 요구했다.

재산을, 친구를, 왕비의 지위를, 남편인 왕을, 그리고 자식까지 빼앗기고, 그녀의 권위와 자존심마저 혁명의 도시에서 걸레가 되어버린 마지막 길. 그녀에게 죽음은 안식이었다. 사형선고는 이 세상과 이별하라는 선고가 아니라, 루이16세를 만나러 가라는 선고.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의연하게 잘 대답하고, 잘 죽는 것이다. 서른몇살의 나이에 백발이 되어버린 그녀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남은 모든 힘을 모아 의연하고 강한 모습만을 보여준다.

마리 앙투아네트 마지막 가는 길. 아래는 다비드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스케치한 것이다. 다비드에 대한 츠바이크의 묘사가 흥미롭다. ' 생오노레 가 한모퉁이, 요즘 카페 드 라 레장스가 있는 곳에 한 남자가 손에 연필을 들고, 종이를 든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가 바로 가장 비열한 인물이며, 또한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였던 루이 다비드였다. ( 중략) 그는 종의 근성과 비겁함이 천성이기는 했지만, 뛰어난 눈과 정확한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단숨에 종이에다 형장으로 가는 왕비의 모습을 그렸는데 놀랄만큼 뛰어난 스케치였다. '


'입은 거만하게 다물고, 속으로 외치고 있는 사람처럼, 눈은 냉담하고 손을 뒤로 묶인 채 마치 왕좌에라도 앉아 있는 것처럼 죄수 호송마차에 꼿꼿이 앉아 있는 여자를, 돌처럼 굳은 얼굴 윤곽에는 말할 수 없는 경멸이 흘러내리고, 솟아오른 가슴에는 흔들리지 않는 결심이 엿보였다. 인내는 고집으로 변하고 고통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힘이 되어 이 괴로운 인간에게 무시무시한 위엄을 주었다. 증오심조차도 훌륭한 태도로 죄수 호송마차의 굴욕까지 극복하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품위를 이 종이 위에서 배제시킬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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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7-02-1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사마천 2007-02-17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볼만한 책이네요. 리스트에 올리겠습니다. 와인병에 빠져서 푹 지내시는 줄 알았는데 독서도 꾸준히 ^^

하이드 2007-02-1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와인, 책, 반신욕이 이즈음의 화두에요. 츠바이크의 책 중 만족하지 않은 책이 없지만, 이 책처럼 호흡 길면서도 시종일관 급박한 책은 처음이네요. 몰랐던 여러 에피소드들과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압권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에 비해 훨씬 현란한 글솜씨도( 단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눈에 띄였습니다.

비연님, 책 두껍고, 커서 (보통 책들 23줄, 이 책은 한페이지에 28줄이나 되어서, 며칠을 붙들고 있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