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정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사이사이 비도 내렸는데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아서 어디가 새는구나 했지만
어딘지 찾을 수가 없어서 불편한 나날이었다.
물독에 길어다주는 물을 퍼서 설겆이도 하고 밥을 하려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로워서 아무 일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미니아빠는 아침마다 고양이 세수만 하고 집을 나서 목욕탕에 들러 씻고 출근을 했다.
미니는 사촌언니들과 목욕을 가서 눈이랑 코랑 귀랑 물이 들어가서 힘들었어도
머리도 감고 한 번 씻고 왔지만 나머지 세 모자는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이상고온을 견디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새는 곳을 찾아내어 물이 나오던 날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다.
설겆이도 금새 끝나고 무엇보다 그릇이 깨끗하게 다 씻기는 느낌이어서 개운했다.
물이 나오니 나도 에너지가 넘치는 기분이어서
아침 나절에 위 아래 두 아궁이에 불 때고 재민이 씻기고 나니 땀이 나는데다
태민이도 마당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들어왔길래 내친 김에 모두 씻었다.
그런데 우리 집 삼식이는 아무리 반찬이 없어도 꼭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는터라
시간 맞추느라고 어찌나 서둘렀는지 막 다 씻고 대야의 물을 버리고 있는데 집안으로 들어섰다.
출퇴근 길에 빨래바구니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물 열 통 떠다 나르지 않으니 삼식이도 좋단다.
부랴부랴 챙겨 먹여 보내고 나니 오후엔 세상 모르고 셋 다 잠이 들었다.
그런데 어제는 주문한 진공청소기가 왔다.
언제든 살 수 있었는데 미루다가 7년 만에 산 것이다.
청소기도 있는데 자주 청소하지 않을 나 자신에게 더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 미루고 미루었지만
막상 문 턱이며 창 틈, 그 밖의 온갖 틈새에 쌓인 먼지를 빨아들이고
요며 이불도 따로 흡입기가 있어서 속 시원히 털어내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묵혀두고 쳐다만 보던 짐들을 대충 정리하고 나니
방들이 환한 것이 역시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 사이에도 물론 삼식이 점심 차려내고
이불 하나랑 큰 바구니 하나 가득 빨래 널고 개고 하다보니 역시 넉 다운!
재민이는 이 모든 일을 하는 동안 젖 먹이고 기저귀만 갈아주면
마냥 누워있거나 뒤집으면서 놀거나 잠을 잤다.
아기가 어릴 때는 아이가 일을 다 한다더니 덕분에 빨리 끝냈다.
천국이 따로 없는 것도 좋고
평소에 불만인 게으른 내 모습을 청산하고 부지런히 움직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요령껏 일을 나누어 하지 않고 몰아서 하게 되니 늙어가는 몸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