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가을에 엄마랑 미니,태민이 셋이서만 허브나라에 갔다.
그 때만 해도 태민이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줄행랑을 놓지는 않을 때였고
도저히 안 되면 엄마가 달랑 업고 다닐 수도 있던 때라 엄두를 냈던 것 같다.
서울까지 버스로 4시간을 달려서 남부터미널에 도착하여 택시로 동서울터미널로 이동,
다시 버스를 타고 원주 근처의 장평터미널에 내려 다시 택시로 허브나라까지 가는
멀고도 복잡한 길을 커다란 여행가방을 끌고 두 아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기어이 갔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버스 안에서 거의 잠을 잤고
번잡한 터미널을 오가는 중에도 미니는 엄마를 잘 따라와 주었다.
그리고 휴가철이 지난 한산한 허브나라에서 닷새를 쉬었다.
엄마는 아빠랑 싸울 일이 있었으나 싸움 대신 그 곳에서 푹 쉬면서
결혼생활 5년간 쌓인 고운 먼지 같은 피로를 푸는 쪽을 택했다.
때때로 지극히 일상적이며 간단하고 담백한 전화통화만 했을 뿐인데
닷새 후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갈등은 사라지고 부부가 마주보고 웃을 수 있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그 조그만 공간을 떠나지 않고 닷새를 보내면서
매일 한 끼는 어린이 세트가 나오는 레스토랑에서 해결하고
또 한 끼는 빵집에서 맘에 드는 빵을 고르고 팥빙수나 핫쵸코, 아이스크림을 곁들여 넘기고
나머지 한 끼만 방에서 밥이랑 달걀찜 같은 것 하나 해서 간단하게 먹었다.
오전에 나가서 산책하고,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도 실컷 하고 방으로 돌아와
날마다 다른 허브 입욕제를 넣고 아주 조그만 욕조에서 복작복작 셋이서 목욕도 하고
오후에 또 산책하며 꽃도 보고, 사진도 찍고, 가게에서 물건들도 구경하고
찐 옥수수나 찐빵같은 군것질을 하거나
허브치킨을 시켜서 뜯어 먹는 것 좋아하는 미니 닭다리도 뜯게 해주었다.
좁디 좁은 방안에서도 뒹굴뒹굴하면서 숨박꼭질도 하고 만화영화도 보고 그랬나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기는 이 곳이 좋다고 '추역'이라고 하더니만
가끔 생각이 나는지 허브나라에 가고 싶다고 했다.
엊그제는 비바람이 심해서 유치원 가지 않고 집에서 하루를 보내노라니 따분했던지
낮에는 허브나라에 좀 놀러가자고 아빠 휴대폰에 문자도 남기고
밤에는 잠투정 삼아 언제 갈 수 있느냐고 눈물바람을 했다.
그래서 도대체 왜 허브나라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넓어서 뛸 수도 있고, 엄마랑 숨박꼭질도 했고, 레스토랑에도 갔고, 빵이랑 아이스크림도 먹었고
그런 일들이 좋았단다.
너덜이에서도 실컷 뛰어도 되고, 숨박꼭질도 할 수 있고, 빵이랑 아이스크림도 사 오면 되고
다 되는데 왜 꼭 허브나라여야 하느냐고 따지듯 다시 물었다.
" 그렇지만 내가 말을 잘 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허브나라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행복이 있었다구요!"
라고 소리치더니 팩 토라져서 누웠다가 잠이 들었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밀고 끌고 간 덕분에 양말 한 짝도 빨지 않았고, 청소도 할 필요없고
식사준비도 거의 하지 않고 그러니 물론 설겆이 할 것도 없고, 읽을 책도 가지고 가지 않았고
그리하여 그 가을의 닷새를 온전히 아이들을 바라보고 아이들과 놀아주며
먹고 싶다는 것 다 사주고(먹는 일은 특히 우리 미니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다.^^)
아빠에게조차 시간을 나누어 주지 않아도 되었던 날들이어서 아마도 미니는 행복했던 모양이다.
재민이가 태어나고부터 아무래도 미니에게 더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해본다.
올 되고 순순한 미니가 아니라 늦되는 태민이가 맏이였다면 정말 너무나 힘들었을 것 같다.
같은 여성동지인 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맏이라서 그런지
이제 겨우 일곱살 아이에게 나는 참 많이 의지하는 것 같다.
그런 고마운 맏이인데 안타깝게도 앞으로 여러 해 동안 허브나라 여행을 데려가긴 어려울 것 같다.
온전히 미니만 바라보기엔 동생들이 너무 어린 탓이다.
언젠가 미니랑 엄마랑 둘이서 어딘가로 오붓한 여행 길에 오를 수 있는 날이 오면
그 때에도 우리에게 그 표현하기 어려운 행복이 함께 하길 빌어본다.
<나의 다짐> 아무리 동생들이 어려도 맏이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듬뿍 쏟는 엄마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