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민이가 태어난 후 너덜이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터라 

시장보는 일은 미니아빠가 맡아한다. 

어느 날 주먹만한 해초덩어리를 사가지고 왔는데  

색깔은 틀림없이 파래 같은데 분위기는 김 같기도 하고 

너무도 결이 고운 것이 도무지 정체를 알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색깔이나 모양새가 김보다는 파래 쪽이길래 무채를 곱게 썰어 새콤달콤 무쳤다.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맛은 영 아니었지만 어쨌든 상에 올라갔다. 

그랬더니 미니아빠랑 조카 승욱이가 씩 웃으면서 이건 국을 끓이는 건데 무쳤느냐고 한다. 

알고보니 그것은 매생이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오늘 낮에 굴이 없는데도 꿋꿋하게 국을 끓였다. 

마늘이랑 국간장, 참기름 넣고 들들 볶다가 멸치 다시국물 조금 넣고 보그르 끓였더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에 김이 다 나가도 무척 뜨거우니 데이지 않게 조심하라는 충고가 있어서 

미니아빠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옆에서 읽고 있는 미니가 요청한 문구^^;;) 

한 그릇 떠놓고 들여다보고 있으니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와 함께 코 끝에 감겨드는 향기가... 

어릴 때 외갓댁에 가면 할머니께서 <김 국>이라고 이름하며 끓여주시던 바로 그것인 듯 하다. 

내 기억엔 훨씬 검었던 것 같은데 어쩌면 진짜 생김으로 끓인 국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렇게 곱고 부드럽게 목을 넘어가는 느낌과 향은 똑같은 것 같다. 

아흔 넷 생을 마치고 돌아가실 때까지 너댓번 밖에 뵙지 못했던 할머니지만 

겨울엔 찹쌀떡이랑 식혜, 당면이 많이 든 포장마차표 군만두, 

담 너머 골목을 누비던 아줌마한테 새벽아침 사주시던 재첩국 한 그릇, 

십원만 주세요 하고 내밀던 손아귀에 쥐어주시던 동전으로  바꿔온 꼴덕, 

여름방학이면 맛이라도 보고가라고 항아리에 넣어 익힌 설 익은 초록 풋감, 

윗 채 옆, 허리만 굽히면 손에 닿을 듯한 낮은 우물에  

오렌지색 박 모양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더위를 나던 시큼한 김치, 

생전 처음 먹어본 손콩국수의 고소한 맛 

외할머니는 이런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떠올리게 만들어주신다.  

이생에는 다시 뵐 수 없는 할머니처럼 절대로 다시 만날 수 없는 그 맛들.  

 

바닥에 머리가 닿을만큼 굽어서 움직이기 불편하게 하던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서 

참빗으로 백발을 곱게곱게 빗어내려 쪽져 올리던 할머니의 은비녀와 

화투로 하루 운을 떼보다가도 바깥 기척을 살피시려  

창호지 문에 달아놓으신 아기손바닥만 하던 할아버지의 유리창과 활과 화살. 

군민관 옆을 지나 어이어이 지나가던 높다란 꽃상여의 슬픈 소리와 

차가운 공기 속에서 알싸하고 매캐한 기분 좋은 연기를 만들어내던 겨울 새벽 장작, 

마당 한가운데 납작하니 엎드려 피던 채송화와 변소 문 앞에서도 고운 빛을 자랑하던 분홍 분꽃. 

 

백일도 지나지 않아서 덜컹덜컹 차를 타고 추운 길을 가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다고 

너덜이 집에서 통유리 창 밖에 펄펄 날리는 함박눈을 한가로이 바라보고 있자니 

그런 것들이 모두 무척이나 그립고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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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09-01-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생이국!!! 나도 매생이국 좋아하는데!!!
엄마가 종종 끓여줘서 숭이모가 왔을 땐 같이 먹었다능..ㅎㅎ
쩝... 이모... 매생이도 몰랐단 말이야?!?!? 헛ㅋㅋㅋ
함 무쳐본거 먹어보고 싶기도...ㅋㅋ

2009-01-26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1-26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적한 너덜이에서 추억여행을 하셨군요~~ 알싸하게 감겨듭니다.
아마도 할머니가 끓여주셨던 김국은 매생이가 아니고 김으로 한 것일 듯...^^

2009-02-02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설 2009-02-09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할머니가 끓여주신건 매생이 아니라 김국입니다.ㅋㅋㅋ
김국은 김국이고 매생이국은 매생이국... 우리 어렸을적엔 매생이 거의 안 먹고 자랐어요~

miony 2009-02-09 11:30   좋아요 0 | URL
오호~, 그렇군요. 그럼 그렇지...^^;;

소나무집 2009-02-10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완도도 매생이가 많이 나와요.
저도 이곳에 살면서 처음으로 매생이국을 먹어봤는데
굴 넣고 잘만 끓이면 참 맛있어요.
아이고, 먹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