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 - 시에서 배우는 삶과 사랑
천양희 지음 / 샘터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두꺼운 양장본의 책을 언제 다 읽을까 걱정을 했다. 하지만 책속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시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사랑이야기, 시를 쓰게 된 배경과 시인들의 삶의 모습을 짧은 자서전처럼 읽을 수 있었다.

 

시집처럼 꾸며진 표지는 홍일대학교 동양화가인 이은호씨의 그림이 있다. 책 속에도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화랑에 들어가서 벽에 걸린 작품을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그림 옆의 시를 읽어보고 있으면 멀리서 스피커로 들려오는 듯 잔잔한 느낌을 주었다.

 

 

 

 

 

제일 먼저 소개된 시는 헤세의 시 <안개 속을>이다. 흔들리는 영혼을 붙잡아주는 시라고 한다. 사랑보다 우정이 오래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헤세의 <데미안>을 추천한다.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에는 “...자신이 현재 살아 있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라고 말했다. 에머슨은 평생 동안 일기를 썼으며 그 일기로 일생동안 지속된 사색의 기록으로 훗날 시와 에세이를 쓸 때 훌륭한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칠레의 민중의 시인이며, 외교관, 상원의원으로 활동한 파블로 네루다의 시 <망각은 없다>를 소개했다. 67세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천양희씨는 네루다처럼 시와 삶을 빛나게 하는 시인은 많지 않다고 하며 우리는 삶을 통해 비로소 그 사람을 보며, 인생을 망각하고 낭비하는 것처럼 큰 죄는 없다고 한다. 나도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러시아의 가장 유명한 시인인 마야코프스키가 사랑을 하다가 권총자살을 했다. 죽고 나서 모스크바에 있는 ‘승리의 광장’은 ‘마야코프스키의 광장’으로 그 이름이 고쳐졌다.

 

해마다 6.25가 다가올 즈음이면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탄생한 임화 시인의 시 <네거리이 순이>를 소개했다. 천양희씨도 눈물 나는 가난 속에서 어머니를 잃었던 기억과 전쟁 중에 피난으로 공부를 제대로 못했던 때를 떠올렸다.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화석처럼 굳어져 있다고 한다. 천양희 시인의 과거를 시적으로 느낀 표현일까?

 

프랑스 시인 알프레드 드 뮈세의 시 <슬픔>은 어떤 한계에 부딪힌 시인의 비통한 심정을 고백한 것이라 한다. 23세에 뮈세는 여성 작가 조르주 상드를 만나 사랑을 하나 상드가 의사 파제로와 친교를 맺게 되자 그들은 만난지 2년만에 결별하고 실연의 충격을 겪게 된다.

 

중국의 여성 시인 수팅의 시 <이 또한 모든 것입니다.>로 마음의 위안을 받고 한숨을 돌리게 되고, 보들레르의 시 <음악>을 들으며 힘을 얻으라고 한다.

 

 

 

 

 

사랑이란 죽은 이도 소생시킬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미국의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스의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를 읽었다. 예세닌은 아홉 살 때부터 시를 썼으며 첫 시집 <초혼제>는 21세 때였다. 학교를 그만두고 시 쓰기만 몰두했다. 러시아의 국민시인, 민중시인으로 자연을 의인화하고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진 후 2년 뒤 자살했다. 왜 자살을 하는 시인이 많았을까?

 

푸슈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으로 작은 상처라도 위안을 받으라고 한다. 또 빅토르 위고의 <씨 뿌리는 계절>을 읽었다. 위고는 프랑스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낭만파 시인인 동시에 소설 <레 미제라블>과 <파리의 노트르담>으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위대한 국민작가이다. 나의 두 딸이 영화 레미제라블 OST를 따라 부르던 모습이 떠오른다. 영화도 무척 감명 깊게 보았다.

 

천양희씨는 오장환 시 <마지막 기차>를 지금도 절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한다. 우리나라 시인의 시를 보자 반가웠다. 외국 시인들 이름도 몇 명만 알고 있고 또 그들의 시를 그냥 지나듯 읽기만 해서 외우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우리나라의 시인이름이 나오니 반가움에 그의 시를 크게 읽어보았다. 배경음악이 깔려야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나 자신 때문에 울고 싶을 때, 눈물겨운 기쁨을 느끼고 싶을 때, 흑인 시인 랭스턴 휴즈의 <할렘 강 환상곡>을 읽어보라고 한다. 그는 흑인 민중의 계관 시인으로 불렸다고 한다. 유명했던 시인 린지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호텔의 한 모임에서 우연히 랭스턴 휴즈의 시를 낭송하게 되었고 그 계기로 유명하게 되었다. 정말 다행하고 잘된 일 인 것 같다.

 

4.19가 되면 아까운 나이에 쓰러져간 젊은 영혼들을 생각하며 자주 슬퍼진다고 한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삶이라고 생각되는 날이면 중국 시인 아이칭의 <외침>이란 시를 읽어보라고 한다. 1985년부터 20년 동안이나 숙청되어 감금생활을 한 그는 1985년 이후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나 결실을 보지 못하고 1996년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상처 때문에 많이 아프거나, 슬픔 때문에 끝도 없이 무너질 때 러시아의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의 <내 목소리는>을 읽는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슬픔’ 이란 시 한 구절이 더욱 절절해진다고 한다. 나에게 슬픔은 언제일까? 친정아버지의 죽음, 친정언니의 죽음, 친정엄마의 죽음. 나에게 가족의 죽음은 나의 슬픔들이다. 하지만 나에게 시는 슬픔을 치유해주진 못한다. 앞으로의 남은 삶에 강한 버팀은 되어줄 수 있으려나. 기대해본다.


 

 

 

 

 

 

 

천양희씨는 시골에서 자라 어렸을 때부터 자연 중에서 나무를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생명의 나무는 영원한 초록빛’이란 괴테의 말이 알고 있는 말 중에서 나무를 잘 표현한 것 같다고 한다. 난 초록을 생각할 때는 경주 안압지의 연잎이 떠오르고 함양의 상림숲 안쪽의 연꽃이 가득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오래전 상림숲을 거닐며 일기 같은 글을 적을 때, “산책로에는 '머루터널', '으름터널' 등 가까이 심어진 나무이름을 딴 터널 안을 거닐어보며 뒷짐만 지으면 왕(王)이 된 것 같습니다.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으쓱됨이 자연스럽게 제 두 어깨에서 나온답니다.” 라고 했다.

 

이용악의 시 <소원> 와 <그리움> ,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 와 <전원>을 소개하면서 천양희씨는 신비와 생명력으로 가득 찬 자연을 스승처럼 여겼다고 한다. 난 가끔 나를 바꾸고 싶을 때나 반성을 할 때면 읽었던 책을 읽으며 작가를 멘토로 한다. 천양희씨가 앞으로 나에겐 멘토가 되어줄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릴 때면 책을 다시 펼칠 것이다. 영시가 있다고해서 제대로 번역을 할 수도 없겠지만 부록으로 영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어가 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시인이라도 영시로 번역된 시가 같이 있으면 그 표현을 새롭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천양희씨는 행복을 알고도 가질 수 없어 운다는 사람들에게 괴테의 짧은 시 <경고>를 들려주고 싶다고 한다. 옮겨서 적어본다.

159쪽-

어디까지 방황하며 멀리 가려느냐?

보아라, 좋은 것은 여기 가까이 있다

행복을 잡는 방법을 알아두어라

행복이란 언제나 네 곁에 있다

 

천양희씨는 쌀로 지은 밥이 배고픔을 채워 준다면, 시는 고픈 정신을 채워 주는 정신의 밥이라고 말한다. 또 사랑의 영혼이란 기쁨에 너무 굶주리면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린다고 하며 그럴 때는 눈을 돌려 시를 읽어 보라고 한다. 그리고 미국 시인 새뮤얼 울만의 <청춘> 이란 시를 소개했다. 스페인 시인 로르카의 <강의 백일몽> 과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 와 <열쇠를 바꾸며>를 소개했다.

 

 

 

 

앞서 121쪽에도 ‘어린 아이가 한마디 말을 하기 위해선 6천 번을 들어야만 가능하다’ 고 적혀있는데 다시 200쪽에 반복되어 이야기가 나왔다. 소쩍새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신석정의 시 <기우는 해>가 적혀있다. 지난 추석 대구의 팔공산 정상위에서 난 보름달을 보면서 반대편에 기우는 해를 보았다. 기우는 해는 뜨겁고 붉은 모습으로 장관이었다. 보고 있으니 엄숙함이 밀려왔다. 함께 산을 오른 큰 딸아이와 석양을 보고 기도하고 보름달을 보면서 기도했다. 새해에 또 산에 오르고 싶다.

 

천양희씨는 민족의 어둠을 비춘 등불 같은 시인으로 한용운씨를 소개하며 그의 시 <알 수 없어요>를 보여주었다. 시의 행을 바꿔서 적은 게 아니라 계속 연결해서 적어두어서 조금은 느낌이 시 같지 않고 에세이를 읽는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지면의 줄이려고 했는가? 그런 부분이 좀 많았다.

 

독일 시인 게오르크 트라클의 <고독한 자의 가을>을 읽은 지금이 가을이다. 그래서인지, 천양희씨의 글처럼 사람은 고독할 때 가장 강하고 순수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보고 싶은 것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이 그리움이란 생각이 들 때면 유치환 시인의 <그리움>을 읽어보라고 한다. 천상병 시인의 시 <행복>을 읽었다. 아주 오래전 천상병, 중광, 이외수 등 3인의 시와 그림을 엮은 시 화집인 <도둑놈 셋이서>라는 책이 생각난다. 나의 두 딸이 어렸을 때 양장본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없다. 얼굴에 잔주름 가득히 보이며 웃는 모습이 많은 천상병시인을 TV에서 본적이 있다. 이제 그 모습을 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

 

 

 

 

아일랜드 시인에이츠의 <수양버들 공원에 내려가>라는 시를 읽었다. 에이츠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관여했고 연극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1923년에는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시인이란다. 책 표지에 금박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란 인쇄가 있는 것은 정말 더 대단해 보인다.

 

천양희씨는 공원 벤치에 앉아 바람에 떨리는 나뭇잎들을 보고 있으면 “바람이 분다 ... 살아봐야겠다”던 발레리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고 한다. 그 구절을 너무 좋아해 지금까지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난 바람이 부는 날 생각나는 게 있다면 ‘제주도’이다. 서귀포 지역을 비롯한 제주도 일대에는 하늘로 치솟은 방풍림으로 삼나무가 많이 심어져있다. 제주도 여행하며 본 풍경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난 그림을 잘 그리니 시를 적지 못해도 방풍림을 보면 그림을 그리고 싶을 것 같다.

 

천양희씨는 그 외 랭보의 시 <나의 방랑생활>, 폴란드 여성시인 심보르스카의 시 <말을 찾아서>를 소개했다. 처양희씨가 가장 불행했던 1970년 중반에 나그네처럼 떠돌다가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예언>를 읽고, 세상을 접으려던 생각을 바꾸었다고 했다. 나라를 잃은 자는 온 천하에 제 무덤을 갖지 못하듯이, 정신을 잃은 예술가는 죽은 뒤에야 제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사랑에 빠지면 여자가 남자보다 아홉 배나 더 사랑하며, 남자보다 다섯 배나 더 운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랑은 잔인한 경험이라는 실비아 플라스의 시 <느릅나무>를 들려주고 싶다고 적어두었다. 플라스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생텍쥐페리의 말을 올려두었다.

281쪽-

“우리가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면 그는 산 자보다 더 강하다.”

 

 

 

 

 

 

 

 

천양희씨는 마감의 말을 따로 적어두지 않고 끝을 냈다. 미리 책 앞의 ‘저자의 말’에서 좋은 시를 만나는 기쁨이 바로 참 감동이라고 하며 지금의 시로 살아 있는 서른아홉 편의 옛시를 읽으면서 절실하게 느꼈다고 했다.

 

나도 이 책 속에서 많은 위로를 받고 감동하고 받아 적고 줄을 그어보았다. 또 낭독해보았다. 슬픔을 강한 기운으로 느낄 수 있었고, 내 주위의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나또한 앞으로도 사랑을 받지만 않고 나누고 살 것이다. 그리고 나도 사랑의 시를 적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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