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 장영희의 열두 달 영미시 선물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샘터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처음 책을 받았을 때, 내가 알고 있는 시인이 별로 없다는 것에 부끄러웠다. 낙엽이란 제목의 시인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의 구절은 1892년 간행된 레미 드 구르몽의 시집 《시몬 La Simone》에 수록되어 있다. 여고시절 영미시집을 보면서 따라 읽어보고 문집에 옮겨 적어보던 기억도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을 오래전에 가지고 있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못 찾는다. 아마 이사 다니면서 없어진 듯하다. 이렇듯 내가 알고 있는 시인이 너무 없는데 장영희씨의 ‘다시, 봄’ 영미시 속의 제목에도 입으로 중얼거리던 시인의 시는 찾을 수 없었다.

 

 

 

내 책꽂이 한 컨에 있는 장영희씨의 에세이집이다. 동그리한 얼굴의 미소는 나랑 마주보며 커피를 한잔 마시고 이야기하며 나에게 보내는 미소처럼 밝고 푸근하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분이다. 풀이한 영미시도 부드러운 바람을 전해줄 듯하다.

 

 

글쓴이 장영희씨와 그림그린이 김점선씨와 서로를 칭찬하는 글이 있다. 서로가 함께 있을 때면 그렇게 웃는다고 한다. 나도 옆에 있었다면 어설픈 개그우먼 흉내를 내면서 웃게 해줄 수 있을 텐데..

 

영문학 박사이기도 한 장영희씨는 병마와 싸우다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출간을 하루 앞둔 2009년 5월 9일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김점선씨도 난소암 발병 후 2009년 3월 22일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열두 달 속에 담겨진 영미시를 만든 두 사람이 하늘나라에 있다. 아마 나와 같은 독자들이 책을 읽고 감명하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겠지. 오래전 선물로 받은 내이름이 새겨진 북커버를 꺼냈다. 남편을 따라 가까운 시외를 갈 때나, 친구를 만나러 커피숍으로 갈 때도 챙겨갔다. 미리 도착하여 친구를 기다리면서 책을 펼쳤다. 그날 커피숍은 분위기 좋은 북카페가 되었다.

 

 

장영희씨의 사인이 표지 안에 적혀있다. 필체를 보니 작은 장미꽃 한 송이를 보는 듯하다.

 

 

내용이 시작되기 전에 ‘추천의 글’에는 ‘책 속에서 피어나는 그리움’ 이란 제목으로 수녀이면서 시인인 이해인씨는 장영희 교수와 김점선 화가와 2008년 7월 16일 저녁, 셋이 만나기로 했다가 암수술을 하게 되어 2009년 항암 방사선 치료를 다 마치고 만나려던 것을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두 분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말아서 그리움에 슬퍼하였다. 5주기를 맞아 펴낸 책이라고 소개하며 1월에서 12월까지 계절에 어울리는 다양한 시가 있다고 소개했다. 9쪽 마지막 구절의 글에 동감하며 옮겨본다.

 

- 소중한 모임, 특별한 기념일, 지인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편지나 카드에도 인용하면 좋을 이 책을 1년 내내 가까이 두고 사랑하는 독자들이 더 많아질 것을 기대해 봅니다.

 

 

1월 January 시작부분이다. 가슴에 와 닿는 글이다. 고1 여학생인 둘째 딸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와서는 “어머님도 문집처럼 이렇게 만들어보시면 예쁘게 잘 만드실 것 같아요. 영어시를 그냥 보면 해석이 되나요? 잘하실 것 같아요.” 터덜웃음이 터져나왔다. “전혀 모르겠다. 영문은 모르겠구. 하지만 해석한 글이 아주 부드럽다. 그림도 멋지고.” 답을 하고나니 괜히 시인들이 부러워졌다. 

 

 

 

2월에는 하얀 장미꽃을 보았다. 수박겉의 짙은 청록색의 잎사귀가 흰 장미꽃송이 옆으로 삐죽 나와있다. 5월이 되면서 아파트 주변에서 빨간 장미꽃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며칠 전은 누가 정했는지 장미의 날이라며 장미꽃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2월의 황혼(February Twilight-새러 티즈데일)’에는 차가운 저녁하늘의 별을 보면서 적은 시이다. 시를 해석해서 우리말로 시를 적어두고 다시 시안에 보이는 작가의 생각을 엿보며 설명글이 적혀있다. 3월의 시에는 희망을 노래한다.

 

 

3월은 포버트 브라우닝의 ‘봄노래(Spring Song)' 속에서 종달새와 달팽이가 나왔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또 엘라 히긴스의 ’네 잎 클로버(Four Leaf Clover)' 에서는 네 잎 클로버가 자라나는 멋진 장소를 자랑한다. 바로 나오는 4월에는 새를 앉고 있는 흰색드레스의 신부의 모습 같은 그림이 있다. A.E.하우스먼의 시인 ‘나무 중 제일 예쁜 나무, 벚나무’ 시가 나오는데 영시의 한글번역에는 부활절 맞아 하얀 옷을 단장한 모습이 나온다. 아마도 그림 속은 부활절인 듯하다.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속의 새색시이야기도 있다. 장영희 교수는 63쪽 마지막 글에 자신이 투병 중에 살고 싶다는 심정을 적은 것 같다. 옮겨보았다. 

 

 - 꽃 피는 아름다운 봄을 영원히 볼 수는 없을진대, 너무 늦게, 이제야 그걸 깨닫습니다. 문득 다가오는 봄 속에 내가 숨 쉬며 살아 있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감사합니다. 올봄엔 정말 꼭 꽃구경 한번 나서 봐야겠습니다.

 

 

 

5월의 시가 소개되는 곳에는 살짝 접어 끼워진 겉표지의 또 다른 겉표지 뒷면에 있는 글이 있다. 새러 티즈데일의 ‘연금술(Alchemy)'이다. 글 속에서는 노란 데이지꽃을 소개한다. 난 며칠 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본 노란 달맞이꽃이 떠오른다.  71쪽에 나오는 연금술을 옮겨본다.

 

- 연금술

새러 티즈데일 

 

봄이 빗속에 노란 데이지꽃 들어 올리듯

나도 내 마음 들어 건배합니다.

고통만을 담고 있어도

내 마음은 예쁜 잔이 될 겁니다. 

빗물을 방울방울 물들이는

꽃과 잎에서 나는 배울 테니까요.

생기 없는 슬픔의 술을 찬란한 금빛으로

바꾸는 법을.

 

 

6월은 유독 더 눈부시다고 한다. 시인들은 청춘의 달 6월을 사랑의 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여기에 독일시인인 괴테(Goethe)가 생각난다고 적혀있다. 그러고 보니 시는 생각이 안 나도 시인 괴테는 생각난다.

 

시집 속 그림에 대부분 노란 물갈퀴의 오리가 많이 나온다. 또 파란 배경이 바다인 듯 하늘 인 듯 그 속에는 하얀 말이 등장한다. 짙은 빨간색의 장미와 여러 색상의 꽃들이 많이 나온다. 강한 색채와 단절된 선들이 종이로 만든 작은 보석상자를 보는 것 같다. 작은 커텐에 프린트해서 부엌 한 빈 공간의 벽에 걸어두어도 예쁘겠고, 오리 두 마리가 그려진 둥근 손거울을 들고 다녀도 좋겠다. 더운 여름에 손부채에 곱게 그려 넣어도 좋을 그림들이 책 속에 가득하다.

 

 

7월의 이야기를 얼른 보내고 8월에는 푸른 강인가 혹은 바닷가인가 그런 배경에 흰색의 말들이 얼굴을 삐죽 내밀고 있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곧 가을이 시작된다고 알려준다. 평야를 흰색의 백마를 타고 달려보고 싶다. 몇 년 전 제주도에서의 여름에도 흰색 말은 타보지 못했다. 갈색 말을 타고 바닷가 산 아래 넓은 들판을 잠시 걸었다.

 

 

9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시는 엘프리드 테이슨의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Break, Break, Break)이다. 시가 끝나고 다음 장에는 시의 마지막 어절이 적혀있는 노란 바탕의 지면이 나온다. 자세히 보니 사람의 얼굴과 노란색은 옷인 듯하다.

 

장영희 교수는 이 시를 소개하면서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시가 생각난다고 옮겨 적어두었다. 난 노란 옷을 입은 모습을 보면서 전주 한옥마을의 어진박물관 속의 어진(임금의 초상화)가 떠올랐다. 127쪽의 두 줄의 글을 옮겨본다.

 

 - 가버린 날의 다정한 행복은 내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

 

 

노란말이 나왔다. 10월의 이야기에는 오곡백과 풍성함을 자랑하는 성취와 감사의 달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10월은 아쉬움의 달이라고 한다. 난 열두 달의 느낌을 정의해본 적이 없다. 내일로 당장에 다가온 시아버님 제사나 일주일 후의 친정아버지 제사, 가족들의 생일과 결혼기념일 등..새해가 되면 음력이 적혀있는 커다란 달력에 가족의 대소사를 적어두고 자가용 실내거울 앞에 붙여두는 작은 달력도 만들어서 메모해두는 것으로 지나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겨울방학 과제물로 탁상달력을 직접 만들면서 그림을 그려보던 적이 있다. 새해에는 ‘다시, 봄’의 책 속처럼 12개의 그림을 그려서 손수 탁상달력을 만들고 싶다. 아님 좀 크게 그려서 12장을 액자 속에 넣어서 벽에 걸어두고 매달 종이를 바꿔서 보이게 만들어볼까? 이순구 화백의 ‘웃는 얼굴’ 그림들이 떠오른다. 

 

 

11월은 슬픈 가을의 낙엽을 이야기하고 12월은 크리스마스와 하얀 눈사람을 노래했다. 164쪽에 적혀진

장영희 교수의 마지막 부분의 글을 옮겨본다.

 

- 시인은 사랑과 위로가 없는 겨울같이 차가운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우리가 비참한 것은 눈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슴속 깊이 보석처럼 숨겨 놓은 따뜻한 심장을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기 때문입니다.

 

12월의 시를 다 옮기고 뒤편에는 2005년 5월 27일자 조선일보에 게재된 박해현 기자의 인터뷰 기사를 발췌, 정리 한 내용이 있다. 생전에 독자들과 주고받은 메일과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함께한 여러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자주 몸이 아픈 내 주위에는 많은 친구들의 응원이 있다. 커다란 접시를 만들어준 친구는 오늘도 전화를 주면서 남은 찰흙으로 함께 접시만들기를 하자고 덜렁 미리 만날 약속을 정한다. 나도 장영희 교수처럼 에세이를 적고 싶다. 꽃을 보고 사진만 찍는 것에 끝나지 않고 시를 적어보고 싶다. 이해인 수녀님의 추천 글처럼 작은 카드에 그림도 그려보고 영미시도 옮겨 적어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작은 액자 속에 그렇게 시화를 그려서 선물해도 좋을 듯하다. 무엇이든 많이 해보고 친구들에게 많이 만들어 선물 하고 싶다. 이 책은 나를 바쁘게 만들었다. 앞으로는 급한 마음만큼이나 손이 바빠질 듯하다. 하늘에 있는 두 분이 나를 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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