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는 대로
수산나 타마로 지음, 최정화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마음가는대로]책을 처음 받아들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같은 대구에 살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지 2년이 지났다. 2년 전 겨울, 친정엄마와  여동생식구와 우리 가족모두는 함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묘가 나란히 있는 양평의 용문산에 올랐다. 산 아래 엄마의 이종 사촌이 살고 있었고 산소는 잘 가꾸어져 있었다. 엄마는 눈물을 감추시며 오래 있기 싫다며 아래 이종 사촌댁에 들렸다. 양평시내의 큰아버님댁에도 인사차 들렸다가 대구로 향했다. 차 안에서 내가 초등학생일 때, 할머니의 안경쓰신 얼굴을 스케치 했던 때를 떠올렸다. 주름이 많아서 그리기가 더 쉬웠던 모습이었다.

 

책 속의 내용은 손녀에게 쓰는 할머니의 편지글이지만 날짜를 적어두고 적은 글은 외할머니의 삶의 일기이며 긴 반성문 같다. 어쩌면 외손녀를 겁내는 모습같았고 죽고나서 자신을 묻어줄 외손녀에게 회개하는 모습같았다. 박완서님의 소설 '친절한 복희씨' 속의 복희씨가 떠올랐고 신경숙님의 '엄마를 부탁해' 안의 아들과 딸들도 떠올랐다. 부모에게 먼저 전화해야하는데 나에게도 친정엄마는 나보다 먼저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신다. 어느것이 더 소중한 사랑일까? 하지만,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자식에게 헌신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한달 하고도 며칠을 더 한 크리스마스 이브가 시작되기전인 12월 22일까지의 편지글이다. 가끔씩 빠진 날이 있어서 그 빠진 날엔 혹 아프셨나했다. 나이가 많이 드신 분이라 그랬으리라.. 혼자 남은 외할머니를 두고 떠나 버린 손녀가 미웠지만 할머니의 말씀처럼 아플 때 불러서 간호하다가 세월을 보낼 것을 염려되었을 것 같다. 손녀가 떠나고 두 달이 지나 시작된 편지를 훔쳐보듯 읽으면서 나의 둘째딸처럼 초등5학년 때의 손녀는 '어린왕자'를 좋아한 것을 알았다.  손녀와 함께 가꾸던 장미에 물을 주다가 쓰러진 할머니를 옆집 라츠만 부인이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편지를 쓰기까지 한 달이 지났다.

 

할머니의 어릴적 이야기가 있다.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지만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아버지가 미웠고 자식을 키운다는 것을 사회적인 책임으로 여겼던 그 시절에 고등학교까지 나와서 대학은 갈 수 없었다. 더 강력하게 자신의 의지를 말하지 않았음을 후회했지만 지난 일이다. 나의 친정엄마도 어려서 성당에 다녔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성당에 다니시는 것을 반대하셨고 결국 몰래 다녔다가 그만두게되었다.  당신의 아들이 커서 불교를 찾는다고 한 집안에서 두 종교를 생각하지 못하신 엄마는 지금도 무교로 지내신다.  주인공인 할머니도 교회에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구나 마음이 아플 때면 자신을 의지할 신적인 존재를 찾게되지 않을까?

 

할머니는 어려서 부모님이 바라는 모습으로 커갔다. '인격'을 얻기위해 '개성'을 버렸다고 한다.  남자들은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여자들은 집안에서만 있으면서 닫힌 생활을 했다고 한다. 80세가 넘은 노인의 어린 시절은 지금 우리의 엄마들 세대들의 생활과 별 다름미 없었던 것 같다.  전쟁을 겪고, 외로움도 겪고 마지막으로 선택이 바로 결혼이 아니었을까?  할머니는 결혼 상대를 오랫동안 찾았었다. 결국 늦게 결혼을 했지만 결혼 후 자신의 서재에서 거의 생활하는 남편과 친정아버지로부터 달아나려 애썼던 것 같다. 요양을 하러 여행을 가서 의사를 만났고 나이 50세에 자아를 찾았다.  자신의 딸은 그 의사의 딸이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던 날 그는 자신의 딸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딸에게 잘 해주지 않았는가?  딸이 공부를 한다고 다른 지방의 대학으로 떠난 것도 어쩌면 자신의 딸이 아닌 것을 알게된 아버지가 버린 것은 아닐까?  

 

대학생활 중에 딸은 방황했다. 여자답지 못하고 학생답지 못하고 세상을 향해 싸움을 걸며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딸을 낳았다. 그 딸에게는 자신의 어린나이에 젊어졌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물려주지 않으려고 자유를 주었다. 지금의 엄마들도 대부분 아이를 자유롭게 하기위해서 시험을 강요하지 않고 또 어떤이는 엄마를 위협하는 아이에게도 그 아이 원하는대로 해주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TV에서 본 엄마를 폭행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편부모에서 자라던가 부모가 이혼을 하던가 혹은 부모의 장애 때문에 아이들이 삐뚤어진 경우가 많았다. 그런 부모도 있지만 아이들 옆에서 너무 신경을 쓰는 나머지 [헬리콥터 맘]이란 말도 나오지 않던가. 또 [기러기아빠]도 있다. 난 아이들에게 어느편에 있는 것일까? 어쩌면 [헬리콥터 맘]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곧 있을 시험공부에 옆에 있어주면서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시험이 끝나면 아이들에게 자유를 마음껏 주지 않던가. 1학기 초에 학부모들에게 간단한 설문지가 나눠진다.  그 설문지 가장 아래에 교장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적는 난에 난 '아이들 시험 좀 줄여주세요.' 하고 올렸다. 나도 내가 싫었던 시험을 아이들에게 더 스트레스 주고싶지 않아서 이다.  

 

자신과 딸의 관계를 늙은 나무와 거기에 붙어사는 담쟁이 넝쿨 같다고 이야기한다. 넝쿨로 인해서 결국 말라 죽는 나무가 되지만 남은 몸통으로 보잘 것 없는 버팀으로 넝쿨을 계속 지탱해준다고 한다. 어쩌면 모든 엄마가 그렇지 않을까? 자신이 가진 아파트를 담보로 모두 날려 버리고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왔던 날, 아빠가 자신에게 했던 나쁜짓들, 그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던 관심을 안둔 것에 대한  보상받고 싶다고 했지만 무덤까지 가져가려던 비밀을 이야기 했다. "그 사람은 네 친아빠가 아니야."  그냥 나가 버린 딸은 교통사고를 당했고 병원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다가 결국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딸아이의 친구집에서 손녀를 데리고 온다. 

할머니는 다른 어느 여자들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는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잡지를 보고 TV도 본다. 이웃이 많이 없는게 아쉬웠다. 또래 할머니들의 모임이라도 있다면 긴 편지글을 적을일이 없을 수도 있다. 12월 12일의 편지에는 친구가 자신의 남편이 죽던 날 죽은사람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는 말을 했다. 할머니도 자신의 딸의 아빠인 사람이 죽던날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옷장선반들이 모두 떨어져 있었다고 했다.  나의 친정아빠가 돌아가시던 날, 잠시 병원에서 나서서 집에 도착한 나에게 친정아빠는 전화를 걸어오셨다. 받으니 아무말도 없었지만 곧 이어 내가 가지고 있던 삐삐 두 대에 연이어 진동이 울렸고 액정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순간 온 몸이 소름이 끼쳤고 병원으로 전화해보니 방금 사망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더 놀라운 것은 삐삐 두 대 모두를 난 진동으로 해두지 않았고 소리나게 해두었었다.  그 후 난 지금까지도 아빠가 하늘나라 가셨어도 언제나 날 지켜봐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오늘따라 더욱 아빠가 보고싶다.

 

2000년이 되어 손녀가 스물넷이 될 때 자신은 저세상으로 가고 없을거라고 한다. 자신이 겨울잠쥐나 작은 새, 혹은 집거미로 다시 태어나 손녀 옆에 지내길 바란다고 한다. 손녀를 무척 사랑하고 있엇다.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죽게될까봐 무서워하고 울던 손녀를 떠올리면서 할머니는 자신이 먼저 죽어도 행복했던 기억안에서 살길 바란다고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잘 돌보라고 한다.  그리고 편지의 마지막에는 '네 마음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봐, 그러다 네 마음이 말을 할 때, 그때 일어나 마음가는대로 가거라.' 라고 적혀있다. 손녀가 없을 때 자신이 죽어 버려서 당황해 하지 않길 바라고 손녀가 슬픔에 오랫동안 방황하지 않길 바라며 나무를 가꾸고 강아지도 키우고 둥지로부터 떨어진 작은 새들을 돌보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런 좋은 추억만 회상하라고 말해준다.  

길이 아닌길을 가라고 누가 감히 말할건가! 부모라면 또 할머니, 외할머니,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그리고 친척 누구라도 길이 아닌 길을 걷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동안 작은 메모달력이나 다이어리에 메모하듯 일기를 써왔다. 오래전 다이어리에는 더 많은 지난 생활들이 적혀있다. 5월이 되면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다. 오늘 저녁에도 아이들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나의 두 딸은 자주 나에게 이야기한다. "엄마, 저는 너무 행복해요. 엄마가 제 곁에서 많은 것을 돌봐주셔서 너무 행복하고 아빠도 건강하셔서 너무 좋아요." 그리고 아이들은 아빠에게 "아빠. 힘내세요..저희가 있잖아요.." 하며 노래를 부르고 포옹을 한다.  작년 교육청에서 학부모 워크샵에 참여했던 나는 그곳에서 강사님으로부터 "아이들에게 좀 과도하다 할 정도로 오버엑션을 하세요." 하는 말씀을 들었다.  언제나 아이들 눈높이에서 바라보기만 하지 않고 나도 아이들에게 오버엑션을 해서 스킨십을 많이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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