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책 제목을 보았을 때, 2002년 7월 지리산 실상사의 호두나무가 떠올랐다. 또 몇 년을 한참을 보지 못한 호두나무를 영천 삼사관학교 서문 맞은편 수퍼마켓과 붙어있는 집 마당에 있는 것을 보았다. 여름에는 매미가 붙어있는 모습을 보았고 가을에는 호두나무낙옆을 몸에 둘둘 만 어른 손가락 크기의 애벌레가 벽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그게 작년 가을이었다.
내 어릴 적 아버지는 나와 함께 기차여행을 하면서 기차 안에서 호두과자를 사 주신 적이 있다. 그 후 몇 번 먹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했었지만 결혼 후 남편과의 여행에서 대구에서 서울방향 칠곡휴게소에서의 호두과자는 다른 어느 휴게소의 호두과자보다 달콤하고 맛있다. 그래서 지금도 칠곡휴게소를 지날 때면 꼭 호두과자를 선물용 큰 상자를 사게 된다. 집에 가지고 오고 혹은 시댁으로 가지고 가서 전자렌지에 아주 조금만 데워서 먹으면 더욱 맛있다. 아파트를 나서서 긴 길을 걸어서 도로끝 우체국 앞에는 시내로 가기위해서 횡단보도를 건너야하는데 우체국 모서리에 호두과자와 땅콩과자를 파는 리어카가 있다. 가끔 첫 손님이라고 반기며 덤을 더 넣어주시는 아줌마는 인심이 넉넉했다.
작가인 '크리스티나 진' 이란 이름을 보고 책을 다 읽고도 외국작가이려니 했었다. 하지만 '프린세스 마법의 주문' 작가 '아네스 안'처럼 필명인 우리 한국인임을 알았다. 그래서 더욱 놀랐다. 너무도 이국적인 작품 속 이야기는 내가 얼마 전 읽은 '마이 프렌치 라이프-비키 아처'의 사과나무 가득한 프로방스의 멋진 농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국에 살던 가족 모두가 프로방스의 농장에 빠져 이사를 한다. 그 책 속에는 농장의 풍경사진이 가득해서 나 또한 프로방스로 비키아처를 찾아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 속의 호두나무 가득한 마로의 농장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
마로는 13살 때부터 호두과자 반죽을 했다. 아마 그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자신이 호두과자반죽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집 앞 언덕을 따라 길게 늘어선 호두나무들 끝에는 ‘달콤한 호두과자’라는 가게 푯말이 있다. 아이들이 장난을 쳐서 해골그림에 하늘로 향해진 푯말을 마로가 고쳐와야한다. 빨간 지붕의 호두과자를 파는 가게는 사는 집에 간판을 달고 장사는 하는 것 같았다. 집 앞 현관 문 위에 ‘달콤한 호두과자’라는 간판을 달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계산대와 진열대 그리고 작업실이 크게 보이는 그런 장소라 생각되었다. 푯말을 고치다가 자신을 보고 어깨를 잡은 털복숭이 손을 보고 놀라 달아나는 마로는 그가 숲속에 산다는 빅풋이 아닌 삼촌인 것을 알게된다. 삼촌은 호두과자반죽을 가지고 나오게하고 반죽을 향해 절을 하고는 연주를 한다. 그 연주에 잠이 들었던 마로를 두고 삼촌을 떠났지만 마로는 삼촌을 위해 카망베르 치즈를 넣은 호두과자를 만들었다. 책 속에는 삼촌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코를 보면 꼭 곰이 연주를 하는 것 같다. 난 마로와 그의 엄마 모습을 찾아보았지만 새로운 호두과자들만 가득했다.
15살 때의 크리스마스이브 날, 호두과자를 장식할 포인세티아와 리본을 사러 마을상점을 가는 길에 빵집 주인인 이한스 아저씨를 만나 그가 만든 12천사 케이크를 보게 된다. 아저씨는 이브 날이면 케이크를 사러오는 한 여자 손님을 위해 그날은 청혼을 하려고 만들었다고 한다. 이한스 아저씨는 “마로,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이 사랑이든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이든 포기하지 마, 끝까지 기다라는 자가 얻는 거야.” 라고 말해준다. 언제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호두나무 아래 두던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침대에서 매일 산악자전거를 타는 것을 꿈꾸던 마로는 여덟 살 때의 크리스마스 날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나 크리스마스 날이면 호두나무 아래로 달려간다. 다음날 산악자전거가 호두나무아래 크리스마스 선물로 있었다. 새것은 아니었지만 가지고 싶던 선물을 받은 마로가 얼마나 기뻐하는지를 모습이 그려졌다. 나도 잠시 마로의 엄마가 되어 마로의 머리카락을 쓰러내려 주었다.
열여섯 살의 마로는 엄마를 위해 핸드크림을 만들 재료로 장미 잎을 따오려고 고퍼우드 씨네 정원을 한밤중에 가게 된다. 장미 나무 가시에 찔렸을 때, 그를 보고 있던 소녀는 그 장미가 블루베리 힐이라고 알려준다. 놀라 달아난 마로는 다음날 핸드크림을 만들어 소녀에게 갖다 주지만 핸드크림 뚜껑 속에서 그리마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놀라 들어가 버린다. 이유를 알게 된 마로는 그녀를 위해 블루베리 힐 장미시럽으로 만든 호두과자를 우체통에 갖다 두곤 했다. 후에 그녀가 멀리 외국의 학교로 떠나던 날 호두과자를 사러 왔다고 한다. 자신이 만든 첫사랑의 설렘이 그 호두과자 안에 들어있었나보다. 마로는 그렇게 사춘기의 열병을 지낸나보다.
아버지와의 캠핑 추억을 떠올리면서 마슈 아주머니네 호두과자를 완성하기위한 힌트를 얻기위해 캠핑을 떠난 마로는 모닥불을 피우면서 추억에 잠긴다. 아버지와 캠핑을 할 때도 습기많은 아영지에서 먹던 최적의 빵인 러스크는 식빵을 굵고 네모나게 썬 다음, 딱딱하게 굳을 때까지 오븐이나 뜨거운 팬 위에서 구웠는데, 거기에 계피나 설탕을 뿌려 먹으면 맛있다고 한다. 난 가끔 이렇게 만들어 먹었는데 이름이 러스크 인 것은 이 책 속에서 처음 알았다. 러스크를 먹고 있는 마로에게 허기진 할아버지 한분이 나타나서 나눠주길 원한다. 노인은 스카우트 대원이냐고 물어왔다. 마로는 자신의 아버지가 스카우트 대장이었다고 한다. 노인이 말한 붉은 꼬리 원숭이와 슈가 레이크에 대한 이야기에 힌트를 얻어 마슈 아주머니네 흑진주색이 검은 머리 딸이 주문한 까다로운 호두과자를 완성하고 이름을 ‘오리온호두과자’라 지었다. 맛을 느끼지 못하던 ‘오리온 호두과자’의 주인공 아가씨는 다시 맛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마로의 아버지가 도와주신 것일까?
더 이상 마로의 호두과자의 맛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병이 심각하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마로는 어머니에게 쿠키를 만들어드리지만 어머니의 병환은 나아지지 않는다. 이한스 아저씨는 어머니가 아파서 행복하지 않다는 마로에게 “안개 속에 오래 있으면 길을 잃는단다. 마로, 엄마와 가장 행복한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해준다. 마치 아버지의 목소리 같았다고 한다. 마거리트로 화환을 만들어 어머니 씌워드리고 마로는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의 그림자 인형극을 그대로 어머니 앞에서 재현했다. 어느 날 어머니의 부름에 달려간 마로에게 촛농으로 봉해진 호두를 열어달라고 주셨다. 두 개로 나눠진 호두 안에는 작은 종이쪽지가 들어있었다. 이틀 후 마로에게 엄마는 호두를 주셨고 호두 속 쪽지에는 ‘가족은 영원하리라.’라는 글이 적혀있었고 그 글은 가족 모두가 천국에서 만날 때, 암호라며 꼭 기억하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생전에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평온한 미소를 보이며 달콤한 여행을 떠나신 듯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 때, 삼촌도 왔고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몰려온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져있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란다. 엄마에게 영감을 받아 흑설탕을 갈아 뿌린 호두과자를 만들어 조문객들에게 대접을 했다. 새롭게 탄생한 흑설탕 호두과자의 이름은 ‘디어맘’이다.
외동아들로 엄마의 일을 도우면서 사춘기의 반항도 슬기롭게 잘 견뎌내는 마로가 대견했다. 아마 마로가 어려서 일찍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와의 추억이 큰 도움이 된 듯하다. 주위의 이웃사촌들도 지켜보며 응원했으리라..언제나 사건이 있고나면 새로운 호두과자가 탄생한다. 내가 먹어본 팥앙금이 들어있는 호두모양의 호두과자와는 차원이 달라보였다. 호텔이나 공항의 베이커리에서 볼 수 있는 여러 모양의 양갱이 떠올랐다. 5년 전 내가 천식발작으로 병원에서 생사를 오갈 때, 난 나 스스로를 원망했다. ‘아이들에게 혼자 커가는 방법도 알려주지 못했는데.. 아직 유치원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두 딸들에겐 들려줄 말이 많았는데..’그런 생각에 발악했다. 언젠가 나도 마로의 엄마처럼, 아빠처럼 미리 세상을 떠날 날이 올 때를 예상하면서 아이들에게 소중한 암호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