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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1반 34번 - 종잡을 수 없는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잡아주는 이야기
언줘 지음, 김하나 옮김 / 명진출판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책 표지에는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하는 모습을 단계적으로 낙서하듯 그림을 그리는 아이의 뒷모습이 있다. 제목처럼 1학년 1반 34번인 주인공의 이야기인데 나에게는 중학생이 되는 사춘기의 모습이 아닌 초등1학년이 되는 아이로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책 속에도 중산국민소학(中山國民小學) 이란 소학교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중국이나 일본 등에는 소학교 때도 교복을 입는 것으로 안다. 모두들 사춘기의 아이의 상태를 관찰한다고 하지만 아닌 것 같다.
유치원을 따로 다니지 않은 아이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일을 나가고 난 시간에도 햇빛아래 뛰어놀고 자연 속에서 자유로웠다. 어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지만 어른들은 그냥 학교에 맡겨두면 책임을 다 한 것으로 안다. 지금처럼 유난히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엄마들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부모들이 농사를 짓고 무슨 일이든 나가서 돈을 벌어야하는 그곳은 중국이란 나라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책상위에는 포스터컬러물감과 작은 포스트잇이 이곳저곳 붙어있고 우리나라의 이철환 작가처럼 그림도 잘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인가보다. 어린이 되어 아침식사를 하며 읽은 신문 속에서 무단결석을 하는 아이가 떠돌이 개가 되어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대목을 읽고 작가 자신의 과거에도 그랬던 기억을 그림과 글로 나타내주고 있다.
빼곡한 목표들과 시간표가 가득한 사방의 벽 속에서 아이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공부를 하면서 외면하다가 선생님으로부터 채벌을 당한다. 아이는 계속해서 의문이 생기고 답답한 마음을 어른들은 이해해주지도,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어릴 적 교과서 속의 그림처럼 교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과 모여서 수군대는 아이들의 모습이 있다. 그 틈에 끼려고도 끼지도 않는 아이는 어느 날 커다란 도랑 근처의 웅덩이에서 늪을 벗어나지 못한 가장 느린 올챙이 한 마리를 발견한다. 학교에 가져가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모든 친구들로부터 우상처럼 인기가 생기지만 그것을 선생님이 아시고는 오랫동안 벌을 선다. 엄마도 올챙이랑 놀지만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과학자가 되라고 한다. 어른들은 아이의 인생에 올챙이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은 언제나 옳다고 하는 것에 의문을 가진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을 알게 된 선생님은 자신을 미술대회에 보내려고 데리고 다니려 하지만 아이는 선생님을 피해 다닌다. 어른들이 원하는 자신이 되기 싫었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월말고사가 있던 날 친구를 데리고 산으로 놀러갔다가 결국 그 친구가 부모의 매를 피해 달아나다가 사고로 죽어버린다. 아이는 오랫동안 슬퍼했다.
아빠는 34번에게 자신의 본문만 다하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그 본문이라는 것은 대체 어이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또 의문이 생긴다. 무인도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프라이데이에게 로빈손크루소는 어떻게 모든 것을 가르쳤을까? 34번이 살던 때의 부모들이나 어른들은 너무도 무지였던 것일까? 아이가 방황하는 것을 왜 막지 못하였을까? 그 덕에 34번은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아이가 조금은 자신을 깨닫고 엄마, 아빠를 찾아서 달려가는 모습에서 미래를 생각할 수 있었다. 책의 뒤쪽에는 그 34번 아이가 어른이 된 모습이 있다.
작가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아이가 인생을 생각할 때 기쁨, 슬픔, 행복, 불행, 자유, 구속 등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도록 도와줘야한다고 말한다. 나에겐 이른 사춘기를 맞이한 이제 중1이 되는 아이와 초등5학년이 되는 두 딸이 있다. 나의 어릴 적 방황? 그런 것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한번 물어보긴 해야겠다. 나의 두 아이들은 마음도 곱고 착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 이제는 공부만 하지 않고 엄마, 아빠를 도와준다.
언젠가 병원에 남편이 3달을 입원해 있을 때, 환자에게 짜증내는 보호자나 그런 힘들어하는 보호자에게도 짜증을 내는 환자들을 많이 보았다. 나도 때론 어린 두 아이들을 유아원에 맡겨놓고 두 코스의 길을 걸어서 병원에 다니면서 병원 밥이 싫다고 하시는 시어머님과 남편을 위해 하루 3끼의 밥을 해서 가지고 갔었다. 그 후에도 시어머님이 입원한 적도 몇 번 있었지만 언제나 나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너무 힘들 때는 간병인들처럼 남을 도와주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미래를 기약할 수도 없는 큰 병의 환자들을 생각하면서 또 스스로를 달랬었다.
아이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던 날 교장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마음 급한 부모는 아이 손목을 끌어당기면서 계단을 성큼 성큼 크게 내려가는 것을 절대 하지 말아야하며,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을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하는 부모에게 아이들은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지 말라고 했어요.” 하고 배운 것을 이야기 한다고 하면서 절대로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아이들과 이야기 할 때는 무릎을 굽히고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이야기하고 아이들의 좋은 점만 칭찬하라고 했다. 어느 책에서도 ‘아이를 칭찬하라’고 했다. 난 그렇게 실천했을까? 대부분 그렇게 한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만 되어도 아이들은 사춘기를 시작한다. 이젠 나보다 키가 더 큰 두 딸이지만 남편은 아이들이 겉만 컸다고 하면서 많이 조심시키고 많은 것을 알려주라고 하지만 많은 책들을 통해서 아이들은 벌써 속도, 겉도 그리고 정신연령도 많이 커 있다. 그래서 난 아이들의 의견을 항상 존중해준다. 자주 묻고 명령하듯 말하지 않고 부탁한다. 부모들이라면 가장 먼저 자신의 아이들의 생각을 읽을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떠오른 대목 P82.. 자신에게 재미있는 일을 어른들은 무조건 막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함께 놀던 같은 반 친구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그것을 받아들인다. 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