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여가수와 이름 한자가 다른 작가 이상운님이 여자일거란 생각을 처음했다. 글의 차례가 시작되기 전에 페이지 가운데에는 [사랑을 담아 건희에게 네 시를 공짜로 쓰게 해 줘서 고마워]라른 글이 있다. 그리고 첫 에피소드인 [내가 왜 그랬지]를 읽으면서 자신이 존경하는 국어선생님이 나온다. 이야기를 해주는 주인공이 중학생인 것을 알았고 그러면서도 여자일거란 생각을 했다. 자신의 선행을 글로 적어오란 방학과제물을 소재로 주인공은 길에서 깐마늘을 파는 할머니에게 심부름값으로 마늘을 가득사서 집에 갔고 부모님으로부터 칭찬까지 듣게되어 선행과제물 숙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 준호를 만나 영화를 보고 다시 할머니를 만나게된다. 친구앞에서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려고 다시 마늘을 사려하나 도리어 화를 내시는 할머니! 그렇게 화내는 할머니를 이해 못하고 돌아서는 주인공이 남자인 것을 알게되었다. 중학3학년생으로 숙제에 머리쥐어짜면서 거짓 선행을 계획하기도 하지만 그런 계획의 생각들이 엉뚱했다. 여자중학생들은 어떤 거짓 선행을 생각해낼까? 궁금했다. 주인공은 착한 청소년인걸 알 수 있다.
책의 전체 내용은 중학생이 중학생에게 자신의 여러 겪은 일들을 이야기해주면서 상대의 답은 안나오는 말들로 가득하다. 주인공의 이름은 정현서이고 친한 친구는 봉준호가 등장한다. 초등5학년에 전학을 와서 친하게 지내는 혜리는 유일한 여자친구 인 듯 하다. 한 아파트에 사는 혜리는 아주 어려서 부모가 이혼을 했고 아파트 건너 상가에서 레스토랑을 하는 혜리엄마와 자연스럽게 현서의 엄마와 친해졌고 그 후 혜리와 중학교도 함께 다니게 된다. 일찍 이혼을 한 가족의 예를 들면서 혜리의 생활을 엿보는 글에서 다른 중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어른들을 이해할까? 아님 '이혼하는 어른들은 다 미뭐' 하면서 사춘기의 반발같은 짜증을 표현할까? 내년이면 중학생이될 나의 첫째딸이 이 글을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오전에 아이들이 학교로 출발하고 남편이 출근을 할 때면 신천강변을 8Km 이상의 글을 왕복하면서 걷기 운동을 한다. 몇 달전 건너에서 걸어오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았다. 아주 많은 아이들은 중학생일까? 고등학생일까? 걸어오면서 그들은 거리의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세 번째의 에피소드도 이들처럼 주인공들은 학교에 등교후 쓰레기를 주으러 거리로 나오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글 속에는 아이들의 수다가 들리는 듯했다. 40대 초반의 아줌마가 된 나도 어려서 초등학교때도 '새마을운동'의 하나로 거리 청소를 했던 기억이 있고 고교시절에는 'RCY-청소년적십자단체'의 활동을 하면서 목에 스카프를 하면서 거리 청소를 했었다. 마지막에 쓰레기를 가득 모은 장소에 선생님만 남아 있는 모습을 보는 준호는 제목처럼 센티미털했다.
긴머리의 두발로 선생님께 야단도 맞으면서 졸업 전의 12월을 이야기했다. 현서의 아빠의 어려서의 학교 생활을 소개할 때는 나도 그 추억의 세대 중에 한 사람임을 다시 깨닫게된다. 지금처럼이 아닌 학교도 여학교, 남학교로 구분되어 있었고 교복에 항상 머리는 단정해야했다. 그러나 요즘은 방학이면 머리에 노란물도 들이고 얼굴성형도 하고 귀에나 배꼽, 입술, 혀에 끼지 피어싱을 한다. 현서도 그렇게 장발이 되어 있었다. 그런 현서에게 머리카락을 단정히 자르라고 하는 엄마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라는 아빠는 서로 의견 충돌을 하기도 하고 현서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부모를 존경한다.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으니까 기회가 있을 때 마음껏 자유를 누려보게 하는 게 좋아." 라고 말 하는 현서아빠를 난 더 응원한다. 아직은 초등학생인 두 딸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는 나의 남편이 존경스러워졌다.
사춘기의 우울함 때문일까? 혜리는 가끔씩 아빠를 그리워하고 슬퍼한다. 그런 혜리에게 힘이되어주는 주인공들은 같은 친구들이다. 난 나의 두 딸이 어제도 하루 반나절을 컴에서 친구들을 만나 함께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 친구 중 한명은 다운되었다고 다시 들어온다는 전화를 걸어와서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전화한거야?" 하는 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의 두 딸도 저렇게 사춘기를 맞이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의 두 딸은 올해 초에 얼굴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이른 사춘기를 항상 염두해두면서 두 딸과의 대화가 근절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늘 한걸음 물러서서 아이들을 지켜본다. 이 책을 읽는 사춘기의 아이들이 나처럼 아줌마의 입장과 사춘기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평가해보길바란다. 사춘기의 청소년의 엄마, 아빠는 대부분이 나처럼 걱정하면서 믿고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내 오래 전의 학창시절의 은사님을 떠올리면서 은사님들을 존경하며 그분들의 말이라면 뭐든 숙제하듯 했던 기억처럼 청소년들은 선생님을 존경하고 그런 선생님들은 사춘기의 청소년들을 이해하며 존경받을 행동이면하는 바람이다. 가끔씩 인터넷으로 올려지는 지나친 채벌로 인한 선생님들의 모습을 가끔씩 볼 때면 그때의 기분만큼은 안타깝고 씁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