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제국
이토 게이카쿠.엔조 도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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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34세의 나이로 요절한 이토 게이카쿠가 프롤로그를 썼고 그의 절친인 엔도 조가 이어 썼다고 한다. 두 천재 작가의 조합이 호기심을 끌기엔 충분했고 본격 엔터테인먼트라는 말에 기대감이 폭발! 나에겐 어렵게 읽히던 <어릿광대의 나비>의 작가 엔도 조. 평단에서 호평을 받았던 수작이라지만 아무튼. 그래서 슬쩍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19세기 말, 런던 대학 의학부에 다니고 있는 존 H. 왓슨. 죽은 자를 소생 시키는 실험 수업에 드디어 참석하게 된다. 죽은 자를 소생시켜 값싼 노동 인력으로 쓰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꼭 배워야 할 수업이다. 표준화된 가짜 영혼을 주입시켜 죽은 자를 소생시킨다. 반 헬싱 교수의 추천으로 첩보기관 월싱엄의 일원이 된 왓슨은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게 되는데...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 낸 창조물 더 원’. 왓슨이 종국에 만나게 되는 인물(?)이다.

 

굉장히 장황하게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왓슨이 빅터의 수기더 원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비는 모험담이라고 하고 싶다. 좀비는 아닌데 좀비 같은 죽은 자라는 존재와 영혼의 정의에 대해 말하려던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가늠해 본다. 솔직히 나의 초라하고 얕은 문학적 소양으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은 익숙했지만 낯설었고. 패러디도 아니고 인용도 아닌 이름들의 정체는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반가운 이름들이 등장하니 분위기가 조금은 말랑해지는 것 같긴 했지만.

 

계속 나오는 떡밥에 심심할 틈은 없었지만 쉬운 것만 읽으려는 요즘의 독서 습관이 발목을 붙잡은 것 같다. 제일 기대했던 본격 엔터테인먼트라는 말이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고. 요즘 만나보기 힘든 하드SF 같아서 반가운 마음은 가득이지만 글쎄. 읽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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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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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벌써 1년이다. 아무에게도 그냥 흘러가지 못했던 일상 중에 하루. 꽃 같이 어여쁘던 생명들이 따뜻한 손길 한 번 못 받아보고 차디찬 바닷물 깊은 곳에 영면한지 1. 세월호, 아프고 시리게만 느껴지는 그 이름에 누군가는 절망을, 누군가는 분노를, 누군가는 슬픔을 가슴 깊이 새겨야만 했다.

 

귀한 내 아이를 먼저 보내고 유가족이란 이름으로 남은 부모 열세명의 인터뷰가 담긴 책이다. 금요일에 돌아오겠다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아이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그럴 줄 알았으면 하는 절절한 후회와 좀 더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못했던 미안함과 남기고 떠난 것들에 대한 고마움이 뭉텅이져 가슴을 할퀴고 눈시울을 적신다.

 

남들보다 먼저 수습된 내 아이의 주검을 앞에 두고 다른 사람들은 축하한다는 말을 건넨다. 축하한다니... 죽음을 먼저 확인한 부모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없다니. 이런 참혹한 현실이 또 어디에 있을까. 아픔을 어루만질 시간도 없이 진상규명을 위해 뛰쳐나갔던 사람들이었다. 믿었던 국가는 이들에게 통렬한 분노만을 남겼다. 이들은 분노를 삭일 시간도 없이 거리로 나갔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싸움의 끝이 있긴 한 걸까.

 

우리에겐 분명 남겨진 숙제가 있다. ‘라는 물음만 가득했던 그 날의 사고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명확한 해답을 내놓아야만 한다. 그게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무참히 뺐긴 아이들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보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이 원인만 있고 정작 결론은 없는 비겁한 지금 이 결과에 대해서도 분명 밝혀져야 할 거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얼마나 지난한 시간이 될지도 알고. 소중한 생명들을 잃고 나니 절실해져오는 일이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 잊어진다는 말이 있다. 먼저 간 자식을 가슴에 품고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조금 옅어질 수는 있겠지. 단지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현란한 말빨에 속아 넘어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 날의 진실을 비로소 마주한다. 뉴스와 기사를 통해 전해져 오는 소식들을 모두 믿지는 않았지만 국민들의 귀를 막고 눈을 가렸던 건 사실이니까. 유가족들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눈물 듬뿍 담긴 기록이어서 가슴 아프지만 꼭 읽어야 할 것 같다.

 

그 날의 아픔을 마주하기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책상에 다른 책들이랑 올려놓고 바라보기만 며칠.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부터 먼저. 한장 한장 허투루 넘기지 못하게끔 쏟아지는 눈물. 휴지 뭉치들이 수두룩하게 쌓여갈수록 답답해져만 가는 마음. 잊지 않겠다라는 말로 위로가 되지 않음을, 결코 위안이 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던 시간. 그래도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기억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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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폴인러브
박향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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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수상작이었던 <에메랄드 궁>을 재미있게 읽어서 작가의 신작에 대한 기대치가 좀 높았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져서 이번 신작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도 했고.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는다. 최근 커피에 관심 갖기 시작한 내남자 덕분에 얻어 마신 몇 잔이 전부. 커피가 굉장히 예민한 음료라는 건 최근에야 알았다. 믹스커피만 알던 내게는 그야말로 신세계. 작가가 세상에 내놓은 <카페 폴인러브>는 커피처럼 다양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카페의 원래 주인이었던 효정이 갑작스럽게 뇌종양 진단을 받자 효정의 남편 경재는 친구인 정수에게 가게를 잠시 맡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정수의 아내인 세희는 급하게 바리스타 공부를 했고 얼떨결에 맡게 된 카페였다. 그 카페의 이름은 폴인러브’. 그 카페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제호를 만난다. 세희는 커피를 좋아하는 제호와 급속도로 친밀한 관계가 된다. 정수와의 결혼생활에 불만은 없었지만 애정이 식었는지도 모른다.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정수와의 관계가 살얼음 위를 걷듯 불안해지기 시작한 건 제호 때문도 아닌 새벽에 정수의 핸드폰에서 울리던 문자 알림음이었다.

 

단순히 한 커플의 이야기가 아닌 카페 폴인러브에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희와 정수, 세희와 제호, 카페 폴인러브의 원래 주인인 효정과 경재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 등장인물들은 흉터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오래 전 가슴 깊게 새겨졌던 상처가 흉터가 되었고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로 변해버렸다. 그것을 극복하고 치유하게 하는 방법이 사랑이었다고 하지만 불륜이 사랑은 아니라고 본다. 세희의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는 해도 납득은 못 하겠더라.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라서 감당하기에 조금 벅차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나는 아닌데 남들은 그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카페를 배경으로 했고 여러 가지의 맛이 있다는 커피가 생각나는 글이어서 그런 걸까. 다른 맛보다는 커피의 쓴맛만이 진하게 풍겨오는 글이었다. 세희와 정수 때문에 내심 불편해지는 마음도 있었고, 아픈 효정을 보고 있으니 짠해지는 마음도 있었고. 커피의 다양한 맛처럼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사랑에 달콤함보다는 씁쓸함이 더 깊게 닿았던 글이 아니었나 싶다. 전작에서는 모텔, 이번에는 카페, 다음에는 어디일까. 문득 작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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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말린 핑크
리밀 지음 / 다향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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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대학교 의예과, 같은 병원에서의 인턴까지 무려 7년이었다. 유원의 곁에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시시콜콜 간섭하며 챙겨주는 걸로 위안을 삼았던 지후. 외롭고 고된 유원의 환경에 부담이 될까, 너무 사랑해서 그 마음 표현하면 사라질까 두려워 좋아한다 말 한마디 꺼내지도 못했다. 7년의 짝사랑을 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좋아서, 사랑해서 친구라도 좋았는데 승하 선배가 좋다는 유원의 고백에 혼란스러워진다.

 

유원은 승하 선배의 다정함이 좋았다.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하다는 소문에도 좋아하는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간다. 답답한 마음에 지후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유원. 까칠한 그 성격이 어디 가진 않았는지 지후는 쌀쌀맞기만 하다. 위로를 바라진 않았지만 조금 섭섭해진다.

 

7년을 단짝으로 지냈던 유원과 지후. 지후의 속마음이야 어쨌든 둘은 친구였다. 승하 선배가 좋다는 유원의 고백이 지후에게는 발화점이었는지도 모른다. 숨겨왔던 마음을 내비칠 용기가 필요해지는 시점이기도 했고. 안타까운 마음 반, 끓어오르는 질투 반, 반반의 마음이 모여 터질 것 같은 지후의 마음. 그 절절한 마음이 너무 좋아서 책장 넘기기 바쁘다. ㅋㅋㅋㅋ

 

친구에서 연인으로의 변화가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유원에게는 친구였던 지후가 남자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부분은 바로 키스이후. 시작이야 술김이었지만 키스의 농밀한 속삭임에 유원은 어느새 빠져들었고 크기를 불려가는 긴장감에 나까지 덩달아 심장이 두근두근. ‘처음이라는 키스가 이렇게 끈적이고 찌릿할 줄이야. 지후 이 녀석, 분명 선수다.

 

워낙 이런 소재를 좋아하기도 하고, 유원 바라기 지후의 절절한 마음 덕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뒤늦게 사랑을 깨닫는 후회남 같은 소재도 좋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여주 때문에 감정 주체를 못하는 남주가 나오는 이야기들도 참 좋다. 유원이 때문에 돌겠네미치겠네라는 말을 달고 사는 지후, 나는 너 때문에 읽는 내내 안달복달했단다. 정말! ^.^ 철철 넘치는 지후의 속마음이 <포르말린 핑크>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100쪽 분량의 훈훈한 에필은 보너스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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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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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대상작이다. 작가 이름을 보고 깜짝 놀라서 다시 확인을 했더랬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몰래 읽던 판타지 책의 작가 이름과 똑같아서 말이다. 찾아보니 그 작가님이 맞다. ‘소리가 절로. 꽤나 오래 뜸하다 생각 했었는데 세계문학상 대상작으로 돌아오실 줄은 정말 몰랐다! 상상도 못한 일. 솔직히 장르소설 작가가 이런 문학상을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장르소설을 문학이라고 쳐주지도 않는 국내 여건상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PC통신 시절, 소소한 일삼아 썼던 글이 의외의 인기를 끌었다. 이후 책도 간간히 내면서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 시간이 많이 흘러 글을 쓰는 걸로는 밥벌이가 힘들어졌다. 예전만큼의 명성도 없고 월세 갚기도 빠듯하고, 수중에 있는 전 재산은 4,264. 산책 삼아 나갔던 불광천에서 우연히 본 전단지에는 일 할 사람을 찾는다고 쓰여 있었다. 일당 오만 원짜리, 큰 액수는 아니지만 지금 나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돈이기에 뒷일 생각 안 하고 전화부터 한다.

 

노인과의 첫 만남은 이상했다. 노인이 의뢰한 일이라는 것이 당최 이해가 가지 않을뿐더러 그게 가능한 일인지도 아리송하다. 노인은 자신의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의 사진을 찍어오는 게 이라고 대답한다. 순간 불광천에서 사진기를 들고 오가던 여자가 떠오르는데 아마도 나와 동료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여자였나 보다.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고? 정말? 발칙한 상상력을 밑밥으로 깔고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혼란스럽게 만든다. ‘가 얘기하는 작가로서의 경험담은 진짜라고 느껴질 만큼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수많은 가짜 속에 진짜 찾기가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 어렵다. 그저 오랜만에 본 반가운 이름 때문에 끝가지 읽었지만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가늠이 잘 되진 않는다. 결국 오리 한 마리를 생포해오긴 하지만 노인의 고양이를 정말 오리가 잡아먹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건 신이 아닌 이상 절대 모르는 일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친절한 결말이 아니라서 조금 아쉬운 마음.

 

아무튼 그동안 착착 쌓아왔던 세계문학상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작가라서 드는 설렘, 척박한 국내 장르소설계에 한 줄기 빛이 될 만한 사건 등. 뭐가 되었든 엄청난 기대를 했던 책이라 그런지 나에게는 더 특별한 책이 된 것 같다. 좀 아리송해도 그냥 김근우 작가의 책이라서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도 자주 만날 수 있길 건투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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