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미학
정이원 지음 / 신영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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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제목 때문이었나, 따분한 인문서 같은 제목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잔잔한 여운이 가득한 이야기라는 소리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은. 귀한 책이 되어 나름 몸값을 자랑하는 책이라 도서관에서 발견하곤 너무 반가웠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대출 4번 만에 드디어 다 읽었다. 숙제 끝낸 기분이네. ^.^;

 

이교는 자주 가던 공원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자신의 이름을 한 영이라고 소개하는 여자의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작은 도움을 필요로 했던 그 날 이후 그녀가 있는 복지원을 지나다니며 이교는 어느새 그녀를 찾고 있었다. 성인이 된 영은 복지원에서 더 이상 지내기 힘들었고 이교는 갈 데 없는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담배도 적당하게, 술도 적당하게, 연애도 딱 필요한 만큼만. 적당주의 인생관을 펼치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이교. 자신의 평소 지론대로라면 집으로 영을 데려온 것은 뜻밖의, 의외의 선택이었다. 동정도 아니고 애정도 아닌 감정은 너무 낯설지만 앞을 못 보는 그녀와의 동거 생활은 이교에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보편적으로 우리가 말할 때 인생미학의 주인공인 영은 시각 장애인이다. 책 속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만 있을 뿐 대놓고 장애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어디 한 부분이 불편한 사람인거다. 작은 이해와 배려를 필요로 하는 영이지만 이교 앞에서든, 누구 앞에서든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인내하는 모습은 그 누구보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런 영과 이교의 사랑이라서 그런지 작은 행복에도 큰 기쁨을 느끼는 이들이 참 애틋하고 예쁘기만 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영과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완벽한 남자, 이교와의 사랑은 처음부터 쉽지 않다. 따뜻한 온기만을 바라던 이들의 사랑이 불같은 열기로 변해갈 때까지 그려지는 모습들이 잔잔하면서도 덤덤하다. 일기장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일인칭 시점의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교의 입장에서만 써내려간 인생미학은 그래서 나에게 조금 특별해졌다. 이교가 아니었다면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건 좀 힘들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

 

 

p.135

부질없는 짓이었다. 감정은 미루자고 미뤄지는 게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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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메이드 퀸 세트 - 전3권 블랙 라벨 클럽 10
어도담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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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지방의 망한 귀족의 집안에서 식구들을 건사하며 지내던 아비게일. 별궁에 유폐된 5황녀 비올레타의 시녀로 궁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갑자기 찾아든 자객들에 의해 비올레타가 살해되고 아비게일의 목숨도 사라질 찰나 어느 귀공자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비올레타와 비슷한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아비게일의 목숨을 쥔 귀공자는 죽은 비올레타 대신 아비게일을 황녀로 만들기로 한다.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처럼 따르던 미하일이 황제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황후인 파사칼리아와 손잡고 복수를 준비하던 라키엘. 그의 눈에 띈 아비게일은 자신의 처절한 복수극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적임자였다. 아비게일을 에델가르드로 데려오면서 시작되는 황녀 만들기 작전은 빠르게 진척되어 가는데 갑작스런 황제의 부름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초반 유쾌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이야기를 더할수록 묵직해진다. 판타지로맨스를 지향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게 전부가 아니다. 황제가 있고 황비들이 있고 황제의 자식들이 있고. 과거 조상들이 살았던 시대의 궁중암투를 가상의 나라 그란토니아로 옮겨온 거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복잡하게 꼬여있는 정치적인 상황이나 권력을 둘러싼 음모, 비극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사랑 등, 얽히고설킨 이들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레디메이드 퀸이란 제목을 내 마음대로 정리를 하면 여왕(여제) 만들기쯤 되겠다. 시골에서 자라 세상물정 모르는 소녀가 우연한 기회로 황녀가 되고, 온갖 시련을 겪으며 결국에는 황녀가 여제가 되기까지의 길고 긴, 어쩌면 짧을 수도 있는 이야기. 블랙라벨클럽 시리즈에 대한 미더운 마음과 부담스러운 세 권의 분량 때문에 재미있다는 입소문에도 애써 외면했었다. 그 외면했던 시간이 미안해지게 만드는 레디메이드 퀸’.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읽었고, 재미있게 읽었고, 라키엘과 아비게일의 꽁냥꽁냥한 모습에 엄마 미소가 절로.

 

볼만하다라는 범주에 넣기에는 부담스런 분량과 복잡하게 느껴지는 정치 이야기라는 게 발목을 잡지만 한 번 잡으면 끝까지 훅 읽히는 레메퀸이다. 결말에 작은 불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모든 걸 감수할 만큼 충분한 보상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무실에서도 몰래 꺼내 읽게 만들던 책이었으니 이 여운은 길고,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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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여신 - 상
서희우 지음 / 단글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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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화를 바탕으로 한 로맨스 소설이라는데 솔직히 기대는 안 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잘 모르는 한국 신화 때문이었는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소재임에도 아무튼. 뚜껑을 열어보니 완전 내 취향, 못 알아봐서 미안하다! 유리여신!!

 

성은 현이요, 이름은 온. 조금 특이한 이름을 가진 온은 고고미술사학과 박사 과정을 재학중인 학생이다. 교수의 프로젝트 자료 수집을 하러 간 일본에서 몇 달간의 조사를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온. 거대한 몸집에 거만한 인상으로 흑곰 같아 보이는, 유독 눈에 띄는 남자의 옆에 앉게 되었는데 이 남자 자꾸 눈에 거슬린다. 비행기 안에서 자료를 정리하던 중 우연히 보게 된 남자의 얼굴은 자고 있었지만 악몽이라도 꾸는 듯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이성으로 통제하기 힘든 알 수 없는 힘에 강렬하게 끌리는 온과 성준. 성준은 온에게 석불을 함께 찾아달라며 제안을 하는데 평화롭던 온의 삶은 성준의 제안을 수락한 이후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정체불명의 석불의 존재는 온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게 하는데...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한국 신화들은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을 지키는 여신이나 모든 신들의 어머니라는 마고 등. 소소하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신화들은 적절히 배합된 양념처럼 이야기 곳곳 스며들어 보다 깊고 진한 농도로 이야기에 힘을 불어 넣어준다. 신화라고 해서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었는데 의외로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어 즐겁게 읽었다.

 

등장하는 조연들의 활약도 대단했는데 짠내 물씬 나는 남조, 현백을 빼놓을 수 없다. 아련아련 열매를 먹은 것 마냥 애틋하고 아릿한 현백. 이런 캐릭터에 한없이 약해지는 나란 여자. 너의 마음, 나의 마음 할 것 없이 세상의 모든 여자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까칠한 매력의 말명이와 덩치 값 못하는 귀여운 호종이까지 통통 튀는 캐릭터들로 재미는 배가 되었다.

 

출생의 비밀과 얽혀있는 석불의 존재와 석불의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며 온에게 드리워지는 기운이 밝지만은 않지만 그녀의 사랑하는 사람인 성준으로 인해 그다지 어두워 보이지는 않는다. 로맨스라는 카테고리 안에 둘러싸인 채 세상에 나온 유리여신’. 로맨스라는 하나의 장르에 가두는 것보다는 쉴 틈 없이 빠르게 내달리는 속도가 무기인, 힘이 느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조금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지만 그걸 모두 상쇄할만한 재미는 충분하다. 앉은 자리에서 두 권을 훅 읽은 몰입감은 최고였고. 결코 짧은 이야기가 아닌데 짧게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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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에 이르는 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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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19금 딱지 만큼이나 명성(?)이 자자한 살육에 이르는 병을 이제야 만나봤다. 예상대로 잔인함의 표현수위는 높았고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게끔 만드는 반전에 어안이 벙벙. 스포를 밟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유명한 만큼 반전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기어이 당하고 말았다.

 

가모우 미노루는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다. 여섯 건의 살인과 한 건의 살인 미수를 저질렀다. 체포되는 순간에도 태연한 그의 태도는 진짜 범인이 맞나 하는 의심을 들게 한다. 연쇄살인범 미노루와 그의 어머니인 마사코, 미노루를 쫓는 전직형사 히구치까지 세 명의 시선을 따라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며 전대미문의 살인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마사코는 자기 아들이 범죄자가 아닐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요즘 때때로 보이는 행동이 이상하고 점점 침잠해 가는듯한 아들의 어두운 기운이 낯설기만 하다. 평범한 대학생인 미노루는 대학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 이상한 충동을 느낀다. 이게 사랑인지 성욕인지 혼란스러운 가운데 조심스럽게 그녀를 향해 접근(?) 한다.

 

사실 마지막 반전 하나만을 위해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 뒤쪽의 구구절절한 해설을 읽고 나서야 제대로 된 이해를 했다. 해설은 늘 그렇듯 어려운 이야기만 쏟아내는데 어찌 되었든 나한테는 반전이 전부가 되어버린 조금 아쉬운 이야기가 된 것 같다. 작가의 농간에 놀아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견고한 장치들은 대단했지만.

 

뒤통수 후려치는 짜릿한 반전은 좋아도 본격 미스터리를 즐겨 읽지는 않는다. 그 반전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너무 지루하고 지난해서. 취향에는 사회파 미스터리가 딱인데 요즘 뭘 읽어도 시큰둥한 기분에 일부러 얇은 책을 골랐다. 얇고 작은 판형이라고 우습게 봤던 게 조금 미안해진다. ^.^; 제목만큼이나 강렬했던 살육에 이르는 병’. 재미는 차치하고 소문만 자자한 명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봤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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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스 스토리콜렉터 27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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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년만인 것 같다. 본격적인 세계관이 드러나고 강력한 조력자인 스칼렛을 등에 업은 신더의 눈부신 활약이 돋보였던 루나 크로니클의 두 번째 이야기였던 스칼렛을 읽고 후속작을 기다리던 시간 말이다. 누구나 다 아는 동화를 각색한 것도 모자라 상상 속의 존재들까지 등장시켜 무한한 판타지의 세계를 구축한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 애타게 기다려왔던 시간을 보상받을 만큼은 아니었지만 세 번째 이야기인 크레스도 재미있게 읽었다.

 

루나에서 쫓겨나 인공위성에 갇힌채 세상과 단절하고 살아온 크레스. 바깥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인 시빌 마님의 손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신더와 스칼렛을 위기에서 구해준 인연으로 크레스의 탈출을 돕기로 한 신더 일행. 뜻밖의 일로 크레스의 탈출이 실패로 돌아가고 신더 일행이 탔던 우주선은 추락하고 스칼렛은 시빌에게 인질로 잡힌다. 지구를 레바나 여왕의 마수에서 구해내야만 하는 절제절명의 위기에 닥친 신더는 잘 극복해나갈 수 있을까.

 

일부러 로맨스 소설도 찾아 읽지만 개인적으로 여주의 열렬한 짝사랑이 돋보이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쁜 남자, 카스웰 함장을 향한 크레스의 오랜 짝사랑이 내 취향에 딱 걸린 게 잘못이겠지. ‘신더스칼렛에서 보여주던 여주의 당차고 강한 성격이 스칼렛에게 많이 모자라지 않았나 싶다. 각각의 이야기가 주인공의 성격을 닮아가는 건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조금 소극적인 스칼렛의 이야기도 그랬던 것 같다. 주인공들이 다시 만난 후에는 속도가 좀 붙긴 하지만 그 전에는 650페이지가 넘는 책이 살짝 부담되더라.

 

시리즈 중에서 제일 두꺼움을 자랑하고 있지만 숨을 고르고 잠시 쉬어가는 이야기인 것 같다. 빠른 속도로 독자들을 정신 차리지 못하게 하던 전작들에 비해 호흡이 느린 편이다. 하지만 전편들보다 확실히 화끈해질 후속작을 기대하는 마음은 부풀고 부풀어 배가 된다. 1년을 기다려야 할까? 그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길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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