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계보가 한참 진행이 됐지만, 그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 영화에서 가장 대중성이 높은 배우인 정준호가 맡은 배역인데도. 그는 조금 딸리는 사람이다. 주먹으로 먹고 사는 깡패인데 그 중요한 주먹이 앞서 큰집에 들어간 친구들보다 약하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그는 형님 옆에 남았다. 오른팔 치성이 큰 과업을 업고 큰집에 들어가자 그는 형님의 오른팔임을 자처한다. 그러나 형님은 그를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왼손잡이여. 자기 자리는 살아남았어도 여전히 흔들리고, 그 명실상부한 오른팔 치성에게 형님은 등을 돌린다. 우정과 충성은 그를 마냥 미약한 존재로 누른다.
큰집에서 뛰쳐나온 치성과 또다른 친구 순탄은 쇠파이프 앞에서도 휙휙 날아다닌다. 그는 충성을 선택하고 주먹을 휘두르려는데 그의 주먹은 치성의 옷자락에도 스치지 못한다. 되려 치성의 주먹은 그의 몸에서 퍽퍽 소리를 낸다. 그는 왜 꺼져가는 충성을 붙잡고 안간힘을 쓸까. 아니, 깡패의 세계에선 의리고 뭐고 없다는데 그는 왜 우정을 붙잡고 죽어갈까.
거룩한 계보의 끄트머리가 되어서야 그는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냈다. 순전히 관객의 의문으로 자생되는 인물이다. 그건 흥미롭게도 정준호라는 배우와 맞물려서 생겼다. 저 배우는 왜 저(딴) 배역을 맡았을까. 눈빛과 주먹, 게다가 발차기까지 빛나는 정재영의 배역 맞은편에서 그는 힘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배역을 맡은 정준호가 다시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존재감은 혼자서 만들어내는 게 아니었다. 관객이 만들어내는 의문이 그의 자리를 만들어 그 안에서 그가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는 왜, 라는 의문. 혹은 쟤 뭐야, 라는 의문.
영화 속 인물에 대한 호감도는 떨어지지만 어쨌거나 그는 나와 가깝다. (주먹에) 딸리고, (선택에) 우유부단하고, (진정 오른팔에 되려면 눈물이 말라야 하지만) 쓸데없이 유약하다. 채워 있는 부분보다 비어 있는 부분이 많아서 의문을 던지고 되받게 되는데, 그러면서 그의 영화 속 자리는 명실상부한 정재영의 맞은편이 되었다. 자리는, 의문과 회의로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