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런말을 듣게 될줄이야~~~ㅠㅠ


아침부터 유치원에 보낸답시고
밥먹이고 옷입히고 이닦이고 씨름하며
빨리빨리~~를 몇번이나 외쳤는가보다.
그런데도 정연이는 계속 장난질이다.
다리에 매달리기도 하고 옷을 잡고 늘어지기도 하고
동생이랑 까불기도 하고.....엄마 속이 탄다.
"정연아 그만하고 준비해!!!"
웃으면서 장난치던 정연이가
"엄마, 좀 웃어봐. 엄마는 왜 그렇게 안 웃어?"


엄청 찔리는군.
웃을 여유도 없었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나은이를 보면서는 저절로 마음으로 웃었던 것 같다.
마주보며 웃어주고....
정연이를 보면 뭐가 그리 급한지 웃을 시간도 없었나보다.
하지마라...조용해라....빨리해라....명령뿐이었지 깔깔거리면서 함께 웃은 시간이 언제인지.....
예전에 비해 함께 웃던 시간이 훨씬더 적었겠지.....



애 둘 키우면서 1년을 지나며 남는게 어쩌면 이렇게도 후회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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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4-12-02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저도요.

매번 매번 후회만 하고 고치지는 않고 한해가 또 뚝딱입니다.

이제 같은 숫자로 나이를 먹습니다.



큰아이 많이 이뻐해 줘야 하는데 정말 힘듭니다.

우리 같이 큰아이들 꼭 안아주고, 웃어주고 해요^^
 

유치원 마치고 돌아오는 3시만 기다려 얼른 전화를 했다.
정연이가 아주 씩씩하고 밝은 목소리로 받는다.
받자마자 신나서 하는 말
"엄마, 나 사탕 두개라요. 엄마 줄려고 갖고 있어요.
영어선생님이 주신건 작고요 주연이가 준 사탕은 커요.
엄마건 작은거고요 제거가 큰거라요."
며칠전부터 영어시간에 선생님께서 사탕주시면 엄마 갖다주겠노라고 다짐하고선
한번은 지가 먹어버리고 두번은 사탕을 안주셔서 빈손이라 미안해하더니
오늘은 아주 기쁘다.
게다가 할머니가 지민이랑 놀게 해주셨다면서
둘이서 지금 재미나게 놀고 있는 모양이다.


어른은 마음에 담아두는데
아이들은 금방 돌아서면서 다시 사랑해준다.
부모가 자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는건 거짓말이 아닐까?
아이들이야말로 엄마를 아빠를 무조건 따르고 사랑한다는게 진실이 아닐까?
오히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깨닫게 해준다.


미안해,,,,정연아,,,내일은 엄마가 참아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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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사랑 2004-12-02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는 부모에게 충분한 애정을 주는데

어른들이 그걸 무시하고 다른걸 쫓아가는거겠죠.

어제 퇴근해서 정연이가 남겨둔 사탕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침부터 아이랑 한판하고 준비도 안해주고 그냥 나와버렸다.
젤 나쁜 엄마인데....
엄마는 나만 싫어한다는 아이의 말에도 대꾸도 않았다.
왜 이러나?
내가 문제인건 알고 있는데....
직장에서 마음 다스려 집에 가도 꼭 이렇게 뒤집힌다.
인내의 쓴잔을 마시고 견뎌야 하는 거겠지.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 다시 읽으면서
밑줄 그으가며 적어가며 연습하고 있다.


난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거람?
생리전증후군?
결혼전엔 전혀 없었고 둘째낳고선 좀 그런거 같기도 하다.
모든 상황이 내뜻대로 내의지대로 안되니까 스스로를 통제 못한다.
왜 이리 생긴거랑 다르게 신경질적이람.
나를 죽이는 말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런 나를 어떻게 사랑해주나.
아이보다 못하다는거 알고 있긴 하지만
여유가 없다.
아이를 기다려주고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 돌아보고 사랑해줄 여유가 없다.
내안에 여유가 없는게다.


너무 쥐어짜내려는건 아닐까?
일하는것 땜에 스트레스를 받는걸까?
어른들과 함께 사는것 땜에 그런걸까?
공간이 분리가 안되는 것도 답답하다.
좀더 큰 평수로 빨리 이사갔으면 좋겠다.
텔레비젼 소리 안듣고
조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것도 핑계겠지.
이런저런 핑계나 설명않고
오늘저녁엔 좀 잘해야지.
차분히 차분히 마음 가라앉히고
(차분하란 말은 내가 매일 울딸에게 하는 말이군)
제발 하루라도 참고 또 참아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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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랑 같이 블록을 만지락거리는 나은이모습입니다.

뒷모습만 보여도 통통하니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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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립간 > [퍼온글] 박노해 - 이불을 꿰매면서

이불을 꿰매면서

                                           박노해


이불홑청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겆이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달라 물달라 옷달라 시켰었다

동료들과 노조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한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 준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나는 성실한 모범 근로자였었다

노조를 만들면서
저들의 칭찬과 모범표창이
고양이 꼬리에 매단 방울소리임을,
근로자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보살핌이
허울좋은 솜사탕임을 똑똑히 깨달았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위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정의 독재자가 되었었다

투쟁이 깊어 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배설해 낸다
노동자는 이윤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 홑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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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정희진(여성학 강사)
 
‘여성해방’시로 평가받는 박노해의 <이불을 꿰매면서>는 부부가 같이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가사노동을 전적으로 담당해온 아내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절절히 읊고 있다. 이 시는 ‘당시 남성으로서는’ 선진적이었지만, 시의 주된 내용은 “앞으로는 내가 이불을 꿰매겠다”가 아니라 “나를 깨우쳐준 아내에게 감사한다”이다. 시의 화자는 ‘주인’과 ‘노예’의 자리를 바꾸겠다고 결심하지는 않는다. 다만 주체의 성찰과 각성을 위해 타자의 ‘훌륭함’을 동원하고 찬양한다. 이미 많은 남녀 논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한국적 성별 관계의 특징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기대라는 남성의 이중 시선이다. 이상의 소설 <날개>처럼 이 시는, 여성을 착취하고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여성에게 의존적인 한국 남성 무의식의 ‘80년대 진보 버전’이다.

얼마 전 미혼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서도 증명되었듯이, 한국 남성들은 현모양처형 여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모양처는 기본이고, 현모양처에다 똑똑하고 돈 잘 버는 여성을 배우자로 원한다. 아마 한국 남성의 여성 팬터지가 가장 잘 재현된 티브이 드라마는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다모>일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밥 잘하고 정숙하면 됐지만,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밥만 잘해서는 어림도 없다. 밥 잘하면서 돈도 잘 벌고, 정숙하면서도 섹시해야 하며(물론, 섹시해야 되지만 섹스를 해서는 안 된다), 예쁘면서도 지적이고, 똑똑하면서도 겸손하고, 헌신적이면서도 앞에 나서지는 말아야 한다. 드라마 <다모>의 여주인공은 이 모든 것을 다 갖추었으며, 게다가 무술까지 잘한다.

성별 분업은 여성의 경험을 드러낼 언어가 없어서 서구·남성의 언어인 실증주의를 빌린 표현이다. 성별 분업은 남자는 ‘바깥 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 일’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계급 문제로 인한 남성 집단 내부의 차이로 인해, 생계 부양이라는 성역할을 모든 남성이 잘 수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성의 일이라고 간주되는 공적 영역의 임금노동을 못하는 남성은 많지만, 가사노동에서 제외된 여성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 여성들은 임금노동과 가사노동의 두 영역에서 이중노동을 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억압받는 집단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논리도 억압 세력의 이해 관계에서 구성된다. 앞의 시에서처럼, 타자의 고통은 주체를 위해서 제기될 때만 받아들여진다. 여성의 노동권은 생존권 차원에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 노동력 활용 차원에서 주장되거나(활용할 필요가 없을 때는 제일 먼저 해고된다), 여성의 정치 세력화는 여성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패 정치를 청소하기 위해, 동성애 커플의 결혼 합법화는 동성애자의 당연한 권리로서가 아니라 이성애 결혼 제도의 다양성을 위해 옹호된다. 타자화의 내용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지만, 이때만큼은, 피해자 여성은 억압자 남성을 위한 구원 투수가 되어 ‘좋은’ 타자가 된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여자는 남자의 영혼을 장식하는 컬러 물감이다. 여자가 없으면 남자의 인생은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황폐해져….” 초현실주의에서 좌파로 돌아선 프랑스 시인 루이 아라공의 <미래의 시>의 한 구절,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낯설지 않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여전히 주인공은 남자다. 여성은 설명하는 주체가 아니라 설명 대상일 뿐이다. 여성은 남성 문명의 선후에 있을 뿐, 현재를 사는 같은 시민이 아니다. 남성에 대한 기대는 격려를 동반하지만, 여성에 대한 기대는 비난으로 이어진다. 여성이 원하는 것은, 여성이 인류의 미래이고 대안이라는 높은 도덕적 기대가 아니라 동시대에서 차별 받지 않는 것이다. 정말 여자가 남자의 미래라면, 지금 모든 권력을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에게 이양해야 하지 않나 그리고, 남자의 인생은 남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남자의 미래는 남자의 과거다. 피해자에게 해결사의 역할을 요구하지 말라.

출처 : 한겨레 2004-05-26 17:36


바람구두의 중언부언 ------ 이 사람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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