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서랍 - 이정록 산문집
이정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꽃은 까지려고 핀다

 

  단단한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선 잘 버려야 한다. 부질없고 속절없는 말일랑 내려놓을수록 좋다. 누추한 말들의 집을 추스르기 위해 시인을 만나러 간다. 시인은 말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새가 난다’라는 단순한 문장이라고. 이 단순한 문장이 문장의 전부라고. 어떤 새가 어찌어찌 난다, 라고 말했을 때 이미 시는 제 맛을 잃어버린다.

 

 

  억지 장식을 달지 않기 위해 펜 끝을 세우는 일은 글 쓰는 사람의 기본자세일 터이다. 퇴고는 첨이 아니라 삭이어야 한다는 시인의 말은 새길만하다. ‘새 똥구멍이 훤히 보이는’ 일층 아파트를 고집하며, 운명처럼 진솔하게 시골생활을 변주해온 시인. 그 정점에서 시인은 온 삶이 시인인 엄마의 말을 채록하고 있는 중이다.

 

 

  시인의 말로 양념되고 버무려진 그 시편들이 세상에 나와 또 다른 위무의 어머니가 된다. 진물 나는 시도 좋지만 꽃밭 같은 동화·동시가 치유의 매력이 있어 쓰기도 한단다. 여기까지 듣는데 갯바람을 타고 나들이객들의 취한 노랫가락이 고성으로 들려온다. 하지만 그 소요(騷擾)는 시 열매 툭툭 내던지는 시인의 소요(逍遙) 앞에서 적수가 되지 못한다. 겸허한 시인의 말 풍경 속으로 여름밤 물상들의 귀가 순하게 젖는다.

 

 

  꽃은 까지려고 핀다 - 좋은 사람이 선물해준 그의 산문집에 시인이 적어준 말. 거짓을 벗어야 하고, 감추지 않아야 하고, 수치를 견뎌야 한다는 뜻일 게다. 까지는 게 어려운 건 금기를 넘어설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갯바람과 풀섶에 내 누추를 적시고도 좋은 글은 아득하고.  시인학교에서 만난 이정록 시인. 잘 까진 꽃으로 가득한 『시인의 서랍』에 밑줄만 하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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