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삼국지 三國志 1
고우영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중2아들놈 잘 때 읽으라고 열권으로 된 전집을 샀다. 한데 웬 걸, 지 말로는 시시해서 못 읽겠단다. 만화로 된 건 도서관에서 신물나도록 여러 버전으로 읽었단다. 결국 요즘은 이문열 버전으로 잠자리 들기 전에 조금씩 읽는 것을 봤다. 이것도 놈이 6학년 때 샀는데, 책꽂이 너무 높이 있어서 못 읽었다는 핑계가 있지만 실은 지 아무리 똑똑한 녀석이라도 6학년이 읽기엔 무리일 것 같아 요즘 제 방 책상에 가져다 놓았더니 읽기 시작한다.  

나는 삼국지 그 어느 버전도 다 읽지 못했다. 무지를 면하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더 쉬울 고우영 것부터 야금야금 읽기 시작한다.  한 권에 한 개씩만 건져도 되겠다, 싶은 심정으로.  

1권에서는 쪼다 한 명 발견한 걸로 만족이다. 유비 쪼다야 당근 패스. 유비가 쪼다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걸 말하려는 게 아니니. 하기야 적벽대전 영화에서도 그렇게 보이더라, 누구나 유비 같은 쪼다 기질이 드러날 때가 많으니 차라리 인간적이다. 고우영이 오죽하면 책상 앞 펜대 든 쪼다인 자신이야말로 유비라고 동일시하겠는가! (고우영식 표기법은 유비 "쬬다"이다. 진정 매력적인 쪼다다) 

십상시 환관들 치맛자락(?)에 휘둘린 영제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쪼다였다. 십상시는 후한말 영제 때에 정권을 잡아 조정을 농락한 10여 명의 중상시, 즉 환관들을 말한다. 십상시들은 많은 봉토를 거느리고 그 위세가 대단하였단다. 특히 그들의 곁에서 훈육된 영제는 십상시의 수장인 장랑을 아버지, 부수장인 조충을 어머니라 부르며 따랐다니 쪼다의 반열 중에 가히 황제급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영제 쪼다를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실은 십상시에 관해서 말하고 싶었나보다. 인간 속성은 자고로 권력(돈) 지향적이다. 특히 권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속성을 직접 체험한 십상시들은 거세된 남성성을 보상받기 위한 차선으로 그 권력을 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자 없는 설움에 돈과 권력보다 나은 위안은 없다. 비록 파국이 예견되더라도...

≪후한서(後漢書)≫권78 <환자열전(宦者列傳)>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부풍 사람 맹타는 재산이 많았으며, 장양(張讓)의 종과 친구가 되어, 자주 찾아 선물을 하며 안부를 묻는데 아낌이 없었다. 종들은 모두 그가 덕이 있다고 여겨서 맹타에게 '그대는 무얼 원하시오? 힘써 처리해보리다'라고 물었다.

맹타가 '저는 당신들이 나를 위해 절을 한번 해주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했다. 당시 빈객이 장양을 만나기를 원하는 수레가 항상 수천 대가 되었는데, 맹타는 그때 장양을 만나기 바랐지만 뒤에 왔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었는데, 노비 감독관이 여러 노비를 이끌고 길에서 맹타에게 절을 하고, 마침내 모든 수레가 문안으로 들어갔다. 빈객이 모두 놀라, 맹타가 장양과 아주 친하다고 여겨서, 진귀한 물건을 그에게 선물하였다. 맹타는 이것을 나누어 장양에게 선물하니, 장양이 크게 기뻐하여 마침내 맹타를 양주자사로 삼았다."  

권력에 파생되는 이런 코메디적 에피소들이야말로 권력의 속성을 제대로 말해주고 있다. 주인이 왕이면 그 집 종도 왕이다. 처세에 능한 저마다의 '맹타'들은 어디를 공략해야 그 권력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제대로 안다. 권력(장양)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종과 친구하는 맹타가 되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루하나 현명하기(?) 그지없는 맹타들의 맹렬한 줄서기... 이게 현실이고, 정치이고 곧 삶이다.  

각자 버전의 삼국연의를 읽는 의의가 이런 데 있는 모양이다. 고전을 읽으면서 현재를 해석하라고 누군가 뻔한 충고를 하지 않아도 그렇게 자기해설을 하게 만드는 것. 읽는 권 수가 한 권씩 늘어날 때마다 한 개씩만 머리에 담아보자. 그렇게 도돌이표 하다 보면 얼추 무식함은 벗어나지 않겠는가?  아직 삼국지 제대로 안 읽은 나 같은 사람은 이처럼 만화로 된 것 먼저 읽고, 풀어 쓴 것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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