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작품선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진웅기.김진욱 옮김 / 범우사 / 2000년 3월
품절


인간의 마음에는 모순된 두 개의 감정이 있다. 물론 타인의 불행에 동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해서든 그 불행을 극복해 내면 이번에는 왠지 허탈한 마음이 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불행에 빠지게 하고 싶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소극적이기는 하나 그 사람에 대해서 어떤 적의를 품게 된다- '코' 中-24쪽

바보는 언제나 자기 이외의 사람들을 모두 바보라고 믿고 있다.
*
우리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은 우리를 미워하거나 질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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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현명한 생활은, 한 시대의 습관을 경멸하면서도, 그 습관을 조금도 깨뜨리지 않도록 살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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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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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사상은, 3천년 전에 다 마련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만 낡은 땔감에 새로운 불꽃을 더할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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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고통을 수반하고, 평화는 권태로움을 수반한다면,- ?
*
물질적 욕망을 감소시키는 일이 반드시 평화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욕망도 감소시켜야 한다.
*
우리는 인간보다도 불행하다. 인간은 카파만큼 진화되어 있지 않다.
'카파(KAPPA)' 中
-128쪽

... 그러고부터 2,3일마다 여러 카파들이 나를 방문해 왔어요. 나의 병은, S박사에 의하면 조발성 치매증이라고 해요. 그러나 의사인 챠크는(이는 당신에게는 매우 실례가 되는 이야기입니다만) 나는 조발성 치매증 환자가 아니며, 조발성 치매증 환자는 S박사를 비롯한 당신네들 자신이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 '카파' 中

*여기서 나를 방문한 챠크는 카파 중 하나이다. -153쪽

그는 어쩐지 생쥐같이 빨간 갓난아기의 냄새를 맡으면서, 마음 속으로 곰곰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이 녀석도 태어나온 것일까? 이 고통으로 충만한 사바세계로 온 것일까? - 무엇 때문에 또 이 녀석은 나 같은 것을 아비로 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더구나 그놈은 그의 아내가 처음으로 출산한 사내 아이였다.
'어느 바보의 일생' 中
-266쪽

그의 자형의 자살은, 갑자기 그를 커다란 어려움 속에 빠뜨렸다. 그는 이번에는 누이의 가족들의 생활도 돌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 그는 그의 정신적 파산에 냉소에 가까운 것을 느끼면서, (그의 악덕이나 약점을 그는 모조리 알고 있었다) 여전히 여러 가지 책을 읽어 나갔다. 그러나 루소의 <참회록>조차도 영웅적인 거짓말로 넘치고 있었다. 특히 <신생>에 이르러서는 더욱 지독했다 - 그는 <신생>의 주인공만큼 노회한 위선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 '어느 바보의 일생' 中
-276쪽

..... 그는 이러한 그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누구나 한꺼풀 벗겨보면 마찬가지'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의 작품이 호소할 수 있는 대상은, 그와 유사한 생애를 보낸, 그와 유사한 사람들 이외에는 있을 턱이 없다 - ..... 그는 <어느 바보의 일생>을 다 쓰고 나서, 우연히 어느 고물 가게에 박제한 백조가 있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고개를 들고 서 있었지만, 노르스름해진 날개마저 벌레에 먹히고 있었다. 그는 그의 일생을 생각해 보면, 눈물과 냉소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오직 <발광이냐 자살이냐> 뿐이었다. .....

그의 친구 한 명은 발광했다. 그는 이 친구에게 언제나 어떤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 친구의 고독이 - 경쾌한 가면 뒤에 있는 고독이 남보다 갑절이나 몸에 사무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 그는 신을 의지한 중세기의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꼈다. ..... '어느 바보의 일생' 中
-279쪽

작품론 - 미요시 유키오
다이쇼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가

.....확실히 아쿠타가와는 자기의 체험을 그대로 묘사한다든가, 실생활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든가 하는 일은 없다.

모든 대상을 일단 지성의 휠터에 통과시켜, 이른바 머리 속에서 소설의 세계를 설정해가는 형의 작가다. ..... 구성이나 문체의 구석 구석에까지 작자의 계산이 기막히게 미치고 있다. ..... 작가의 실생활과는 격리시키면서, 그러나 작가의 인생 모든 것의 무게를 얹은 것 같은 문학, 아쿠타가와는 그러한 문학을 신뢰하고 또 스스로도 만들어 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은 세기말적인 퇴폐나 인생에의 환멸을 끊임없이 의식해서 그 해결을 예술에서 구하려는 자세이기도 했다. -281쪽

작품해설
<라쇼몽> ..... 그는 여기에다 근대적인 해석을 붙여서 인간의 에고이즘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곤경에 빠졌을 때 인간은 결국 자기밖에 생각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그의 인간관이 나타나 있다.
<코> ..... 작자는 한편으로는 이 불쌍한 고승의 마음에 일종의 멸시를 느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마음은 자기에게도 공통된 인간성의 약점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이 작품의 특색이 있다고 하겠다.
<덤불 속> ..... 이 소설의 테마는 어느 사건에 대하여 당사자 자신들도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인생의 잔상이란 것은 대개 그 일단만이 잡힐 뿐 전체가 잡히기 어렵다는 것, 사람마다의 감정이나 심리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하겠다. 역시 작자의 회의적인 인생관이 스며나온 작품이다.
<지옥변> ..... 이것은 아쿠타가와가 예술가로 살면서 동시에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을 암시했다고 하겠다.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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