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로서 읽어야 하고, 철학자로서 들어야 한다. 철학을 논한다는 건 단순히 철학에 관한 토론이 아니라 철학적 토론을 뜻한다. 이것은 철학이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인 학문의 자리에 오른 여러 가지 이유들 가운데 하나다. 단순히 타인의 생각을 배우는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철학자로서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는 문제인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철학자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 P11
독서는 적극적인 활동이다. 글이나 책을 읽을 때는 저자의 견해를 단순히 흡수하지 말고 텍스트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텍스트 내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그것을 철저하게 이해할 수 있고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 이렇게 해야 의미 있고 생생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 P20
유달리 이해가 잘되고 매끄럽게 읽히는 철학 텍스트를 접할 때마다 그 비결을 분석하라. 그렇게 분석해 파악한 비결을 나중에 직접 글을 쓸 때 응용하라. 인상적인 구절을 골라 본보기로 삼는 것도 유용한 방법이다. - P31
대부분의 철학 교수들은 강의시간에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강의실 밖에서도 사색에 잠기며, 책과 논문을 읽고, 토론하도록 유도하려고 한다. 이상적으로 볼 때 학생들은 강의시간에 다룬 주제를 더욱더 깊이 이해한 채, 그리고 그것에 관해 더 많은 진리를 발견하려는 강력한 동기를 지닌 채 강의실을 나서야 한다. 훌륭한 교수는 학생들에게 강의주제에 관한 최고의 책과 논문을 추천해줄 것이고, 각각의 책과 논문에 담긴 저자의 시각을 알려줄 것이다. - P44
어떤 쟁점이나 사상가를 다른 사람에게 직접 설명해보면 그 쟁점이나 사상가를 확실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정 주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그것을 다른 사람, 즉 특정 주제에 대한 사전지식은 별로 없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소양이 있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사실 많은 교수들은 사전지식은 거의 없지만 똑똑한 학생들에게 철학의 특정 측면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할 때 얼마나 자신이 그것에 대해 무지한지를 깨닫곤 한다. - P50
학생의 입장에서 노련한 철학자의 철학적 사고를 직접 목격하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철학 전문가가 개념을 탐색하고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고 비판에 맞서 자신의 견해를 옹호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값진 공부가 될 수 있다. 철학의 특정 분야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분야를 철저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과 직접 토론해보는 것이다. (...) 철학은 지적인 게임이 아니다. 철학은 우리가 삶에 관해, 우주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에 관해 던질 수 있는 심오한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철학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제기되기를 바라지 않는 거북한 질문, 즉 무사안일과 자기기만을 깨뜨릴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 P56
치열한 토론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공격당하는 느낌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 어떤 주장과 그 주장을 펼치는 사람을 혼동하면 곤란하다. 철학자들이 누군가의 생각을 철학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상대를 철학자로서 존중하고 있다는 표시다. 철학 토론의 취지는 진리에 다가가는 것, 비판과 담쌓은 생각에 반대하는 것, 잘못된 생각을 합리적인 견해로 대체하는 것이다. 어떤 주장에 대한 비판은 개인을 겨냥한 잔인한 공격이 아니라 해당 주제의 발전을 꾀하기 위한 필연적인 수단이다. - P58
철학 토론이 언제나 찬성과 반대가 부딪히는 논쟁은 아니다. 철학 토론에서는 해석이 따르고,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도 수반되며, 철학 텍스트에 관한 더욱더 깊이 있는 통찰력과 이해도를 성취하기 위해 함께 협력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때로는 토론의 목적이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도록 유도하는 것, 어떤 철학자가 특정한 방식으로 주장을 전개하는 까닭을 이해하는 것, 어떤 철학자가 언급한 말의 의미나 그것이 중요한 까닭을 이해하는 것 등이 될 수도 있다. - P59
어렵고 골치아픈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학생은 철학을 공부할 자격이 없다. (...) 스스로 질문을 고안해 던지지 못하는 학생은 철학을 생생한 학문으로 유지할 수 없으며, 사고의 화석화를 초래하는 수동적인 태도에 안주하고 말 것이다. - P61
철학자들에게 글쓰기는 단지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라 생각의 바탕을 이루는 적극적인 활동이다. 글쓰기는 일종의 사고과정이다. 글쓰기는 단지 자신이 터득한 지식을 자랑하는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는 어떤 주제에 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 P67
설령 글을 쓰는 도중에 바꾸더라도 논술의 전체적인 개요를 미리 설계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 단락의 주제를 중심으로 개략적인 윤곽을 마련하라. 이때 개요를 직접 종이에 적어놓고 논술을 쓰기 시작해야 효과적으로 작성할 수 있고, 나중에 많은 분량을 삭제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논술의 개요를 작성하는 과정 자체가 논술을 설계하는 과정이다. 개요라는 것이 머릿속에 있는 것을 단순히 종이에 옮겨 적는 것이 아니다. 작성자가 스스로 개요를 작성하기 시작해야 개요가 생기는 것이다. - P74
철학 글쓰기는 어떤 주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뒤 거기서 발견한 점을 글로 표현하는 것과는 다르다. 철학 글쓰기 행위는 자신의 사고를 자극하는 과정, 때로는 쟁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거나 개념을 확인하기 위해 책과 노트를 다시 참고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되도록 글쓰기 과제를 미루지 말기 바란다. 글쓰기의 초고를 작성하는 과정 자체가 해당 쟁점을 검토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 P75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여 원고를 수정하라. 수정과정은 대부분의 경우 최종 결과물의 질을 높인다. 가능하다면 초고를 작성한 뒤 며칠 정도 그냥 내버려두어라.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다른 사람의 글처럼 느껴질 것이고, 어느 부분을 고쳐야 할지 금방 눈에 들어올 것이다. - P76
답안을 보다 명료하게 작성하고 싶으면 제출하기 전에 자기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기 바란다. 글 쓰는 행위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복잡하고 난해한 문장을 구사하기 마련이다.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삭제하거나 다듬어야 할 문장을 쉽게 알 수 있다. - P88
각 단락을 완성한 뒤 마음속으로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라고 물어라. 여기에 대한 답변은 방금 완성한 단락의 내용과 원래 출제된 문제 사이의 관련성을 평가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출제된 문제에서 벗어나지 마라. 이 점은 시험용 논술을 작성할 때 특히 중요하다. 주제에서 벗어나지 마라. 주제와 관련 없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마라. - P91
방금 작성한 논술에서 각 단락의 첫 번째 문장이 하나의 이정표로서 전체 논술의 논증구조를 적절히 드러내는지 살펴보아라.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각 단락의 첫 번째 문장을 수정하라. - P98
알다시피 철학 글쓰기에서는 결론을 위한 주장을 전개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는 일방적인 주장만 펼치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견해를 제시할 때마다 반론을 예측하고 선제공격에 나서라. 자신의 견해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고 그것의 부당성을 입증하라. 지금 내세우는 견해의 이면을 충분히 고려했음을, 반론과 반례를 모두 검토했음을 보여주어라. 결론에 유리한 주장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안일한 태도다. (...) 에세이 작성자는 독단적인 주장을 열렬히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골고루 감안하고 나서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 P100
철학 에세이를 작성할 때 굳이 깜짝 놀랄만한 이론을 내놓을 필요는 없다. 익숙한 주장을 제시하는 과정에서도 독창성은 발휘될 수 있다. 지금 공부하는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철학자들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앵무새가 되지 마라. - P109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두면 오히려 철학 시험이 즐거워질 수 있고, 시간의 압박을 받으면서 어떤 주제에 관해 명확하게 생각하는 과정은 유쾌한 경험이 될 것이다. 철학 시험에서는 답안을 작성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철학 시험에서 논술을 작성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경험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철학이라는 학문의 진가를 깨달은 학생들도 있다. 철학 교육은 스스로 사고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 P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