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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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곱 살 언니 되면 할게."
나나, 신랑이 아이에게 "이제 혼자 밥 잘 먹어야지~", "옷도 혼자 다 갈아입고~", "장난감방 정리도 하고~", "약속한 건 잘 지켜야지~"라고 말할 때마다 여섯 살 아이가 한 말이다.

아이는 그렇게 일곱 살이 되었다.

지난밤, 아이 아빠는 말 안 듣는 아이에게 말했다.
"일곱 살되면 혼자 잘 한다며~ 말도 잘 듣는다며~, 아빠는 이럴 때 혼을 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해?"

"음, 화 안 내야 해~"라며 해맑게 웃는 아이.

이제 곧 둘째가 태어나기는 하지만, 아이는 6년 동안 혼자 자랐다. 모두의 사랑을 혼자 독차지했고,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것, 원하는 건 거의 다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때론 우리가 아이를 너무 버릇없이 키우나, 너무 부족한 거 모르게 키우는 건가 싶어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한 번 큰 소리를 내고 나면 이게 잘하는 건가 싶고, 울먹이는 아이를 보면 또 마음이 약해지곤 했다.

 

 '가족'이라는 말만큼 마음을 약하게 하는 말도, 행복하게 하는 말도, 슬프게 하는 말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지 오래. 그러고 보면 '가족'이라는 이름만큼, '가족'이라는 공동체만큼 모순적인 게 없다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가장 아파야 하고, 가장 아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상처를 주는 어느 집이나 비슷비슷한 모습 말이다.

대부분의 체벌이, 학대가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깊게 관심을 갖고 싶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화되는 학대받는 아이들. 버려지는 아이들. 이 아이들 역시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자행되는 폭력에 무자비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저자는 '가족 내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인 아이를 중심에 놓고 우리의 가족, 가족주의가 불러우는 세상의 문제들을 바라보자고 제안하고 싶어 ' 이 글을 썼다 했다.

이 책 속의 글들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건, '아이'는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종종 나는, 아이에게 느끼는 책임감이 무서울 정도로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아이가 다칠까 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아플까 봐, 공부시키고, 좋은 거 먹이고, 예쁜 옷 입히고 그렇게 내가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 말이다.
그 책임감 때문에  나 역시 아이가 마치 '나'의 부속품인 듯 생각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아이에게 큰소리를 내고, 체벌이라는 이유로 때론 '너 잘 못했지?'하고 윽박지르고......

저자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한 완강한 가족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출발된 글은 1. 가족은 정말 울타리인가, 2. 한국에서 '비정상'가족으로 산다는 것, 3. 누가 정상가족과 비정상 가족을 규정하나, 4. 가족이 그렇게 문제라면 의 챕터로 나눠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울타리인 가족 안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는 학대,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무시하고 차별하는 현상, 혈연으로 묶이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너무 오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이제 더 이상 올바른 가족 모델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조금 더 진지하게 하게 했다.

1부 가족은 정말 울타리인가, 속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자녀 살해 후 자살하는 가해자 중 압도적으로 어머니가 많다는 점. 서양과 달리 국내의 경우 영유아기를 넘어선 뒤에도 부모 중 한쪽이 자녀 살해 후 자살을 시도할 경우 어머니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 더불어 아버지 단독에 의해 자녀 살해 후 자살의 경우 가장 중요한 원인은 시대 변화와 상관없이 '배우자의 가출' 이었다는 점.
결국, 한국 사회에서 '친엄마'가 없는 것이 자녀 살해와 죽음을 선택할 만큼 고통스러운 상황이며, 친엄마 역시 자녀의 생존을 자신과 분리시켜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 개인이 자신뿐 아니라 자녀의 생사를 선택하는 무서운 결정을 할 때조차 한국 사회에서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짙게 배어 있다, 내용을 읽으면서는 무섭기까지 했다.

 가족이, 부모가 정상적인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할 때, 아이들은 누가 보호해 주어야 할까.
여전히  개인적인 ' 가족일'로 치부한 채 학대로 내몰리는 아이들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상처받음, 무서움, 속상함, 겁이 남, 외로움, 슬픔, 성남, 버려진 것 같음, 무시당함, 화남, 혐오스러움, 끔찍함, 창피함, 비참함, 충격받음." 
위의 단어들은 영국 세이브더칠드런이 2001년에 아이들이 맞았던 경험을 어떻게 느끼는지 정리한 기록이다.

어른들이 느낀다고 해도, 우울증에 걸릴 것 같은 단어들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어 온 무수한 폭력이 더 이상은 아이들에게 행해져서는 안된다는 책임감.
나와 다른 가족의 형태라고 해서 무시하고, 차별하고,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지 말아야겠다는 반성.
아이도 어른도, 가족 안에서 각자의 자율성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진실을 실제 삶에서도 적용시키고 싶다는 바램.

이 한 권의 책이 내게 던져준 질문과 생각거리가 너무 많고 무겁다.

작년부터 나는 '미혼모'와 '입양'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버려지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좀 더 올바른 어른들을 많이 만들어 내고, 아이들을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려면 '미혼모'에 대한 지원이, 그들이 키우는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절실하다.

이 책은 여러 통계를 기반으로 우리 사회가 '정상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행하고 있는 무차별적인 학대와 비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한 번 더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책.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이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리스트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따로 적어두고 올 한해 천천히 읽고 보고 싶다.

늘어나는 비혼과 저출산으로 가족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나는 가족 해체보다 여전히 더 큰 문제는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한 완강한 가족주의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형태가 급변하는 현실과 달리 사람들의 의식과 제도에는 여전히 가족주의와 그것의 강력한 작동 방식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깊게 스며들어 있다. p9

아이들은 문자 그대로 ‘작은 인간‘이다. 그저 작을 뿐 성인과 다르지 않은 사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세상에 초대받아 성인과 종류만 다를 뿐인 불안을 견뎌내야 하는 여린 생명체다. 한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가 그 사호의 수준을 드러내 보여준다면 작은 단위의 사회라 할 가족도 이를 중심에 놓고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p11

부모의 훈육적 체벌은 의도가 선하기 때문에 신체의 온전성 및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실상 부모 중심, 성인 중심 해석일 뿐이다. 체벌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에 대해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 체벌은 갖가지 이유로 행해질 수 있고, 거기 따라붙는 훈계도 그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표면상의 다양성을 넘어서, 체벌은 언제나 단 하나의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한다. 바로 체벌이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너의 몸은 온전히 너의 것이 아니며, 나는 언제든 너에게 손댈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체벌에 동의한다는 것은 이 가르침을 수용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모욕의 역설을 이해하게 된다. 모욕은 타인의 인격을 부정할 뿐 아니라, 그러한 부정에 대해서 부정당하는 사람의 동의를 강요한다. 모욕당하는 자가 모욕에 동의하는 순간, 모욕은 더 이상 모욕이 아니다. 그것은 의례의 일부이며 질서의 일부가 된다. 결국 모욕은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 폭력이다"p29

문제없는 가정에서 자신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저는 맞아도 싸요"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한다. "나만 없으면 우리 집은 행복할 것"이라고도 말한다. 자신이 가족의 행복을 해치는 비정상적이고 문제 많은 존재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p70

우리는 어떤가. 잇따른 아동학대 사망사건들과 세월호의 비극 이후 아이들의 삶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 과연 이대로 좋은지에 대해 우리는 어떤 반성과 자각을 하고 있나.
사회가 함께 도와줄 것이라는 신뢰 없이, 남을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불안으로 모두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놀지도 못한 채 일찌감치 떨려나거나 부모의 소망은 충족시켰을지언정 자기 인생을 위해서는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 아이들에게 맘껏 놀며 자기 속도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힘껏 가보라고 격려해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가 그토록 어려운 걸까. p76

과거 친권은 사람의 물건에 대한 지배권처럼 부모가 자녀에 대해 갖는 일종의 지배권이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부모 권리의 객체였을 뿐이다. 그렇게 친권을 ‘권리‘라고만 표현하다가 ‘자녀를 보호, 교양할 권리, 의무‘라고 정의한<민법> 조항처럼 ‘권리이자 의무‘로 부르게 된 것도 과거에 비하면 큰 진전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친권이 아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가 숱하게 많다. 가족이 그 안에 속한 개개인, 특히 아이들의 차별 없는 권리와 평등을 보호해줄 수 있으려면 권리보다는 의무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보다 많은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 p109

나는 미혼모가 양육을 선택하지 못하고 아이를 버리게 되는 첫 번째 이유로 출산은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야만 정상으로 규정하고 이를 벗어나면 ‘비정상‘과 ‘부도덕‘으로 몰아세우는 한국의 가족주의를 꼽겠다.
한국의 가족주의는 소위 ‘정상가족‘인 가부장적 가족만 인정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법적 혼인절차가 수반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사회적 보호와 인정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결혼=출산‘의 등식이 지나치게 확고한 탓에 제도의 바깥에서 출산함으로써 가족의 순수함을 훼손했다고 여겨지는 미혼모와 그 자녀들은 제도적, 사회적 차별에 시달린다. p115

중요한 것은 친엄마의 양육이 더 좋고 입양이 더 좋고를 떠나서 여성이 출산과 양육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회구성원들처럼 미혼모에게도 자신과 아이에게 가장 좋은 방법을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말뿐인 다양한 가족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차별 없이 다양한 가족이 공존할 수 있도록 결혼을 둘러싼 법 제도의 개선, 여성의 양육권과 아이의 인권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p128

양극화된 가족 삶의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사교육 과열 양상이 보여주듯 중산층은 계층 하락을 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자녀가 어릴 때부터 총력 경쟁에 나선다. 저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하므로 아이의 자율성, 개별성이 고려될 여지는 희박하다. 반면 소득과 경제적 유지가 불안정한 저소득층은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돌봄 공백‘ 상태에 빠진다. 이 탓에 아이들은 자주 방임 상태에 놓이고 스트레스 해소의 대상이 되어 학대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늘어난다. 국가가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해버린 탓에 가족이 각자도생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에서 가장 약한 자인 아이들이 늘 피해자가 된다. p176

가족주의를 떠나서 보편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심리적 분리는 부모뿐 아니라 자녀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자신 안에 내면화한 부모의 모습과 싸우고, 달래고, 도망치고, 협상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곧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성장의 과정이다. 나이가 든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고 어쩌면 평생 지속해야 하는 과제이다. 나는 그 과정을 어떻게 치러내는가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각자도생의 경쟁 속에 이기적 가족주의의 강력한 영향이 모든 사람의 삶에 어른거리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p190

거의 모든 복지국가들이 운영 중인 아동수당은 모든 아이들이 부모의 성별, 재산, 혼인상태, 사회적 출신, 종교, 출생지 등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도 차별받지 않고 자라야 한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인식하자는 차원의 제도이다. 그래서 부모의 소득이나 자산을 조사하지 않고, 한 부모인지 아닌지, 부모가 둘 다 취업상태인지 아닌지, 부모가 원하는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고 평등하게 지원해야 그 취지에 맞다. 왜냐하면 아동수당은 아이들의 시민권에 대한 공적 보상이고 모든 아동의 생존권과 건강한 발달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p241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폭력에 반대하는 개인의 인권의식이지 남의 아이도 내 자식처럼 돌보는 엄마의 눈, 전 사회의 ‘확대가족화‘가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 아이를 때리는 것을 보았을 때 항의하고 신고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더 약한 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인 것이지, 우리가 모두 이웃의 아이를 함께 지키는 대가족 구성원의 마음자리를 가져야 하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는 배우자를 폭행하는 가정폭력에 대한 해법으로 공동체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 아동폭력도 마찬가지다. 생물학적으로 어릴 뿐 온전한 인간인 ‘작은 인간‘에 대한 폭력과 인권유린을 없애는 게 우선이다. 체벌, 아동학대, 자녀 살해 후 자살은 모두 아이들의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아서 빚어지는 비극인데 해법도 더 많은 공동체를 내세우며 개인을 소거해서는 안 된다. p260

변화는 필연적이다. 이미 시작되었다. 2016년 겨울부터 전국을 달궜던 촛불집회에서 나는 그 희망을 본다. 그 어떤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도 각 개인이 광장에서 모르는 사람들과도 연대할 수 있음을 우리는 가슴 뜨겁게 경험했다.(중략) 촛불의 벅찬 경험이, 민주주의의 학습이 각자가 속한 삶의 장에서도 중단 없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촛불로 태어난 정부가 공공성 강화를 통해 가족의 짐을 덜어주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각 개인들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보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뻗어가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가족 안팎에서 ‘정상가족‘의 숨 막히는 틀 대신 수평적 유대관계를 통해 아이들의 자율을 존중하고, 다음 세대에선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지 않는 개인들이 자라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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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생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이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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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같이 보내는 하루 말고,
조용하고 고요하게 보내는 소소한 일상을 동경하기 시작한 건  아마도, 엄마가 된 다음부터 였을 거다.
결혼 전, 퇴근 후 혼자 자취방에 들어가 느릿느릿 밥을 먹고 TV를 보고 책을 읽고 소설을 쓰면서
자유롭게 살았던 20대 시절의 어떤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말이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들은 이제 마음속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고이 간직되어 있다.

무레 요코<일하지 않습니다>의 글을 읽을 때도, '부럽다'라는 말이 입속을 맴돌았다.
마스다 미리의 전 작들을 읽으면서도 그랬던 것 같고.

 

 <<오늘의 인생>>은 자칫 시시하고, 재미없고, 의미 없는 건 같은 그렇고 그렇게 지나가는 '오늘'이라는 나의 인생이 무수히 많은 날들을 이어주고, 건너게 하는 소중한 '순간' 임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한다.

가끔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 오늘도 나를 위한 삶은 없었구나 싶은 때가 있다.
너무도 이쁜 아이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 지금 잘 살고 있나' 싶어지기도 하고, 괜스레 울적.

이 책은 그런 소소한(때로 시시하게 느껴지는) 일상조차 '반짝!'하고 빛나는 순간이라는 걸 한 번쯤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그러다 보니, 꽤 공감 가는 에피소드가 많다.
별일 아닌 일로 짜증이 나다가도, 달달한 커피 한 잔에 마음이 스르르 녹고,
옆 사람 때문에 짜증이 나다가도 돌아서면 에잇 그까짓, 하는 마음이 들고,
식구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가도 맛있는 걸 보면 또 그 식구들이 떠오르는.

한 페이지씩 가벼운 글과 그림을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러면서 옆에서 TV를 보면서 엉덩이를 벅벅 긁는 신랑도 이뻐 보이고,
엄마! 책 좀 그만 보고 나랑 좀 놀아라며 귀찮게(?) 엄마를 찾는 딸아이도 무한 사랑스러워 보인다.

크리스마스이브니까 아이랑 뭔가를 해야 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면서
호텔, 놀이터, 스파 등등 검색만 실컷 하다가
그냥 맛있는 거 먹고 늘어져라 쉬고, 뒹굴뒹굴 몸으로 집에서 놀아보지 뭐.
하고 생각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패밀리레스토랑 흉내 낸 메뉴(스테이크, 스파게티. 샐러드)로 기분 내고,
집 근처 커피숍에서 따뜻하게 내려온 커피(아이는 아이스 초코) 마시면서 달달함 가득 채우고,
아이가 하고 싶다는 주사위 게임하고, TV 보고, 풍선게임하고,
저녁엔 뭐 먹을까 서로 이야기하다 보니 휘리, 나름 즐겁게 흘러간 크리스마스이브.

아이와 신랑과 세 식구 소소하게 보내는 행복한 오늘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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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김소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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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줄임표.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를 때, 습관처럼 찍게 되는.
이 책을 읽고난 뒤,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엄마, 헤어짐의 기록 그리고 나의 딸과의 나날
  내 인생에서 엄마가 없었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책 표지에 적힌 저 문장만으로도 이 책을 펼치는 손이 떨렸다.
중간중간 만화도 있지만, 360여페이지의 긴 글을 새벽 내내 읽고 말았다.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읽느라 좀 더 더뎠고, 중간중간 눈물을 참느라 더뎠고,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아 더뎠다.

태어나서 쭈욱 엄마의 품 안에 살다가,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저자.
엄마의 유방암 발병과, 치료, 완치. 몇 년 뒤 재발한 엄마의 병.
그 시간들을 엄마와, 딸과 함께 해 온 저자의 기록이자, 우리 모두의 (엄마와 딸) 이야기.

다 읽고 난 뒤에 밀려 온, 먹먹함때문에 하루 반나절쯤 울적했다.

 

 언제쯤 나는, 우리는 '엄마'라는 이름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게 살아가는 동안 가능하기는 할까.

자주 엄마를 미워했고, 원망했고, 부담스러워했지만 한번도 엄마가 없다는 생각을 해보진 못했던 것 같다. 엄마에게도 자주 이렇게 말했던 거 같다.
"아프지 마. 다른 건 다 모르겠는데 아프지만 마"

엄마가 없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종종 엄마는 "나도 엄마 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때도 난 별 감흥없이 그래. 응. 응. 이런 식의 대답만 했을 뿐이었다.

며칠 전 조산기로 입원했을 때,
집에 가서 자라고 윤이에게 말했던 윤이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가 걱정되서 갈 수가 없어."
그 말에 차마 아이를 더 다그쳐 집으로 가라고 할 수가 없었다.

딸 아이에게 나는 '엄마'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 나는 그걸 종종 감사하기보다 힘들어했다.
아, 모르겠다.... 말 줄임표.

"엄마가 좋아하는 건 뭘까. 엄마가 즐거워하는 일이 뭐였더라.
우리와 함께인 엄마가 아니라 엄마라는 사람 자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똑같이 방안에서 각자 시간을 보내도 아빠는 걱정되지 않는데 엄마는 자꾸 신경이 스인다. 아빠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스스로 즐거움을 잘 찾을 것 같다. 하지만 늘 가족 아니면 다른 사람이 우선인 엄마가 자신만의 즐거움을 알 수 있을까? p27"

이 부분을 읽은 다음부터였던 것 같다.
나 역시, 몰랐구나. 생각해보지 못했구나.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
뭘 좋아하고, 어떤 때 즐거워하고, 아파하는지. 외로운지, 슬픈지, 혼자 있는 시간에는 뭘 하는지.....
그러다 덜컥 두려워지는거다.
아, 하나도 모르는데 '엄마'가 없어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책 속에 중간중간 실려 있는 저자의 어린시절 일기도 좋았고(내 일기장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만화도 너무 좋았다. 그래서 분량에 비해 길다는 느낌없이 휘릭 잘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딸이기도 하고,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보니 내 이야기처럼, 내 언니의 이야기인 것 처럼 공감이 되서 많이 위로 받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감사해야 할 순간이구나.
여전히 그냥, 옆에 있는 '엄마'에게.
지난 6년동안 윤이를 키워 준 엄마에게, 염치없게도 곧 태어날 둘째까지 맡겨야 하니......

나는 성인이 된 이후에 늘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키우면서 희생했던 것 이상으로 나 역시 엄마에게 해주었다고.
어쩌면 그보다 더 내가 해줬을지도 모른다고. 딸에게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엄마는 나쁘다고.
정말 그랬을까? 내가 과연 그 만큼, '엄마'를 생각했을까, 혹은 사랑했을까.
......

 

 

엄마의 옛 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를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철없는 딸로서 존재하는 엄마가 보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보다 더 자유롭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그런 엄마를 멀리서 한 번쯤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어린 엄마가 그리는 꿈과 미래를 온 마음으로 응원해주고 싶다.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p43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의 자식으로 태어나 한집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았던 시간보다 서로 떨어진 채 보낼 시간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집‘이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을까. 한집에서 살면서 부딪치고, 등 돌리고, 미워하고 싶어도 마음껏 미워할 수 없었던 그런 시간들도 사실은 소중한 순간이라고 여겼어야 했던 걸까. 왠지 마음이 싸-한 밤이다. p77

자식은 커가면서 세상 누구보다 편한 엄마에게 마구 대하곤 한다. 하지만 엄마도 자식에게 마구 대하곤 한다는 걸 솔이와 있으면서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을 행동과 말투를 솔이에게 하고 만다. 육아에서 제일 힘든 일은 감정조절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조절에 실패하는 순간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보기 싫은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밑바닥까지 모조리 드러내는 기분. 그 모습을 보이는 대상이 나와 가족, 특히 딸이라는 것이 더욱 절망스럽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p147

나에게 솔이는 태어나면서 내 인생에 새롭게 등장하게 된 아이지만, 솔이에게 나는 태어나는 순간,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당연히 존재했다. 당연히, 잊고 살아온 단어, 엄마도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내 인생에서 엄마가 없었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지금 솔이와 함께 있듯 엄마도 그렇게 언제나 내 곂에 함께 였다. 아파트 단지에서 뛰노는 솔이를 보면서, 내가 그동안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자유롭게 살아온 게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엄마가 지켜봐주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전부 엄마가 아니었으면 이루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p206

몸을 일으켜 곤히 잠든 솔이 얼굴을 다시 보고 슬며시 손도 잡아보고 통통한 다리도 만져본다. 잠든 솔이를 꼭 끌어안고 솔이 냄새를 맡으며 잠을 청했다. 잠결에도 엄마를 부르며 내 옆에 착 붙어서 자는 아이를 보며 오늘도 흘러가는 시간이 왠지 무서워진다. 내일도, 내일모레도 나는 솔이를 재우러 함께 방에 들어가야 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책 세권을 읽어주어야 하고 잠이 들 때까지 곁을 지켜주어야 한다. 그레 지금 솔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니,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해야겠다.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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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끄기의 기술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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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마, 노력하지 마, 신경 쓰지 마"
이 문장은 꽤 자극적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저 세 가지를 모두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애썼고, 노력했고, 신경썼다.
육아, 직장일, 가정(양가 포함), '나' 개인의 정서적 충만함 등을 위해 말이다.
그래서 자주 과부하에 걸렸고, 주기적으로 우울했으며, 작은 일에도 쉽사리 울컥 했다.

이 책은 자잘한 것들에 다 신경쓰겠다고 나서지 말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을 기르라고 말한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남는 의문은 있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을 남기기'위해 우리는 또 애쓰고, 노력하고, 신경쓰는 게 아닐까 하는(책 헛 읽었나;;).

이 책의 차례만 모아보면 대략 이렇다.
1. 애쓰지 마, 노력하지 마, 신경 쓰지 마
2. 해피엔딩이란 동화에나 나오는 거야
3. 왜 너만 특별하다고 생각해?
4. '고통을 피하는 법'은 없어
5. 선택을 했으면 책임도 져야지
6. 넌 틀렸어, 물론 나도 틀렸고
7. 실패했다고 괴로워하지 마
8. 거절은 인생의 기술이야
9. 결국 우린 다 죽어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경 끄기의 기술'이다.
이 기술은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고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게 해주는 단순한 방법이다. 이 능력을 발달시키면 이른바 '실용적 깨달음'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영원한 행복이라느니, 모든 시련의 끝이라느니 하는 약장수가 하는 말이 아니다. 실용적 깨달음이란, 삶이 늘 어느 정도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즉 우리가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든 인생은 실패, 상실, 후회를 수반하고 마지막엔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삶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엄청난 고난들을 순탄하게 받아 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천하무적이 될 수 있다.
단언컨대 고통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p12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해 봤다.
내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일들은 뭘까. 내 삶을 가장 답답하게 만드는 일은 뭘까.
1. 나는 너무 생각이 많다 - 그래서 너무 앞서 걱정하고 고민한다.
2. 책임감때문에 종종 마음이 무겁다  - 아이도, 친정엄마도 다 내가 책임을 지고 지켜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내게는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내 인생의 목록을 쭈욱 늘어놓은 다음 그 중에서 그래도 중요하지 않은 걸 하나씩 지워나가는 거다. 그리고 남은 딱 다섯 가지 내외의 항목에 대해서만 신경 쓰고, 애쓰는 삶을 만들어 가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니까 뭔가 이미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이제 시작이다.

이 책은, 기존의 자기계발서에서 내세우는 '요령'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생에 관해 사람들이 흔히 떠들어 대는 조언-긍정과 행복으로 가득 찬 자기계발 요령-은 사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조언은 개개인이 이미 자신의 결점과 실패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을 파고 들어, 그것에 몰두하게 한다.p20"
예를들면 이런거지,  부자가 되는 비법을 배우는 건 나는 돈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거울 앞에 서서 나는 예쁘다고 주문을 거는 건 내가 못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연애와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을 따르는 건 사람들이 날 실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성공하기 위해 웃기지도 않는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는 건 내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럼 저자가 말하는 신경 끄기의 기술은 뭘까.
#1 신경끄기는 무심함이 아니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2 고난에 신경 쓰지 않으려면, 그보다 중요한 무언가에 신경을 쓰라.
#3 알게 모르게, 우리는 항상 신경 쓸 무언가를 선택한다.

결국, 하나다.
' 당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찾아라. ' 그리고 남은 너저분한 관계, 감정, 불안, 걱정 같은 건 잊어버려라. 무관심해져라.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라. 집착하지 말아라. 받아들여라.

 

새해의 시작에서 읽기 좋은 책이다. 시작은 언제나 설렘을, 희망을 주니까.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찾아가는 시간, 불필요한 것들과 안녕을 고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또 너무 깊게 생각하다보면 다시 온갖 잡다한 것들에 '신경 쓰게 되고' 말테니.

 

행복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나온다. 여기서 핵심은 ‘해결‘이다. 문제를 피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하면 불행해진다. 해결 못 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도 역시 불행해진다. 중요한 건 처음부터 문제 밖에 자리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거다. p51

감정은 우리 삶의 방정식의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니다. 좋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고, 나쁘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은 단지 길잡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감정을 전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 사실 난 감정을 의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p55

자아 존중감을 제대로 측정하려면, 긍정적 경험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아니라, 부정적 경험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봐야 한다. 실제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부정적인 부분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래, 난 돈 문제에 무책임할 때가 있어.", "그래, 난 내 성공을 과장할 때가 있어.","그래, 난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해. 자립심을 키워야겠어."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한다. p69

충고하건대, 자신이 특별하다거나 남다르다는 생각을 버려라. 삶의 기준을 평범하고 일반적인 것으로 다시 정하라. 자신을 유망주나 재야의 천재로 보지 말라. 비참한 피해자나 형편없는 실패자로도 여기지 말라. 그보다 훨씬 평범한 정체성인 학생, 배우자, 친구, 창작자와 같은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라. p82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루려면, 부정적인 감정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건전한 방식으로,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표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비폭력이라는 가치를 옹호하는데, 이를 위한 기준은 손찌검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난 화가 났을 때 분노를 표출하긴 하지만, 절대 상대방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지는 않는다. 과격한 소리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분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분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삶의 일부다. 단언컨대, 화를 내는 게 엄청나게 도움이 될 때가 자주 있다. p106

자유는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 기회를 주지만, 그 자체로 반드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궁극적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의미 있고 중요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은 수많은 선택지들을 거부하는 것이다. 즉 자유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우리는 한가지를 선택해 몰입해야 한다. 하나의 장소, 하나의 믿음, 하나의 사람을 말이다. p192

거절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이다. 불행한 관계에 얽매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짜증 나고 불안정한 직장 생활에 얽매이고 싶은 사람도 없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게 만드는 문화를 달가워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걸 선택한다.
솔직함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가 솔직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한 방법은 서로 ‘아니오‘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거절을 하면, 오히려 관계가 좋아지고 감정이 건전해질 것이다. p198

당신이 대단한 건, 끝없는 혼란과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도, 어디에 신경을 쓰고 어디에 신경을 끌지를 계속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며 나름의 가치를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이 이미 당신을 아름답고 성공적이며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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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패리시 부인 미드나잇 스릴러
리브 콘스탄틴 지음, 박지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모든 걸 가진 여자 대프니
모든 걸 빼앗고 싶은 여자 앰버
그리고 그 사이의 한 남자 잭슨.

이야기는 시작부터 어떻게 흘러가겠구나 짐작하게 했다.
물론, 이 소설은 스릴러라는 장르답게 군데군데 흥미를 유발할만한 장치를 깔아두었다.
마지막 결말에 이르렀을 때, 음.. 이건 뭐 착한 사람은 잘 살고, 나쁜 사람은 벌받는 거야? 뭐.. 이런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그리 나쁘진 않았다.

책의 표지에 적힌 "이 소설의 놀랍고도 만족스러운 결말은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다"라는 말에는 격하게 동의할 순 없더라도 말이다.

스릴러라는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 내게 이 소설은 일종의 호기심이었다.
가볍게 과자 한 봉지 옆에 놓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기대거나 누워 읽기 좋은 책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결국 인간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순간, 타인에게 뒤통수를 맞거나 자기의 꾀에 스스로 넘어가거나.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고, 누구도 완벽하게 타인을 속일 수 없다는 것.

"삶은 정말 불공평했다. 앰버는 모두 자신을 쓰레기처럼 보던 끔찍한 동네에서
탈출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래서 인근에서 가장 부유하고 뭐든 가장 좋은 것에 둘러 쌓인 잭슨 패리시 부인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계속 멸시당했고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합당한 삶을 원할 뿐이었다.
이 삶이 합당하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p467"

앰버만 그랬을까. 모두 자기가 있는 그 삶이 어느 정도는 불공평하다고, 불행하다고 여기면서 살지 않을까. 다만 앰버는 그 욕망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강했던 것뿐이었을 거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프니도 앰버도 멋진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공감 가는 인물들이었다. 한 명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희생해야 했고, 한 명은 갖기 위해 온몸을 거짓으로 무장한 채 늘 긴장하며 살아야 했다. 두 여자의 삶을 흔들어 놓은 사이코패스 잭슨은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 없는 인물일 뿐.

결국,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열심히 찾아내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걸 잠시 생각하게 해준 소설.

사족, 이 소설의 작가 리브 콘스탄틴은 린 콘스탄틴과 발레리 콘스탄틴 자매 작가의 필명이라고 한다. 서로 떨어져 사는 두 자매는 전화통화로, 이메일로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며 함께 작품을 완성했다고. 이게 가장 흥미로운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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