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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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대회]


살면서 한 번쯤은 누구나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그게 사람이든, 종교든, 음악이든, 영화든, 책이든... 자신을 구원하는 대상은 모두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기댈 곳은 있다고. 내겐 그게 책이었고, 책이고, 책일 것이다. 수잰 스캔런 역시 책이 자신을 구원했다고 썼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다르게 얘기해 보면, 단순히 물리적인 '책'이라고만 말하는 건 맞지 않을지 모른다. 버지니아 울프가, 조엔 디디온이, 실비아 플라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있어야 하니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으니까.

한동안 내가 책을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어 답답했다. 책이 뭐냐고, 책으로 뭐가 되느냐고 물을 때, 반할 만큼 멋지게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수잰 스캔런의 입을 빌려 비로소 나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은 '구원'한다. 실의에 빠진 나를, 두려움이 빠진 나를, 억울해서 미칠 것 같은 나를, 답답함을 풀고 싶은 나를, 불공평을 까발리고 싶은 나를.


『의미들』은 수잰 스캘런 자신의 병력에 대한 회고이자, 그로부터 벗어나 '자살하지 않기로 결심' 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살아가는 삶에 대한 고백이다. 그러나 많은 여성의 회고이고, 고백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릴 때 죽은 엄마와 정신 병원에서의 생활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작가가 된 것이라 생각했다. 책 속에는 두 이야기가 얽혀있으며 각각의 사건, 각각의 이야기로 들리기도 하지만 결국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 하나의 이야기는 바로 수잰 스캘런 자신이다.


어떤 책을 읽다가 울어본 적 있거나, 자신의 이야기 같아 흠뻑 빠져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짐작하겠지만, 나는 책과 사람은 연이 있다고 믿는다. 같은 이야기를 오늘 읽을 때와 다음 날 읽을 때 느낌이 다른 건 오늘의 나와 다음 날의 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경험의 의미를 작가는 '수용의 순간'이라고 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이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그 책이 그런 책이 되는 것'(p96)을 작가가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그런 책이 있다. 스무 살에 읽은 양귀자의 <<모순>>(쓰다, 2023.4.)과 마흔다섯 살의 읽은 <<모순>>은 마치 다른 책인 것처럼 다가왔다. 이십 대의 나는 그 책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마흔이 넘은 나는 충분히 그것을 허락하고 받아들였다.

만약, 자신의 인생 책이 한 권쯤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수용성을 한 번쯤은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 그 순간의 짜릿함을 잊지 못하지 않을까.



우리가 병리라 부르는 것 중에는 그 무엇도 고립된 채 존재하는 건 없으며, 우리는 맥락 속에, 그 순간이라는 맥락과 서로의 존재라는 맥락 속에 존재한다는 것, 우리는 부서지기 쉬우며 유동적이라는 것은 꼭 말하고 싶다. 우리는 존재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 <나의 정신이상과 그 밖의 것들> 중에서, p52

병원에서 보내 몇 년의 시간이 자신을 설명할 수 없음을 작가는 알고 있었다. 책 속에 담긴 모든 기록은 그래서 처절하다. 자신에게 당도한 불행과 불안과 안쓰러운 시선과 '미친' 사람이라는 시선까지 받아내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 '의미'를 찾아보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그녀는 점차적으로 자신의 원하는, 선택한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간다. 언어를 통해서.


"독서와 글쓰기는 내가 살고 싶어 한다는 걸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되기 훨씬 전부터 나에게 살아갈 길을 만들어 주었던 활동이다."

어쩌면 우리도 그럴지 모른다. 자신이 인지하기 이전부터 책으로부터 구원받고 있었는지도. 아니면 그 무엇으로라도 살아갈 방향을 찾았을지도.

극적인 순간이 닥치지 않으면 잘 모르니까. 바닥까지 내려갔다는 느낌이 아니라면 그럭저럭 모른 척하며 살기도 하니까.


아주 오랜만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읽은 책이다. 그건 이 책이 나와 수용의 순간이 만들어졌단 의미일 것이다.

나는 천천히 빠져들었고, 느리게 읽었으나 강렬한 느낌을 받으며 책을 덮었다. 아직 이 책을 펼치지 않은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

김지승의 <<마지네일리아의 거주자>>(마티, 2025.)를 읽을 때 샬럿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를 꼭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수잰 스캘런의 글 속에도 어려번 <누런 벽지>가 언급된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흐른 후 길먼의 책을 다시 읽었다고 했다. "이런 작가들은 나에게 돌아갈 길, 의미를 밝혀낼 길, 시간을 멈추고 병원에 머물던 그 여자를 이해할 길을 내주었다. 그 젊은 여자는 거기서 뭘 하고 있었을까? 절대적 운명 같았던 것이 사실은 다른 무언가였을 수도 있었다. 내가 그걸 알아낼 수 있다면. 이 책 역시 그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다.(p205)"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읽고 쓰는 이유에 대해. 그러다 그녀의 문장들에 기대 '독서'가 나를 구원하고 있다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쓰기는 구원받은 자의 즐거움이라고.





나는 필사적으로, 동시에 전율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 책 읽기는 삶의 한 방식이, 혹은 사는 법을 찾으려는 탐색이 되었다. 젊은 여자가 책들의 영향, 독서의 영향을 받아 정체성을 형성하고 그 형태를 만들어가는 일은 쉽게 경시되지만, 그럼에도. 책 읽기는 내가 가진 것이었고 내겐 그것뿐이었다.
- P55

책들을 읽는 일은 책에 안기는 일이었다. 그 처음 이후 나는 이 소설들을 여러 번 다시 읽었다. 각각의 독서가 저마다 중요하다. 수전 손택의 표현대로, 읽을 가치가 있는 건 무엇이든 다시 읽을 가치가 있다. 혹은 이탈로 칼비노의 말. 읽기와 디시 읽기 사이에는 아무 차이도 없다.
- P57

여러 해 동안 나에게는 나의 책 읽는 삶과 정신 질환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 둘은 나란히 함께 자랐다. 전자는 나를 문학의 삶으로 이끌었고, 문학의 삶이란 읽기와 쓰기의 삶이었다. 후자는 나를 막다를 골목으로, 나를 보호해 주지 않을 침묵으로 이끌었다. 나의 영원한 굶주림. 물론 나는 여러 크고 작은 방식으로 분명히 회복했으며, 나를 지탱해 준 것, 나에게 또 하나의 삶을 준 것은 읽기와 쓰기였다.
- P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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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서 멋져 - 다양성, 차이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태도 키우기 하이파이브 사회정서 학습 동화 5
지니 킴.한진아 지음, 해랑혜란 그림 / 길벗스쿨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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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서 멋져』는 '다양성'을 주제로 한다.


태어나고 자란 곳, 생김새, 살아가는 모습,

생각하고 느끼는 것, 잘하고 못하는 일 등이

제각기 다른 것을 '다양성'이라고 해.

- <다양성이란 무엇일까?>

다양성에 대해 알려주고, 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지 들려준다.

가족들이 모습이 다르고,

좋아하는 게 다르고,

잘 하는 게 다르고,

장애가 있거나 없을 수도 있고,

성격도 다르고...

그러나 그 다른 사람들이 모여 결국 '함께' 살아가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도 배우지만, 아이를 보면서도 배운다.

어쩌면 책 속에서 말하는 모든 것들을 이미 아이는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른인 내가 더 배워야지.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읽기를 추천하는 그림책이다.

유치원 아이들부터 초등학생들까지 폭넓게 읽을 수 있고, 같이 이야기 나누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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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길리 생추어리
장윤미 지음 / 아미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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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미 장편소설 『숨길리 생추어리』는 인간과 동물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세상에서 받은 고통과,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내면의 상실을 함께 극복해 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버려진 동물을 돌보는 건 인간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과 동물이 함께 하기 때문에 치유가 가능함을 따뜻하게 그린다.

돼지 축사에서 일하며 매일을 별 의미 없이 보내던 이십 대 청년 인진. 태국의 가족들을 위해 한국에 와서 힘든 노동과 멸시를 견뎌내는 외국인 노동자 꿍과 두리안. 엄마의 죽음 이후 아빠와 고향을 떠나 스스로의 삶을 살고자 애쓰는 해유. 그들을 한곳으로 불러들인 건 해유의 아버지 동찬이 만든 숨길리 생추어리다.

아버지를 미워했고, 아버지를 떠났으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생추어리에 도착한 해유는 자신이 몰랐던, 모른 척하고 싶었던 아빠 동찬을 마주한다.

소설은 초반부 높은 값을 받기 위해 돼지들에게 가하는 폭력과, 돼지를 도축하는 장면들을 과감 없이 표현하며 독자들에게 낯설어서 살벌하게 느껴지는 장면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구제역과, 살처분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기후 환경을 급격히 무너뜨리는 패스트패션 문제를 드러내고, 외국인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폭로하며 묵직한 주제를 던진다.

그러나, 소설은 무겁게만 흐르지 않는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연민과 연대, 우정과, 애정을 품은 인물들로 그려내면서 독자로 하여금 뜨뜻한 마음을 품게 한다.

그들 덕분에 소설을 읽는 일이 힘들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토닥이고 감싸안아주고 싶었다. 숨길리 생추어리가 존재한다면,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분명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줄 것 같았다.



해유는 도대체 아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물었다.

"사라지는 거."

아빠의 대답에 해유는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아바는 말을 이어 갔다.

"사라지는 건 엄마가 마지막이야. 이걸 지키려면 품은리로 가야 해." - P132

"아저씨가 그랬어. 우리의 밤은 누군가에게는 낮이라고."

인진은 해유를 지그시 내려다보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가 밤까지 누리면 누군가의 낮을 뺏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 P244

"사라지지 않는 게 어딨어요."
"없지. 하지만 타인의 힘으로 사라지는 건 안 되지."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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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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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문학을 읽을 때면 떠난다는 것, 남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다른 곳으로 이주한 적 없는 나는, 낯선 땅으로 이주해 삶을 꾸려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텍스트로 듣고(읽고), 상상하고, 해석한다.

 

그 사이 대체로 많은 이야기들이 내 마음대로 오역되고, 받아들여지고, 이해된다.

 

때론 디아스포라 문학(소설)이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작은 틈새로 각기 다른 이미지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폴 윤 작가의 <<벌집과 꿀>>은 그동안 읽었던 디아스포라 소설과 또 다른 틈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건 적확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었다. 소설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주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선명하게 혹은 흐릿하게 그려지는 이미지를 천천히 쫓으며 소설 한 편 한 편을 읽게 했다.

 

 

작품집에 수록된 일곱 편의 소설은 다양한 공간, 다양한 시간, 다양한 시대적 배경을 아우른다.

 

잘 모르는 장소, 낯선 지명, 낯선 분위기에 헤맬 것 같다가도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문장과 그 문장이 그려내는 이미지들 사이를 유영하며 천천히 소설에 빠져들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짧게 혹은 길게, 자의로 혹은 타의로, 어딘가로 떠난다, 자꾸.

'떠남''남고자' 하는 마음과 비슷한 게 아닌가,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서, 나의 부모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내가 정착해야 할 곳이 어딘지 명확하지 않아서, 그리워서, 슬퍼서, 외로워서...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너무 많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데에도 비슷한 이유가 필요할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불현듯 알게 된 게 있다면, 어떤 소설은 책을 덮은 뒤 스토리나 인물이 아니라 잔상이 남을 수도 있구나 하는 거였다.

물안개가 가득 낀 강가에 서 있는 것처럼 뿌연데 그게 답답하거나 축축하게 느껴지지 않고, 물안개가 걷히면 무언가 보이겠지, 희망을 갖게 했다. 편안하고 다정하게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이들을 환대하고 싶어졌다.

 

 

위에 언급했던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주민'일 지도 모른다고 쓴 건,

탈북 후 영국에 자리 잡은 부모를 둔 한인 2세 부부 이야기를 다룬 <크로머>, 사할린 점에 끌려온 할아버지를 둔 조선인 3, 십 대 소년의 이야기가 담긴 <고려인> 소설을 읽고 난 뒤였다. 나고 자란 곳에서 낯섦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쫓으면서 정착할 집이 없고, 머물고 있더라도 이방인 듯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어도 집 없는 사람처럼 외롭고 내쳐지는 기분이 드는 순간, 떠나고 싶은 순간, 돌아갈 곳이 있을ᄁᆞ 되짚어 보는 어느 순간, 같이 있어도 외롭고, 슬픈 관계들 속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며 사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러 돌아오실 건지 궁금했어요. 하지만 돌아오실 생각이라면, 그러시지 않아도 돼요."

"내가 필요 없다는 거구나, 그렇지?" 아버지가 말한다.

"그래요." 막심이 말한다. "전 괜찮아요. 저 혼자서도 괜찮아요."

- <고려인> 중에서, p236

 

 

출소 후 다시 삶을 살기 위해 낯선 동네에 자리 잡으려는 청년이 등장하는 <보선>, 낯선 고려인 이주지에 임관한 장교 이야기를 담은 <벌집과 꿀>, 탈북한 뒤 스페인에서 청소 일을 하는 여자가 등장하는 <코마로프> 세 편의 소설은 특히 마음에 남았다.

 

소설이 왜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지, 우리가 읽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세상은 어떠한지......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 가며 마음껏 읽고, 듣고, 상상하시길.

 

 

# 그가 아는 한 그는 혼자였다. 이상한 동시에 전혀 이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는 그들의 얼굴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던 상사와 다른 운전사들의 얼굴을. 그다음엔 카드 게임을 하던 바의 주방 직원들과 빨래방 할머니의 얼굴도 잊어버렸다.- <보선> 중에서, p15

 

# 저는 그에게서 늘 보아온 익숙한 분노의 폭발을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그의 얼굴은 온화하고 진지하면서도 상처받은 사람의 얼굴로 변해 있더군요. 그는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부탁이니 우리를 그냥 놔둬줘요. 우리는 아무도 원치 않고 관심도 없는 땅에서 ㅅ살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당신이 와서 이 땅을 다시 차지하려 들기 전까지는 모든 게 괜찮았다고요."- <벌집과 꿀> 중에서, p198

 

# 아버지, 저는 지금 당신이 어디 계신지 상상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도요. 왜 누군가는 저주받은 장소를 떠나지 않으려 하는지도요. 아이는 이제 멀리 있습니다. 온통 햇빛으로 둘러싸인 채, 아주 조금만 보일 뿐입니다. 숨겨진 자신의 왕국으로부터 돌아오던 벌은 이제 더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벌집과 꿀> 중에서,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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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모르는 너희들에게
이아진(전진소녀) 지음 / 체인지업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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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모르는 너희들에게"

책 표지에 적힌 문장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우리 집에 그런 아이 한 명 있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귀찮아,

나는 뭘 잘하지..

이런 말을 달고 사는 아이.

그런데 내가 보기엔 아이는 충분히 좋아하는 것도 많고, 잘 하는 것도 많다.

아직 그걸 아이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걸까. 이제 열네 살. 아이를 지켜보면서 천천히 기다리는 중이다.

한 편으로, 마흔여섯 나는 이제야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알게 됐다. 물론 그럼에도 그것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현실도 명확히 깨달았다.

한 3, 4년쯤 됐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사람이 자신이 진짜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싶기도 하고.

아이랑 같이 읽고 싶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를 내가 먼저 읽었다.

(나는 이 책을 아이가 끝까지 꼭 읽었으면 좋겠기에, 어떻게 읽게 할지 고민 중이다. 책이라면 뒷걸음질 치는 아이라.)


'전진소녀'라는 닉네임임은 아버지가 지어주었다고 했다.

잘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딸을 보며 아버지는 말했다.

"이왕 시작한 이 여정, 앞으로 보고 당당하게 전진해 봐! 전진하는 소녀." (p18)

아이에게는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당당하게 전진해 봐.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용기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되고 보니, 아이에게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고, 걱정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부모란 걸 알게 됐다.

사람들은 때로 편견을 갖기도 했다고. 집에 돈이 많으니까 유학도 보내고 하는 거 아니야? 겉모습만 보는 사람들의 말에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릴 때 이혼한 부모, 자주 만나지 못했던 엄마. 할머니와 이모 손에서 자란 어린 시절.

가정 환경을 아예 무시할 순 없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사회가 정상 가족이라고 규정하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아이 곁에 좋은 어른들이 있으면 충분히 아이는 바르게, 밝게 성장할 수 있다는 거였다.

물론, 거기에 당당하고자 하는 '주체성'과 '자립심' ,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중요할 거다.

청소년은 아니지만, 다시 진로를 정하기엔 조금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책 속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자극을 받았던 건 작가가 보여준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당당함 때문이었다. 나의 아이가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이 되었고.

책 속 부록으로 '진로 Q&A'가 수록되어 있다.

청소년뿐 아니라 작가의 유튜브를 구독하는 어른들의 진로고민 상담도 꽤 있어서 놀랐다.

내가 작가의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자극을 받았듯, 어른들도 나이에 상관없이 열심히,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의 이야기에 용기를 얻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 거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또 하나의 편견을 깨트렸다.

'나이는 절대 중요하지 않다. 자극받고,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는 데 필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경험과 삶이다.'

앞으로 나는 색안경을 끼고 청소년들을 바라보지 않을 거다.

그들이 보내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것 같다고 지레 짐작하지도 않을 거다. (특히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의 아이에게 부터.)


스물네 살 작가에게 마흔여섯 '어른'은 많이 배웠다.

나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부모로 어떻게 아이를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당연히 청소년들에게는 강력 추천.

꼭 학부모가 아니더라도, 흔들리고 있는 어른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해 보는 좋은 시간이 될 듯.

자기 자신이 평범해 보여서 불행을 느낀다면, 그 불행은 ‘가짜 불행‘일 확률이 커. 더는 그것에 속아서는 안 돼. 만약 어떤 선망의 대상을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동요하거나 자괴감이 든다면 ‘내가 조금 쉬어가는 시간이구나. 내가 지금 공허해서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동경하고 비교하는구나‘하고 넘기면 돼. 타인이 최고일 때와 자신이 최악일 때를 비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으니까. - P28

‘꾸미는 것‘과 ‘가꾸는 것‘에는 차이가 있어. ‘너‘라는 ‘나무‘를 꾸미지 말고, 잘 가꿔나가길 바라. 거기서 맺은 열매들이 세상을 이롭게 할 거야. - P89

삶이라는 건 결국 단체 여행처럼 보이는 배낭여행일지도 몰라. 처음에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함께 걷다가도 언제, 어느 시점에서 각자의 또 다른 길이 열리기도 하니까. 그러니 관계에 대해서는 너무 가볍게도, 또 너무 무겁게도 여기지 마. - P135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강머리 앤>>에는 이런 문장이 나와.



"It‘s not what the world holds for you. It is what you bring to it."

"세상이 너에게 주는 게 아니야. 네가 가져오는 거야."



주어진 게 적다고, 남들보다 덜 가졌다고 불평하기 전에 네가 스스로 획득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생각해 봐. 그것들을 나열해 보고, 하나씩 이뤄가다 보면 네가 그렇게 부러워하던 ‘갓생‘의 중심에 네가 있게 될 테니까. - P159

‘해야 해‘보다는 ‘할 수 있어‘가 네게 더 어울려. 실패가 벽이 되어 너를 가로막고, 혹은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너를 괴롭힌다고 해도 너의 가능성은 여전히 무궁무진해. 좌절하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있지만, 다시 딛고 일어설 수도 있다는 ‘선택적 가능성‘이 너를 움직이게 할 거야. 성공과 실패는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니까. - P191

네가 조금만 더 크면 알게 될 거야. 이보다 자연스러운 현상은 또 없다는 걸 말이야. 우울감, 번아웃, 스트레스, 권태기 등 너에게 찾아오는 시련과 좌절의 형태는 정말 다양할 거야. 이런 친구들이 너를 찾아올 때는 놀라지 말고, ‘어차피 왔으니 적당히 놀다 가‘하며 그냥 반겨주면 돼. 나중에는 네가 떠밀지 않아도 알아서 사라질 거야. 시시각각 바뀌는 날씨를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너에게 불어닥치는 모든 현상 또한 자연스럽게 여기면 돼. 맑고 화창하다가도 어느 순간 소나기가 쏟아지고, 태풍이 불어닥치겠지. 다행인 것은 영원한 태풍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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