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 - 숲으로 걸어간 할머니, 엠마 게이트우드의 놀라운 여정
벤 몽고메리 지음, 우진하 옮김 / 수오서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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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머니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언제나 스스로를 잘 돌봤으니까요." 루시가 내게 한 말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우리에게도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가르치셨어요."
"저는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넬슨의 말이다. "그리고 사실은 그게 정상이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자식들이 걱정도 안 되냐?'고 물어요." 루이즈가 말했다. "그럼 이렇게 대답합니다. '걱정 같은 거 안 하는데요.'라고요. 어머니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게 어머니가 정말 원하는 일이라면 저희는 그저 응원할 뿐이에요."
- p303


11명의 자녀와 23명의 손자 손녀를 둔 엠마 게이트우드는 혼자 숲속으로 걷기를 시작하면서 가족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1955년, 그의 나이 67세 때였다.

위의 문장은, 자녀들이 신문 기사를 통해, 어머니의 엽서를 받고 기자들과 인터뷰하면서 한 말이다. 나는 이 문장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안다.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서다.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서 나에 대해 이렇게 기억해 주고, 말해주면 좋겠다. 엄마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어디서든 즐겁게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뭐든 엄마 스스로 잘 돌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이 책의 주인공, 엠마 게이트우드는 미국 3대 장거리 트레일 중 하나인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한 최초의 여성이다. 앞에 적었지만 종주를 시작할 때 그녀의 나이 67세였다. 11명의 자녀와 23명의 손자 손녀를 둔 엄마이자 할머니. 그리고 30년 넘게 남편의 폭력 아래 살았던 여성이었다. 벤 몽고메리(기자)는 엠마 게이트우드가 남긴 편지와, 기록(일기), 가족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엠마 게이트우드의 여정을 한 편의 글로 풀어냈다.

사람들은 그녀의 여행에 관심이 많았다. 나이 든 여성이 혼자 험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 대단하다는 존경, 어떤 희망 같은 것들이 한데 합쳐졌다. 그녀는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녀는 일기장에 썼다. "자유를 얻은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라고. 그리고 그냥 재밌어서 걸었다고 했고, 계속 걸었을 뿐이라고 기록했다.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 생각할 때마다 명확히 보이지 않곤 하는데, 엠마 게이트우드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스스로 선택한 자유로운 삶'을 사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할머니가 되면 좋겠다고.
<<오래된 세계 농담>>을 쓴 이다혜 작가는 추천의 글에서 썼다.



1955년 '여성 최초'라는 기록 뒤로 긴 시간 겪은 가정폭력부터 도피처로 택한 숲의 황홀, '할머니'에 대한 세간의 무시와 종래 마주한 든든한 환대에 이르니까지 이 책은 당신을 멀고 웅장한 숲길로 안내한다.


많은 여성들이 엠마 게이트우드의 여정을 통해 영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오래 이 책을 옆에 두고 싶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꺼내 읽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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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문장 - 평범한 일상의 끝에도 한 문장쯤은 남잖아요
류송미 지음 / 너울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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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하루가, 보통의 일상이, 보통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 살아보니 알게 되는 것 중 하나다. 그러나 그 '보통'의 하루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안다. 그래서 때론 그 '보통'으로 살기 위해 기를 쓰고 하루를 버티기도 한다. 그러니 무탈히 하루를 보낸 뒤 안도하는 마음과, '보통의 하루'를 보내서 다행이야, 하고 일기장에 적는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도 이제 알 것 같다.

『보통의 문장』 속에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 보통의 하루라고 별것 아닌 게 아니라 그 하루하루를 보내며 쌓은 일상이면 충분하다고 위로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후회의 끝에 달라지지 않는 사실은

그때의 결정이 나의 최선이었을 거라는 것이다.

시간은 초 단위로 흘러가고

우리는 그 순간을 산다.

- <후회에 대한 결말> 중에서, p156

시간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시간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는 건 알겠다. 내가 슬퍼하든, 기뻐하든, 울고 있든, 환하게 웃든, 어떤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그 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안다. 그래서 이 글이 참 공감됐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면, 우리, 이왕이면 좋은 생각을 하자.



자신의 쓸모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자신만의 길을 걷는 자들에게

아무리 돌을 던져도

그 돌을 맞으며

묵묵히 자신이 누구인지

파헤치는 그 탄생과 소멸이,

부식되는 보석들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리라

- <자신의 쓸모> 중에서, p82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삶이 의미 없게 느껴진 적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속에서도 기쁜 일은 있고, 소중한 순간도 있고, 벅찬 순간도 있다는걸. 스스로가 쓸모없게 느껴지는 날이 왜 없을까.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내게 하는 말이기도 하고, 이 글을 읽을, 이들에게도 건네고 싶은 말이다.


때때로 삶을 비관하더라도
삶은 여전히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싶다.

여전히 아쉽고 후회될지라도, 후회할 것을 생각해
시작도 못 하고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령 시작조차 하지 못하더라도
행복을 느꼈던 순간을 충분히 기억했으면 좋겠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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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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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대회]


살면서 한 번쯤은 누구나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그게 사람이든, 종교든, 음악이든, 영화든, 책이든... 자신을 구원하는 대상은 모두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기댈 곳은 있다고. 내겐 그게 책이었고, 책이고, 책일 것이다. 수잰 스캔런 역시 책이 자신을 구원했다고 썼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다르게 얘기해 보면, 단순히 물리적인 '책'이라고만 말하는 건 맞지 않을지 모른다. 버지니아 울프가, 조엔 디디온이, 실비아 플라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있어야 하니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으니까.

한동안 내가 책을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어 답답했다. 책이 뭐냐고, 책으로 뭐가 되느냐고 물을 때, 반할 만큼 멋지게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수잰 스캔런의 입을 빌려 비로소 나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은 '구원'한다. 실의에 빠진 나를, 두려움이 빠진 나를, 억울해서 미칠 것 같은 나를, 답답함을 풀고 싶은 나를, 불공평을 까발리고 싶은 나를.


『의미들』은 수잰 스캘런 자신의 병력에 대한 회고이자, 그로부터 벗어나 '자살하지 않기로 결심' 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살아가는 삶에 대한 고백이다. 그러나 많은 여성의 회고이고, 고백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릴 때 죽은 엄마와 정신 병원에서의 생활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작가가 된 것이라 생각했다. 책 속에는 두 이야기가 얽혀있으며 각각의 사건, 각각의 이야기로 들리기도 하지만 결국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 하나의 이야기는 바로 수잰 스캘런 자신이다.


어떤 책을 읽다가 울어본 적 있거나, 자신의 이야기 같아 흠뻑 빠져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짐작하겠지만, 나는 책과 사람은 연이 있다고 믿는다. 같은 이야기를 오늘 읽을 때와 다음 날 읽을 때 느낌이 다른 건 오늘의 나와 다음 날의 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경험의 의미를 작가는 '수용의 순간'이라고 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이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그 책이 그런 책이 되는 것'(p96)을 작가가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그런 책이 있다. 스무 살에 읽은 양귀자의 <<모순>>(쓰다, 2023.4.)과 마흔다섯 살의 읽은 <<모순>>은 마치 다른 책인 것처럼 다가왔다. 이십 대의 나는 그 책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마흔이 넘은 나는 충분히 그것을 허락하고 받아들였다.

만약, 자신의 인생 책이 한 권쯤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수용성을 한 번쯤은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 그 순간의 짜릿함을 잊지 못하지 않을까.



우리가 병리라 부르는 것 중에는 그 무엇도 고립된 채 존재하는 건 없으며, 우리는 맥락 속에, 그 순간이라는 맥락과 서로의 존재라는 맥락 속에 존재한다는 것, 우리는 부서지기 쉬우며 유동적이라는 것은 꼭 말하고 싶다. 우리는 존재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 <나의 정신이상과 그 밖의 것들> 중에서, p52

병원에서 보내 몇 년의 시간이 자신을 설명할 수 없음을 작가는 알고 있었다. 책 속에 담긴 모든 기록은 그래서 처절하다. 자신에게 당도한 불행과 불안과 안쓰러운 시선과 '미친' 사람이라는 시선까지 받아내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 '의미'를 찾아보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그녀는 점차적으로 자신의 원하는, 선택한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간다. 언어를 통해서.


"독서와 글쓰기는 내가 살고 싶어 한다는 걸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되기 훨씬 전부터 나에게 살아갈 길을 만들어 주었던 활동이다."

어쩌면 우리도 그럴지 모른다. 자신이 인지하기 이전부터 책으로부터 구원받고 있었는지도. 아니면 그 무엇으로라도 살아갈 방향을 찾았을지도.

극적인 순간이 닥치지 않으면 잘 모르니까. 바닥까지 내려갔다는 느낌이 아니라면 그럭저럭 모른 척하며 살기도 하니까.


아주 오랜만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읽은 책이다. 그건 이 책이 나와 수용의 순간이 만들어졌단 의미일 것이다.

나는 천천히 빠져들었고, 느리게 읽었으나 강렬한 느낌을 받으며 책을 덮었다. 아직 이 책을 펼치지 않은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

김지승의 <<마지네일리아의 거주자>>(마티, 2025.)를 읽을 때 샬럿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를 꼭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수잰 스캘런의 글 속에도 어려번 <누런 벽지>가 언급된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흐른 후 길먼의 책을 다시 읽었다고 했다. "이런 작가들은 나에게 돌아갈 길, 의미를 밝혀낼 길, 시간을 멈추고 병원에 머물던 그 여자를 이해할 길을 내주었다. 그 젊은 여자는 거기서 뭘 하고 있었을까? 절대적 운명 같았던 것이 사실은 다른 무언가였을 수도 있었다. 내가 그걸 알아낼 수 있다면. 이 책 역시 그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다.(p205)"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읽고 쓰는 이유에 대해. 그러다 그녀의 문장들에 기대 '독서'가 나를 구원하고 있다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쓰기는 구원받은 자의 즐거움이라고.





나는 필사적으로, 동시에 전율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 책 읽기는 삶의 한 방식이, 혹은 사는 법을 찾으려는 탐색이 되었다. 젊은 여자가 책들의 영향, 독서의 영향을 받아 정체성을 형성하고 그 형태를 만들어가는 일은 쉽게 경시되지만, 그럼에도. 책 읽기는 내가 가진 것이었고 내겐 그것뿐이었다.
- P55

책들을 읽는 일은 책에 안기는 일이었다. 그 처음 이후 나는 이 소설들을 여러 번 다시 읽었다. 각각의 독서가 저마다 중요하다. 수전 손택의 표현대로, 읽을 가치가 있는 건 무엇이든 다시 읽을 가치가 있다. 혹은 이탈로 칼비노의 말. 읽기와 디시 읽기 사이에는 아무 차이도 없다.
- P57

여러 해 동안 나에게는 나의 책 읽는 삶과 정신 질환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 둘은 나란히 함께 자랐다. 전자는 나를 문학의 삶으로 이끌었고, 문학의 삶이란 읽기와 쓰기의 삶이었다. 후자는 나를 막다를 골목으로, 나를 보호해 주지 않을 침묵으로 이끌었다. 나의 영원한 굶주림. 물론 나는 여러 크고 작은 방식으로 분명히 회복했으며, 나를 지탱해 준 것, 나에게 또 하나의 삶을 준 것은 읽기와 쓰기였다.
- P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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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길리 생추어리
장윤미 지음 / 아미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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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미 장편소설 『숨길리 생추어리』는 인간과 동물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세상에서 받은 고통과,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내면의 상실을 함께 극복해 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버려진 동물을 돌보는 건 인간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과 동물이 함께 하기 때문에 치유가 가능함을 따뜻하게 그린다.

돼지 축사에서 일하며 매일을 별 의미 없이 보내던 이십 대 청년 인진. 태국의 가족들을 위해 한국에 와서 힘든 노동과 멸시를 견뎌내는 외국인 노동자 꿍과 두리안. 엄마의 죽음 이후 아빠와 고향을 떠나 스스로의 삶을 살고자 애쓰는 해유. 그들을 한곳으로 불러들인 건 해유의 아버지 동찬이 만든 숨길리 생추어리다.

아버지를 미워했고, 아버지를 떠났으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생추어리에 도착한 해유는 자신이 몰랐던, 모른 척하고 싶었던 아빠 동찬을 마주한다.

소설은 초반부 높은 값을 받기 위해 돼지들에게 가하는 폭력과, 돼지를 도축하는 장면들을 과감 없이 표현하며 독자들에게 낯설어서 살벌하게 느껴지는 장면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구제역과, 살처분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기후 환경을 급격히 무너뜨리는 패스트패션 문제를 드러내고, 외국인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폭로하며 묵직한 주제를 던진다.

그러나, 소설은 무겁게만 흐르지 않는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연민과 연대, 우정과, 애정을 품은 인물들로 그려내면서 독자로 하여금 뜨뜻한 마음을 품게 한다.

그들 덕분에 소설을 읽는 일이 힘들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토닥이고 감싸안아주고 싶었다. 숨길리 생추어리가 존재한다면,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분명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줄 것 같았다.



해유는 도대체 아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물었다.

"사라지는 거."

아빠의 대답에 해유는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아바는 말을 이어 갔다.

"사라지는 건 엄마가 마지막이야. 이걸 지키려면 품은리로 가야 해." - P132

"아저씨가 그랬어. 우리의 밤은 누군가에게는 낮이라고."

인진은 해유를 지그시 내려다보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가 밤까지 누리면 누군가의 낮을 뺏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 P244

"사라지지 않는 게 어딨어요."
"없지. 하지만 타인의 힘으로 사라지는 건 안 되지."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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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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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문학을 읽을 때면 떠난다는 것, 남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다른 곳으로 이주한 적 없는 나는, 낯선 땅으로 이주해 삶을 꾸려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텍스트로 듣고(읽고), 상상하고, 해석한다.

 

그 사이 대체로 많은 이야기들이 내 마음대로 오역되고, 받아들여지고, 이해된다.

 

때론 디아스포라 문학(소설)이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작은 틈새로 각기 다른 이미지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폴 윤 작가의 <<벌집과 꿀>>은 그동안 읽었던 디아스포라 소설과 또 다른 틈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건 적확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었다. 소설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주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선명하게 혹은 흐릿하게 그려지는 이미지를 천천히 쫓으며 소설 한 편 한 편을 읽게 했다.

 

 

작품집에 수록된 일곱 편의 소설은 다양한 공간, 다양한 시간, 다양한 시대적 배경을 아우른다.

 

잘 모르는 장소, 낯선 지명, 낯선 분위기에 헤맬 것 같다가도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문장과 그 문장이 그려내는 이미지들 사이를 유영하며 천천히 소설에 빠져들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짧게 혹은 길게, 자의로 혹은 타의로, 어딘가로 떠난다, 자꾸.

'떠남''남고자' 하는 마음과 비슷한 게 아닌가,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서, 나의 부모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내가 정착해야 할 곳이 어딘지 명확하지 않아서, 그리워서, 슬퍼서, 외로워서...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너무 많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데에도 비슷한 이유가 필요할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불현듯 알게 된 게 있다면, 어떤 소설은 책을 덮은 뒤 스토리나 인물이 아니라 잔상이 남을 수도 있구나 하는 거였다.

물안개가 가득 낀 강가에 서 있는 것처럼 뿌연데 그게 답답하거나 축축하게 느껴지지 않고, 물안개가 걷히면 무언가 보이겠지, 희망을 갖게 했다. 편안하고 다정하게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이들을 환대하고 싶어졌다.

 

 

위에 언급했던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주민'일 지도 모른다고 쓴 건,

탈북 후 영국에 자리 잡은 부모를 둔 한인 2세 부부 이야기를 다룬 <크로머>, 사할린 점에 끌려온 할아버지를 둔 조선인 3, 십 대 소년의 이야기가 담긴 <고려인> 소설을 읽고 난 뒤였다. 나고 자란 곳에서 낯섦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쫓으면서 정착할 집이 없고, 머물고 있더라도 이방인 듯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어도 집 없는 사람처럼 외롭고 내쳐지는 기분이 드는 순간, 떠나고 싶은 순간, 돌아갈 곳이 있을ᄁᆞ 되짚어 보는 어느 순간, 같이 있어도 외롭고, 슬픈 관계들 속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며 사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러 돌아오실 건지 궁금했어요. 하지만 돌아오실 생각이라면, 그러시지 않아도 돼요."

"내가 필요 없다는 거구나, 그렇지?" 아버지가 말한다.

"그래요." 막심이 말한다. "전 괜찮아요. 저 혼자서도 괜찮아요."

- <고려인> 중에서, p236

 

 

출소 후 다시 삶을 살기 위해 낯선 동네에 자리 잡으려는 청년이 등장하는 <보선>, 낯선 고려인 이주지에 임관한 장교 이야기를 담은 <벌집과 꿀>, 탈북한 뒤 스페인에서 청소 일을 하는 여자가 등장하는 <코마로프> 세 편의 소설은 특히 마음에 남았다.

 

소설이 왜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지, 우리가 읽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세상은 어떠한지......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 가며 마음껏 읽고, 듣고, 상상하시길.

 

 

# 그가 아는 한 그는 혼자였다. 이상한 동시에 전혀 이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는 그들의 얼굴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던 상사와 다른 운전사들의 얼굴을. 그다음엔 카드 게임을 하던 바의 주방 직원들과 빨래방 할머니의 얼굴도 잊어버렸다.- <보선> 중에서, p15

 

# 저는 그에게서 늘 보아온 익숙한 분노의 폭발을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그의 얼굴은 온화하고 진지하면서도 상처받은 사람의 얼굴로 변해 있더군요. 그는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부탁이니 우리를 그냥 놔둬줘요. 우리는 아무도 원치 않고 관심도 없는 땅에서 ㅅ살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당신이 와서 이 땅을 다시 차지하려 들기 전까지는 모든 게 괜찮았다고요."- <벌집과 꿀> 중에서, p198

 

# 아버지, 저는 지금 당신이 어디 계신지 상상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도요. 왜 누군가는 저주받은 장소를 떠나지 않으려 하는지도요. 아이는 이제 멀리 있습니다. 온통 햇빛으로 둘러싸인 채, 아주 조금만 보일 뿐입니다. 숨겨진 자신의 왕국으로부터 돌아오던 벌은 이제 더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벌집과 꿀> 중에서,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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