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김소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말줄임표.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를 때, 습관처럼 찍게 되는.
이 책을 읽고난 뒤,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엄마, 헤어짐의 기록 그리고 나의 딸과의 나날
  내 인생에서 엄마가 없었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책 표지에 적힌 저 문장만으로도 이 책을 펼치는 손이 떨렸다.
중간중간 만화도 있지만, 360여페이지의 긴 글을 새벽 내내 읽고 말았다.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읽느라 좀 더 더뎠고, 중간중간 눈물을 참느라 더뎠고,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아 더뎠다.

태어나서 쭈욱 엄마의 품 안에 살다가,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저자.
엄마의 유방암 발병과, 치료, 완치. 몇 년 뒤 재발한 엄마의 병.
그 시간들을 엄마와, 딸과 함께 해 온 저자의 기록이자, 우리 모두의 (엄마와 딸) 이야기.

다 읽고 난 뒤에 밀려 온, 먹먹함때문에 하루 반나절쯤 울적했다.

 

 언제쯤 나는, 우리는 '엄마'라는 이름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게 살아가는 동안 가능하기는 할까.

자주 엄마를 미워했고, 원망했고, 부담스러워했지만 한번도 엄마가 없다는 생각을 해보진 못했던 것 같다. 엄마에게도 자주 이렇게 말했던 거 같다.
"아프지 마. 다른 건 다 모르겠는데 아프지만 마"

엄마가 없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종종 엄마는 "나도 엄마 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때도 난 별 감흥없이 그래. 응. 응. 이런 식의 대답만 했을 뿐이었다.

며칠 전 조산기로 입원했을 때,
집에 가서 자라고 윤이에게 말했던 윤이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가 걱정되서 갈 수가 없어."
그 말에 차마 아이를 더 다그쳐 집으로 가라고 할 수가 없었다.

딸 아이에게 나는 '엄마'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 나는 그걸 종종 감사하기보다 힘들어했다.
아, 모르겠다.... 말 줄임표.

"엄마가 좋아하는 건 뭘까. 엄마가 즐거워하는 일이 뭐였더라.
우리와 함께인 엄마가 아니라 엄마라는 사람 자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똑같이 방안에서 각자 시간을 보내도 아빠는 걱정되지 않는데 엄마는 자꾸 신경이 스인다. 아빠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스스로 즐거움을 잘 찾을 것 같다. 하지만 늘 가족 아니면 다른 사람이 우선인 엄마가 자신만의 즐거움을 알 수 있을까? p27"

이 부분을 읽은 다음부터였던 것 같다.
나 역시, 몰랐구나. 생각해보지 못했구나.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
뭘 좋아하고, 어떤 때 즐거워하고, 아파하는지. 외로운지, 슬픈지, 혼자 있는 시간에는 뭘 하는지.....
그러다 덜컥 두려워지는거다.
아, 하나도 모르는데 '엄마'가 없어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책 속에 중간중간 실려 있는 저자의 어린시절 일기도 좋았고(내 일기장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만화도 너무 좋았다. 그래서 분량에 비해 길다는 느낌없이 휘릭 잘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딸이기도 하고,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보니 내 이야기처럼, 내 언니의 이야기인 것 처럼 공감이 되서 많이 위로 받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감사해야 할 순간이구나.
여전히 그냥, 옆에 있는 '엄마'에게.
지난 6년동안 윤이를 키워 준 엄마에게, 염치없게도 곧 태어날 둘째까지 맡겨야 하니......

나는 성인이 된 이후에 늘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키우면서 희생했던 것 이상으로 나 역시 엄마에게 해주었다고.
어쩌면 그보다 더 내가 해줬을지도 모른다고. 딸에게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엄마는 나쁘다고.
정말 그랬을까? 내가 과연 그 만큼, '엄마'를 생각했을까, 혹은 사랑했을까.
......

 

 

엄마의 옛 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를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철없는 딸로서 존재하는 엄마가 보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보다 더 자유롭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그런 엄마를 멀리서 한 번쯤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어린 엄마가 그리는 꿈과 미래를 온 마음으로 응원해주고 싶다.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p43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의 자식으로 태어나 한집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았던 시간보다 서로 떨어진 채 보낼 시간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집‘이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을까. 한집에서 살면서 부딪치고, 등 돌리고, 미워하고 싶어도 마음껏 미워할 수 없었던 그런 시간들도 사실은 소중한 순간이라고 여겼어야 했던 걸까. 왠지 마음이 싸-한 밤이다. p77

자식은 커가면서 세상 누구보다 편한 엄마에게 마구 대하곤 한다. 하지만 엄마도 자식에게 마구 대하곤 한다는 걸 솔이와 있으면서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을 행동과 말투를 솔이에게 하고 만다. 육아에서 제일 힘든 일은 감정조절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조절에 실패하는 순간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보기 싫은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밑바닥까지 모조리 드러내는 기분. 그 모습을 보이는 대상이 나와 가족, 특히 딸이라는 것이 더욱 절망스럽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p147

나에게 솔이는 태어나면서 내 인생에 새롭게 등장하게 된 아이지만, 솔이에게 나는 태어나는 순간,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당연히 존재했다. 당연히, 잊고 살아온 단어, 엄마도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내 인생에서 엄마가 없었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지금 솔이와 함께 있듯 엄마도 그렇게 언제나 내 곂에 함께 였다. 아파트 단지에서 뛰노는 솔이를 보면서, 내가 그동안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자유롭게 살아온 게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엄마가 지켜봐주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전부 엄마가 아니었으면 이루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p206

몸을 일으켜 곤히 잠든 솔이 얼굴을 다시 보고 슬며시 손도 잡아보고 통통한 다리도 만져본다. 잠든 솔이를 꼭 끌어안고 솔이 냄새를 맡으며 잠을 청했다. 잠결에도 엄마를 부르며 내 옆에 착 붙어서 자는 아이를 보며 오늘도 흘러가는 시간이 왠지 무서워진다. 내일도, 내일모레도 나는 솔이를 재우러 함께 방에 들어가야 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책 세권을 읽어주어야 하고 잠이 들 때까지 곁을 지켜주어야 한다. 그레 지금 솔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니,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해야겠다. p3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