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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김소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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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줄임표.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를 때, 습관처럼 찍게 되는.
이 책을 읽고난 뒤,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엄마, 헤어짐의 기록 그리고 나의 딸과의 나날
내 인생에서 엄마가 없었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책 표지에 적힌 저 문장만으로도 이 책을 펼치는 손이 떨렸다.
중간중간 만화도 있지만, 360여페이지의 긴 글을 새벽 내내 읽고 말았다.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읽느라 좀 더 더뎠고, 중간중간 눈물을 참느라 더뎠고,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아 더뎠다.
태어나서 쭈욱 엄마의 품 안에 살다가,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저자.
엄마의 유방암 발병과, 치료, 완치. 몇 년 뒤 재발한 엄마의 병.
그 시간들을 엄마와, 딸과 함께 해 온 저자의 기록이자, 우리 모두의 (엄마와 딸) 이야기.
다 읽고 난 뒤에 밀려 온, 먹먹함때문에 하루 반나절쯤 울적했다.
엄마의 옛 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를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철없는 딸로서 존재하는 엄마가 보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보다 더 자유롭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그런 엄마를 멀리서 한 번쯤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어린 엄마가 그리는 꿈과 미래를 온 마음으로 응원해주고 싶다.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p43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의 자식으로 태어나 한집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았던 시간보다 서로 떨어진 채 보낼 시간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집‘이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을까. 한집에서 살면서 부딪치고, 등 돌리고, 미워하고 싶어도 마음껏 미워할 수 없었던 그런 시간들도 사실은 소중한 순간이라고 여겼어야 했던 걸까. 왠지 마음이 싸-한 밤이다. p77
자식은 커가면서 세상 누구보다 편한 엄마에게 마구 대하곤 한다. 하지만 엄마도 자식에게 마구 대하곤 한다는 걸 솔이와 있으면서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을 행동과 말투를 솔이에게 하고 만다. 육아에서 제일 힘든 일은 감정조절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조절에 실패하는 순간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보기 싫은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밑바닥까지 모조리 드러내는 기분. 그 모습을 보이는 대상이 나와 가족, 특히 딸이라는 것이 더욱 절망스럽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p147
나에게 솔이는 태어나면서 내 인생에 새롭게 등장하게 된 아이지만, 솔이에게 나는 태어나는 순간,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당연히 존재했다. 당연히, 잊고 살아온 단어, 엄마도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내 인생에서 엄마가 없었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지금 솔이와 함께 있듯 엄마도 그렇게 언제나 내 곂에 함께 였다. 아파트 단지에서 뛰노는 솔이를 보면서, 내가 그동안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자유롭게 살아온 게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엄마가 지켜봐주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전부 엄마가 아니었으면 이루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p206
몸을 일으켜 곤히 잠든 솔이 얼굴을 다시 보고 슬며시 손도 잡아보고 통통한 다리도 만져본다. 잠든 솔이를 꼭 끌어안고 솔이 냄새를 맡으며 잠을 청했다. 잠결에도 엄마를 부르며 내 옆에 착 붙어서 자는 아이를 보며 오늘도 흘러가는 시간이 왠지 무서워진다. 내일도, 내일모레도 나는 솔이를 재우러 함께 방에 들어가야 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책 세권을 읽어주어야 하고 잠이 들 때까지 곁을 지켜주어야 한다. 그레 지금 솔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니,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해야겠다.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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