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창비 블로그에서 300명의 사전 독자를 모집한다는 포스팅을 보고 덜컥, 신청해 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 내게는 단단하게 봉해진 가제본 책 한 권이 도착했다.

 가제본 된 300권의 책 중, 243번째 책이다.
300명의 사람들 중 나는 이 책을 가장 늦게 읽었거나, 가장 버벅거리며 읽지 않았을까.

「상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시월의 어느 깊은 가을날 우리가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와의 이별에 관한 회상이었지만 그래도 그 밤 내내 여러 번 반복된 이야기는 오래전 겨울, 미안해, 내가 좀 늦을 것 같아 눈을 먼저 보낼게,라는 경애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들으며 같이 울었던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 서로가 서로를  채 인식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어디엔가 분명히 있었던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소설의 마지막 문단을 읽으면서 비로소 나는 이 소설을 처음부터 읽게 되었다.
마지막에 와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다. 소설 중간의 내용들이 이상하거나 복잡해서가 아니라, 비로소 그 어떤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이제 그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경애(敬愛)의 마음』이라는 제목에 처음부터 집중했던 건 아니었다.
소설 속 주인공 경애의 마음 정도로 이해하고 읽기 시작했달까. 그러다 읽으면 읽을수록 다의적 의미로 다가오는 '경애(敬愛)의 마음'을 쫓아다니느라 여러 번 길을 잃었다.

잘 읽히는 소설임에 분명하다. 그런데도 종종 길을 잃는 건, 내가 찾지 못한 그 '마음'때문이었을 거다.

소설은,
1999년, 고등학생 시절에 호프집 화재 사건으로 친구들을 한꺼번에 잃은 경애와, 소중한 한 친구를 잃은 상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 시절에 고등학교를 다닌 이들이 그렇듯, IMF를 겪으면서 대학을 다녀야 했고, 취업난에 시달리는 세대였고, 정규직 비정규직의 이분화된 조직에서 헤매는 세대였다. 팀원이 없는 팀의 팀장이 된 상수와, 존재감 없던 경애의 직장 생활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되고 안타까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선배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떠나보내야 했던 경애와 보이지 않는 인터넷 세계에서 사랑에 대한 글을, 조언을 해주던 상수.
떠난 뒤에도 끝내지 못하고 다시 자신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옛 연인을 뿌리치지 못하고 은근슬쩍 다시 만나면서도 시작도 끝도 아닌 관계에 힘들어하는 경애와, 그런 경애의 고민에 익명의 조언을 건네는 상수.

얽히고 풀리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나는 그들의 마음을 찾아다니느라 함께 헤맸던 것 같다.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 어떤 아픔과 과거가 있었더라도 지금의 삶에 충실히 살고자 하는 간절함, 놓쳐버린 사랑에 대한 미련 혹은 완전 끝, 하고 외치고 싶은 갈팡질팡하는 마음, 떠난 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 남은 삶에 대한 두려움 혹은 약간의 희망,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과 그들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마음이 이 소설에 담겨 있는 듯하다.
상실에 대한 경애, 삶에 대한 경애, 사랑에 대한 경애, 사람에 대한 경애.

소설은 끝이 났지만, 삶은 끝나지 않았다는 어떤 무언의 메시지.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 문단에서 나는 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 소설 속의 상수와 경애가, 떠난 이들을 마음에 품은 남겨진 이들이 앞으로 살아내야 하는 쉽지 않을 현실이 경애(敬愛)의 마음으로 가득 차기를 바라면서.

사족 1.
나는, 이 소설 속의 어떤 인물보다 주연도, 비중 있는 역할도 아니지만 경애의 삶에 끊임없이 걱정해주고, 쓴소리를 던져주는 미유라는 인물에 자꾸 마음이 갔다.
미유가 경애에게 던지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어쩐지 정말 친구가 친구에게 사랑을 담아야 건넬 수 있는 말들 같아서.
그런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이 소설의 분위기를 조금 더 다정하게 만들어 준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사족 2.
작가의 단편 <체스의 모든 것>에서도 느꼈지만, 작가가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을 설정하는(표현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방식이 참 좋다. 주인공의 주인공화된 삶이 아닌 주변인들과 엮여야 살아갈 수 있는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서.

사족 3.
욕심이었다. 천천히 읽었으면, 오래 두고 읽었으면 참 좋았을 소설이라서.
정해진 시간 내에 읽어내야 한다는 게 자꾸 조바심을 나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그렇게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소설이었다.

경애는 차라리 회사를 나갈까 싶기도 했다. 그때 경애의 엄마가 유방암 판정을 받지 않았다면, 미용실을 닫고 항암치료를 하지 않았더라면 경애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아닐지도 몰랐다. 경애는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는 죄책감과 그건 절대 자신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자기방어 속에 놓여 있었는데 그 사이를 갈팡질팡하면서도 일관되게 도망가고 싶지 않다고 다짐했다.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는 것, 한번 도망가 버리면 다시 방에 웅크리고 앉아 계절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했다.

고통을 듣기 위해 귀를 최대한 열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앞에 두고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무엇보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소음 같은 것이 상상되었다. 아주 일상적인 소음일 것이었다. 냉각팬이 돌거나 의자가 끌리거나 때론 야근하는 직장 동료가 기지개를 켜면서 아직 안 갔어? 하는.
그 누군가는 지금 사랑을 잃었기 때문에 그런 일상적인 소음들과는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마치 공동처럼 그 모든 일상과는 상관없는 상태에 빠져 있다. 그 공동에는 너무 많은 중력이 가해지거나 아니면 아무런 중력도 가해지지 않아 스스로가 완전히 버려진 기분일 테고, 상수가 늘 충분히 가지고 있었던 기분이었다.

마음이 끝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대체 끝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실감하고 확신하는지 알 수 없었다. 끝이 만져지는 것이라면 모를까. 느끼는 것이고 사상하고 인식하는 것인데 지금 내가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끝을 말해. 끝을 말하려면 지금 경애 발밑으로 너풀거리며 나뒹구는 아이스크림 포장이나, 택시의 노란 헤드라이트 불빛같이 눈아에 지나가는 어떤 것도 아픔을 환기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어떤 풍경도 산주 선배를 떠올리게 하지 않고 지시하지 않는다고

산주 선배가 결혼하고 3년이 지나는 동안 경애는 언제든 아, 이런 것이 끝이구나, 정말 끝이다, 끝, 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로맨스가 종료됐다는 것은 느꼈지만 경애의 마음이 멈춰지지는 않았다.
경애의 이런 상태를 못 견뎌하는 미유는 경애를 설득하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유를 들었다. 어린아이가 자기 손에서 놓아버린 풍선을 허공에서 찾는 것, 당뇨 환자가 여전히 당분이 든 음식을 탐하는 것, 폐암 말기 환자가 흡연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것, 허기가 지는데 잘 차려놓은 칠첩반상을 놔두고 굳이 불량식품으로 배를 채우려고 하는 것. 미유는 하나를 잃지 않으려다가 어쩌면 너 자신을 다 잃을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경애는 그 말들을 자신에 대한 미유의 애정으로 받아들였고, 미유가 자기가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 소개팅 자리를 만들면 선선히 나가서 앉아 있었다. 미유 말대로 대부분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이 남자들은 어디서 뭘 하며 괜찮게 있다가 자기 앞에 나타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기 위해서는, 그렇게 안녕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행운이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야 했고 자라야 했고 먹어야 했고 사고를 피해야 했고 견뎌야 했다. 무엇보다 불운을. 불운이라고 말하면 그것이 대체 피할 수 있는 건가 싶은데, 적어도 살아 있다면 그것을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경애는 알았다. 고등학생이었던 1999년에 가까웠던 친구들을 한번에 잃어봤기 때문이었다.

6년간의 연애가 끝이 나야 했다면 그건 그런 세속의 셈법이 아니라 사랑 본질의 것, 슬프게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불연속의 속성이기를 원했다. 적어도 경애에게 이별을 통보할 때 산주는 경애의 선배이기도 한 그 여자를 선택하면서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어,라고 정확히 이야기했으니까. 그대 둘은 막 끓기 시작한 전골을 앞에 두고 있었는데 이윽고 경애가 왜, 왜 그런 일이 벌어졌지,라고 묻자 그렇게 되었어, 좋아하게 되었어,라고 다시 말했다. 내가 너를 우연히 좋아한 것처럼 그런 일은 그렇게 되어졌어, 라고

‘산다‘라는 것이 있어서 수많은 것들이 생장하며 싸우며 견디고 있다는 것. 다행히 그런 것들이 여전히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여름의 낮을 보내다 경애가 슬리퍼를 끌고 시장으로 나가면 그 살고 있는 것들을 두 손 무겁게 사들고 어쨌든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경애도 아무튼 살고 있다는 것. 그런 마음이 들면 경애는 불현듯 약속을 잡아보다가도 낮이 되면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며 외출을 취소하곤 했다

경애는 산주와의 일을 말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경애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천천히 혼자 가라앉고 있었다. 산주는 경애가 그런 관계의 한계에 대해 말하면 며칠이고 연락을 끊었다가 아주 상처받은 얼굴로 나타나 그냥 옆에 좀 있으면 안 되겠니? 하고 물었다. 그냥 내가 좀 아픈데 그러면 정말 안되겠어?
그 상황을 알게 된 미유는 당장 산주에게 전화하겠다며 흥분했다. 경애가 산주는 상처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을 수 있다고, 들어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을 찾아오는 것뿐이라고 설명했지만 미유는 그게 얼마나 이기적인 일이니, 인생 망했는데 지금 바람이라도 나자는 거니,라고 말해서 경애를 슬프게 만들었다. 경애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간 미유는 다시 전화해 난 너가 안 힘들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그런 기약 없는 일에 아까운 인생 소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 건 사랑도 아니잖아."
"아니지."
"아닌데 왜 그래? 왜 그래야 해? 너가?"

엄마는 불행했을까?
그렇게 불행이라는 글자를 붙들고 있으면 아파트의 나머지 빈 공간이 그런 온갖 거들로 가득 차고는 했다. 더이상 연락이 없는 산주가 방 어딘가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완전히 밀어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머리에서 다 지워낸 것은 아니라서 경애는 불행하지 않아? 하고 물어보고 싶어지곤 했다. 미유는 우리가 헤어져서 이제 발을 뻗고 잘 수 있겠대. 미유 딸이 열한시 정도가 되면 귀신같이 그 시각을 알고 우는 야경증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더 힘들었대, 내가 선배를 만나는 시간이. 특정 시간이 되면 그것이 왔다는 걸 감각하고 온 힘을 다해 울 수 있는 아기라니 부럽지 않아?


우리는 같은 사람들이었을까. 그러니까 누워서 종일 음악만 듣다가 먼저 배고픈 사람이 일어나 라면을 끓였던 스무 살 시절의 우리와, 한강에서 오리배를 보고 있던 지난 계절의 우리는 같은 사람이었을까. 각자 다른 차를 타고 강변북로를 달렸던 그 밤의 우리가 같았을까. 어쩌면 손상된 것이 아닐까. 제대로 봉인되어 있던 것을 뜯어서 엉망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 의문이 들면 그날 내가 까페로 나가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우산은 있어? 하고 묻지 않고 옷은 왜 그렇게 입었어?라고 걱정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나도 선배가 안고 싶은데,라고 하지 않고 너랑 자고 싶어 다시 따뜻하게,라는 선배 말을 믿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잘 지내고 있어? 불행하지는 않아? 혹은 그 불행이 잘 되어가고 있어? 완전히, 후회 없이, 제대로 불행해하고 있어? 이렇게 물었어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런 말들을 늘어놓다가도 정작 산주에게는 전할 수 없으니까 불행은 털실처럼 잘 말아서 이 빈 공간에 덩그러니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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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2018-05-18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사하고픈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