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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 - 후회와 걱정에서 벗어나 지금을 살기 위한 심리학자의 마음 수행 가이드
변지영 지음 / 오아시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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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당신을 가로막는 건 언제나 생각'이었다!"

그랬다.

생각은 길고, 길어지면 생각에서 공상으로, 상상으로, 망상으로 이어진다.

대체로 그렇다. 걱정하는 문제에 대한 생각일수록 좋은 생각으로 끝날 때보다 나쁜 생각으로 마무리되어, 마음에 쿵, 돌덩이를 하나 얹은 채 끝나게 된다.

아니, 끝나지 않는다. 돌탑을 쌓듯 계속 그 위로 쌓인다.

책 처방전이 있다면,

<<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는 지금 내게 딱 알맞은 처방이었다.

그놈의 생각! 생각! 하면서 몇 주를 보냈으니까.



포스트잇을 얼마나 붙이면서 읽었던지.

일독을 하고, 포스트잇 붙인 페이지만 다시 읽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가 이 책에서 찾아낸 보물 같은 단어는 '자기 주제'다.



우리가 반복해서 겪는 어려움과 문제들은 나 자신의 감정 습관, 생각 패턴,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통해 증폭될 때가 많습니다. 내 특유의 경향성 그리고 그 경향성과 관련된 '자기 주제'는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경험하는 사건들에도 영향을 끼치지요.

이를테면 자기 주제가 '소외되거나 혼자 남겨지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인 경우에는 늘 타인에게 맞추고 순응하다 보니 상대방이 함부로 대해도 꾹 참거나 웃음으로 넘기면서 갈등을 회피하는 일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

자기 주제가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강하게 나가야 해' 인 사람은 '무시'와 관련된 신호에 민감해지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공격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 혹은 '아무도 내 어려움에 공감하지 않아'와 같은 주제로 시달리는 사람은 자기 문제로 시야가 많이 좁아져서 가까이 있는 친구나 가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 <신경증과 지혜의 다섯 가지 짝> 중에서, p50



자기가 신경 쓰고, 집중하고 있는 '주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생각하는 혹은 타인을 대하는 방식,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



간과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주연일 뿐 아니라 스토리의 작가'라는 말은 그래도 크게 와닿았다.

내가 어떻게 스토리를 만들어 갈 것이냐... 결정하는 것은 나의 몫.

"내가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는 문제는 무엇인가?"

"그건 어떤 경험인가?"

"왜 나는 그걸 계속 문제 삼는가?"

"문제 삼는 마음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자기 주제'를 명확히 알아내야 해결을 하든, 변하든 할 수 있다는 부분을 읽고,

책 속의 질문들을 옮겨보면서 나는 명확히 알 것 같았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 회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며칠 동안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안 좋은 생각을 덜 하고 싶으면 그것과 관련된 씨앗에 물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저자는 씨앗에 물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멈춤'을 이야기한다.

생각을 멈추기 위해 '명상'을 권한다.

(책 속에 저자가 알려주는 4단계 수행 연습 방법이 꽤 상세하게 적혀 있다)

책을 읽은 뒤 아침에 일어나 불을 켜지 않은 상태로 저자가 알려준 대로 앉아 명상을 해봤다.

쉽지 않았다. '멈춤'은 한순간에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며칠, 몇 달 하다 보면 습관처럼 그것도 되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어렵지 않다는 거였다.

어려운 단어나, 누군가의 이론을 거론하며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막힘없이 읽게 하는 문장 속에 담겨 있는 날카로운 지적.

날카롭게 지적하고 끄집어 냈지만,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존재한다고 알려주는 다정함.

혹시 이런저런 고민으로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면, 그 생각이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라면,

'멈춤'하고 싶다면, 그 시작으로 이 책 속의 문장들에 기대보는 것도 좋겠다. 내가 지금 그렇듯.

어려운 상황에서는 어려움 한가운데로 들어가 앉습니다. 불편한 마음과 마주합니다. 많은 행동보다는 정확한 행동이 필요하기에, 조용히 방에 앉아 자신과 천천히 얘기를 나눕니다. 있는 그대로 느끼고 경험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과 깊게 연결됩니다. 그런 연결은 우리를 본래의 지혜로 안내합니다. 기회는 밖에 있지 않고 출구도 밖에 있지 않습니다.
- P101

‘이 일에서 내가 정말로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관계는 감정을 일으키기에, 관계를 피한다는 것은 감정을 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힘든 감정에는 대개 ‘자기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굴리고 있는 바위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감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적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작업은 작기 이해의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118

우리의 일상적 행위 하나하나가 위대한 수행의 기회입니다. 매 순간 우리는 그것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걸을 때는 걷는 행위가 되고 밥을 먹을 때에는 밥 먹는 행위가 됩니다. 청소를 할 때는 청소와 하나가 되고 대화를 할 때는 대화와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나‘와 내가 아닌 것 사이에서 괴로워할 일이 줄어들게 됩니다. 오고 가는 것에, 생겨나고 그치는 것에, 순간순간 온 마음으로 참여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라고 하는 개념이 떨어져 나갑니다. 이것이 자기중심성을, 나를 잊는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결과를 기대함 없이 긍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 아무것도 예상하지 말고 그저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내던지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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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읽기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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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읽게 하지 않는 책을 도대체 왜 읽는 말입니까?

서문에 적힌 문장이다.

책을 통해 '나'를 읽을 때, 나는 '나'를 통해 타인과 세상을 같이 읽는(p7) 다는 말이 좋았다.

작가는 그러므로 읽기가 중요하고 '우리는 나를, 사람을, 세상을 정말 잘 읽어야 한다(p7)' 덧붙여 썼다.

그러려면 집중해야 한다고.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고.

"집중하는 읽기를 고요한 읽기라고 바꿔 써도 되지 않을까요?" (p8)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엔가 깊이 몰두해 있는 상태를 고요한..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경험에 의하면, 집중해서 읽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니 고요한 읽기란 역시 쉽지 않다. 책을 읽으려고 하면 뭔가 자꾸 주변이 산만해지고, 안 찾던 사람들이 나를 찾고,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들은 왜 그리 떠오르는지. 그러다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설렁설렁 넘기게 되기도 했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나를, 사람을, 세상을 정말 잘 읽기 위해서는 고요하게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요즘 많이 느끼는 중이라, 많이 공감이 됐다.

자기를 중심으로 어떤 사건(일)을 재구성해서 생각하는 게 '나'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요즘 몇 가지 일들로 마음고생을 좀 했다. 나는 나를, 타인을 생각하는 일에 고요와 반대로 조금 소란스럽게 대응했던 것도 같고.

여전히 조금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조금 차분해졌다.

이 책은, 단지 독서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어떤 태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읽는 태도, 기억하는 태도, 말하는 태도, 치유하려는 태도, 인정하려는 태도 같은 것들에 대해서.

행여라도 사람은 기꺼이 자기를 찾는다고 말하지 말라. 사람은 할 수 있는 한 자기 자신을 찾지 않고 회피한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할 때까지 외면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마침내 하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달아난다. 자기 자신이 가장 멀리 있다. 끝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다. - P19

사랑이 죽음보다 강한 것이 아니라, 죽음이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 영원한 사랑은 없다. 영원한 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잃어버릴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없다. 잃어버릴 두려움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 P89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산다. 사람은 자기에게 허락된 기다림을 산다.

기다림은 그냥,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기다림은 무위와 관계없다. 오히려 기다림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적극적인 행위다. 말하자면, 노동.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리는 일을 하느라고 그가 할 수 있는 다른 많은 일을 하지 못한다. - P118

너무, 지나치게 사람을, ‘자아‘를 부추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주행 운전자의 그처럼 투철한 확신이 면허 취소 수준의 음주에서 비롯됐다는 건 꽤 의미심장하다. 그는 마취했고, 분별력을 잃었고, 혹시 자기가 잘못 가고 있는지 돌아 볼(의심해 볼) 여유를 빼앗겼고, 오직 맹목의 확신에 사로잡혔다. 자기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그렇다, 만취한 사람과 같다. 제어 불능의 이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정상이 아닌데 다반사가 되었다. - P205

언제까지 걸을 거라고 미리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걸으면 된다. 언제까지 쓸 거라고 미리 결심할 필요가 있을까. 글을 쓸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쓰면 된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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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김진주 지음 / 얼룩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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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진주는 본명이 아니다.

2022년 6월, 사건이 발행하고 몇 주 뒤 마비되었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온 순간 그녀는 '진주'라는 이름을 지었다.

진주는 6월의 탄생석이었다. 그때 그녀는 '다시 태어났다'라고 생각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라고 검색창에 적으면 수없이 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무엇이 진실을 가장 잘 담고 있는지, 무엇이 피해자의 입장을 가장 잘 전달했는지 헷갈릴 정도로 많은 기사가.

고백하자면,

당시 나는 이 사건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 못했다. 대체로 많은 문제들 앞에 그랬다.

관심을 가질수록 답답해지고, 무서워지고, 힘들어져서.

화를 내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묻어두는 식이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버스킹을 좋아하는 낙천적인 이십 대 여성.

그렇게 평범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이 책에서 뉴스에선 다 담을 수 없었던 피해자로서의 이야기를 낱낱이 적었다. 어느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분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아쉽게도 범죄를 피할 수 있는 방법 따윈 없다. 우린 모두 예비 피해자다. 대신 책을 읽고 나면 범죄 피해에 잘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백신을 맞는 것처럼 이 책을 예방주사처럼 여기며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지인들에게도 추천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네가 꼭 끝까지 읽었으면 좋겠다. - <프롤로그> 중에서, p16


"그 누구보다도 네가 꼭 끝까지 읽었으면 좋겠다."

이 문장은 주문처럼 읽혔다. 가해자는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처음 12년을 선고받았고, 피해자는 스스로 모든 걸 바꿔 놓았다.

살인미수에서 강간살인미수로. 누구도 아닌, 피해자가 해낸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사법부에 많이 실망하고,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고, 외롭게 싸워야 했던 순간들.

그 순간에도 진주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냈다.

물론 검찰이 구형한 36년보다 훨씬 줄어든 형량이었지만.

사건 이후 피해자인 진주 씨가 보낸 500여 일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이 책에 관한 내용 소개는 진주 씨가 적은 프롤로그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 예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집에 가는 길을, 길에서 친구들과 웃으며 버스킹을 보는 즐거움을, 가볍게 술 한잔할 여유를,

매 순간 겁내며,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는 거니까. 예방주사 맞듯. 이 책을 읽자.

예방주사와 다른 게 있다면 예방 주사는 맞고 나면 금방 잊힌다. 언제 맞았냐는 듯.

이 책은 읽고 나면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어질 거고, 조금 더 알고 싶어질 거고,

그러다 다른 이야기들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지만 아직도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는 생각을 여전하게 가지고 있다. 피해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에 백번 공감한다. 왜 이렇게 착하게 사는 사람들을 괴롭힐까. 힘 있는 사람들을 괴롭혀서 법이라도 빨리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괴팍한 생각도 들었다.
- P165

아직 바꿔나갈 것들은 말 그대로 산투성이다. 또 새롭게 만들어지는 제도들에도 사각지대는 있을 것이고 계속 보안하고 수정해 나가야 한다. 난 끝까지 물고 뜯을 거다. 아마 내 평생 가해자와는 떨어지지 못할 것이다. 그 이외에도 국가에 대한 돌도 계속 던질 계획이다. 수사 초기 부실했던 수사의 문제점을 꼬집는 국가배상을 할 것이다.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수사의 부실한 점을 보완하고 기억을 잃은 피해자들을 향한 수사 매뉴얼을 다시 구축하라는 의미에서. 아마 나는 범죄에서 영원히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생을 살 거다. 언젠가는 피해자들이 나를 찾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라지만 그때까진 열심히 나설 예정이다. 얼굴 없는 피해자로.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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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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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다 기억할 수 없는, 죽고만 싶었던 숱한 순간에 나를 살린 누군가의 문장들이 있었을 것이다. 고통의 순간도 회복의 과정도 전부 잊었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 나는 위대한 책들을 읽고서 혁명을 일으키지도 못했고 인류를 구원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나처럼 평범한 대부분의 독자에게 독서란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그저 삶을 연명하고 있을 뿐이라고 고백했던 헤르베르트를 봐도 그렇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한 뼘이라도 더 훌륭해지는 건 아니라고 장담했지만 그는 쉼 없이 읽었다. 그리스 로마 고전, 과학적 사실주의, 우주비행, 벌의 삶에 관한 책들, 카츠 같은 시인의 작품뿐만 아니라 플라톤, 데카르트, 스피노자, 니체 같은 철학자들의 책, 우파니샤드 같은 종교서 등등 가리지 않고 읽었다. 그의 고백처럼 책 속에서 연명했던 것이다. - p8


진은영 시인의 산문을 읽었다.

'다시 본다,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일보> 지면에 연재했던 글을 다듬어 엮은 책이다.

스물여덟 편의 글이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면서, 독서 모임을 하면서, 글방 친구들에게 혹은 블로그에서 익명의 이웃들에게

책을 읽는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말해왔다.

그건 내 경험에 의한 이야기였다. 누군가 책을 읽고 돈을 많이 벌었다는데, 이름을 알렸다는데, 나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읽는다고 말했다. 그게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는 믿는다고.

책 서문에 작가의 문장을 읽으며 그래,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혁명을 일으지도 못하고, 인류를 구원하지도 못하지만 '살기 위해서' 책 속에서 연명하는 지도 모른다는 것.

나는 그게 무슨 의민지 안다.

앞으로도 책을 통해 무엇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계속 읽고, 그 안에서 살아가겠지. 그게 나를 살게 하는 일일 테니까.



(...) 카프카, 울프, 카뮈, 베유, 톨스토이, 플라스, 니체, 아렌트...... 여기서 다른 저자들은 다 그렇다. 그들에게 삶은 계속되는 소송이거나 400년 내내 분투한 뒤에야 겨우 이룰 수 있는 소망, 다시 굴러떨어지는 바윗돌, 보상 없이 행하는 사랑, 끝없이 헤매다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겨울 숲 같은 것이다. 또는 내 속에 울음이 사는 시간, 경멸을 통해서 극복되는 운명의 시간, 사회가 찍어내는 자동인형 같은 삶에 맞서는 시간이다. 이들은, 내 책을 읽는다면 넌 아침에 슬펐어도 저녁 무렵엔 꼭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너는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겠지만 그래도 너 자신의 삶과 고유함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준다. 작가들은 진심으로 독자를 믿는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는 화자,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목소리가 이해받을 수 있다는 믿음, 그런 삶을 소망하는 사람이 이 세계에 적어도 한 명은 존재하고 그가 분명 내 책을 읽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작가는 포기하지 않는 능력에 대한 철학을 펼칠 수 있다. 그렇다면 포기하지 않는 삶을 말하는 책이 포기하지 않는 독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이다. 혹은 용감한 독자와 용감한 책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릴케의 시구처럼 우리는 책에서 자신의 그림자로 흠뻑 젖은 것들을 읽는다. - p 10



릴케의 시구처럼 멋지게 말하는 법을 몰랐지만, 책에서 자신의 그림자로 흠뻑 젖는 것들을 만나는 순간은 알 것 같다.

그것들을 읽을 때, 너무 좋아 신이 나고,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생기는... 대책 없는 열정과 즐거움을 만나는 순간. 물론 위로까지.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속에는,

세상과 다르지만, 힘들지만, 포기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는 '살아가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책의 서문에서 '책 속에서 연명'했던 것이다,라는 문장 속 '연명'이라는 단어가 계속 생각났다.

책 속에서 '연명'하다.

책을 읽으며, 살아가며 내내 이 단어를 떠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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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세한 책들
장윤미 지음 / 사람in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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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책을 읽는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읽기도 하고,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읽기도 하고, 그저 좋아서 읽기도 하고,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읽기도 한다.

책은 자주 아무것도 아니지만, 때로는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책이 내게 무언가가 되는 순간은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뒤, '아, 나는 이전과는 다르게 살 수 없겠다'하고 느낄 때다.

그건, 내가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고

나의 옆 사람이, 나의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나를 뒤따라 오는 사람이 나와 전혀 무관한 사람이 아니라고 느낄 때다.

장윤미 작가의 <<우세한 책들>>은 나와 너, 우리가 결코 무관한 사람이 아님을, 그러니까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의 모두가 조금씩은 서로에게 책임을 가지고, 다정하게 보듬으며 살았으며 하고 바라게 했다.

스물일곱 권의 책이 내 앞에 놓여 있다.

스물일곱 명 이상의 사람이 나를 통과했다.

스물일곱 개의 모두 다른 모양을 가진 삶이 나보고 그 안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작가는 스물일곱 권의 책 속에서 세상의 약하거나 악한, 자유롭거나 구속당한, 아름답거나 불편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더듬는다.

무조건 악하기만 한 사람은 없듯, 한 권의 책 안에서도 무조건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작은 빛을 찾아낸다.


작가가 읽은 책을 나 역시 대부분 읽었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작가가 발견해 들려줄 때, 신이 나서 다시 그 책을 찾아 펼쳐보기도 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작가와 같은 책을 두고 의견을 나누듯 '그랬군요. 나는 여기서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같은 생각을 한 부분을 만났을 땐 '어머! 우리 좀 통하는걸요?' 말 걸고 싶었다.

책은, 보이지 않는 나와 당신을 연결한다.

작가는 나와 당신을 연결하기 위해 친절하게 다리를 놓아주었다. 혹시 가다가 넘어지지 말라고, 길을 잃어버리지 말고 서로를 꼭 알아보라고 다정하게 길잡이 해주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된다.

어디서든, 언제든, 기약 없이.

운 좋게 우리가 서로를 알아본다면, 그건 아마 작가가 놓아 준 책과 책으로 연결된 다리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얼마든지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책임을 띠고 이 땅에 선 존재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 <여는 글>에서

당신은 지금, 어떤 이유로 책을 읽는가.

나는 우리가 이 이야기를 즐겁고 수다스럽게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덧) 작가가 읽은 스물일곱 권의 책을 다 읽지 못했더라도, 혹은 한 권도 읽지 못했더라도 이 책을 읽는데 전혀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을 통과해 읽는 사람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기에, 그저 우리는 만나게 될 것이다. 책 속을 유영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삶을. 그리고 당신의 삶을.


나는 함부로 타인에게 "당신을 이해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는 내 이해의 대상이 아니고 나에게 이해받아야 하는 존재도 아니다. 게다가 이해의 넓이나 깊이는 내 경험치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이해한다는 말 대신 그와 내가 잊고 있던 낯선 감정을 복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나와 타인의 관계를 만드는 괜찮은 장치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장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은 쉽거나 간단하지 않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갈등도 필수다. 그럼에도 이것이 옳다고 믿는 이유는 나와 타인 모두가 즐겁게 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P31

계급 쟁탈전에서 밀려난 아이는 자신이 당한 방법대로 다른 아이들을 차별하고 어떻게 해서든 계급사회의 서열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결국 밀려난 최후의 아이는 벌레 아니면 거지라고 놀림받는다. 책이나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면 이러한 현실에 맞서 저항하고 투쟁해야 마땅하지만, 그래 봤자 저들에게는 그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불평불만처럼 보일 뿐이다.
- P170

절대적이고 완벽하게 자유로운 선택이란 없다. 선택지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결국 모든 선택은 허용된 조건 아래서 이루어진다. 조건이 공간이나 시간이든, 물질적이거나 비물질적이든 간에 말이다. 다만 허용된 조건을 우리가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것뿐이다.
- P223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나는 뇌의 것이 아니라 뇌가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뇌가 잘못해도 결국 책임은 뇌의 주인인 내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 <뇌가 편해지면 사회는 불편해진다>에서
- P243

정의와 공정의 기준을 능력에 두고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개인이 능력을 갖추는 과정에서 거쳐온 여러 특수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정량화, 수치화된 결과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능력이라는 것은 순수하게 자신이 쌓아 올렸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 <이것은 시험인가, 도박인가>에서
- P277

우리가 감정을 타인에게 표출하고 이해받기 바라는 이유는 외로움을 피하고, 고립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자신의 감정이 타인에게 닿길 바란다. 물론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쓰레기 버리듯 타인에게 감정을 쏟아내고, 어떤 사람은 진짜 감정은 보물처럼 숨겨두고 가짜 감정만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감정까지 자본화하여 거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상대를 해칠 의도가 없는 이상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저 각자 살면서 터득한 감정 생존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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