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 - 누구나 삶의 섬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
마크 A. 호킨스 지음, 서지민 옮김, 박찬국 해제 / 틈새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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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반,
호사스러울 만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누군가에게(의사)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쉬세요. 놀아요 놀아.'라는 말을 들었다. 일종의 처방전이었다.
내 몸은 혼자가 아니었고, 내가 열 달 동안 안전하게 품고 있어야 할 약한 생명이 자꾸 위태로운 신호를 보내던 참이었다. 앞뒤 잴 것 없이, 쉬었고 또 쉬었다.
침대에 누워서, 기대서, 앉아서.
그렇게 한 달쯤의 시간을 넘기자 차츰 몸이 알아주기 시작했다.
'됐다. 그 정도면 잘 쉬었다' 하는 칭찬처럼 들렸다.

몸이 조금씩 괜찮아지니, 멍하니 누워있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 뭐 좀 해야지 않을까? 이렇게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청소라도 할까? 빨래라도 좀 더 해볼까?' 이런 생각들.

 

아이가 태어나고, 직장생활과 육아, 집안일 등등을 해오면서 '지루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지, 그럴 틈이란 게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늘 '아 좀 쉬고 싶다', '아무도 없이 혼자 좀 있고 싶다', '내 시간이 이렇게 없을 수가' 같은 말들을 내뱉으며 살았던 기억만 남아있다. 아주 가끔 아이가 잠들고 잠깐의 틈이 생길 때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서 몸을 움직였던 것 같다.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거나, 블로그를 하거나... 그냥 지루하게~라는 건 있어서는 안된다는 듯이 말이다.

이 책 속엔 한국에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낸 캐나다인인 저자가 한국 생활 동안 자신과, 한국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 느낀 것들을 '지루함'이라는 단어를 통해 표현해 낸 글들이 담겨 있다.

지루함이 무엇인지, 왜 사람들은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회피하는지, 왜 우리에게 지루함이라는 감정이, 공간이 필요한 것인지, 일상 속 지루함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들.

조금 솔직해지자면, 이 책을 다 읽은 뒤에도 역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상상하는 일은 두렵다.  그러니까 결국엔 '지루함'이라는 것도, '휴식'이라는 것도, 무언가를 부지런히 열심히 해낸 뒤에 따라오는 보상 같은 것이라야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내 스스로에 대한 생각은 어쩌면 앞으로도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일상 속 지루함의 중요성'에 대해 일정 부분 동의한다.

<일상 속 지루함의 중요성>

○ 지루함은 우리의 한계를 무너뜨린다
    충만한 삶을 영위하려면 의미 체계 안에 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잘 맞는 의미 체계를 창조하기 전에, 불만족스러운 삶의 기저에 깔린 의미 체계를 파괴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중략) 지루함을 받아들이면, 최고의 인생을 향유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편협하고 제한적인 세계관과 개인적 신념을 무너뜨리기가 수월해진다.

지루함은 인생을 창조하기 위한 무한의 공간
    우리 마음속에 있는 유토피아와 삶의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틈새가 있다고 일깨워 주는 것이 바로 지루함이다. 지루함은 모든 게 지루하고 의미 없는 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돕는다. 그 무엇도 우리가 꾸준히 행복한 마음으로 살도록 지켜 주지 않는다. 이 사실을 깨우칠 때, 우리의 행복은 절대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해줄 완벽한 무언가를 찾는 것에 더 이상 좌우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하면서 지루함의 공간을 채울 자유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불현듯 다가온 무한한 공간에서 원하는 인생을 창조해 나가게 된다.

지루함을 이용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든다
    지루할 때면 인생의 모든 게 다 어그러진 것처럼 느껴진다. 내 인생이지만 타자가 되어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중략) 지루함은 당신에게 속삭인다 '이봐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당신만의 이야기를 써야죠. 행복한 결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다고요.' (중략) 지루함은 당신이 세상 현실이라는 고삐에 끌려가지 않고, 상상을 펼치고 정신적 방랑을 하도록 공간을 마련한다. 당신이 이 상태를 받아들일 때, 지루함의 공간은 당신 인생에서 의미 있는 비전을 창출하도록 돕는다. 지루함의 공간을 인생 안에 더 많이 허용할수록, 더 깊은 개인적인 통찰이 그 공간 안에 들어온다.

지루함의 공간 채우기
    인생을 어떻게 채워야 한다는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지루함을 마주했을 때 자신이 보였던 반응을 자각하는 행위는 길잡이가 된다. 여기서 분명히 짚어 둘 게 있다. 술을 몇 잔 마시고, 열대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고, 넷플리스에서 시리즈 하나를 탐닉하는 게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의하는 게 이 책의 의도가 아니다. 지루함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는 게 '올바른'지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선택한 행동에 어떤 개인적 이유가 있는지 알아야 하고, 지루함을 채우기 위해 그 순간 당신에게 최선인 활동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인생이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깊이 생각한 후에는, 언제든 필요가 느껴지면 지루함의 공간을 이용해 자신의 미래상을 고찰하고 수정해야 한다.

 ○ 지루함은 즐거움을 더한다.
     살면서 지루한 시간을 갖는 건 중요하다. 지루함을 통해 창조 유형과 소비 유형을 누그러뜨릴 수 있고, 인생의 주객이 전도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온갖 활동들로 인해 인생을 빼앗기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지루함은 귀중한 수단인 동시에, 창조나 소비만큼이나 일상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인간 존재의 한 유형이다.

○ 지루함은 의미를 더한다.
    일상 활동에서 지루함이 즐거움을 키워주듯, 인생의 의미도 더한다. 의미 있는 것들과 잠깐 거리를 둠으로써 다시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다 보면, 그저 가게에 걸어가는 활동만으로도 기분이 한껏 좋아진다. 나무에 달린 이파리는 전보다 더 생기 넘치는 초록빛이고, 살결이 간지럽히는 산들바람도 새삼 상쾌하게 느껴진다. 인생에 지루함의 자리를 더 자주 마련해주면, 나를 둘러싼 세상이 예전보다 생명력이 넘칠 것이다.

○ 지루함은 철학적 사유를 더한다
    우리가 지루할 틈을 가질 때마다, 인생과 세상, 존재를 통찰할 기회를 얻는다. 인생에 지루함을 더 많이 허락하면, 이러한 통찰들은 상호작용과 혼합을 반복해 더욱 새롭고 심오한 통찰을 내놓는다. 지루함은 위대한 인생을 창조하는 데 밑거름이 될, 개인적이고 철학적인 발견이 끝없이 소용돌이치는 곳이다.

○ 지루함은 영혼의 훈련
    지루함은 우주의 순수한 경이와 신비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또한, 우리가 미지의 우주에 내던져진 존재라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과 조우하는 시공이다. 인간의 존재를 우주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는 건 중요한 일이다. 살면서 겪는 사건들을 한 발 떨어져 보게 해주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 주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을 조금 더 오래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나'를 온전히 쉬게 내버려두는 '지루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않고, 그러나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 비로소 온전히 '나'가 되는 경험.
짧더라도 온전한 그 시간들을 모으고 모아, '나'를 만들어 가는 마음의 여유가 허락되기를.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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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희미하게
정미경 지음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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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작가의 글과, 이미지를 천천히 떠올려 본다.

처음 작가의 작품을 읽은 건,
200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 <밤이여, 나뉘어라>였던 것 같다.
그 이전에 아마도 나는 정미경이라는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은 해마다 빼놓지 않고 읽었고, 그때 아, 이런 작가가 있었구나 했었을 거야.
어쩌면 수업시간에 한두 번 들어 본 작가의 이름과, 작품을 그냥 스치듯 지나갔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 이후 내가 작가의 작품을 거의 다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는 것.

그렇게 나는 작가의 작품들을 만났고, 좋아했다.
그렇지만 그뿐.

작가의 부고를 인터넷 기사를 통해 접했을 때, 아- 짧은 탄식이 나왔었겠지만, 나의 하루에, 일상에 막대하게 영향을 미쳤던 건 아니었을거다.
그래야 난, 고작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한 명의 독자였을 뿐이니까.

누군가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식은 각기 다를 것이고, 그게 그 사람과 얼마만큼의 연결고리가 있는지에 따라 또 달라질 테지.  그런데 이상하다. 이 소설집을 읽는 내내 차분해지고, 자꾸 아프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점점 더 느려졌다.

 

 소설가 정미경의 마지막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를 읽으면서,
한 사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마주했다.
그들은 동료이기도 했고, 후배이기도 했고, 반려자이기도 했다.
단순히 독자로서가 아니라, 삶의 한순간을 같이 보낸 이들이 보내는 애정 어린 마음.
그 마음이 고스란히 와닿는 순간들이었다.

생전에 작가가 쓴 단편 다섯 편과, 작가를 기억하는 또 다른 작가 정지아, 정이현의 추모 산문. 작가의 평생 반려자이자 동료였던 남편 김병종 화백의 추모글까지.

다섯 편의 소설 <못>,<엄마, 나는 바보예요>,<새벽까지 희미하게>,<목 놓아 우네>,<장마>는 기존에 읽어왔던 작가의 여느 소설들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지만 어쩐지 조금 더 아련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이건, 소설들을 읽고 있는 순간의 내 감정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섯 편의 소설들은 가깝지만 완벽히 타인인 관계들에 대해 들려준다.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다 이해하고 아는 것이 아니고, 타인이라고 해서 서로를 완전히 모른다고 할 수 없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들에 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 공은 자신의 욕망에 전력으로 매달림으로써 불안을 유예하는 쪽이었다. 금희의 방식은 반대였다. 미리 내려놓음으로써 불안의 싹수를 자르는 식이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다. 여름 바다에 둥둥 떠 있는 튜브 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금희는 끝을 예감했다. 어떤 일은 그랬다. 끝나버린 후에 알게 되는 게 아니라 그 일이 일어나려는 바로 그 순간 알게 된다.
- <못> 중에서 p36」

「 길어지는 침묵이 짐작보다 훨씬 아프다. 어떤 고통의 감각을 고스란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다는 생각이 심을 고통스럽게 했다. 한가지 사실만 빼곤 그에게 놀랍도록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냈다고 생각했으나 진짜 자신은 그에게 말했던 것들과 말하지 못했던 것들 사이에 있다는 생각을 내내 하고 지냈다.
- <목 놓아 우네> 중에서 p158」

「 남자는 왼손을 들어 윤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짧은 머리카락은 몇 가닥만 남기고 다시 흘러내린다. 네온의 명멸처럼 짧지만 환한 어떤 것이 가슴속에서 반짝 빛났다. 지나온 삶에서, 우연히 다가온 따뜻하고 빛나는 시간들은 언제나 너무 짧았고 그 뒤에 스미는 한기는 한층 견디기 어려웠다. 그랬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을 하찮게 여기고 싶지 않다.
- <장마> 중에서 p189」

이 글을 쓴 사람이 이제 없다, 고 생각하고 나면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사라질 줄 알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남겨질 이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처럼.

작가 정미경은 떠났다. 떠나왔던 자신의 별로, 그리고 그 떠난 자리마다 기적처럼 피어난 꽃들을 나는 바라본다. 지난 1월 18일 새벽 3시 반에 그녀는 내게 눈으로 말했다. 미안해. 나는...... 여기까지였어. 그랬을 것이다. 몸의 진액을 짜내어 살아온 삶. 더이상은 무리였을 것이고말고다.
 이제는 그녀를 놓아주어야 할 시간이다. 문학이라는, 내가 그리워만 하며 건너지 못했던 강 저편의 아슬한 능선에서 늘 푸르른 나무 한그루로 서 있던 사람. 나의 가난한 응원에도 늘 넘치게 답했던 사람. 나는 그녀의 차가워오는 이마에 마지막 키스를 했다. 잘가라 아내여. 내가 진실로 사랑하고 흠모했던 이 세상 단 한 사람의 작가여.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여.
- 추모산문 <나의 피투성이 연인> 김병종,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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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 읽어본다
남궁인 지음 / 난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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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의 읽어본다 시리즈는 총 다섯 권.
그중에서 앞서 읽은 요조의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과 남궁인의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 두 권을 골랐다. 그냥 내가 알고 있는(한 번이라도 저자의 글을 접한 적 있는) 친근한 저자라는 이유로.

두 권의 책을 다 일고 나니, 나머지 세 권의 책이 읽고 싶어졌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지점을 발견했는데,
같은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감정이 모두 다르다는 것.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같이 놓고 읽어보니 이게 꽤 재미있는 거다.

비슷한 시기에 여러 명이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 책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적은 글이 모두 제각각이다.
그런데 그 제각각인 사람들의 생각을 읽으면서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아, 이 사람은 그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구나. 나는 이랬는데... 이런 비교들과 함께 독서 자체가 흥미로워지는 거다.
(아마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모여 독서모임을 하고, 책을 나누는 시도를 하는 거겠지).

대부분 혼독을 하는 나는 이 흥미로운 경험이 세 권의 책으로 더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곧, 읽어본다 시리즈 나머지 세 권이 내 손에 들려 있을 듯......

 

 남궁인의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는 군더더기 없는 서평이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놀란 건, 응급의학과 의사가 이렇게 책을 읽을 시간이 많다니... 하는 생각.
환자를 보는 시간 외에 나머지 시간 대부분을 독서에 쏟아붓지 않고서는 이렇게 많은 책을 일 년에 읽어낼 수 있을까 싶다.
그러니까,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건 어쩌면 핑계(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래서인지, 아니면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이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글에 대한 감상(줄거리)와, 저자의 주관적 경험이나 느낌이 적절하게(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딱, 균형을 맞추는 듯한 느낌이 든다.

 

 

 

위의 사진은,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을 읽은 남궁인(왼쪽), 요조(오른쪽)의 기록이다.
글을 짧고 길고의 차이가 아니라, 앞에서 말했듯 같은 책을 읽고 기록하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는 일이 흥미로웠다.
나 역시, 이 소설을 읽고 짧은 감상을 적었었는데 역시나 이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글이 되었고.

이렇게 찾아볼 수 있는(겹치는 작품) 글들이 꽤 있다.
그렇게 찾아도 보고, 내가 읽고 쓴 글도 다시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한 시간들이었다.

내가 읽지 않은 책들 중 읽고 싶어지는 책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도 큰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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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생긴 너에게 - 2019 아침독서신문 선정, 2018 서울시교육청도서관 여름방학권장도서 추천, 동원책꾸러기 선정 바람그림책 65
카사이 신페이 지음, 이세 히데코 그림, 황진희 옮김 / 천개의바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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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윤이를 만나는 어른들이 종종 묻는다.
"이제 곧 동생 만나니까 좋겠다~ 그치?" 하고.

그때마다 예윤이는 시큰둥하게 대답하지.
"잘 모르겠는데요~"

처음, 엄마 뱃속에 동생이 생겼어~라고 알려주었을 때 예윤이의 반응은...
"엄마 왜 거짓말했어? 동생 안 생길 거라며~"였다. (정말 계획에 없었던지라 아이가 물을 때마다 동생은 없어,라고 말했었다 ;;;)

그 이후에도 아이는 한 번도 동생이 생겨서 좋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중간중간엔 "난 미니(동생)이 싫어. 나도 애기 할거야" 등등 엄마 입장에서 걱정되는 말들을 툭툭 던져주었다.

이제 정말 곧, 동생을 만날 수도 있다는 걸 아는 일곱 살 아이는  부쩍 더 어리광이 심해졌고, 엄마 껌딱지가 되었다.

좋은 방법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책을 같이 읽으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동생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 그림책을 선택했는데......

 

 아이와 함께 읽기 전, 내가 먼저 읽다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이거를.. 지금 같이 읽어도 될까?, 내가 읽어도 참 마음이 아프다'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서.

첫째 아이 준은 곧 자신이 형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유치원생.
아마도 지금의 예윤이와 딱 비슷한 또래.

준에게는 아주 오래된 친구 하늘이라는 코끼리 인형이 있다.
준은 하늘이와 대화를 하면서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엄마의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다는 걸 알고, 엄마를 도와야 한다는 것도 아는 아이.
그리고 드디어 만난 동생 윤.

이제 어른들은 준이 아닌 윤에게 관심을 주고, 엄마 역시 늘 품에 윤이를 안고 있다.
게다가 윤은 하늘이의 가장 친한 친구 코끼리 인형 하늘이까지 넘본다.

그 사이에서 준은 '자신은 이제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동생이 밉다.

 

 

고민하다가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어야지 생각하게 된 건,

이 그림책의 이야기가,  우리가 뻔하게 상상할 수 있는 그래도 엄마는 첫째인 너도 정말 사랑해... 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 물론 그게 중요한 핵심이기도 하지만.
이 그림책은 준이라는 아이가 한 단계 성장해 내는, 아기인 줄만 알았던 준이 스스로 어린이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함께 보여준다.

이제 준은 안다.
여전히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엄마가 윤이만이 아니라 자신도 많이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걸. 그리고 하늘이 역시 동생 윤에게 기꺼이 양보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은 '형아'가 되었다는걸.
동생 윤만큼이나 자신 역시 혼자 일 때 엄마 아빠의,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소중한 아이라는걸.

 

아직 마주하지 않은, 곧 마주하게 될 현실에 대해 어쩌면 나는 예윤이보다 더 걱정하고 겁먹고 있는 건 아닐까. 주변에서 들어온 첫째가 동생을 보면 엄청 힘들어한대, 같은 말들에 지레 겁먹고 아이를 못 믿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한차례 큰 폭풍이 몰아칠지도 모르지만. 서로 감정이 상해 "엄마 미워, 엄마도 너 미워" 하고 토라질지도 모르지만 그 시간들을 함께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예윤이는 멋지고 든든한 언니가 되고, 또 그만큼 성장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 책을 함께 읽는 동안 예윤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냥 같이 읽었다.
그리고 꼭 안아주었다. 사랑한다고, 엄마 딸로 와줘서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예윤이가 웃었다. 활짝.
그리고 똑같이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나도 엄마를 무지 많이 사랑한다고.

예윤이가 잊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가 함께 책을 읽고, 껴안고,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이 달달하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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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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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고를 때  조금 더 신중해지는 편이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잘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끌리는 책을 고를 수밖에 없기도 하다.

2018년에는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자고 다짐한 터라 책을 구매할 때 되도록이면 분야별로 한 권씩은 포함되도록 선택하고 있다.

그리고, 처음 시도해 보려고 했던데 과학 분야의 책이었다.
이 분야는 과학의 '과'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인지라, 중고등학교 과학시간에 배운 것조차 기억나지 않는 수준이니 어떤 책을 골라도 낯설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고른 이 책은, '과학'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에 더 가까웠다.

 

 좀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유시민이  이 책을 딸에게 권해주고 싶다고 적은 추천평을 어디서 본 기억 때문에 이 책을 고른 것도 있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지. '아.. 낚였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은 건, 위에서도 말했지만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리고 방향이 바뀌었을 뿐 책의 내용이 이상하거나 영 재미없거나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과학'이라는 걸 빼고 읽으면, '자신의 영역을 열심히 개척해 나가는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로 읽으면 꽤 괜찮은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식물학자로서의 삶을 유년시절부터 결혼, 출산을 겪은 이후의 시간까지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이 글은 쉽지 않은 과학자로의 여정을 한 여성 과학자가 어떻게 헤쳐나갔고, 여전히 그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그녀 스스로의 목소리와 문장으로.

그런데 여기서 드는 아쉬운 생각.
결국 과학자 앞에도 '여성 과학자', '여성 식물학자'라는 이름이 붙는구나.
여성으로서 결혼과, 출산 그로 인한 조울증과 싸우면서 입원을 하고 약물 치료를 하면서도 견뎌낸 그 삶의 이야기가 어쩐지, '여성'이라서 더 힘들었나, '여성'임에도 꿋꿋하게 잘 해왔다는 건가,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
나는 왜, '딸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라는 평에 혹했을까. 어쩌면 나 스스로가 '여성'의 한계에 대해 이미 너무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게 많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하는 괜한 아쉬움까지.

좋은 책을 읽고 뒤에 남은 이 씁쓸한 느낌이 그리 유쾌하지 않다.
그럼에도, 밑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는 건 뭐라 설명해야 할까.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과학을 선택한 것은 과학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집, 다시 말해 안전함을 느끼는 장소를 내게 제공해준 것이 과학이었다. p33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p52

나무와 곰팡이는 왜 공생할까? 우리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곰팡이는 어디서 어서 나 혼자서 잘 살 수 있지만, 더 쉽고 독립적인 삶을 포기하고 나무뿌리를 둘러싸고 도와주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식물의 뿌리에서 직접 나오는 순수한 당분을 찾도록 적응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당분은 숲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질적이고 농축된 화합물이다. 어쩌면 곰팡이도 공생 관계를 이루어 살면 혼자서 외롭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p152

살지 않아야 할 곳에서 사는 식물은 골칫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살지 않아야 할 곳에서 번창하는 식물이 잡초다. 우리는 잡초의 대담성에 화를 내지는 않는다. 모든 씨앗은 대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은 잡초들의 눈부신 성공이다. 인간들은 잡초밖에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놓고 잡초가 많이 자란 것을 보면 충격을 받는 척, 화가 나는 척한다. 우리가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은 사실 아무 상관이 없다. 식물의 세계에서는 이미 혁명이 일어나서 인간이 개입한 모든 공간에서는 침입자들이 쉽게 원주민들을 내쫓고 부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가 아무 힘도 없이 그저 입으로만 잡초를 욕해봤자 이 혁명을 멈추지는 못한다. 지금 목격하고 있는 혁명은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라 촉발한 것일 뿐이다. p182

삶이 두렵지도, 죽임이 두렵지도 않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슬픔도, 비통함도 없다. 태초부터 인류가 해온 답이 없는 모든 탐색에 대한 답이 의식 저변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신의 존재와 우주의 창조에 대한 재론의 여지가 없는 증거가 내 손안에 있다. 나야말로 세상이 기다려온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을 세상에 돌려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고, 무릎까지 차오르는 끈적한 사랑, 사랑, 사랑 속에서 뒹굴 것이다. p208

우리가 서로 사랑한 것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희생하지도 않았다. 너무도 쉬웠고, 내게 과분했기에 더 달콤했다. 되지 않을 일은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노력해도 되지 않고, 마찬가지로 어떤 일은 무슨 짓을 해도 잘못될 수가 없다. 나는 이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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