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 - 누구나 삶의 섬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
마크 A. 호킨스 지음, 서지민 옮김, 박찬국 해제 / 틈새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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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반,
호사스러울 만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누군가에게(의사)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쉬세요. 놀아요 놀아.'라는 말을 들었다. 일종의 처방전이었다.
내 몸은 혼자가 아니었고, 내가 열 달 동안 안전하게 품고 있어야 할 약한 생명이 자꾸 위태로운 신호를 보내던 참이었다. 앞뒤 잴 것 없이, 쉬었고 또 쉬었다.
침대에 누워서, 기대서, 앉아서.
그렇게 한 달쯤의 시간을 넘기자 차츰 몸이 알아주기 시작했다.
'됐다. 그 정도면 잘 쉬었다' 하는 칭찬처럼 들렸다.

몸이 조금씩 괜찮아지니, 멍하니 누워있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 뭐 좀 해야지 않을까? 이렇게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청소라도 할까? 빨래라도 좀 더 해볼까?' 이런 생각들.

 

아이가 태어나고, 직장생활과 육아, 집안일 등등을 해오면서 '지루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지, 그럴 틈이란 게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늘 '아 좀 쉬고 싶다', '아무도 없이 혼자 좀 있고 싶다', '내 시간이 이렇게 없을 수가' 같은 말들을 내뱉으며 살았던 기억만 남아있다. 아주 가끔 아이가 잠들고 잠깐의 틈이 생길 때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서 몸을 움직였던 것 같다.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거나, 블로그를 하거나... 그냥 지루하게~라는 건 있어서는 안된다는 듯이 말이다.

이 책 속엔 한국에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낸 캐나다인인 저자가 한국 생활 동안 자신과, 한국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 느낀 것들을 '지루함'이라는 단어를 통해 표현해 낸 글들이 담겨 있다.

지루함이 무엇인지, 왜 사람들은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회피하는지, 왜 우리에게 지루함이라는 감정이, 공간이 필요한 것인지, 일상 속 지루함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들.

조금 솔직해지자면, 이 책을 다 읽은 뒤에도 역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상상하는 일은 두렵다.  그러니까 결국엔 '지루함'이라는 것도, '휴식'이라는 것도, 무언가를 부지런히 열심히 해낸 뒤에 따라오는 보상 같은 것이라야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내 스스로에 대한 생각은 어쩌면 앞으로도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일상 속 지루함의 중요성'에 대해 일정 부분 동의한다.

<일상 속 지루함의 중요성>

○ 지루함은 우리의 한계를 무너뜨린다
    충만한 삶을 영위하려면 의미 체계 안에 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잘 맞는 의미 체계를 창조하기 전에, 불만족스러운 삶의 기저에 깔린 의미 체계를 파괴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중략) 지루함을 받아들이면, 최고의 인생을 향유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편협하고 제한적인 세계관과 개인적 신념을 무너뜨리기가 수월해진다.

지루함은 인생을 창조하기 위한 무한의 공간
    우리 마음속에 있는 유토피아와 삶의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틈새가 있다고 일깨워 주는 것이 바로 지루함이다. 지루함은 모든 게 지루하고 의미 없는 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돕는다. 그 무엇도 우리가 꾸준히 행복한 마음으로 살도록 지켜 주지 않는다. 이 사실을 깨우칠 때, 우리의 행복은 절대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해줄 완벽한 무언가를 찾는 것에 더 이상 좌우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하면서 지루함의 공간을 채울 자유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불현듯 다가온 무한한 공간에서 원하는 인생을 창조해 나가게 된다.

지루함을 이용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든다
    지루할 때면 인생의 모든 게 다 어그러진 것처럼 느껴진다. 내 인생이지만 타자가 되어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중략) 지루함은 당신에게 속삭인다 '이봐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당신만의 이야기를 써야죠. 행복한 결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다고요.' (중략) 지루함은 당신이 세상 현실이라는 고삐에 끌려가지 않고, 상상을 펼치고 정신적 방랑을 하도록 공간을 마련한다. 당신이 이 상태를 받아들일 때, 지루함의 공간은 당신 인생에서 의미 있는 비전을 창출하도록 돕는다. 지루함의 공간을 인생 안에 더 많이 허용할수록, 더 깊은 개인적인 통찰이 그 공간 안에 들어온다.

지루함의 공간 채우기
    인생을 어떻게 채워야 한다는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지루함을 마주했을 때 자신이 보였던 반응을 자각하는 행위는 길잡이가 된다. 여기서 분명히 짚어 둘 게 있다. 술을 몇 잔 마시고, 열대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고, 넷플리스에서 시리즈 하나를 탐닉하는 게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의하는 게 이 책의 의도가 아니다. 지루함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는 게 '올바른'지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선택한 행동에 어떤 개인적 이유가 있는지 알아야 하고, 지루함을 채우기 위해 그 순간 당신에게 최선인 활동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인생이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깊이 생각한 후에는, 언제든 필요가 느껴지면 지루함의 공간을 이용해 자신의 미래상을 고찰하고 수정해야 한다.

 ○ 지루함은 즐거움을 더한다.
     살면서 지루한 시간을 갖는 건 중요하다. 지루함을 통해 창조 유형과 소비 유형을 누그러뜨릴 수 있고, 인생의 주객이 전도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온갖 활동들로 인해 인생을 빼앗기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지루함은 귀중한 수단인 동시에, 창조나 소비만큼이나 일상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인간 존재의 한 유형이다.

○ 지루함은 의미를 더한다.
    일상 활동에서 지루함이 즐거움을 키워주듯, 인생의 의미도 더한다. 의미 있는 것들과 잠깐 거리를 둠으로써 다시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다 보면, 그저 가게에 걸어가는 활동만으로도 기분이 한껏 좋아진다. 나무에 달린 이파리는 전보다 더 생기 넘치는 초록빛이고, 살결이 간지럽히는 산들바람도 새삼 상쾌하게 느껴진다. 인생에 지루함의 자리를 더 자주 마련해주면, 나를 둘러싼 세상이 예전보다 생명력이 넘칠 것이다.

○ 지루함은 철학적 사유를 더한다
    우리가 지루할 틈을 가질 때마다, 인생과 세상, 존재를 통찰할 기회를 얻는다. 인생에 지루함을 더 많이 허락하면, 이러한 통찰들은 상호작용과 혼합을 반복해 더욱 새롭고 심오한 통찰을 내놓는다. 지루함은 위대한 인생을 창조하는 데 밑거름이 될, 개인적이고 철학적인 발견이 끝없이 소용돌이치는 곳이다.

○ 지루함은 영혼의 훈련
    지루함은 우주의 순수한 경이와 신비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또한, 우리가 미지의 우주에 내던져진 존재라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과 조우하는 시공이다. 인간의 존재를 우주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는 건 중요한 일이다. 살면서 겪는 사건들을 한 발 떨어져 보게 해주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 주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을 조금 더 오래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나'를 온전히 쉬게 내버려두는 '지루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않고, 그러나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 비로소 온전히 '나'가 되는 경험.
짧더라도 온전한 그 시간들을 모으고 모아, '나'를 만들어 가는 마음의 여유가 허락되기를.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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