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밤 되세요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1
노정 지음, 드로잉메리 그림 / 폴앤니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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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는 굳이 필요 없지만,

자꾸만 어떤 장면을 상상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장면.

호텔도 아닌 것이 호텔인 척 이름을 달고 떡 한 서 있는 OO 호텔 앞 어느 골목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척 조금은 부끄러운 척 서성이고 있는 아직 어린 여자 어른과, 그보다 두세 살 밖에 더 안 먹었으면서

괜히 더 어른인 척하던 남자 어른의 모습.

들어갈까, 말까 서성이다가 결국 지하철을 놓치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지못해 굳게 닫힌 호텔도 아닌 것이 호텔인 척하는 OO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서는 두 남녀의 모습.

그러니까 정말이지 이런 얘기는 굳이 필요 없는데도 왜 자꾸 그런 장면이 떠오르는 거지.

'드림초콜릿호텔'

이게 다 이름마저 달콤한 이 호텔 때문이다.

그런데 이 호텔 어쩐지 수상하다.

호텔이란 모름지기 화려하고, 단정하고, 깔끔하고, 어딘지 모르게 럭셔리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들어서는 손님들이 대접받는 느낌이 들어야 하기 마련인데 이 달콤한 호텔은 아무도 모르게(아니 호텔 직원들만 알게)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은유가 아니다. 실제로, 물리적으로 무너지고 있다(p11)

불면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던 나명은 정신병원에서 도박중독으로 입원해 있던 '드림초콜릿호텔' 나 사장의 꼬드김에 넘어가 호텔 캐셔로 호텔에 입성했다.

돈 받고 키만 내주면 된다는 사장의 말과 달리 호텔은 그리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술 취한 사람, 혼숙을 몰래 시도하는 사람, 데이트 폭력에 신고에 경찰이 오고, 매일매일 사건의 연속이다.

그랬다. 호텔은 은밀한 곳이다.

어쩌면 말이다.

애인과의 색다른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서, 가족들과 호캉스를 즐기기 위해서도 호텔이 존재하지만

숨겨야 하는 게 있는 사람, 누군가의 눈을 피해야 하는 사람, 몰래 무언가를 도모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역시 호텔은 존재했다(필요했다).

그런데 어째 이 '드림초콜릿호텔'엔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캐셔로 취직한 나명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의 나 과장으로 불렸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남자친구 리재의 죽음을 마주하고 어쩌면 나명 역시 피할 곳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것도 스스로 삶을 포기한 이를 두고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그게 나의 탓이 아닐 거라 여기는 일이 쉽지 않을 테니까.

「타자의 죽음을 해석하는 일정한 회로가 있습니다. 누구나 갖고 있어요. 죽음의 영역이지만 죽음에 대한 주석만 달지 않습니다. 삶과 죽음은 샴쌍둥이처럼 등을 붙인 한 몸이라서 그렇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타자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곰삭여서, 무심하게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삶의 태세를 놓치지 않아요. N분의 일의 죽음을 인정하고 N분의 일의 삶을 또 살아가는 것이지요. 무심하게, 이 갈리게.

그 회로가 고장 났거나 혹은 닫혀 있음을 알게 되고 나서, 나는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어요. 누군가의 부음이 들려올 때마다 애써 귀를 닫았습니다.

거리를 두고,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요. 막장 같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지 않기 위해서 무심해지는 쪽을 택했습니다. 또다시 그 천재지변 같은 진동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결계처럼 쳐놓은 안정장치였어요.

그런데 리재의 죽음은 그 결계를 무너뜨렸습니다. 리재는 죽어서도 내 곁은 떠나지 않고 서성거립니다.

나는 죽음에 대해 더 이상 거리를 두지 못합니다. 무심해지지 않아요.

그 와중에 이 빌어먹을 호텔은 시시각각 지진 경보를 울리며 나를 위협하고 있어요. 연탄을 피우고 수면제를 삼키고 죽은 시체를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는 날, 나는 그 강진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나는 자신이 없습니다.

박사장은 틈만 나면 사무실로 나를 부릅니다.

요즘은 괜찮아? 니가 혹시 또 안 좋아질까 봐 내가 사실 걱정이 말이 아니다아.

나는 괜찮지 않다고, 니가 최저임금을 안 줘서 굉장히 괜찮지 않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벚꽃축제 기간의 토요일에 차 키를 세 개나 놓친 저성과 노동자가 할 말이 아니어서 또다시 삼켰습니다.

자살하지들 말아요. 잘 살아요. 호텔은 걸어서들 가고.

- <영업정지보다 무서운> 중에서, p112」

 

 

어쩌면 이 호텔은,

이별하기 위해 찾아오는, 잘 이별하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위안의 장소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인사도 없이 떠날 준비를 하는 이들도,

인사도 없이 떠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숨어들기 좋은 공간. 비록 조금씩 무너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버티고 서 있으니까.

조금만 버티다 보면,

그렇게 버티다 보면,

내일은 또 오니까.

하룻밤 묵고 나면, 아침이면 다시 키를 반납하고 호텔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가야 하니까.

마냥 그곳에서 머물 수는 없으니까.

소설은 재밌다.

잘 읽힌다. 술술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웃기다.

슬핏슬핏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지.

자꾸 마음 한편이 아리다.

찌릿거린다.

잘 자고 있을, 이미 오래전 헤어진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싶게 하고

잘 지내고 있을 오래전 친구에게 안부를 묻고 싶게 한다.

헤어짐에 익숙해질 수 없는 우리 모두에게 괜찮다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괜찮다고 또 다른 날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아 시큰해진다.

 

「그런데 아이가 죽는다는 건요. 그래요. 그렇지요. 죽음과 모성은 실로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리재가 죽고 나서도 나는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으니까요. 결심, 이라. 그게 결심 때문인지 문득 의심스럽군요. 내가 살겠다고 다짐을 하고 결정을 한 걸까요? 따져보면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리재는 나 때문에 죽은 게 맞아요.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돌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언덕, 그게 나였기 때문에 리재는 죽은 것이지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 하나밖에 남지 않았을 때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 아이를 벼랑 끝으로 내 몬 것은 나예요. 그리고 내가 리재를 죽이고, 내 배로 낳은 아이가 죽었는데, 내가 죽어버리는 건요. 너무 쉬워요. 너무 쉽고, 가볍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게 리재를 위하는 길이 맞아요. 당신들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리재를 잊을 거예요. 그건 자연스러운 겁니다. 죄스러워하지 말아요.

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기억해야지요. 기억하고 슬퍼할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리재가 덜 가엾지 않겠어요. 그래서 난 그냥 살기로 했어요.

명이 씨는 명이 씨의 몫을 살아요. 리재의 몫 따윈 신경 쓰지 말아요. 자기 몫의 삶을 제대로 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다하다 저엉 안 되면, 그냥 대충 살아요. 그러면 또 어떤가요. 나는 이제야 그걸 깨달았어요.

- <엄마가 산다> 중에서, p204」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여야(끝까지 받아들 일 수 없겠지만) 하는 부모, 사랑하는 애인의 죽음을 견뎌야 하는 남은 애인, 그리고 그 주변의 여러 사람들.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 남은 이들이 버티고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 그래도 살아내야 함을 들려주는 것 같아서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눈물 조금 흘리고야 말았다.

'명이야, 아직 애도의 시간이 끝나지 않았다면 잠시 너의 상실에만 집중하렴. 충분히 애도하고, 슬퍼하는 거야. 그리고 다시 살아. 우리 모두 그래도 돼 p166'

나는 여전히 그 장면을 떠올리고 있다.

어색하게 OO 호텔로 들어선 아직 어린 여자 어른과, 조금 더 나이 먹은 어린 남자 어른.

캐셔에게 키를 받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구멍을 잘 맞추지 못해(어쩌면 이미 고장 나 버린) 키를 여러 번 돌려 방 문을 열고 드디어 방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

그들에게 슬쩍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 호텔,

무너지고 있어요.

진짜예요.

그래도 버텨야 해요.

꼭 살아남아야 해요.

덧붙임

1. 지극히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다 보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남기지 못한 것 같아 괜히 아쉬운 마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쩐지 내게 이 소설이 그렇다.

소설 곳곳에 담겨 있는 사회문제나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어쩐지 이 글에서 쏙 빼버리고 만 것 같아 아쉽다(어쩌면 내 능력이 그것뿐인지라).

이 소설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꼭 그 부분까지 챙겨 읽기를.

2. 나는 이 책을 텀블벅 후원을 통해 구입했다.

덕분에 예쁜 노트와 거울까지 챙겼다. 노트는 너무 아까워서 오래 그대로 책상 위에 올려두고 바라보기만 할 것 같다.

거울은 이미 초등 1학년 큰 딸에게 뺏기고 말았다.

 

3. 그림을 그린 드로잉메리 님의 그림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한 장면 한 장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건 정말이지 대단한 일 아닌가).

그림은 꼭 책을 통해 확인해 주시길.

4. 아쉬운 마음에 진짜 마지막으로 딱 한 문장만 더 옮긴다.

우리가 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므로.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떠나보냈다. 때로는 죽었다. 누군가 죽고, 떠나도 남은 사람들의 삶은 계속된다. 하물며 혁명의 이상 따위야 말할 것도 없다. 부풀었던 꿈이 바람 빠지듯 허망하게 사라진 자리에도 여전히 삶이 이어진다. 지질하고 궁상맞은 폐허를 견디며 다들 그렇게 산다.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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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정리 기술 - 물건과 공간, 인생을 디자인하다
윤정훈 지음 / 다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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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8년 4월 18일, 나는 야심 차게 블로그에 미니멀라이프라는 폴더를 만들고 "하루비프로젝트(일명, 하루에 한 번 비우기)"를 선언했다. 계획은 일 년 동안 하루에 한 번씩 물건을 정리하는 것.

야심 차게 시작한 프로젝트(내 맘대로 프로젝트도)는 2018년 10월 19일, 160일차로 막을 내렸다. 계획대로 1년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6개월의 시간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버렸고, 많은 것을 얻었다.

나는 왜 버리고 싶은가?

나는 왜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라이프는 뭔가?

단순히 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버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내 인생이 바뀌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비우기 프로젝트를 통해 내 생활에, 내 삶에, 내 마음에 분명 어떤 변화가 생겼다는 거다.

비움을 통해 나누는 법을 배웠고, 비움을 통해 채우는 법을 배웠다.

그 시간과 그 과정은 나를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어 주었다. 아주 긍정적으로.

그동안 읽어왔던 미니멀라이프에 관한 책들 대부분이 실전 기술이라기보다는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이 책 <<인생을 바꾸는 정리 기술>>은 하나씩 따라 해보면 어쩐지 정리의 고수가 될 것 같은 희망을 갖게 하는 실전 편이었다.

누구나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게 되는 자기만의 타이밍이 있다.

누군가는 이사를 앞두고, 누군가는 출산을 앞두고, 누군가는 스스로에게 도전의 기회를 주고 싶어서, 누군가는 그냥, 누군가는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등등.

이 책의 저자는, 사업 실패로 인생에서 큰 고비를 맞았을 때 신문 사이에서 '정리수납 2급 수강생 모집' 전단지를 발견하고 정리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여성들만 앉아 있는 강의실을 보고 다시 나갈까를 고민했지만 그대로 첫 강의를 들었던 것이 저자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지금 저자는 정리 컨설턴트와 정리수납 강사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여러 가지 방법과 여러 가지 시기가 있겠지만, 그것도 역시 적절한 타이밍이 필요한 듯하다.

그런데 또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 타이밍이라는 건 스스로 만들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결국 '정리'는 자기가 마음먹은 그 순간, 시작하면 되는 아주 괜찮은 '일' 아닌가.

정리수납은 생활의 습관이다. 자신의 습관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생각을 바꾸고, 반복적으로 정리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 습관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생활에서 정리를 습관화하고 정리된 것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 정리된 것을 유지하는 것도 정리인 셈이다.

- <유지하지 못하는 정리는 의미가 없다> 중에서, p135

뭐든 한 번 습관을 들이는 과정이 힘들지 한 번 습관을 들이고 나면 자연스럽게 달라질 것이다,라는 말을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는 게 나다. 특히 나처럼 같이 사는 사람 중에 정리를 잘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정리는 내 영역이 아니라고 손 털어 버리게 되기도 한다.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신랑이 정리의 고수다. '나 이제 정리를 시작할 거야'라고 말하면 몇 시간 내에 집 안 확 바뀐다. 그러니 굳이 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암묵적으로 지키는 룰이 하나 있다.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지는 말 것. '

신랑이 정리하는 건 공용 공간(아이들과 함께 하는)과 자신이 사용하는 서재다.

나는 내 방식대로 내가 사용하는 공간을 정리한다.

내가 처음 이제부터 비우기를 시작하겠어!라고 선언하고 손 댄 곳은 '서재'다.

고등학생 시절(작가를 꿈꾸기 시작한)부터 한 권 한 권 모으기 시작한 천 여권의 책을 모두 비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애지중지하던, 그것이 내 꿈을 지탱하는 마지막 희망이라도 되는 듯 껴안고 있던 것들을 비우자 생각보다 홀가분해졌다. 책은 딱 책장 한 칸에 넣을 수 있을 만큼만 가지고 있기, 그 이후 나는 이 룰은 어기지 않고 지키고 있다. 구입한 뒤 읽고 이웃 블로거들에게 나눔을 하거나, 중고서점에 되팔고 다시 구입하고 싶은 책을 골라 책장 한 칸만 채운다.

이 책의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것처럼 어쩌면, 정말 정리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절대 버릴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 하나를 비우고 나면 생각보다 훨씬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 느낄지도 모른다.

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특히 나처럼 애초에 정리와 거리가 멀었던)은 '어떻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뭐부터 비워야 하나, 갈팡질팡.

천천히 긴 시간을 가지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비워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테고, 이렇게 책의 도움을 빌어 시작해 봐도 좋을 듯하다. 뭐든 배우면서 잘 하게 되는 법이니까.

이 책은 여섯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1. 정리란 무엇인가 : 가슴 뛰는 인생을 만들어주는 정리

2. 버리는 기술 : 버리면 보이는 자유와 행복

3. 이것만 알아도 정리의 달인 : 실패하지 않는 정리의 기술

4. 공간별 심플한 정리 : 즐겁고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기

5. 물건별 심플한 정리 : 물건에 돌아갈 집을 만들어 준다

6. 정리를 통해 얻게 되는 것들 : 자유, 꿈, 행복을 가슴에 품게 해준다

왜 정리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어떻게, 뭐부터 버리지를 고민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정리를 시작한다. 가장 먼저 정리하고 싶은 공간을 정하고, 그 공간이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상상한다. 그리고 시작한다.

100평짜리 집에 살든 원룸에 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공간을 잘 정리할 수 있다면 허름한 원룸에서도, 강남 건물을 소유한 사람처럼 럭셔리하게 살 수 있다. 강남에 건물을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집에서 생활한다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정리가 생활의 시작점, 출발점이 된다는 얘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내가 있는 공간이 정리되어야 무언가를 제대로 시작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이것이 제대로 정리를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 <정리를 해야 하는 이유> 중에서, p31

비움과 정리를 시작하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너그러움'이다.

작은 일에도 예민해졌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여유로워지면서 '나'에게도 '남'에게도 전보다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아등바등 살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내 공간을 물건이 아닌 내 마음으로 채울 수 있다는 여유가 생겼다.

물론, 정리한 뒤, 비움 뒤 다시 어지러워지지 않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전혀 구입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무엇을 사야 하고, 어떻게 사야 하는지에 대한 나만의 기준도 생겼다. 그러니 내게도 정리는 '인생을 바꾸는 기술'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도움이 된 부분은 챕터 4. 공간별 심플한 정리 편과 챕터 5. 물건별 심플한 정리 편이었다.

정리하는 실전 기술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보니 내가 그동안 해왔던 정리 법과 비교도 해볼 수 있었고, 나만의 방식에서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기술을 배울 수도 있었다.

특히 늘 관심분야인 주방과 화장실 정리는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천하기 어려웠는데 책 속에서 알려준 방법들을 적용해 다시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옷 접기, 소품 정리하기, 액세서리 정리하는 법도 실전에서 도움이 될 듯

나를 닮아서인지 큰 아이 윤이는 정리에는 영 소질이 없다.

아직 여덟 살 아이에게 소질을 이야기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볼 때 느껴지는 아이의 성향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늘어뜨리는 건 최고인데 늘 마무리에서는 "엄마! 아빠! 좀 도와줘!"를 외친다.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가 정리하는 걸 도와줘서인지 혼자보다는 늘 '같이'를 외치는 아이.

정리 습관은 어릴 때부터 들여야 한다. 이때 아이들에게 정리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정리 정돈의 목적과 유익함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정리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줘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정리 정돈이 체화될 수 있다. 참고로 정리를 잘하는 아이는 노트 정리도 잘하는데, 학습 의욕과 성취도는 물론 학교 성적도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정리 정돈은 모든 일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 <정리 수납, 누구나 잘 할 수 있다> 중에서, p41

아직 '어리다'라는 희망을 갖고,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아이에게 정리하는 습관에 대해, 기본에 대해 이야기해주어야겠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도 조금 더 성장하고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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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말해요
조지 섀넌 지음, 유태은 그림, 루시드 폴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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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손으로 사랑을 나눠주는 방법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요리'다.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들면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과 함께 사는 짝궁에게 매일 마음을 전한다.

내가 만든 요리를 먹고 손으로 "엄마 최고"라고 엄지척을 해주는 건 예윤이가 내게 손으로 보내는 최고의 칭찬이다.

사랑한다고, 매일 말하지 못해도 매일 손으로 사랑을 나누는 일을 우리는 하고 있다.

이 그림책 『손으로 말해요』는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손으로 나누는 사랑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큰지 들려준다.

"엄마, 나도 어렸을 때 엄마랑 아빠가 저렇게 손 잡고 들어올리고 하는 거 많이 해줬지? 그치?"

책을 보자마자 예윤이가 말했다.

"그럼, 그럼, 당연히 많이 해줬지."

예윤이는 이제는 자기가 너무 커버려서 저렇게 못하는게 못내 아쉬운 듯 말했다.

"채민이는 좋겠다. 이제 엄마 아빠가 채민인 저렇게 해줄거잖아."

아....

그때 아빠의 한 마디, "너는 이제 저렇게 하면 팔 빠져" ㅋㅋㅋㅋ

이겐 웬 동심을 파괴하는 말인가.

아무튼, 우리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나란히 걸으며 예윤이 손을 잡고 번쩍 들어올리며 꺄르르 웃었던 시간들.

그 시간을 기억하는 예윤이도, 나도 아마 행복한 기억 하나는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게아닐까.

엄마 손은 달콤하게 잠을 깨우죠.

....

요즈음 우리 아침을 생각해보면 "엄마 손은 때론 거칠게 잠을 깨우죠"쯤 되겠다.

이불에서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예윤이를 깨우면서 달콤함 보다는 우악... 스러운 손.. 이 아니었던가 잠시 반성했다.

아빠 손은 요즘 매일 둘째 채민이와 걸음마를 한다.

종종 거리면서 아빠 손을 잡고 걷는 뒷모습만 봐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데,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우리 가족의 모습을 같이 떠올릴 수 있어서 자꾸 웃음이 났다.

지난 밤, 공부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 짝꿍에게 가서

"나 좀 잠깐 안아줄래?" 하고 말했다.

나를 살짝 안고 손으로 토닥토닥 해주는 짝꿍의 손길에 며칠 힘들었던 마음이 사르르 사라졌다.

아이가 아파 이번 주 내내 휴가내고, 조퇴하면서 종종거리느라, 직장 눈치보느라 힘들었던,

아주 조금 짝꿍에게 서운해 토라졌던 마음을 다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안아주는 것보다 손으로 토닥이는 그 손길이 위로가 된 건 분명하다.

아이에게든, 어른에게든 다정한 토닥임은 손으로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가장 쉬운 위로가 아닐까.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의 이불을 덮어주고, 아이와 손 인사를 나누고, 입맞춤을 하는 순간의 행복함을 엄마가 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자는 아이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는 새벽 시간이 주는 평온함도, 그 시간에 대한 감사함도 배웠다.

말로해야 알지!

자주 그말은 맞다.

그런데 이젠 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할 수 있는 사랑도 있다는 것.

조용히 다가가 토닥이는 손짓 하나로도,

다정히 다가가 보드랍게 쓰다듬는 손길 하나로도,

아무말 하지 않고 가만히 어깨에 살포시 얹어주는 손 하나로도

사랑이 전해질 수 있다는 것. 느낄 수 있다는 것. 사랑받고 있구나 느낄 수 있다는 것.

이 봄,

손으로 나누는 작은 사랑을 맘껏 나누고 싶어졌다.

 

손으로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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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닫힌 문 창비시선 429
박소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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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말이 없는 사람입니까

이어폰을 꽂은 채 줄곧 어슴푸레한 창밖을 내다보고 있

더군요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태운 7019번 버스는 이제 막 시립은평병원을 지

났습니다 광화문에서부터 우리는 나란히 앉아 왔지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눈을 준 이 저녁이 조금씩 조금씩 빛으로 물들어

간다고

건물마다 스민 그 빛을 덩달아 환해진 당신의 뒤통수를

몰래 훔쳐보니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입니까 당신은

오늘 낮에 혼자 밥을 먹었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이 가득

한 광장을 혼자 걸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은 그곳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난 적이 있지

요 밥이나 한번 먹자 악수를 나누고서 황급히 돌아선 적이

있지요

나는 슬퍼집니다

그렇고 그런 약속처럼 당신은 벨을 누르고 버스는 곧 멈

출 테지요

나는 다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오늘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이 도시와 도시를 둘러싼 휘휘한 공기에 대해 당신

무릎 위 귀퉁이가 해진 서류가방과 손끝에 묻은 검뿌연 볼

펜 자국에 대해

당신은 이어폰을 재차 매만집니다

어떤 노래를 듣고 있습니까 당신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는

그 노래를 나도 좋아합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문이 열립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당신이 유유히 문을

나섭니다 당신의 구부정한 등이 저녁의 미지 속으로 쓸려

갑니다

우리는 헤어집니다 단 한번 만난 적도 없이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소란입니다

- <모르는 사이> 전문,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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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소란입니다'

소란, 소란 하고 소리내어 발음해 본다.

수런수런, 도란도란, 속닥속닥, 떠오르는 단어들을 같이 발음해 보다가 혼자 수줍게 웃는다.

'내 이름은 소란입니다'라고 말하는 시인의 수줍은 인사를 떠올린다.

한번도 만난 적 없이 헤어지는 버스 안의 낯선 사람들을 떠올리고, 내리는 사람의 등 뒤를 가만히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한다.

쓸쓸할 것 같은 모습이지만, 어쩐지 온기가 돌 것만 같은 버스 안의 모습을.

 

'지난 연애란, 그러니까 이별이란 가장 뜨겁게 버려진 기억이 아닐까. 스스로의 의지(?)로 끝을 낸 경우든, 어쩔 수 없이 끝을 당한 경우든, 연애는 결국 지는싸움이 되고 만다. 그러니 그 싸움의 기억은 절대적이다. 시는 어떤 식으로든 피 흘리는 기억을 보듬어 안을 운명에 처해 있다. 지난 날의 나는 시가 사랑을 더욱 탐스럽게 치장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시가, 사랑을 시로 쓰는 일이 그 살이 꿈틀대는 사랑을 죽이고 또 죽여서 곁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일임을 알 것 같다.

『나는 매번 시 쓰기가 재미있다 』 중 박소란의 <전부를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중에서'

오래전(이라고 했지만 2017년) 읽었던 『나는 매번 시 쓰기가 재미있다 』 라는 책에서 박소란 시인이 쓴 <전부를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를 읽고 메모해 둔 문장을 다시 꺼내 읽었다.

그때 그 글을 읽으면서 저 문장이 좋아서 여러번 읽었던 기억이 다시금 새록새록.

몇 편의 시를 계간지를 통해 읽었는데 다시 시간이 지나 시인의 시집을 만났다.

가장 뜨겁게 버려진 기억, 피 흘리는 기억을 보듬어 안는, 그 말들이 좋아서 옮겨 적어두었는데 이번 시집 속의 시들을 읽으면서 나는, 시인이 보듬어 안은 세상을, 사람들을 더듬더듬 쫓아 다녔다.

모든 詩들은 '삶'을 향해 있음을 매번 느낀다.

어떤 글이든 안 그러겠냐만 유독 좋은 시들을 읽을때면 그게 더 뚜렷하게 각인된다.

짧은 언어로 담아내는 세상과 사람들을 쫓아 다니다보면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삶'이 조금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한 사람이 나를 향해 돌진하였네 내 너머의 빛을 향해

나는 조용히 나동그라지고

한 사람이 내 쪽으로 비질을 하였네 아무렇게나 구겨진

과자봉지처럼

내 모두가 쓸려갈 것 같았네

그러나 어디로도 나는 가지 못했네

골목에는 금세 굳고 짙은 어스름이 내려앉아

리코더를 부는 한 사람이 있었네

가파른 계단에 앉아 그 소리를 오래 들었네

뜻 없는 선율이 푸수수 귓가에 공연한 파문을 일으킬 때

슬픔이 왔네

실수라는 듯 얼굴을 붉히며

가만히 곁을 파고 들었네 새하얀 무릎에 고개를 묻고 감

시 울기도 하였네

슬픔은 되돌아가지 않았네

얼마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는, 그 시무룩한 얼굴을

데리고서

한 사람의 닫힌 문을 쾅쾅 두드렸네

- <감상> 중에서,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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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라는 듯 얼굴을 붉히며 다가 온 슬픔, 다시 되돌아 가지 않은 슬픔.

그 슬픔을 털고 일어나 닫힌 문을 두드리는 순간, 울음이 멈췄을까. 울음을 애써 참아야 했을지도 모를 어떤 외로움이, 그 외로움을 털어내고 싶어 문을 두르리는 주먹이, 그 쾅쾅거림이 느껴졌다.

시인의 시들 속에서 사람들은 어디로 갈 지 모르고, 종종 울고, 자주 가엽고, 멈칫거린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서 나도모르게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는데 그 가라앉음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만 들릴듯한 목소리로, 내안의 나에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같은 시들이었다.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게 만드는 시들이어서 좋았다.

나는, 매번 흔들리지만

나는, 자주 외롭지만

나는, 때론 두렵기도 하지만

나는, 이따금 미치도록 누군가 그립기도 하지만

나는, 한번씩 미친듯이 소리지르고 싶기도 하지만

나는,

나는,

그럼에도 다시. 씩씩하게 털고 일어나 또 걸어가고 있다고 그러면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고요한 새벽, 토닥토닥 누군가의 등을 어루만져주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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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는 것 굳게 팔짱을 끼고 성마른 등을 보이는 것

이제 막 하나의 심장을 받아 소용돌이치는 사람처럼 이

별을 모르는 사람처럼

미안, 눈물이 돈다 처음부터 미안을 기다려온 사람

처럼 단지 미안만을

고개를 떨군 채 말없이 내민 손을 붙드는 것

비 갠 오후 성당 돌담길은 더없이 평온해

세상 마지막 인사인 듯

물기 번진 잎사귀를 매달고 걷는 것

바람이 살랑이고 슬며시 웃음이 고이고 잠시 잠깐 기도

를 떠올리는 것

토라졌다 때마침 화를 푼 사람처럼

하늘의 표정은 맑고 사랑에 빠질 듯 찰랑거리고 모든 게

그만 괜찮아

괜찮아, 하면 눈물이 돈다

이별을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 이토록 정다운 사람처럼

- <정다운 사람처럼> 전문,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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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작고 무른 것을

사람들은 어떻게 기르나 어떻게

사랑하나

저 알 수 없는 것을

자꾸만 꼬물꼬물 숨 쉬는 것을

부둥켜안고 어디로 달려가나

순백의 울음소리가 병원 복도를 번쩍이며 스칠 때

더운 가슴팍을 할퀼 때

사람들은 아프고

잇따라 울고

또 어떻게 웃을 수 있나

저 작고 무른 것을 두고

살아야겠다

살아야겠다 기도할 수 있나

불 꺼진 진료실 앞

멀거니 앉아 순서를 기다릴 때 어떤 삶은

까무룩 쓰러지듯 잠들 때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고

더욱더 선명하고

어떻게 웃을 수 있나

어떻게

나는 태어날 수 있나

- <아기> 전문,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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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를 잡는다 그가 잡은 것을 그녀가

그녀가 잡은 것을 그가

잡는다

마치 사랑을 하는 사람들처럼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는다

잡았다 놓는다

그러다보면

문은 스르르 열리곤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아귀힘을 풀곤 하는 것이다

문의 순순한 가슴팍을 두드리며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들

어오고 나간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끊임없이 문을 열리고 닫히는 사이

손잡이가 돌고 도는 사이

손들은 너무 쉽게 뜨거워지고, 함께 가요 우리 문 저편

그럴듯한 삶을 시작해 봐요

그러다보면

남몰래 열이 든 손잡이도 그만

손이 되고 말 것 같지만

꼭 쥔 주먹을 풀고 엉거주춤 하나의 주머니 속을 파고들

고도 싶지만

손은, 아니 손잡이는

그러지 않을 작정이다

그렇게는 하지 않을 작정이다

- <손잡이> 전문,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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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이라는 말이 좋아

불쑥 오는 버스에 불쑥 올라 불쑥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

그런 일이 좋아

나는 그에게 사랑을 고백할 텐데 불쑥 우리는 사랑할

텐데

고단을 가득 태운 버스가 우리를 창밖으로 내팽개친대

도 그리고 모른 체 달려간대도

우리는 깔깔 웃을 텐데 별일 아니라는 듯

이봐, 이걸 보라구, 여기 불쑥이란 게 있다구

아하, 그렇군!

걱정 없을 텐데

이제부터 나는 불쑥이 될게, 실없는 농담을 해도 그는

고개를 끄덕일 텐데

어이 불쑥, 반색하며 불러줄 텐데

그러면 대답할 텐데 응, 하고

불쑥이 대신

불쑥은 내가 될 텐데

나는 불쑥 뒤에 숨어 숨바꼭질처럼 살 텐데

우리는 깔깔 웃을 텐데 별일 아니라는 듯

불쑥 왔따 불쑥 갈 텐데 술래도 모르게 나는, 멀리 저 멀

리 갈 수 있을 텐데

- <불쑥> 전문, p142

 

한사람의닫힌문, 박소란, 리뷰, 모르는사이, 불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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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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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 밖으로 나오니 창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오빠와 동생에 전화해서 엄마를 모셔다드리고 왔다고 말했다. 딸의 출산 소식을 전하자 일이 겹쳤으면 얘기하지 그랬냐며 오빠와 동생은 각자의 성격대로 걱정하고 염려했다. 엄마는 좀 어떠셔? 두 사람의 질문은 거기에서 만났다. 오늘 엄마가 어땠던가. 나는 비로소 마음을 가라앉히며 하루를 돌아보았다. 입맛이 없었고 손에 땀이 자주 났다. 마음이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여기에서 저기로 자꾸 달려갔다. 한 페이지밖에 되지 않지만 책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지나간 것 같았다. 시간을 내어 찬찬히, 책장을 넘기며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떠올리자 이상하게 웃는 얼굴만 생각났다. 그것 외에 다른 것은 희미했다. 엄마가 많이 웃었다고 하자 오빠와 동생은 모두 울먹거렸다.
나는 시큰거리는 팔목을 천천히 주물렀다. 한 장면만으로 기억되는 하루, 하나의 표정으로 남는 얼굴도 나쁘지 않구나 싶었다. - <변해가네> 중에서, p179」

언제부턴가 서유미 작가의 소설에 빠져들었다.
그건, 환상이나 상상에 기대지 않는, 힘겹지만 철저하게 두 발을 땅에 딛고 있는 버티는 사람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버티는 사람들의 삶이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다.
작가의 최근 소설들을 읽으면서 나는 늘, 한가지  '버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 친구의 이야기, 이웃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별것 아닌 하루하루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하는데, 그게 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 푹, 빠져들고 말기를 여러 번.

이번 소설집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에 실린 여섯 편의 소설 역시 그랬다.
위에 발췌해서 적은 부분은 <변해가네>라는 단편의 마지막 문장이다.

딸아이를 결혼시키고 나서야 이혼을 실행에 옮긴 한 여자.
딸이자, 엄마인 한 여자의 삶의 이야기. 흔히 주변에서도 어쩐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한 여자의 하루를 따라가는데, 나의 모습이. 엄마의 모습이, 딸아이의 모습이 겹쳐졌다.
무겁거나, 유독 슬프거나 한 내용도 아닌데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뭉클, 했다.
이상하다.

작가의 마법에 걸려버렸다.

<휴가>라는 단편에서는 평일에 휴가를 얻은 한 부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나와, 나와 같이 사는 남자의 평일 휴가의 모습 같아 읽는 내내 공감했다.
'시계를 본 순간 휴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하루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라고 시작되는 첫 문장부터 그랬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거나 함께 무언가를 하려고 했지만(직장인에게 평일의 휴가란 얼마나 달콤하고 소중한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시작부터 끝나버렸다고 느낀 부부의 휴가.
결국
'하루 잘 쉬었다.
아무 데도 안 가고 쉬는 것도 괜찮네.'
하고 끝나버린 휴가. 그런 휴가를 한두 번 이상 보내본 사람들이라면 아, 하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이야기다.

「이혼을 결정한 뒤 그녀와 나는 우리 관계가 왜 이렇게 되었나, 누구의 책임이 더 큰가, 고민할 겨를도 없이 살던 집은 어떻게 하고 물건을 어떻게 나누고 앞으로 어디에서 살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빨리 혼자가 되고 싶은데 한집에 묶여 있어야 하는 현실이 갑갑했다. 중개업소에 집을 내놓고 팔리는 대로 즉시 돈을 나누는 것만이 해결책인 것 같았다. - <이후의 삶> 중에서, p144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이혼을 앞두고 있다면 저런 고민을 하는 게 당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책임이 크고, 마음이 아프고,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이라도 잘 살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어쩐지 더 현실적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갑작스럽게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주인 때문에, 한 해의 마지막 날 집을 보러 다녀야 하는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 <에트르>는 이미 다른 작품집에서 한 번 읽은 소설이었지만, 다시 읽었다.
어쩐지, 이 소설집 속에서 더 잘 어울리는 듯한 소설이었다.

일곱 살 첫째와 5개월 둘째를 데리로 떠났던 1박2일의 짧은 휴가 끝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더운 날씨에 힘들다 수시로 징징거리는 두 딸, 별일 없었지만 그런 아이들 틈에서 괜히 심드렁해져 버린 우리 부부. 잘 놀고 왔다, 집에 돌아와 널브러져 누우면서 던지는 의례적인 말(물론 진심도 포함된), 늦은 밤 내일 출근 걱정을 하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

소설이 살아내는 현실과,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내 삶, 어쩐지 너무 재미없는 거 아니야 괜히 볼멘소리를 내뱉는 밤.

다, 작가의 소설 탓이다.
그러니, 버티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현실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들려주길.
들리지도 않을 투정을 부리는 밤. 그렇게 나의 하루와 헤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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