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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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 밖으로 나오니 창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오빠와 동생에 전화해서 엄마를 모셔다드리고 왔다고 말했다. 딸의 출산 소식을 전하자 일이 겹쳤으면 얘기하지 그랬냐며 오빠와 동생은 각자의 성격대로 걱정하고 염려했다. 엄마는 좀 어떠셔? 두 사람의 질문은 거기에서 만났다. 오늘 엄마가 어땠던가. 나는 비로소 마음을 가라앉히며 하루를 돌아보았다. 입맛이 없었고 손에 땀이 자주 났다. 마음이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여기에서 저기로 자꾸 달려갔다. 한 페이지밖에 되지 않지만 책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지나간 것 같았다. 시간을 내어 찬찬히, 책장을 넘기며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떠올리자 이상하게 웃는 얼굴만 생각났다. 그것 외에 다른 것은 희미했다. 엄마가 많이 웃었다고 하자 오빠와 동생은 모두 울먹거렸다.
나는 시큰거리는 팔목을 천천히 주물렀다. 한 장면만으로 기억되는 하루, 하나의 표정으로 남는 얼굴도 나쁘지 않구나 싶었다. - <변해가네> 중에서, p179」

언제부턴가 서유미 작가의 소설에 빠져들었다.
그건, 환상이나 상상에 기대지 않는, 힘겹지만 철저하게 두 발을 땅에 딛고 있는 버티는 사람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버티는 사람들의 삶이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다.
작가의 최근 소설들을 읽으면서 나는 늘, 한가지  '버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 친구의 이야기, 이웃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별것 아닌 하루하루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하는데, 그게 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 푹, 빠져들고 말기를 여러 번.

이번 소설집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에 실린 여섯 편의 소설 역시 그랬다.
위에 발췌해서 적은 부분은 <변해가네>라는 단편의 마지막 문장이다.

딸아이를 결혼시키고 나서야 이혼을 실행에 옮긴 한 여자.
딸이자, 엄마인 한 여자의 삶의 이야기. 흔히 주변에서도 어쩐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한 여자의 하루를 따라가는데, 나의 모습이. 엄마의 모습이, 딸아이의 모습이 겹쳐졌다.
무겁거나, 유독 슬프거나 한 내용도 아닌데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뭉클, 했다.
이상하다.

작가의 마법에 걸려버렸다.

<휴가>라는 단편에서는 평일에 휴가를 얻은 한 부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나와, 나와 같이 사는 남자의 평일 휴가의 모습 같아 읽는 내내 공감했다.
'시계를 본 순간 휴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하루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라고 시작되는 첫 문장부터 그랬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거나 함께 무언가를 하려고 했지만(직장인에게 평일의 휴가란 얼마나 달콤하고 소중한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시작부터 끝나버렸다고 느낀 부부의 휴가.
결국
'하루 잘 쉬었다.
아무 데도 안 가고 쉬는 것도 괜찮네.'
하고 끝나버린 휴가. 그런 휴가를 한두 번 이상 보내본 사람들이라면 아, 하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이야기다.

「이혼을 결정한 뒤 그녀와 나는 우리 관계가 왜 이렇게 되었나, 누구의 책임이 더 큰가, 고민할 겨를도 없이 살던 집은 어떻게 하고 물건을 어떻게 나누고 앞으로 어디에서 살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빨리 혼자가 되고 싶은데 한집에 묶여 있어야 하는 현실이 갑갑했다. 중개업소에 집을 내놓고 팔리는 대로 즉시 돈을 나누는 것만이 해결책인 것 같았다. - <이후의 삶> 중에서, p144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이혼을 앞두고 있다면 저런 고민을 하는 게 당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책임이 크고, 마음이 아프고,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이라도 잘 살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어쩐지 더 현실적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갑작스럽게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주인 때문에, 한 해의 마지막 날 집을 보러 다녀야 하는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 <에트르>는 이미 다른 작품집에서 한 번 읽은 소설이었지만, 다시 읽었다.
어쩐지, 이 소설집 속에서 더 잘 어울리는 듯한 소설이었다.

일곱 살 첫째와 5개월 둘째를 데리로 떠났던 1박2일의 짧은 휴가 끝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더운 날씨에 힘들다 수시로 징징거리는 두 딸, 별일 없었지만 그런 아이들 틈에서 괜히 심드렁해져 버린 우리 부부. 잘 놀고 왔다, 집에 돌아와 널브러져 누우면서 던지는 의례적인 말(물론 진심도 포함된), 늦은 밤 내일 출근 걱정을 하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

소설이 살아내는 현실과,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내 삶, 어쩐지 너무 재미없는 거 아니야 괜히 볼멘소리를 내뱉는 밤.

다, 작가의 소설 탓이다.
그러니, 버티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현실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들려주길.
들리지도 않을 투정을 부리는 밤. 그렇게 나의 하루와 헤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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