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터 Littor 2016.12~2017.1 - 3호 릿터 Littor
릿터 편집부 지음 / 민음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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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취향의 문제 일테지만,  잡지를 펼치고 나면 제일 먼저 관심 가는 분야의 글을 찾아 읽게 된다.
순서대로 읽는 일이 좀처럼 되지 않는 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면 때론 중간중간 놓치게 되는 글도 있기 마련이지만 그럼 어때, 다음에 또 찾아 읽으면 되지. 하고 넘기기도 한다.

지난 호에서 황인찬 시인의 인터뷰가 너무 좋아서 이번 호를 펼치면서 역시 인터뷰 페이지를 먼저 펼쳤다.
배우 박정민과 작가 김숨의 인터뷰.
누가 더 좋다라고 할 것 없이 역시 둘 다 좋았다. .
릿터 2호와 3호를 읽고 나서 알게 된 매력인데, 인터뷰를 통해 한 사람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영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활자화 된 인터뷰를 읽고 난 뒤에 더욱 더.
그전에  인터뷰라는 형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뻔한 질문, 예상되는 대답들이 대부분이기도 했고 작품에 대한 인터뷰 역시 그냥 그 작품으로  느끼고 싶었다.

릿터를 통해 읽으면서 본 인터뷰들은 활자화 된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김숨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아, 내가 작가의 작품을 어려워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아.
이 작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아우라가 크게 느껴진다. 깊은 우물 하나를 품고 사는 것 같다. 온 몸으로 소설을 쓰는 것만 같다.

이번호 주제는 랜선-자아
"랜선-자아들의 목소리 덕분에 일말의 가능성이 생겼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삭제되지 않는다. 랜선의 세계에서 삭제는 무의미하다. 없던 일이 될 수 없다. 랜선-자아들이 랜선 밖 타자들의 변화를 일으켰다.p3"

나 역시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열심히 한다.
'나'를 기록하는 방식이지만 때론 아니 종종 '나'가 중심이 아닌 '타인'이 중심이 되는 글을 올릴 때가 많다.
타인이 나를 바라보도록 글을 올리고, 댓글을 확인하고, 좋아요가 눌린 수를 확인한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공유하고, 좋아하고, 댓글을 달면서 마치 오프라인에서 친근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인 듯 착각하기도 한다. 때론 사진 한장을 올리고 불안해하거나 , 바로 삭제해버리기도 하고.
그런면에서 나의 자아는 굉장히 '소극적'인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읽으니 이번 호의 주제와 글들이 꽤 흥미로웠다. 조금 더 자기 검열이 생길 것도 같지만.

리뷰 코너에선 다행이 대부분 읽은 작품이라 이해와 공감도가 높아서 좋았고,  김금희 작가의 단편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는 단연 좋았다. 안태운 시인의 <이 모든 것이 여름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역시 기억에 남는다.

소설과 시, 리뷰, 인터뷰, 산문 어느 것하나 놓치기 아깝다. 
아직 읽지 못한 한 두 편의 글은 아껴 읽을 생각이다.

저는 인간인 저 자신의 의지를 그렇게 신뢰하지 않아요. 인간인 저의 의지라는 것이 늦여름 잠자리의 날개만큼 얇고 나약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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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 스트롱 - 어떻게 더 강인하게 일어설 수 있는가
브레네 브라운 지음, 이영아 옮김 / 이마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2017년을 시작하면 내가 올 한 해 품고 가고 싶은 키워드 몇 가지를 정했다.
'꿈' '행복' '자존감' '당당함' '열정' '사랑' '공감'

삽십 대가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자존감의 상실이었다. 내가 늘 부족한 것 같고, 남들은 다 잘난 것 같고, 나보다 다 잘 사는 것 같고, 나는 일도, 가정에서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 같은 감정들.
간혹 신랑과 감정이 상할 때도 스스로 움츠러들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하기도 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꾸 위축 되는 것 같았다. 그 마음에서 제일 먼저 벗어나고 싶었다.

지난 한해는 그런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한 한해였다. 다행이 책을 통해, 혼자만의 명상을 통해, 아이를 통해 많은 것을 치유받았다. 그러면서 누구보다 '나'를 가장 높은 위치에 놓고 살아가리라 굳게 마음 먹었다.

이 책 <라이징스트롱>을 읽으면서 '강인함'에 대해 생각했다. 사전에서는 '억세고 질기다'라고 나와 있다. 풀어서 말하면 ,
'어떻게 하면 억세고 질기게 나의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어떤 문제에 부딪칠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확이 어떤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내 감정을 정확히 알고, 내 스스로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려는 마음을 갖는 첫번째 단계가 시작되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 된다고 믿는다. 시작부터 멈칫거리다 망쳐버린 일이 대부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내 마음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사랑받지 못할까봐' 혹은 '남겨질까봐' 였던 것 같다. 내가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표현하는 일이 '나'를 더 힘들거나 외롭게 만들까봐. 바보같은 말이지만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상태로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지금은 나아졌다고 믿지만 어쩌면 아직도 그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도 모르겠다.

내 감정을 느끼고, 그런 감정을 만들어 내는 나와 싸우는 일이 내겐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 스스로 진실은 저 너머에, 나는 그냥 그럭저럭 내 삶이 버텨낼 수 있는 현실에 발딛고 서면 된다고 참고, 모르는 척 하던 삶이었다.

이 책은 읽으면서 반성, 후회를 지나 다시 한 번 내가 새긴 나의 다짐을 돌아보게 됐다.
'나를 믿자. 나를 먼저 사랑하자' 라는 다짐.

실패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후회의 가치다. 후회는 변화와 성장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장 강력하게 일깨워 주는 감정으로, 독자적이기 보다는 보통 다른 것들이 한 묶음처럼 따라다닌다. 후회는 공감과 상관관계에 있으며, 용기를 불러내고 지혜로 향하는 길이 된다. 모든 감정이 그렇듯 후회 역시 건설적으로 혹은 파괴적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후회를 무조건 묵살해 버리겠다는 건 잘못되고 위험한 생각이다. '후회없다'라는 말은 용감하게 산다는 뜻이 아니라 반성 없이 산다는 의미다. 후회하지 않고 산다는 건 배울 것도, 바로 잡을 것도, 더 용감하게 살 수 있는 기회도 없다고 믿는 것이다. p262

늘 후회하는 삶을 산다고, '나는 늘 왜 이렇게 살지' 자책했던 시간들에 대한 위로를 받은 듯 했다. 반성하면서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의지를 가졌었다고 스스로 위로하게 되기도 했다. '후회 없다'는 말은 용감하게 산다는 뜻이 아니라 반성없이 산다는 의미다, 라는 문장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아마도 우리는 용기내지 못한 일을 가장 후회할 것이다. 용감하게 더 큰 친절을 베풀지 못하고, 용감하게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고, 용감하게 감정을 말하지 못하고, 용감하게 경계를 정해 놓지 못하고, 용감하게 자기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한 일을 후회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후회에서 공감이 생겨나기도 한다. 내가 친절하거나 너그럽지 못했던 때, 미움받을까 봐 두려워 지켜 줘야 할 사람을 지켜주지 않았던 때를 떠올리면 깊은 후회를 느끼지만,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가치관을 거스르며 사는 건 내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것이 바로 후회라는 점이다. 모험을 하지 않았다는 후회는 나를 더 용감하게 만들었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망신시키고 탓했다는 후회는 나를 더 신중하게 만들었다. 가끔은 가장 불편한 배움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p264

더 열심히 후회하고, 더 열심히 깨달으며 살아야겠다. 후회하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로 인해 좀 더 발전해 나가고 있다고 믿어야 겠다.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직접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고, 질문하고, 인지할 수 있는 페이지들이 마련되어 있다. 실제로 페이지들 마다 적혀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보다가 잠시 멈칫거리기도 했고, 한 문장도 적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좋았다.

새해, 새로운 다짐이, 자극이, 동기부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슬쩍 권해 본다. 이 책 추천사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이 책은 질척대는 삶에서 크게든 작게든 당신을 한 발 꺼내 줄 것이다(아마존)' 이 문장에 격하게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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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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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위내시경 중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결과는 열흘이 지나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열흘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많이 불안했고 우울했다.
일어나지 않은 나쁜 가정을 하면 스스로를 괴롭혔다.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아직 주변에 가장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나를 포함한)가 죽는 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아프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올해가 가기 전에 읽고야 말았다. 지금 나는 두려움보다 존경과 애정이 가득한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폴과 그의 아내 루시를 향해.


-    루와 나는 병원 침대에 함께 누웠다.
     루시는 마치 대본이라도 읽듯 조용히 물었다. "진단이 바뀔 가능성이 있을까?"
     "아니."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마치 젊은 연인들처럼 서로를 꼭 끌어 안았다. 우리 부부는 지난 한 해 동안 내 몸 속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지 않나 의심하면서도 그것을 사실로 믿거나 심지어 입밖에 내는 것조차 피해왔다. p20

이 책의 시작은, 아니 시작부터 마음을 쿵, 하고 울렸다.

남편의 암진단 결과를 두고 묻는 아내의 목소리, 아니라도 대답하는 남편의 목소리와 표정을 상상했다. 물론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지만.

주인공 폴 칼라니티는 촉망받는 의사였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의학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의사로서 성공이 보장된 듯 보였다. 그리고 그는 아직 젊었다. 폐암 4기 진단을 받았을 때, 그는 고작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을 뿐이었다. 삶과 죽음을 예상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 책은 1부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2부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 시절의 폴과, 건강했던 시절의 폴, 의사가 되기까지의 폴의 이야기와 폐암 진단을 받은 뒤 폴의 이야기로.

의사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죽음을 마주한 경험이 많았기때문에 죽음이 덜 두려웠을까. 그렇진 않았을것이다.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더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고통, 마지막 순간, 희망을 갖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조차 너무 잘 알아서 더 절망적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의사로서 포기하지 않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한 여자의 남자로 최선을 다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문장마다 슬픔과 두려움을 꾹꾹 참은 듯한 마음이 느껴져 읽으면서 더 먹먹해졌는지도 모르겠다.

-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작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p161

<<숨결이 바람 될 때>>는 폴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계획대로 완성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이 책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는 폴. 그가 원했던 그 책 역시 그가 떠난 뒤에 홀로 남겨졌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의 딸 케이디가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도 흠뻑 눈물을 흘리고 난 뒤에 자랑스럽게 말하지 않을까. "아빠 너무 멋지다"라고.  그의 책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 네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졌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p214

그의 아내 루시 생각이 많이 난다.
남편은 8개월 된 딸 아이 케이디를 남겨두고 자신과 아이를 떠났다.
그리고 이제 자신과 딸 아이는 남겨진 자의 몫을 열심히 살아내야 할 터였다. 그 마음은 두렵지 않았을까.
여전히 두렵지는 않을까. 남겨진 자를 더 걱정하는 건 내가 아직 이곳에 남겨져 있기 때문일까.

이 책의 끝에는 아내 루시의 에필로그가 담겨있다. 폴의 글 만큼이나 마음에 잔잔함 감동을 주는 글이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고(아니 수시로 흔들렸겠지만 꿋꿋하게) 폴을 지켰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이제 아이와의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마음 깊은 곳으로 부터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겠다는 폴의 결단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증명할 뿐 아니라, 그의 인생 자체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폴은 평생 죽음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죽음을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결국 그는 그 일을 해냈다.
나는 그의 아내이자 목격자였다. p264

루시가 쓴 에필로그의 마지막을 오래 읽는다.  잊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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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 개정판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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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러고 보면 사랑은 바보 같은 짓이에요? 그렇죠? 제대로 되는 법이 없잖아요?"
" 왜, 제대로 되기도 하지. 하지만 노력을 해야지."
"어떻게 노력을 해요?"
"조금 더 애를 써야지. 매일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해. 자기 자신이 될 용기를 가져야 하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결심을 해야지......" p215-216

결혼을 한 뒤에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그 중에서도 크게 달라진 점을 꼽는다면 드라마와 연애소설을 읽을 때의 느낌일 듯 하다.
연애 시절에는 모든 드라마가, 영화가, 연애소설이 나의 이야기 같고 감정이입이 되더니 결혼한 뒤에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 인 듯, 그저 동경하 듯 보게 되었다. 어차피, 이젠 내겐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잖아,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를 처음 읽었던 2009, 아직 서른이 되기 전, 결혼도 하기 전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히려 이 소설은 결혼 전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 다시 읽으니 훨씬 몰입도가 높아지고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는 것. 아마도 소설의 큰 배경이 되는 남편이 아내를 떠난 뒤, 남겨진 아내가 느끼는 상실감과 고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을 향한 분노, 남겨진 아이들과 자신의 상황에 절망하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하자 이 소설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남편이 떠났다. 그것도 다른 여자를 사랑해서.
여자에게는 두 아이만 남았다. 앞으로 자신이 책임져야 할.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보내고 여자는 절망했다. 자신이 보잘것 없이 느껴져 끝없이 감정의 추락을 경험하고 있었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금연을 결심하고 오랫동안 굉장한 의지력을 보여주다가도, 어느 겨울날 아침 다시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추위를 무릎쓰고 십리 길을 걸어 가는 것, 혹은 어떤 남자를 사랑해서 그와 함께 두 아이를 만들고서도 어느 겨울날 아침 그가 나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미안해, 내가 실수를 했어."하고 말하는 걸 듣는 것, 그런 게 인생이다. p42

그런 절망 스러운 순간에 여자를 보듬어 준 건, 무뚝하고 정없게만 느껴졌던 시아버지였다.

이 소설은 자신의 며느리를 떠나버린 아들을 대신 해 시아버지가 며느리와 손자들을 시골로 데리고 내려가면서 시작된다. 처음은 어색하고 삐걱거렸다. 시아버지는 여전히 무뚝뚝했고, 편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골집에서도 한동안 거리감을 느꼈다. 그 순간, 시아버지의 고백이 이어졌다.
평생, 다른 여자를 사랑했었다는 믿기 힘든 고백.

이제 소설은 여자의 이야기보다 시아버지의 고백 쪽에 무게가 실린다.
자식들이 있고,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 우연히 만난 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 오랜 시간 흔히 말하는 불륜을 저질러 왔다는 것. 여자는 믿기 힘든 그 이야기에 점차 빠져든다. 그리고 조금씩 공감하고(때로 분노하면서도), 어느 부분에서는 이해하는 듯도 보인다. 시골집을 떠나기 전날 밤, 여자는 밤새 시아버지의 사랑이야기를 듣는다.

남자(시아버지)의 오래 된(이제는 추억으로 남은) 사랑이야기는 애절했다.
독자는(나는) 점점 혼란을 느낀다. 분명 분노해야하는데, 어쨌든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 불륜을 저질렀으니 응당 그 죗값을 치뤄야해, 하고 단호해야하는데 좀처럼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용기. 우리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은 그런 용기를 내야 돼. 오로지 자기 혼자서 자신과 맞서야 할 때가 있는 거라고. '잘못을 저지를 권리', 말은 간단하지. 하지만 누가 우리에게 그걸 주겠어? 아무도 없어. 있다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야.
나는 나 자신에게 그런 권리를 주지 않았어....... 나 자신에게는 어떤 권리도 부여하지 않았지. 의무만 부과했을 뿐이야. 그래서 이렇게 답답한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p99


남자의 말 "조금 더 애를 써야지. 매일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해. 자기 자신이 될 용기를 가져야 하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결심을 해야지......"이 자꾸 쓸쓸하게 마음을 맴돈다.
남자는 결국, 아내와 자식 곁에 남았다. 온전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했던 여자와 이별을 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믿는 가족들에게 돌아와 아마도 미안한 맘을 담아 최선의 삶을 살아왔을 이젠 노인이 된 남자.
머리와, 마음이 다르게 이 인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평생을 답답하게 살고, 결국 답답한 늙은이가 되었다고 말하는 남자가 자신의 며느리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도 오래 마음을 울렸다.

너의 가치를 생각할 때, 네 삶은 지금보다 한결 나아져야 해. 네가 약간 억지스럽게 쾌활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면서 살았다는 거 알아. 그건 부당해. 너는 그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해. 지하철에서 수첩을 토닥이며 고민하는 삶, 동네의 작은 공원에서 매일같이 똑같은 이웃들과 마주치는 삶, 요컨대 너희 둘이 살았던 삶보다는 나아야해. p124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이 소설을 결국 내 입장(남편에게 버림받은 며느리)에서가 아니라 결국 너무나 사랑했지만 유부남이었고, 자신을 믿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포기하고 돌아와 최선의 삶을 살아가야했던 한 인간에 대한 입장으로 읽고 말았다.
누군가는 그래도 불륜은 불륜이지, 라고 말할테다. 누군가는 아 이소설 진짜 뭐 이래,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나면 이 쓸쓸한 이야기에, 그 쓸쓸함을 돋보이게 하는 작가의 문장들에 이미 빠져들고 난 뒤일 것이다.
"아버님은 그녀를 사랑하셨어요?"
라고 묻는 며느리에게
"그건 점선으로 이어진 삶이었다고 생각해...... 아무것도 없다가 무언가 있고, 다시 아무것도 없다가 무언가가 있고, 그러고 나면 또 다시 아무것도 없고 그랬어....... 그래서 세월이 아주 빨리 지나갔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일이 겨우 한 철밖에 지속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한 철도 아니고 그거 한 줄기 바람, 하나의 신기루였던 것 같아...... 우리에게는 일상의 삶이 빠져 있었어."라고 회상(고백) 할 수 밖에 없는 남자의 쓸쓸한 목소리.

사랑이 뭘까, 라는 물을 던질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
나라면 어땠을까, 내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해서 떠난다고 한다면. 혹은 다른 여자를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가정으로 돌아와 적어도 겉으로는 최선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을 본다면.... 이라는 가정을 수없이 던지게 했던 이야기.
참, 쓸쓸하다. 산다는 게. 사랑한다는 게. 라는 말을 읊조리게 했던 이야기.

남자(시아버지)의 사랑이야기를 다 들은 여자(며느리)가 어떤 위로를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더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곧 털고 일어났을거다. 밑바닥까지 내려갔을지는 몰라도 곧 다시 자신의 자리로, 자신의 삶으로 돌아왔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게 결국은 사랑의 힘이 아닐까. 결국엔 그러니까 모든 게 사랑으로 가능한 일이 아닌가.

"나는 '그래, 울자. 이번을 마지막으로 한바탕 오지게 울자. 눈물이 마르게 하자. 스펀지를 꾹꾹 눌러 짜듯이, 이 슬픈 몸뚱이에서 물기를 빼버리자. 그러고 나서 이 모든 것을 지난 일로 돌리자. 모든 걸 새로 시작하자.' 하고 생각했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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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들 창비청소년문학 76
김남중 지음 / 창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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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에겐 투와 함께 걷는 삼십 분을 위해 나머지 하루가 존재했다. 첫사랑은 폭풍처럼 오지만 드물게는 안개처럼 오기도 했다. 지니는 서로를 바라보며 폭주하는 기쁨보다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 안정감이 좋았다. p13

사랑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가장 큰 가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어느 성경구절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사랑을 하고,
사랑에 실패하지만 다시 사랑때문에 힘을 얻는 것이 사람.

그런 사랑을 봉쇄당한 사람들이 있다.
국가의 승인이 없이는 '사랑'도 '사랑에 동반되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사회.
그들은 정말, 사랑없이 살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이 소설, <해방자들>에 있다.

 

 창비 청소년 문학 76, 이라는 이 소설은 청소년소설로 국한 하기에 아쉬울 만큼 재미 있다.
청소년 문학이 뭐지. 청소년들을 위한 문학이라는 건가, 청소년들을 우선으로 하는 문학이라는 건가.
그런 구분이 굳이 필요없을 만큼 누구라도 이 소설에 빠져들 것이다.

다압이라는 곳에 사는 지니는 전수학교를 다니며 보육자격시험에 합격해 렌막으로 나가 사는 게 꿈이자 희망이다.
다압에서는 희망도 없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스무살도 되기 전에 애 엄마가 되거나, 동전 몇 푼을 벌기 위해 평생 힘들게 힘들게 일하거나, 밤 골목에서 남자들의 팔에 매달리는 하루하루(p33)'를 살아가게 될터였다. 지니는 50등 차이로 보육교사 시험에 떨어졌지만 결국 밀입국을 해서라도 렌막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곳엔 이미 직업 시험에 통과에 렌막으로 간 사랑하는 '투'도 있었다. 그곳에만 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렌막은 국가의 승인을 받은 이들만 아이를 낳고, 양육 교육을 받은 뒤에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인 감정, 사랑을 위해 어떤 행위도 용납되지 않았다. 렌막에 사는 사람들은 일 년에 한번 의무 검진을 받아야 했고 의무 검진에는 복합 예방 접종 주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을 중성화 시키는 성분이 들어 있는 주사. 렌막에서 나고 자란 '소우'는 지나치게 주사를 두려워 한 탓에 갖가지 방법을 동원에 주사를 맞지 않았다. 그래서 소우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성적인 충동'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지니는 렌막에서 사랑하는 '투'를 만날 기대에 부풀었지만 다시 만난 투는 예전에 서로 사랑하던 투가 아니었다. 새로운 사회에 적응한 투(이미 복합 예방 주사를 맞았을 것)는 지니에게 좋은 친구로 남자고 말하고 지니는 절망한다.

이렇게 보면, 이 소설은 단순히 사랑을 제한 당하는 사람들이 사랑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소설로 비춰질수 있지만 그 뒤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국가에 대항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시민들의 이야기가 작가의 필력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최근에 읽었던 윤이형의 <졸업>이라는 소설에서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합격증을 받아야 하는 소재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국가는 철저한 기준에 의해 합격한 이들에게만(대부분 10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자격을 주었고, 그렇게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국가가 양육을 책임지는 식이었다.

거기에 '사랑'은 철저히 배제된다.
결국 국가는 국민들의 '사랑'까지 통제하며 권력을 휘두른다. 무시무시한 일이다.

이 소설은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다. 지니와 소우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을 맺을지 궁금해서 쉽게 중간에 멈출 수 없었다. 힘없는 국민이 부조리한 국가에 대항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결국 버텨낼 수 있을지 끝까지 긴장하면서 읽어 내려 갔다.

"복합 예방 접종을 맞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렌막 시민의 삶으로 돌아갈수 있다. 학교에 다니고, 운동을 하고, 친구들과 놀고, 능력만 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삶, 누구라도 꿈꾸는 삶이다. 스파다인에 다녀온 지금, 소우는 시민의 삶이 선택된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얻으려는 그 혜택을, 소우는 단 하나만 포기하면 다시 누릴 수 있다. 그 하나가 무엇인지 생각하자 소우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p209'

'그 하나' 때문에 사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포기해야 평범하게 살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 였다면 난 아마 '소우'라는 캐릭터에 흠뻑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 멋진 소년.
그리고 아름다운 소녀 지니. 그들의 미래가 절대 국가와 타협하지 않고도, 멋지고 당당하게 펼쳐지길 바란다.

이 소설을 읽는 청소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뭐가 중요한지 잘 아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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