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 개정판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그러고 보면 사랑은 바보 같은 짓이에요? 그렇죠? 제대로 되는 법이 없잖아요?"
" 왜, 제대로 되기도 하지. 하지만 노력을 해야지."
"어떻게 노력을 해요?"
"조금 더 애를 써야지. 매일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해. 자기 자신이 될 용기를 가져야 하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결심을 해야지......" p215-216

결혼을 한 뒤에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그 중에서도 크게 달라진 점을 꼽는다면 드라마와 연애소설을 읽을 때의 느낌일 듯 하다.
연애 시절에는 모든 드라마가, 영화가, 연애소설이 나의 이야기 같고 감정이입이 되더니 결혼한 뒤에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 인 듯, 그저 동경하 듯 보게 되었다. 어차피, 이젠 내겐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잖아,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를 처음 읽었던 2009, 아직 서른이 되기 전, 결혼도 하기 전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히려 이 소설은 결혼 전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 다시 읽으니 훨씬 몰입도가 높아지고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는 것. 아마도 소설의 큰 배경이 되는 남편이 아내를 떠난 뒤, 남겨진 아내가 느끼는 상실감과 고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을 향한 분노, 남겨진 아이들과 자신의 상황에 절망하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하자 이 소설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남편이 떠났다. 그것도 다른 여자를 사랑해서.
여자에게는 두 아이만 남았다. 앞으로 자신이 책임져야 할.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보내고 여자는 절망했다. 자신이 보잘것 없이 느껴져 끝없이 감정의 추락을 경험하고 있었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금연을 결심하고 오랫동안 굉장한 의지력을 보여주다가도, 어느 겨울날 아침 다시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추위를 무릎쓰고 십리 길을 걸어 가는 것, 혹은 어떤 남자를 사랑해서 그와 함께 두 아이를 만들고서도 어느 겨울날 아침 그가 나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미안해, 내가 실수를 했어."하고 말하는 걸 듣는 것, 그런 게 인생이다. p42

그런 절망 스러운 순간에 여자를 보듬어 준 건, 무뚝하고 정없게만 느껴졌던 시아버지였다.

이 소설은 자신의 며느리를 떠나버린 아들을 대신 해 시아버지가 며느리와 손자들을 시골로 데리고 내려가면서 시작된다. 처음은 어색하고 삐걱거렸다. 시아버지는 여전히 무뚝뚝했고, 편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골집에서도 한동안 거리감을 느꼈다. 그 순간, 시아버지의 고백이 이어졌다.
평생, 다른 여자를 사랑했었다는 믿기 힘든 고백.

이제 소설은 여자의 이야기보다 시아버지의 고백 쪽에 무게가 실린다.
자식들이 있고,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 우연히 만난 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 오랜 시간 흔히 말하는 불륜을 저질러 왔다는 것. 여자는 믿기 힘든 그 이야기에 점차 빠져든다. 그리고 조금씩 공감하고(때로 분노하면서도), 어느 부분에서는 이해하는 듯도 보인다. 시골집을 떠나기 전날 밤, 여자는 밤새 시아버지의 사랑이야기를 듣는다.

남자(시아버지)의 오래 된(이제는 추억으로 남은) 사랑이야기는 애절했다.
독자는(나는) 점점 혼란을 느낀다. 분명 분노해야하는데, 어쨌든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 불륜을 저질렀으니 응당 그 죗값을 치뤄야해, 하고 단호해야하는데 좀처럼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용기. 우리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은 그런 용기를 내야 돼. 오로지 자기 혼자서 자신과 맞서야 할 때가 있는 거라고. '잘못을 저지를 권리', 말은 간단하지. 하지만 누가 우리에게 그걸 주겠어? 아무도 없어. 있다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야.
나는 나 자신에게 그런 권리를 주지 않았어....... 나 자신에게는 어떤 권리도 부여하지 않았지. 의무만 부과했을 뿐이야. 그래서 이렇게 답답한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p99


남자의 말 "조금 더 애를 써야지. 매일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해. 자기 자신이 될 용기를 가져야 하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결심을 해야지......"이 자꾸 쓸쓸하게 마음을 맴돈다.
남자는 결국, 아내와 자식 곁에 남았다. 온전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했던 여자와 이별을 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믿는 가족들에게 돌아와 아마도 미안한 맘을 담아 최선의 삶을 살아왔을 이젠 노인이 된 남자.
머리와, 마음이 다르게 이 인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평생을 답답하게 살고, 결국 답답한 늙은이가 되었다고 말하는 남자가 자신의 며느리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도 오래 마음을 울렸다.

너의 가치를 생각할 때, 네 삶은 지금보다 한결 나아져야 해. 네가 약간 억지스럽게 쾌활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면서 살았다는 거 알아. 그건 부당해. 너는 그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해. 지하철에서 수첩을 토닥이며 고민하는 삶, 동네의 작은 공원에서 매일같이 똑같은 이웃들과 마주치는 삶, 요컨대 너희 둘이 살았던 삶보다는 나아야해. p124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이 소설을 결국 내 입장(남편에게 버림받은 며느리)에서가 아니라 결국 너무나 사랑했지만 유부남이었고, 자신을 믿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포기하고 돌아와 최선의 삶을 살아가야했던 한 인간에 대한 입장으로 읽고 말았다.
누군가는 그래도 불륜은 불륜이지, 라고 말할테다. 누군가는 아 이소설 진짜 뭐 이래,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나면 이 쓸쓸한 이야기에, 그 쓸쓸함을 돋보이게 하는 작가의 문장들에 이미 빠져들고 난 뒤일 것이다.
"아버님은 그녀를 사랑하셨어요?"
라고 묻는 며느리에게
"그건 점선으로 이어진 삶이었다고 생각해...... 아무것도 없다가 무언가 있고, 다시 아무것도 없다가 무언가가 있고, 그러고 나면 또 다시 아무것도 없고 그랬어....... 그래서 세월이 아주 빨리 지나갔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일이 겨우 한 철밖에 지속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한 철도 아니고 그거 한 줄기 바람, 하나의 신기루였던 것 같아...... 우리에게는 일상의 삶이 빠져 있었어."라고 회상(고백) 할 수 밖에 없는 남자의 쓸쓸한 목소리.

사랑이 뭘까, 라는 물을 던질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
나라면 어땠을까, 내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해서 떠난다고 한다면. 혹은 다른 여자를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가정으로 돌아와 적어도 겉으로는 최선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을 본다면.... 이라는 가정을 수없이 던지게 했던 이야기.
참, 쓸쓸하다. 산다는 게. 사랑한다는 게. 라는 말을 읊조리게 했던 이야기.

남자(시아버지)의 사랑이야기를 다 들은 여자(며느리)가 어떤 위로를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더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곧 털고 일어났을거다. 밑바닥까지 내려갔을지는 몰라도 곧 다시 자신의 자리로, 자신의 삶으로 돌아왔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게 결국은 사랑의 힘이 아닐까. 결국엔 그러니까 모든 게 사랑으로 가능한 일이 아닌가.

"나는 '그래, 울자. 이번을 마지막으로 한바탕 오지게 울자. 눈물이 마르게 하자. 스펀지를 꾹꾹 눌러 짜듯이, 이 슬픈 몸뚱이에서 물기를 빼버리자. 그러고 나서 이 모든 것을 지난 일로 돌리자. 모든 걸 새로 시작하자.' 하고 생각했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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