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위내시경 중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결과는 열흘이 지나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열흘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많이 불안했고 우울했다.
일어나지 않은 나쁜 가정을 하면 스스로를 괴롭혔다.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아직 주변에 가장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나를 포함한)가 죽는 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아프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올해가 가기 전에 읽고야 말았다. 지금 나는 두려움보다 존경과 애정이 가득한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폴과 그의 아내 루시를 향해.


-    루와 나는 병원 침대에 함께 누웠다.
     루시는 마치 대본이라도 읽듯 조용히 물었다. "진단이 바뀔 가능성이 있을까?"
     "아니."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마치 젊은 연인들처럼 서로를 꼭 끌어 안았다. 우리 부부는 지난 한 해 동안 내 몸 속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지 않나 의심하면서도 그것을 사실로 믿거나 심지어 입밖에 내는 것조차 피해왔다. p20

이 책의 시작은, 아니 시작부터 마음을 쿵, 하고 울렸다.

남편의 암진단 결과를 두고 묻는 아내의 목소리, 아니라도 대답하는 남편의 목소리와 표정을 상상했다. 물론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지만.

주인공 폴 칼라니티는 촉망받는 의사였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의학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의사로서 성공이 보장된 듯 보였다. 그리고 그는 아직 젊었다. 폐암 4기 진단을 받았을 때, 그는 고작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을 뿐이었다. 삶과 죽음을 예상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 책은 1부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2부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 시절의 폴과, 건강했던 시절의 폴, 의사가 되기까지의 폴의 이야기와 폐암 진단을 받은 뒤 폴의 이야기로.

의사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죽음을 마주한 경험이 많았기때문에 죽음이 덜 두려웠을까. 그렇진 않았을것이다.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더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고통, 마지막 순간, 희망을 갖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조차 너무 잘 알아서 더 절망적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의사로서 포기하지 않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한 여자의 남자로 최선을 다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문장마다 슬픔과 두려움을 꾹꾹 참은 듯한 마음이 느껴져 읽으면서 더 먹먹해졌는지도 모르겠다.

-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작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p161

<<숨결이 바람 될 때>>는 폴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계획대로 완성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이 책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는 폴. 그가 원했던 그 책 역시 그가 떠난 뒤에 홀로 남겨졌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의 딸 케이디가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도 흠뻑 눈물을 흘리고 난 뒤에 자랑스럽게 말하지 않을까. "아빠 너무 멋지다"라고.  그의 책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 네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졌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p214

그의 아내 루시 생각이 많이 난다.
남편은 8개월 된 딸 아이 케이디를 남겨두고 자신과 아이를 떠났다.
그리고 이제 자신과 딸 아이는 남겨진 자의 몫을 열심히 살아내야 할 터였다. 그 마음은 두렵지 않았을까.
여전히 두렵지는 않을까. 남겨진 자를 더 걱정하는 건 내가 아직 이곳에 남겨져 있기 때문일까.

이 책의 끝에는 아내 루시의 에필로그가 담겨있다. 폴의 글 만큼이나 마음에 잔잔함 감동을 주는 글이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고(아니 수시로 흔들렸겠지만 꿋꿋하게) 폴을 지켰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이제 아이와의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마음 깊은 곳으로 부터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겠다는 폴의 결단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증명할 뿐 아니라, 그의 인생 자체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폴은 평생 죽음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죽음을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결국 그는 그 일을 해냈다.
나는 그의 아내이자 목격자였다. p264

루시가 쓴 에필로그의 마지막을 오래 읽는다.  잊고 싶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