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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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창가로 들긴 전, 어둠 속에 멍하니 누워 있는 기분.
알람이 울리기 전 일어나 조금은 느긋하게 아침을 맞이하는 흔치 않은 어느 날의 느낌.
우연히 오래전 헤어진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하곤 쿵, 쿵. 쿵 심장소리가 느껴지는 기분.
기억나지 않는 오래전 유년 시절로 한 발짝 다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그대로 오래 누워 있었다.
어쩌진 자꾸, 잊어버린 누군가가 떠오를 것 같았다. 그러다 정말 떠오르면 안 될 것 같아 아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상한 느낌이다.

오랜만에 전경린의 소설을 읽었다.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내내 읽으면서 그 소설들에 익숙해져서 인지 처음엔 '뭔가 올드 한 느낌이야'라고 생각했다.

이미지가 없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흐릿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흐릿하다고 표현한 건, 나빴다는 게 아니라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에 가까운 표현이다.
매일 단짠단짠한 음식만 먹다가 간이 심심한 반찬들로 채워진 한 끼 식사를 한 느낌.
담백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느낌.

한 번도 강렬하게 무언가를 원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 것 같은, 늘 있는 듯 없는 듯 흘러가는 대로 살았을 것 같은 나애와 그녀를 둘러싼 희도, 강, 연태, 도희, 상, 수호, 엄마, 오원 언니....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힘들지 않은, 무겁지 않은 가방을 메고 발길 닿는대로 걸어가는 여행이었다.
그러다 힘들면 길가 아무 데나 앉아 잠시 쉬어가는 여행이었다.
길이 끝날 것 같아 아쉬운, 막상 다 끝났을 땐 휴~ 다행이다 싶었던 여행.

소설은 나애의 유년 시절인 1970년대와 나애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201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아버지의 근무로 가족들이 모두 이사 가면서 어린 동생과, 공부해야 하는 오빠들 대신 친척 집에 맡겨졌던 나애. 유년의 결핍과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오랜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뒤에 엄마와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나애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졌다.

"너는 내가 죽어도 울지 않겠지?"
질문이 아니라 고백 같았다. 나는 엄마가 죽은 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나를 상상했다. 울지도 않고 그날을 보낼,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나를.
"그런 생각을 해요?"
"밤마다 너를 생각한다."
"왜요?"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불리한 해명을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울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어요."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식은 어떤 이유로든 결국은 울게 되는 것이다.
"사는 게 너무 지겨워서 밤마다 죽고 싶었다. 정말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은 몰랐다. 참 이상한 물건이지. 무슨 물건이 이렇게 오래 산다니. 아침마다 눈을 뜨면 내가 놀란다. 살아 있는 게 실망스러워."
늘 하는 타령이었다. 평생의 우울증과 결벽증이 말년에는 삶에 대한 염증으로 변했다. 지겨워서 못 살겠다면서 정돈과 청결과 노동과 사람의 도리에 대한 결벽증은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 p58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던 도희와, 상, 연태, 수호... 의지했던 이들은 한 명씩 떠나보내며 몸으로 체득한 이별의 감정은 성인 된 이후의 나애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강과의 헤어짐, 희도와의 만남과 헤어짐 역시 답답하지만, 아.. 나애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 묻고 싶은 게 있어. 나애, 너는 나를 정말로 원하지는 않는 거니?"
나는 당황했다. 정말로 원하는 것을 잃어버려본 사람에겐 무의미한 질문이었다. 사람은 대개 원하는 것을 갖는 게 아니라 주어진 것을 갖는다.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나는 무언가를 원하지 않는 대신 빚이든, 사람이든, 관념이든, 제도든, 조직이든, 나를 포획하려는 모든 것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남은 것은 내 호흡이 그리는 자유로운 곡선과 가벼운 일상과 우연, 약간의 일탈과 사치로 구성된 소박한 삶이었다. 세계라는 허상의 파도 위에서, 가능한 한 어디에든 갇히지 않고 하루하루 또박또박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했는지 모른다. 희도는 그런 때에 내게 왔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떨림도 없이. 내가 원하기 전에, 갈망하기 전에.
" 내가 원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p44

유년 시절에 몸에 새겨진 상처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까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지배한다는 건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생적으로 남겨진 흔적 같은 거니까. 어떻게 해도 벗어버리거나 떼어버리거나 잊어버릴 수 없는 거니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의 유년 시절을 떠올렸다.
아직 그리 오래 살진 않았지만, 나의 몸에 새겨져 있을 나의 유년의 상처와 기억들이 너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의 나와 사이좋게 잘 지내면 좋겠다. 가끔 투닥거리다가도 금세 화해하고 서로를 보듬어 주면 좋겠다.

"부모 자식 사이란 옳고 그른 것도 없이 그저 사람됨으로 감당하는 일인 거 같다. 예쁘게 감당하기도 하고 흉하게 감당하기도 하고. 자식에게는 그 관계가 가장 큰 시련이기도 하지. 나도 그게 참 힘들었지만." p223

세상에서 좀 더 선명하게 존재하기 위해서 완전히 낯선 장소에서 모든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걷다가 희귀한 수집품들이 나열된 작은 전시장들을 둘러보고, 음악이 흐르는 공연장의 어둠 속에 몸을 파묻고, 홀로 서점과 가게들을 기웃거리고, 틈틈이 차를 마시고, 자주 연착하는 기차나 버스를 타고 낯선 풍경 속을 지나가면서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거리를 정하고 후회와 고독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입장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안의 상충에서 불분명한 형체로 서식하는 어찌할 수 없는 필연성을 확인할 것이다. p242

자신의 고독을 받아들이고 침묵할 때 부유하는 여행이 끝나고 삶이 시작된다. 방과 몇 개의 사물을 소유하며 거기에 기대어 살듯, 사람은 고독에 기대어 자신의 삶에 정착한다. 그렇게도 완전한 자신만의 질서가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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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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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관리실에서는 동파로 인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으니 베란다 세탁기를 돌리지 말라고 방송을 하고 있다.
서울 어머님 댁은 계량기가 파손되어 교체를 하셨다 했고,
친정 엄마는 베란다에 놔두고 신경 못 쓴 사이, 양파며 사과가 죄다 얼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언니는, 너무 춥다며 어쩜 이렇게 춥냐며 오가는 길이 괴롭다고 하소연을 했다.

휴가 중인 나는 코에 바람 들어갈 일 없이 꼼짝도 않고 집 안에서 따뜻하게 이불 뒤집어 쓰고 뒹굴뒹굴하고 있으니 최강 한파라는 말을 체감하지 못하고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이불 돌돌 싸매고 침대에 기대 <<바깥은 여름>>을 다시 꺼내 읽는다.
작년, 책일 발간되자마자 구입해 첫 소설을 읽곤, 그대로 덮어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어쩐지 그땐, 다 읽고 나면 너무 우울해질 것 같았다. 그러고 싶지 않아서 나중에, 나중에 다시 읽자 했더랬다.

갑자기 왜 그 책이 눈에 띄었는지, 결국 책을 꺼내 와 첫 소설부터 다시 읽었다.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감정.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서 숨졌다. 오십이 개월. 봄이랄까 여름이란걸, 가을 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였다. 가끔은 열불이 날 만큼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웠지만 딱 그 또래만큼 그랬던,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제 부모를 안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던, 이제 다시는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아이였다. 무슨 수를 쓴들 두 번 다시 야단칠 수도, 먹일 수도, 재울 수도, 달랠 수도, 입 맞출 수도 없는 아이였다. 화장터에서 영우를 보내며 아내는 '잘 가'라 않고 '잘 자'라 했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양손으로 사진을 매만지며 그랬다. - <입동> 중에서.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이야기. 마치 너무 실제 같아서 읽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입동>은 이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 중 제일 처음에 실린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다음 소설로 넘어가기까지 몇 개월이 걸린 셈이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이 소설을 읽었다. 여전히 저 문단에서 멈칫. <입동>은 무리해서 대출을 받아 새 집으로 이사한 뒤 세 식구의 보금자리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찰나,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죽은 아이, 남겨진 부모, 어느 하나 안타깝지 않은 게 없지만 이 소설이 담고 있는 '남겨진 이들'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무엇보다 안타깝고, 아팠다.

<노찬성과 에반>,<건너편>,<침묵의 미래>,<풍경의 쓸모>,<가리는 손>,<어디로가고 싶으신가요> 여섯 편의 단편들 중 <건너편>,<침묵의 미래>,<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이미 다른 책을 통해 읽은 소설이었지만 다시 읽었다. 처음 읽을 때 좋았던 부분들은 여전히 좋았고, 다시 읽으니 새롭게 보이는 부분이 있어 더 좋았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이 묵직하다.
최강 한파라는 연일 계속되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집 안에서 따뜻한 공기만 느끼고 있는 나는,
안과 밖의 온도차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바깥은 여름>>은 바깥만 여름이라는, 안으로 들어오면 시릴 정도로 차가운 상실의 아픔,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를 잃은<입동>, 아끼던 개를 잃은<에반>, 오래 사귄 애인과 헤어지는<건너편>, 남편과 이혼하고 혼혈 아이를 혼자 키우는<가리는 손>, 남편을 잃은<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이들의 남겨진 삶에 대한 이야기를 어찌 담담하게 읽을 수 있을까.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남겨진 이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들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내 시선일지도 모르는>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감정이입이 자꾸 되면서.

다시 읽기를 잘했다. 천천히 읽기를 잘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을 다 읽었고, 모두 소장하고 있다. 그중 지금까지도 어떤 작품보다 <<달려라 아비>>라는 소설집을 애정 해왔다. 이제 그 자리를 <<바깥은 여름>>이 차지할 듯.

도희가 침착한 얼굴로 이수를 바라봤다. 오래전, 이수가 현관을 나설 때면 ‘저 사람 저대로 사라져버리면 어쩌지. 길 가다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가슴이 저렸던 기억이 났다.
- 이수야.
- 응.
-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 ......
-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건너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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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녹는 온도
정이현 지음 / 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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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진을 갈 때마다 의사는 물었다.
"아기는 잘 놀죠?"
태동이 활발하냐는 걸 묻는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나는 그때마다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 그런 듯도 하고, 제가 둔한 건지...." 늘 이렇게 얼버무렸다.
실제로도 그랬다.
첫아이 때는 조금만 물컹해도, 신기해~ 어머~ 꺄~ 호들갑이었다.
막달로 갈수록 쿵쿵 발차기 하는 힘이 세지는 걸 느끼면서 아, 내 뱃속에서 아기가 크고 있구나, 오롯이 느꼈다.

둘째는, 태동이 시작됐구나. 아.. 잘 때는 조금만 얌전해주면 참 좋겠다. 좀 편히 푹~ 자고 싶다. 하던 것 같다.

첫아이와, 둘째 아이를 받아들이는 온도가 내 스스로도 다르다는 걸 임신 기간 내내 느꼈다. 아니라고 했지만 실제로 그랬다. 내 앞에 있는 첫아이의 마음을, 첫아이의 감정의 온도를 신경 쓰는데 집중했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눠야 할 때, 때마다 그게 누군지에 딸 마음의 온도가 달라졌다. 정이현의 <<우리가 녹는 온도>>라는 글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본다.
나와 당신의 거리, 온도, 마음에 대하여.

 

 책을 펼치기 전까지 그냥 에세이인 줄 알았다. 그래서 딱 그만큼의 기대가 있었다.
예쁜 표지, 달달한 제목, 수록된 예쁜 사진들. 추운 날씨에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마음이 몽글거릴 것 같은 딱 그만큼의 기대.

열 개의 제목이 달린 열 편의 짧은 소설(혹은 산문)과 그들은, 나는, 우리는이라는 제목을 단 그만큼의 산문이 함께 실려 있는 독특한 구성의 이야기들이었다.
소설 같기도, 에세이 같기도 한 글들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기르던 동물과의 이별,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 헤어졌던 사람과 다시 만나는 순간, 우정, 그 순간순간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온도들. 나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 옆의 누군가를, 나를 스쳐갔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글들이었다.

따뜻하게 이불 덮고 누워 천천히 읽기 좋은 글들.
너무 춥지 않게, 손 시리지 않게 다독여 주는 글들.
분명 작가의 소설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듯(간혹, 아 이런 말랑말랑, 멜랑꼴리하게 만드는 글들 싫어! 하는 사람이라면 과감하게 패스하시길).

은이 떠나고 나서 얼마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뎠다. 그러다 문득 멍해지는 순간이 왔다. 길을 걷다 풀린 운동화 끈을 묶거나,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칫솔질을 하다 말고 그는 갑자기 동작을 멈추곤 했다. 평온해서,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아서. 심장을 옥죄어오던 격렬한 통증이 어느새 순해져 버려서.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계절이 바뀌었을 뿐인데.
이윽고 그녀의 통증에 생각이 미쳤다. 그녀도 아팠을 것이다. 아프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는 분명히 믿었다. 먼저 떠난 사람이 덜 아플 거라는 추측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뒤늦게 그것을 생각했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확신이었다. 아팠더라도 너무 심하게는 아프지 않았기를, 이제쯤에서 그녀의 마음도 누긋해져 있기를 바랐다. 그 기원이 너무 뒤늦어서 가슴 저렸다.
- <괜찮다는 말, 괜찮지 않다는 말> 중에서. p36

사랑에 대해, 사람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에게서 ‘무슨 말을 듣든 다 괜찮다고 또다시‘ 말할 거라면, 다시 시작하지 말라고. 괜찮을 땐 괜찮다는 말을, 괜찮지 않을 땐 괜찮지 않다는 말을, 여하튼 언제나 당신의 진심을 말하라고.
서로에게 관여하지 않는 ‘좋은 관계‘란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 <괜찮다는 말, 괜찮지 않다는 말> 중에서. p44

상대방이 싫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그 옆의 내가 싫어서 도망치는 경우도 있다. 그 사람 옆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고 어색할 때, 혹은 그 모습이 스스로도 생각지 못하던 방향으로 변해갈 때 우리는 이별을 결심한다.
일상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곤 하는 습관이 새로 생겼다고 해서, 일 년 후의 삶이 까마득한 암흑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그게 모두 ‘그 사람과의 관계‘ 탓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내 탓‘이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과는 이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과 이별한다. 가방 가까운 옆 사람과 헤어지면 내가 조금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너를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어‘라는 말과 ‘미안해‘라는 말 사이에 생략된 문장이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 ‘나는 나를 더 사랑해 혹은 ‘나는 나를 더 사랑하고 싶어.‘
- <지상의 유일한 방> 중에서. p93

결혼이란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생활 속으로 돌입한다는 뜻이다. 그 안에서 범속한 일상들이 끝없이 되풀이된다.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생활비를 벌어야 하고, 공동의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 그 세월의 더께 속에서, 실은 두 사람이 최초에 무척 특별한 감정으로 맺어졌던 관계임을 상기할 여력은 사라진다. 욕실의 타일 줄눈이 더러워지는 것처럼, 어떤 일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주 서서히 일어난다.
삶의 무게가 두 사람의 어깨에 고르게 배분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때론 내 어깨가 무겁다는 것보다 저 사람의 어깨가 나보다 가벼워 보인다는 사실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하루하루 살아가느라,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차가운 커피를 좋아하는지 뜨거운 커피를 좋아하는지 낱낱이 기억할 여력은 없을지도 모른다. 차가운 커피와 뜨거운 커피 따위가 도무지 뭐가 중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무엇이 치명적인 것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것인가를 누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 <커피 두 잔> 중에서. p125

가족 사이의 문제 역시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나 역시 자꾸 잊는다. 보통의 인간관계라면 섭섭하고 속상하고 상처받았다가도 너무 어렵지 않게 털어내거나 잊는데, 혈육 사이의 문제 앞에선 유독 다른 상태가 되곤 한다. 더 섭섭하고 더 속상하고 더 상처받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꾹 참다가 엉뚱한 순간에 엉뚱한 방식으로 폭발해버린다.
- <장미> 중에서. p154

‘위로‘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위로를 하는 쪽이라면 차라리 낫다. 그러나 위로를 받는 일은 번번이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오래도록 나는 위로받을 필요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괜찮은 척하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 정말로 곧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픈 일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행동하는 동안 시간이 지나갔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통증은 혼자 견딜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진짜 그랬을까? 모든 통증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어떤 것은, 아주 작고 단단하게 뭉쳐져 가슴 맨 밑바닥에 남았다.
- <눈+사람> 중에서. p166

사라진 것들은 한때 우리 곁에 있었다.
녹을 줄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눈으로 ‘사람‘을 만든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하는 것처럼.
곧 녹아버릴 눈덩이에게 기어코 모자와 목도리를 씌워주는 그 마음에 대하여, 연민에 대하여 나는 다만 여기에 작게 기록해 둔다.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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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간질간질
강병융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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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질간질, 간지러워.
어딘지 잘 모르겠는데 참을 수가 없어. 벅벅 긁으면 좀 괜찮아질 것도 같은데, 어딘지.. 당최 어디 가 간지러운 건지 정확히 모르겠어. 아 - 그래서 미칠 것 같아.

소설을 읽는 내내 정말 어딘지 모르게 간질간질 거렸다면 "에이~ 거짓말" 이렇게 말하겠지.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
근데 진짠데. 설명할 수 없지만- 어딘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간지러웠는데, 실은 제목을 읽을 때부터였던 것 같아. 간질거린 건.

눈 하나쯤 더 있다고 변하는 건 없더라고요. 심지어 눈이 네 개, 다섯 개 더 생긴다 해도 달라질 건 없어요. 눈은 그냥 눈일 뿐이니까요. p213

『손가락이 간질간질』은, 유쾌한 소설이다. 잘 읽히는 소설이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고, 그리 길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은 소설이다.
그런데, 다 읽고 난 뒤부터 예상치 못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하하, 재밌게 잘 읽어왔는데, 어라, 내가 지금까지 뭘 읽은 거지, 잘 못 읽은 건가. 다시 앞으로 앞으로 페이지를 더듬어 가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엔 '에라, 모르겠다. 그게 뭐가 중요해. 주인공이 남자였든 여자였든. 어차피 우린 다 똑같은 사람들인걸...' 중얼거리게 된다. 그리고 '아~ 다 읽어버렸네~' 아쉬운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되는 것이다.

그럼, 그게 끝이냐고?
아니지.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아마도 열에 다섯은 입안에 침이 고일 걸. 달콤한 오레오가 먹고 싶어서. 오레오를 우유에 푹 담갔다가 꺼내서 한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 먹고 싶어서.
그러다 못 참고 정말 오레오를 사다가 우유에 찍어 먹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겠지.
아, 그런데 정말 '눈이 하나 더 있다면 말이야.'라는......

야구 유망주,  유아이.
중요한 결승전 9회 말 2아웃 상황.
갑자기 가운뎃손가락이 간질간질 거리기 시작한다.

무사히 경기를 마치고 최우수 선수가 된 아이는 집에 돌아와 여전히 간지러운 가운뎃 손가락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다 발견한 것. 핑거 아이.
아이의 손가락에 생긴 또 다른 눈.

아이에게 또 다른 눈이 있다는 사실은 친구에게, 야구부 감독에게, 매스컴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차츰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벌어지는 재미난 일들.

사람들은 손가락에 눈이 하나 더 생긴 아이를 향해 손가락질하거나, 비난하거나, 비정상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는다. 당연하게, 그럴 수 있다는 듯, 뭐가 대수냐는 듯 즐겁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한 명씩 나타나는 또 다른 눈을 가진 사람들. 자신만 이상했다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숨어 살던, 자신에게 또 다른 눈이 있다는 걸 숨기고 살던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알게 되지. 우리는 모두 온전히 같은 사람들이라는걸.

'또 다른 눈'이 말해주는 게 많아서, 간지러웠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 몸 어딘가에도 뚫고 나오고 싶은 또 다른 눈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고,
함께 사는 사람도,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오래전 만났다 헤어진 옛 연인도, 오랜 친구도 어쩌면 '또 다른 눈' 하나씩 품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숨기기 위해 어쩌면 사람들은 비상식적으로 편견을 가지고, 색안경을 끼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아닌지.

이 달콤하고 간질간질한 소설은, 가운뎃손가락에 눈이 생긴 특별한 능력을 가진 한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장소설은 더더욱 아니고. 아이는 여전히 아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이일 것이다.
이제, 당신의 몸 속 간질거리는 느낌을 잘 느껴보시라. 어디선가 툭, 하고 뭔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니.

시작은 절대 반이 아니고,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끝난 게 아니다.
인생도, 또 야구에서도 그렇다. p11

참아야 한다는 걸 안다.
운동을 하다 보면 몸소 알게 된다. 삶에서 인내해야 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를. 참는 것이야말로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운동을 해보면 안다.
이 순간을 버텨야 한다. 아이는 이를 참기 위해 이를 악문다. 이 고비를 넘고, 참아내고, 이겨내야 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승자만이 제대로 쉴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이를 악물고, 실밥 위에 다시 중지와 검지를 가지런히 올려놓고 와인드업을 한다. 간지러움을 참기 위해 손가락 끝에 단단히 힘을 준다. p18

WILL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손가락에 생긴 눙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어요. 둘 중 누가 눈이 생긴 건지 헷갈리기까지 했어요. 나중에는 손에 작은 티눈이 하나 생긴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죠. 그저 누구나 겪는 일상의 변화 같았어요.
왜 전혀 놀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WILL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어요. 놀라도 변하지 않는 것에는 놀랄 필요가 없다고. 세상에는 바꿀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그냥 가만히 두고 보면 된다고. p96

다들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않나요? 나는 그냥 평범한 신분으로 이 세상에 왔는데, 그래서 보통의 존재로 살면서 여기저기 다니고, 그러다 만난 사람들이 있는데, 돌아보니 그런 사람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힘이 되었던 기억이오. 허무한 별빛 같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잊을 수 없는 소중한 빛이었던 경험. p160

감독님은 곁으로 와서 자기 귀를 좀 봐달라고 했어요. 핑거 아이로 귀 안을 살펴봐달라고 했죠. 황당한 부탁이었지만, 알았다고 했어요. 그리고 손가락을 넣어 귓속을 구석구석 살폈어요.
귓속에서 익숙한 것을 발견했어요.
또 하나의 눈이 그 안에 있었어요. 물론 이번에도 놀라진 않았어요. 나는 손가락 눈으로 귓속 눈에게 눈인사를 건넸어요. 감독님은 내 어깨를 통통 두 번 쳤어요.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요. 이후 나는 타격 연습에 집중했어요. 가끔이지만 장타를 칠 때마다 감독님은 귀를 후비며 웃었어요. 나도 웃었어요.
1회 초 무사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느낌이었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어요.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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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다섯 미선 씨
윤이재 지음 / 꿈의지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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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다섯.
앞으로 6년 남았다. 마흔다섯까지.
큰 아이는 13살, 작은 아이는(태어날) 7살.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고 있겠지.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면서, 때론 지겨워~ 힘들어~ 볼멘소리도 해가면서.
사춘기에 접어들 큰 아이와 전쟁을 치를지도 모르고, 신랑과 권태기를 겪고 있을지도 모르고......
반대로 매일매일이 너무 행복할 수도 있을 테지.

 

 『마흔다섯 미선 씨』를 읽으면서 다가올 나의 마흔다섯을 떠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나의 마흔다섯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소설 속, 미선 씨는 청소년기의 자녀 두 명(딸, 아들)을 두었고, 남편의 요구로 이혼을 했다.
그리고 그 남편(전 남편이 된 남자)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얼마 전 사망했다.
교과서에 실리는 삽화를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간간이 작업을 하면서 미선 씨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40대 중반. 이혼이라는 과정을 겪고, 남겨진 두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현실에 놓인 미선 씨의 모습이 얼핏 안쓰럽다~ 싶기도 하지만, 소설 속에서 미선 씨는 담담하게 자신 앞에 놓은 삶을 살아간다.
아내로, 엄마로, 딸로, 며느리로 살아가는 사십 대 여성의 삶이 어찌 늘 반짝거리기만 하겠는가. 소설 역시 일인 다역을 해내며 살아가는,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의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무것도 아닌 당신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들을 잊지 않기 위한 나의 의례다.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 프롤로그 중에서



그래서, 조금 더 현실적이라도 느껴졌다.
너무 우울하기만 했으면, 너무 과장되게 밝았으면 이 소설은 자칫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사건들은 언제나 비현실적이지만.

소설은 중편 정도의 분량이다.
읽다 보면 중간에 멈출 것도 없이 한 번에 읽을 수 있을 만큼.
나는 이 소설을 실내 놀이터의 보호자 의자에 앉아 읽었다. 시끌벅적한 놀이터 안에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뛰놀고, 아이들이 다칠까 눈으로 아이를 쫓는 부모들 틈에 앉아서.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예윤이가 어디에서 뭘 하고 놀고 있나 찾아보기도 하면서.
내 옆에 앉은 엄마가 휴대폰을 들고 아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잠깐잠깐 힐끗거리면서.

그렇게, 이 소설은 그냥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읽혔고 내 이야기인 듯, 옆 사람의 이야기인 듯 받아들여졌다. 그래서일까. 다 읽은 뒤에 책을 덮고 나서 뭔지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 나는 오늘도 내 몫의 삶을 나름 잘 살아내고 있구나 싶은 안도하는 맘 같은 거.
그리고 또 생각했지.
'아, 앞으로 나의 삶이 미선 씨의 삶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야. 많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살아가야 될 거야. ' 라는 생각.
그리고 다짐했지. 마흔 다섯 미선 씨 처럼.
낡고 허접한 살림살이들을 말끔히 치우듯, 부질없고 쓸모없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모두 버리고 가야지. 누구에게도 빌붙지 않고 스스로를 먹여 살리며 그렇게 꼿꼿하게 늙어야지. 이제 겨우 반환점. 아직 살아야 할 날들이 까막득히 남았으니까. 화려하게 빛나지는 않아도 결코 남루하지 않은, 마흔 다섯 미선 씨가 선명하게 새긴 다짐이었다. p196

부부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는 것일까? 사랑했다가 미워했다가, 싸웠다가 풀어졌다가, 다시는 안 살 것처럼 모진 말들을 내뱉었다가 다시 또 봄에 언 눈 녹듯이 사르르 달콤한 말들을 속삭이기도 하는, 그야말로 변화무상하고 지랄 맞은 사이. 천지간에 둘밖에 없다고 굳게 믿고 잘 걷다가도 아루아침에 세상천지 둘도 없는 원수가 되어 서로 죽일 듯이 물어뜯을 수도 있는 관계. 깜깜하게 어두운 밤, 달도 숨어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을 바라보며 미선 씨는 하염없이 생각했다. p49

‘딸아 있잖아. 너는 내 가슴 속에서 찬란한 유리잔이야.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맑고 투명한 유리잔. 너무 얇고 빛나서 나는 늘 두려워. 순간의 실수로 깨지면 어떡해. 모든 게 산산 조각나면 어떡해. 어쩌면 너는 나의 이런 불안이 진절머리 나겠지. 사사건건 너의 발목을 잡고 간섭하니까. 그러나 미안해. 나도 너를 처음 키워 봐. 난 너의 엄마지만, 사실 너를 잘 모르겠어. 너를 너무 사랑해서 미안해.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나도 참 힘겨워. 사랑하는 만큼 불안한 걸까? 가끔은 주저 앉아 울고 싶어. 내가 울 때 너도 울겠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대 우리 서로 함께 울었듯이. 네가 나처럼 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 내 엄마도 그렇게 바랬겠지. 하지만 우리 엄마도 뜻대로 안됐을 거야. 나도 엄마 말을 안 들었거든. 엄마의 사랑을 헤아릴 줄 몰랐거든. 그래서 더 불안한가 봐. 너무 내 말 뜻을 너무 늦게 깨달으면 어쩌나 하고.....‘ p74

"엄마 꿈은 뭐야? 너희들이 내 꿈이다 이런 식상한 거 말고."
"훗! 엄마 꿈? 엄마가 꿈이 어디 있니? 그냥 안 죽고 살아 남는 게 꿈이지."
"에이, 그게 뭐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 꿈이 없으면 사는 게 아니야. 엄마도 꿈은 있어야지."
"다 잊었어. 꿈 같은 거. 니들 키우느라 정신없어서 꿈을 가질 새가 없었어. 먹고 사느라 바빠서 꿈꾸는 게 사치 같았어. 촌스럽게!"
"참 촌스럽네! 그럼 어릴 때 꿈은 뭐였어?"
"난 화가가 되고 싶었지. 누가 척척 돈 벌어다 주면서 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림만 그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맨날 상상했어. 그럴 수만 있다면 평생 기쁘고 행복하게 그림만 그리면서 살 텐데. 날마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만 실컷 그리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맨날 꿈꿨지. 돈은 안 벌고 싶고 먹고 놀고만 싶은 도둑 심보였나 봐. "
"지금도 그림은 그리잖아."
"그래, 맞아.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은 아니지만, 책 속에 넣는 삽화 그림 그리는 것도 그림 그리는 거니까. 뭐, 나쁘진 않아. 그래도 이런 재주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매일매일 감사해. 안 그러면 너희들하고 어떻게 먹고 살아? 더 힘들었겠지." p105

"나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돌이킬 수 있을까?"
미선 씨는 나직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멀리서, 모르는 누군가라도 미선 씨에게 한 마디만 해 주었으면 싶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딸이 선물해 준 건 포근한 캐시미어 목도리였지만 미선 씨가 받은 건 낯선 시작이었다. 무엇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나씩 시작하겠다는 마음가짐. 그것은 봄을 알리는 빗소리만큼 설레는 것이었다. p190

‘이제 세월이 나에게 묻는다. 그럼 너는 무엇이 변했느냐고.‘
변한 건 없다고,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두리번거리는 모든 것은 그대로‘라고 미선 씨도 답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육체뿐, 마음은 늙지 않는다. 다만 이제부터는 상황과 조건에 떠밀리지 않고 내 뜻대로 살겠다는 단단한 의지를 나약한 마음 위에 꽂았다. 미선 씨에게 변한 게 있다면 그게 다였다. 낡고 허접한 살림살이들을 말끔히 치우듯, 부질없고 쓸모없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모두 버리고 가야지. 누구에게도 빌붙지 않고 스스로를 먹여 살리며 그렇게 꼿꼿하게 늙어야지. 이제 겨우 반환점. 아직 살아야 할 날들이 까막득히 남았으니까. 화려하게 빛나지는 않아도 결코 남루하지 않은, 마흔 다섯 미선 씨가 선명하게 새긴 다짐이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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