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간질간질
강병융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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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질간질, 간지러워.
어딘지 잘 모르겠는데 참을 수가 없어. 벅벅 긁으면 좀 괜찮아질 것도 같은데, 어딘지.. 당최 어디 가 간지러운 건지 정확히 모르겠어. 아 - 그래서 미칠 것 같아.

소설을 읽는 내내 정말 어딘지 모르게 간질간질 거렸다면 "에이~ 거짓말" 이렇게 말하겠지.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
근데 진짠데. 설명할 수 없지만- 어딘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간지러웠는데, 실은 제목을 읽을 때부터였던 것 같아. 간질거린 건.

눈 하나쯤 더 있다고 변하는 건 없더라고요. 심지어 눈이 네 개, 다섯 개 더 생긴다 해도 달라질 건 없어요. 눈은 그냥 눈일 뿐이니까요. p213

『손가락이 간질간질』은, 유쾌한 소설이다. 잘 읽히는 소설이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고, 그리 길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은 소설이다.
그런데, 다 읽고 난 뒤부터 예상치 못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하하, 재밌게 잘 읽어왔는데, 어라, 내가 지금까지 뭘 읽은 거지, 잘 못 읽은 건가. 다시 앞으로 앞으로 페이지를 더듬어 가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엔 '에라, 모르겠다. 그게 뭐가 중요해. 주인공이 남자였든 여자였든. 어차피 우린 다 똑같은 사람들인걸...' 중얼거리게 된다. 그리고 '아~ 다 읽어버렸네~' 아쉬운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되는 것이다.

그럼, 그게 끝이냐고?
아니지.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아마도 열에 다섯은 입안에 침이 고일 걸. 달콤한 오레오가 먹고 싶어서. 오레오를 우유에 푹 담갔다가 꺼내서 한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 먹고 싶어서.
그러다 못 참고 정말 오레오를 사다가 우유에 찍어 먹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겠지.
아, 그런데 정말 '눈이 하나 더 있다면 말이야.'라는......

야구 유망주,  유아이.
중요한 결승전 9회 말 2아웃 상황.
갑자기 가운뎃손가락이 간질간질 거리기 시작한다.

무사히 경기를 마치고 최우수 선수가 된 아이는 집에 돌아와 여전히 간지러운 가운뎃 손가락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다 발견한 것. 핑거 아이.
아이의 손가락에 생긴 또 다른 눈.

아이에게 또 다른 눈이 있다는 사실은 친구에게, 야구부 감독에게, 매스컴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차츰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벌어지는 재미난 일들.

사람들은 손가락에 눈이 하나 더 생긴 아이를 향해 손가락질하거나, 비난하거나, 비정상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는다. 당연하게, 그럴 수 있다는 듯, 뭐가 대수냐는 듯 즐겁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한 명씩 나타나는 또 다른 눈을 가진 사람들. 자신만 이상했다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숨어 살던, 자신에게 또 다른 눈이 있다는 걸 숨기고 살던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알게 되지. 우리는 모두 온전히 같은 사람들이라는걸.

'또 다른 눈'이 말해주는 게 많아서, 간지러웠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 몸 어딘가에도 뚫고 나오고 싶은 또 다른 눈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고,
함께 사는 사람도,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오래전 만났다 헤어진 옛 연인도, 오랜 친구도 어쩌면 '또 다른 눈' 하나씩 품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숨기기 위해 어쩌면 사람들은 비상식적으로 편견을 가지고, 색안경을 끼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아닌지.

이 달콤하고 간질간질한 소설은, 가운뎃손가락에 눈이 생긴 특별한 능력을 가진 한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장소설은 더더욱 아니고. 아이는 여전히 아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이일 것이다.
이제, 당신의 몸 속 간질거리는 느낌을 잘 느껴보시라. 어디선가 툭, 하고 뭔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니.

시작은 절대 반이 아니고,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끝난 게 아니다.
인생도, 또 야구에서도 그렇다. p11

참아야 한다는 걸 안다.
운동을 하다 보면 몸소 알게 된다. 삶에서 인내해야 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를. 참는 것이야말로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운동을 해보면 안다.
이 순간을 버텨야 한다. 아이는 이를 참기 위해 이를 악문다. 이 고비를 넘고, 참아내고, 이겨내야 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승자만이 제대로 쉴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이를 악물고, 실밥 위에 다시 중지와 검지를 가지런히 올려놓고 와인드업을 한다. 간지러움을 참기 위해 손가락 끝에 단단히 힘을 준다. p18

WILL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손가락에 생긴 눙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어요. 둘 중 누가 눈이 생긴 건지 헷갈리기까지 했어요. 나중에는 손에 작은 티눈이 하나 생긴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죠. 그저 누구나 겪는 일상의 변화 같았어요.
왜 전혀 놀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WILL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어요. 놀라도 변하지 않는 것에는 놀랄 필요가 없다고. 세상에는 바꿀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그냥 가만히 두고 보면 된다고. p96

다들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않나요? 나는 그냥 평범한 신분으로 이 세상에 왔는데, 그래서 보통의 존재로 살면서 여기저기 다니고, 그러다 만난 사람들이 있는데, 돌아보니 그런 사람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힘이 되었던 기억이오. 허무한 별빛 같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잊을 수 없는 소중한 빛이었던 경험. p160

감독님은 곁으로 와서 자기 귀를 좀 봐달라고 했어요. 핑거 아이로 귀 안을 살펴봐달라고 했죠. 황당한 부탁이었지만, 알았다고 했어요. 그리고 손가락을 넣어 귓속을 구석구석 살폈어요.
귓속에서 익숙한 것을 발견했어요.
또 하나의 눈이 그 안에 있었어요. 물론 이번에도 놀라진 않았어요. 나는 손가락 눈으로 귓속 눈에게 눈인사를 건넸어요. 감독님은 내 어깨를 통통 두 번 쳤어요.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요. 이후 나는 타격 연습에 집중했어요. 가끔이지만 장타를 칠 때마다 감독님은 귀를 후비며 웃었어요. 나도 웃었어요.
1회 초 무사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느낌이었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어요.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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