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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평점 :
빛이 창가로 들긴 전, 어둠 속에 멍하니 누워 있는 기분.
알람이 울리기 전 일어나 조금은 느긋하게 아침을 맞이하는 흔치 않은 어느 날의 느낌.
우연히 오래전 헤어진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하곤 쿵, 쿵. 쿵 심장소리가 느껴지는 기분.
기억나지 않는 오래전 유년 시절로 한 발짝 다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그대로 오래 누워 있었다.
어쩌진 자꾸, 잊어버린 누군가가 떠오를 것 같았다. 그러다 정말 떠오르면 안 될 것 같아 아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상한 느낌이다.
"부모 자식 사이란 옳고 그른 것도 없이 그저 사람됨으로 감당하는 일인 거 같다. 예쁘게 감당하기도 하고 흉하게 감당하기도 하고. 자식에게는 그 관계가 가장 큰 시련이기도 하지. 나도 그게 참 힘들었지만." p223
세상에서 좀 더 선명하게 존재하기 위해서 완전히 낯선 장소에서 모든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걷다가 희귀한 수집품들이 나열된 작은 전시장들을 둘러보고, 음악이 흐르는 공연장의 어둠 속에 몸을 파묻고, 홀로 서점과 가게들을 기웃거리고, 틈틈이 차를 마시고, 자주 연착하는 기차나 버스를 타고 낯선 풍경 속을 지나가면서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거리를 정하고 후회와 고독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입장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안의 상충에서 불분명한 형체로 서식하는 어찌할 수 없는 필연성을 확인할 것이다. p242
자신의 고독을 받아들이고 침묵할 때 부유하는 여행이 끝나고 삶이 시작된다. 방과 몇 개의 사물을 소유하며 거기에 기대어 살듯, 사람은 고독에 기대어 자신의 삶에 정착한다. 그렇게도 완전한 자신만의 질서가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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