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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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관리실에서는 동파로 인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으니 베란다 세탁기를 돌리지 말라고 방송을 하고 있다.
서울 어머님 댁은 계량기가 파손되어 교체를 하셨다 했고,
친정 엄마는 베란다에 놔두고 신경 못 쓴 사이, 양파며 사과가 죄다 얼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언니는, 너무 춥다며 어쩜 이렇게 춥냐며 오가는 길이 괴롭다고 하소연을 했다.

휴가 중인 나는 코에 바람 들어갈 일 없이 꼼짝도 않고 집 안에서 따뜻하게 이불 뒤집어 쓰고 뒹굴뒹굴하고 있으니 최강 한파라는 말을 체감하지 못하고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이불 돌돌 싸매고 침대에 기대 <<바깥은 여름>>을 다시 꺼내 읽는다.
작년, 책일 발간되자마자 구입해 첫 소설을 읽곤, 그대로 덮어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어쩐지 그땐, 다 읽고 나면 너무 우울해질 것 같았다. 그러고 싶지 않아서 나중에, 나중에 다시 읽자 했더랬다.

갑자기 왜 그 책이 눈에 띄었는지, 결국 책을 꺼내 와 첫 소설부터 다시 읽었다.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감정.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서 숨졌다. 오십이 개월. 봄이랄까 여름이란걸, 가을 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였다. 가끔은 열불이 날 만큼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웠지만 딱 그 또래만큼 그랬던,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제 부모를 안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던, 이제 다시는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아이였다. 무슨 수를 쓴들 두 번 다시 야단칠 수도, 먹일 수도, 재울 수도, 달랠 수도, 입 맞출 수도 없는 아이였다. 화장터에서 영우를 보내며 아내는 '잘 가'라 않고 '잘 자'라 했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양손으로 사진을 매만지며 그랬다. - <입동> 중에서.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이야기. 마치 너무 실제 같아서 읽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입동>은 이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 중 제일 처음에 실린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다음 소설로 넘어가기까지 몇 개월이 걸린 셈이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이 소설을 읽었다. 여전히 저 문단에서 멈칫. <입동>은 무리해서 대출을 받아 새 집으로 이사한 뒤 세 식구의 보금자리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찰나,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죽은 아이, 남겨진 부모, 어느 하나 안타깝지 않은 게 없지만 이 소설이 담고 있는 '남겨진 이들'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무엇보다 안타깝고, 아팠다.

<노찬성과 에반>,<건너편>,<침묵의 미래>,<풍경의 쓸모>,<가리는 손>,<어디로가고 싶으신가요> 여섯 편의 단편들 중 <건너편>,<침묵의 미래>,<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이미 다른 책을 통해 읽은 소설이었지만 다시 읽었다. 처음 읽을 때 좋았던 부분들은 여전히 좋았고, 다시 읽으니 새롭게 보이는 부분이 있어 더 좋았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이 묵직하다.
최강 한파라는 연일 계속되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집 안에서 따뜻한 공기만 느끼고 있는 나는,
안과 밖의 온도차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바깥은 여름>>은 바깥만 여름이라는, 안으로 들어오면 시릴 정도로 차가운 상실의 아픔,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를 잃은<입동>, 아끼던 개를 잃은<에반>, 오래 사귄 애인과 헤어지는<건너편>, 남편과 이혼하고 혼혈 아이를 혼자 키우는<가리는 손>, 남편을 잃은<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이들의 남겨진 삶에 대한 이야기를 어찌 담담하게 읽을 수 있을까.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남겨진 이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들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내 시선일지도 모르는>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감정이입이 자꾸 되면서.

다시 읽기를 잘했다. 천천히 읽기를 잘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을 다 읽었고, 모두 소장하고 있다. 그중 지금까지도 어떤 작품보다 <<달려라 아비>>라는 소설집을 애정 해왔다. 이제 그 자리를 <<바깥은 여름>>이 차지할 듯.

도희가 침착한 얼굴로 이수를 바라봤다. 오래전, 이수가 현관을 나설 때면 ‘저 사람 저대로 사라져버리면 어쩌지. 길 가다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가슴이 저렸던 기억이 났다.
- 이수야.
- 응.
-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 ......
-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건너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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