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맞는 미니멀 라이프 - 비움에 서툰 당신을 위한 생활의 기술
아키 지음, 허영은 옮김 / 웅진리빙하우스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미니멀라이프를 잊지 않기 위해서, 조금 더 나와 맞는 미니멀라이프를 찾기 위해서 최근 들어 자주 관련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어떤 책은 미니멀라이프의 의미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하고, 어떤 책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예찬(대부분이)고, 어떤 책은 완전 실용서적에 가깝다. 그러나 대부분은 내용이나, 구성이 비슷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쓴 이들의 개인적 취향을 알게 되는 것에 그치거나, 지난번에 봤던 책이랑 비슷하네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계속 보게 된다. 이상하지. 아마도 아직 나만의(내 스스로 생각하고, 발견하는) 미니멀라이프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실은, 이번에 읽은 이 책과는 크게 상관없지만(이 책이 계기가 됐을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없는(거의) 거실, 주방, 침대 등등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서 '음, 내가 추구하는 미니멀라이프는 뭘까. 이렇게 거의 비우고 사는 건가. 아끼는 건가. 물건을 안 사는 건가. 버리는 건가' 이런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불현듯 '텅 빈' 공간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 책의 제목은 나에게 맞는 미니멀라이프》. 아마도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제목 때문에.
이 책에서 무조건 버려라, 사지 말아라, 없애라,라고 이야기 한 것도 아닌데, 다시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것은.

나에게 맞는 미니멀라이프는 뭘까.

저자는 여섯 살 아이와, 남편과 함께 15평 공간에서 살고 있다. 외국계 회사를 다니는 워킹맘.
아무래도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두고 있고, 직장 맘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이 책이 좀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워킹맘들의 비슷비슷한 고민인 '시간 활용'에 대한 공감이랄까.

책의 시작에서 <아키식 미니멀 라이프의 기본>이라는 장이 있다.
죄책감 버리기
이상적인 생활을 그리면 쓸데없는 집안일이 보인다
정해진 시간만큼만 노력하기

집안일이란 게 가족의 생활을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만들기 작업인데, 그 작업이 성공하려면 그 일을 하는 주부가 미소를 잃기 않고 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이것저것 다 챙기려다 놓치는 일이 생기면 마치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처럼 죄책감을 느끼게 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 그러니 과감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 집안일에서는 손을 뗄 것! (죄책감 따위 느끼지 말 것!)

회사에서 근무 프로세스에 따라 일을 하듯 집안일도 하다 보면 중요한 가치를, 이상적인 결과물을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직장일, 육아, 집안일 모두를 하면서 지치지 않기 위한 방법. 무리하지 않고 자신에게 허락된(자신이 허용한) 시간 내에서 해낼 수 있는 집안일하기.

이 세 가지가 저자가 추구하는 미니멀라이프의 기본이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 기본을 바탕으로 저자가 어떻게 집안일(청소, 요리, 가계부 정리 등 모두 포함)을 해나가고 있는지 사진과 함께(저자의 집을 모델로 직접) 친절하게 보여 준다.

 

 다 읽은 뒤에도 역시, 앞서 읽은 여러 권의 미니멀라이프 책과 크게 차별화된 건 없다 싶긴 하지만...
워킹맘으로 접근했을 때 가장 공감도가 높았던 듯하다.

우선, 죄책감을 버리고 최대한 내게 허용된(내가 스트레스받지 않을 선에서) 시간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순서를 정해보자는 건, 꽤 도움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미니멀라이프'는 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물론,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분명한 건 무조건 버리고, 비워내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것.
이제부터 조금씩 찾아가 볼 생각이다.
나만의 기준과, 내가 원하는 미니멀라이프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서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나만의' 미니멀라이프를 기록해보는 게 올해 또 다른 나의 목표가 되었다.

이 책이 준 가장 큰 도움은 바로 이것!
'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혹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했던) 사람들이라면 가볍게, 부담 없이 접해보길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 왕자의 눈 + 어린 왕자 (문고판) 세트 - 전2권
저우바오쑹 지음, 최지희.김경주 옮김 / 블랙피쉬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어린 왕자를 처음 만난 건, 중학생이 막 되고 난 직후였다.
어떻게 읽게 되었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선명하게 기억 남는 건,
보아 구렁이.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구렁이.

책 속에서 그 장면을 읽었을 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어린 왕자를 떠올리면 그 모자가 같이 떠오른다.
그리고 한동안 연습장에, 책 사이사이에 그 그림을 따라 그렸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어린 왕자 사랑이 시작되었다.

 

 이 책 <어린 왕자의 눈>을 읽으면서 내가 왜 그 그림을, 그 장면 좋아했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아마 그때 나는 '어른'들 때문에 꽤 쉽지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던 시기였는데 어린 왕자 속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겠어' 생각했던 것 같다(이건 물론 지금 짐작해 보는 것).  이 책에서 이야기해주는 '동심'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있는 중.

 

 「어린 왕자의  저자 저우바우쑹이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쓴 이다. 저자는 문학을 사랑하고 교육에 관심이 많은 정치철학자.

「2014년 9월 홍콩에서 우산혁명이 일어났을 때, 수십만 명의 홍콩인과 함께 거리로 나가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했고, 자진해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운동은 실패로 끝났고, 몸과 마음이 지친 나는 2015년 가을부터 반년 동안 방문학자로 대만에 갔다. 대만에서 지내는 동안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는데, 이때 다시 《어린 왕자》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p5

이 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마 저자도 어린 시절부터 《어린 왕자》를 무척 좋아했을 터. 마음이 힘들 때, 위로받고 싶은 때, 쉬고 싶을 때 다시 만나게 된 어린 왕자를 통해 아마 저자는 철학자 다운 깨달음을 새롭게 얻어낸 듯하다. 그리고 그걸 힘든 시대를 힘겹게 건너가고 있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툭, 세상에 한 권의 책으로 던져 놓았다.

총 열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 속에는 각 장마다, 《어린 왕자》 속 한 장면을 통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얻어낼 수 있는 인생의 지혜를, 위로를,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철학자의 눈으로 다시 한 번 풀어내 이야기해 준다.

'꿈, 동심, 첫사랑, 길들여짐, 책임감, 친구, 고독, 선택, 행복, 이해, 아름다움' 같은 것들에 대해 어린 왕자의 눈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도, 작지도 않다.

 

 《어린 왕자》이야기 중에서 좋아하는 또 다른 부분은 바로 '길들여진다'라는 내용이 나오는 부분.
책 속에는 열다섯 장의 첫 장이 시작될 때마다, 읽는 이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하나씩 던진다.
'어린 왕자는 어떻게 장미와 여우, 그리고 조종사까지 그토록 쉽게 길들이고 그들 하나하나와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었을까?'

「길들여짐은 절대로 일방적이거나 절대적으로 어느 한쪽의 결정에 따른 행위가 아니다.(중략)
중요한 건 일단 관계가 시작되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가 아니라 서로 어우러질 수 있느냐 없느냐가 된다. 왜냐하면 길들여짐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이 발현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주체성도 존중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p83」

어린 왕자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교감하고, 길들일 수 있었던 건,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의 전제는 내가 '나' 스스로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물론 이건 꼭 어린 왕자의 목소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이론적으로 어쩌면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잊고 지낸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면서 사랑받기를 원하기도 하고, 그래야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사랑 때문에 쉽게 자존감에 상처입지는 않았는지. 연인 간에도 부부간에도 말이지.

이 책은, 알고 있지만 잊고 있었던 것들. 알고 있지만 쉽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아, 그랬지. 그랬어.'하고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나' 스스로를, 내 옆의 가장 가까운 이들을 함께 두고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게 해 준다.

 

 

 어린 왕자는 말한다. 길들여진다는 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결국, 작은 단위의 가족부터 시작해서 친구, 직장, 사회로 나가 우리가 가장 많이 신경 쓰고, 상처받으면서 해 나가고 있는 게 바로 관계 맺기가 아닌가.
어떻게 하면 그 관계들을 조금 더 평등하고 평화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저자는 '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제도는 결국 '우리가' 바꿔 나야가 한다.
권력의 간섭 따위 걱정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신경 쓰지 않고,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걱정하지 않는 공정한 사회.

이 책을 읽으면서 책장에 꽂혀 있던 《어린 왕자》책들을 다시 꺼내 보았다.
90년에 산 책도 있고, 99년에 대학에 들어가면서 다시 구입한 책도 있다. 일본어로 된 책을 사기도 했고 최근엔 컬러링북으로 발간된 어린 왕자를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어린 왕자》를 읽는다. 이 책에 포함되어 있는 작은 판형의 어린 왕자로.
잊고 지냈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이다. 그런데도, 어제 만났다 헤어진 것처럼 전혀 어색하지 않은 느낌. 반갑고 또 반갑다.
혹시 이 책(어린 왕자의 눈)을 읽는다면, 《어린 왕자》를 꼭 같이 읽어보시길. 반가움이 두 배가 될 테니.

말을 멈춘 여우는 한참 동안 어린 왕자를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부탁이니 날 길들여 줄래?"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는 걸. 난 친구들을 찾아야만 하고 아라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
어린 왕자가 대답했다.
"누구든 자신이 길들이는 것 외에는 알 수 없는 거야.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아 갈 시간도 없이 살지. 그들은 상점에서 다 만들어진 걸 사니까. 하지만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는 거야. 친구를 원한다면, 날 길들이면 돼."
"내가 어떻게 하면 돼?"
어린 왕자가 물었다.
"인내심을 가져야 해. 우선 나한테 좀 멀리 떨어져서 아까처럼 풀밭에 앉아 있어. 내가 곁눈질로 널 볼테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말이란 오해의 씨앗이니까. 하지만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내 쪽으로 다가와 앉아야 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 - 누구나 삶의 섬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
마크 A. 호킨스 지음, 서지민 옮김, 박찬국 해제 / 틈새책방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한 달 반,
호사스러울 만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누군가에게(의사)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쉬세요. 놀아요 놀아.'라는 말을 들었다. 일종의 처방전이었다.
내 몸은 혼자가 아니었고, 내가 열 달 동안 안전하게 품고 있어야 할 약한 생명이 자꾸 위태로운 신호를 보내던 참이었다. 앞뒤 잴 것 없이, 쉬었고 또 쉬었다.
침대에 누워서, 기대서, 앉아서.
그렇게 한 달쯤의 시간을 넘기자 차츰 몸이 알아주기 시작했다.
'됐다. 그 정도면 잘 쉬었다' 하는 칭찬처럼 들렸다.

몸이 조금씩 괜찮아지니, 멍하니 누워있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 뭐 좀 해야지 않을까? 이렇게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청소라도 할까? 빨래라도 좀 더 해볼까?' 이런 생각들.

 

아이가 태어나고, 직장생활과 육아, 집안일 등등을 해오면서 '지루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지, 그럴 틈이란 게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늘 '아 좀 쉬고 싶다', '아무도 없이 혼자 좀 있고 싶다', '내 시간이 이렇게 없을 수가' 같은 말들을 내뱉으며 살았던 기억만 남아있다. 아주 가끔 아이가 잠들고 잠깐의 틈이 생길 때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서 몸을 움직였던 것 같다.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거나, 블로그를 하거나... 그냥 지루하게~라는 건 있어서는 안된다는 듯이 말이다.

이 책 속엔 한국에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낸 캐나다인인 저자가 한국 생활 동안 자신과, 한국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 느낀 것들을 '지루함'이라는 단어를 통해 표현해 낸 글들이 담겨 있다.

지루함이 무엇인지, 왜 사람들은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회피하는지, 왜 우리에게 지루함이라는 감정이, 공간이 필요한 것인지, 일상 속 지루함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들.

조금 솔직해지자면, 이 책을 다 읽은 뒤에도 역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상상하는 일은 두렵다.  그러니까 결국엔 '지루함'이라는 것도, '휴식'이라는 것도, 무언가를 부지런히 열심히 해낸 뒤에 따라오는 보상 같은 것이라야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내 스스로에 대한 생각은 어쩌면 앞으로도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일상 속 지루함의 중요성'에 대해 일정 부분 동의한다.

<일상 속 지루함의 중요성>

○ 지루함은 우리의 한계를 무너뜨린다
    충만한 삶을 영위하려면 의미 체계 안에 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잘 맞는 의미 체계를 창조하기 전에, 불만족스러운 삶의 기저에 깔린 의미 체계를 파괴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중략) 지루함을 받아들이면, 최고의 인생을 향유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편협하고 제한적인 세계관과 개인적 신념을 무너뜨리기가 수월해진다.

지루함은 인생을 창조하기 위한 무한의 공간
    우리 마음속에 있는 유토피아와 삶의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틈새가 있다고 일깨워 주는 것이 바로 지루함이다. 지루함은 모든 게 지루하고 의미 없는 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돕는다. 그 무엇도 우리가 꾸준히 행복한 마음으로 살도록 지켜 주지 않는다. 이 사실을 깨우칠 때, 우리의 행복은 절대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해줄 완벽한 무언가를 찾는 것에 더 이상 좌우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하면서 지루함의 공간을 채울 자유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불현듯 다가온 무한한 공간에서 원하는 인생을 창조해 나가게 된다.

지루함을 이용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든다
    지루할 때면 인생의 모든 게 다 어그러진 것처럼 느껴진다. 내 인생이지만 타자가 되어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중략) 지루함은 당신에게 속삭인다 '이봐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당신만의 이야기를 써야죠. 행복한 결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다고요.' (중략) 지루함은 당신이 세상 현실이라는 고삐에 끌려가지 않고, 상상을 펼치고 정신적 방랑을 하도록 공간을 마련한다. 당신이 이 상태를 받아들일 때, 지루함의 공간은 당신 인생에서 의미 있는 비전을 창출하도록 돕는다. 지루함의 공간을 인생 안에 더 많이 허용할수록, 더 깊은 개인적인 통찰이 그 공간 안에 들어온다.

지루함의 공간 채우기
    인생을 어떻게 채워야 한다는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지루함을 마주했을 때 자신이 보였던 반응을 자각하는 행위는 길잡이가 된다. 여기서 분명히 짚어 둘 게 있다. 술을 몇 잔 마시고, 열대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고, 넷플리스에서 시리즈 하나를 탐닉하는 게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의하는 게 이 책의 의도가 아니다. 지루함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는 게 '올바른'지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선택한 행동에 어떤 개인적 이유가 있는지 알아야 하고, 지루함을 채우기 위해 그 순간 당신에게 최선인 활동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인생이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깊이 생각한 후에는, 언제든 필요가 느껴지면 지루함의 공간을 이용해 자신의 미래상을 고찰하고 수정해야 한다.

 ○ 지루함은 즐거움을 더한다.
     살면서 지루한 시간을 갖는 건 중요하다. 지루함을 통해 창조 유형과 소비 유형을 누그러뜨릴 수 있고, 인생의 주객이 전도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온갖 활동들로 인해 인생을 빼앗기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지루함은 귀중한 수단인 동시에, 창조나 소비만큼이나 일상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인간 존재의 한 유형이다.

○ 지루함은 의미를 더한다.
    일상 활동에서 지루함이 즐거움을 키워주듯, 인생의 의미도 더한다. 의미 있는 것들과 잠깐 거리를 둠으로써 다시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다 보면, 그저 가게에 걸어가는 활동만으로도 기분이 한껏 좋아진다. 나무에 달린 이파리는 전보다 더 생기 넘치는 초록빛이고, 살결이 간지럽히는 산들바람도 새삼 상쾌하게 느껴진다. 인생에 지루함의 자리를 더 자주 마련해주면, 나를 둘러싼 세상이 예전보다 생명력이 넘칠 것이다.

○ 지루함은 철학적 사유를 더한다
    우리가 지루할 틈을 가질 때마다, 인생과 세상, 존재를 통찰할 기회를 얻는다. 인생에 지루함을 더 많이 허락하면, 이러한 통찰들은 상호작용과 혼합을 반복해 더욱 새롭고 심오한 통찰을 내놓는다. 지루함은 위대한 인생을 창조하는 데 밑거름이 될, 개인적이고 철학적인 발견이 끝없이 소용돌이치는 곳이다.

○ 지루함은 영혼의 훈련
    지루함은 우주의 순수한 경이와 신비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또한, 우리가 미지의 우주에 내던져진 존재라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과 조우하는 시공이다. 인간의 존재를 우주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는 건 중요한 일이다. 살면서 겪는 사건들을 한 발 떨어져 보게 해주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 주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을 조금 더 오래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나'를 온전히 쉬게 내버려두는 '지루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않고, 그러나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 비로소 온전히 '나'가 되는 경험.
짧더라도 온전한 그 시간들을 모으고 모아, '나'를 만들어 가는 마음의 여유가 허락되기를.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벽까지 희미하게
정미경 지음 / 창비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기억하는 작가의 글과, 이미지를 천천히 떠올려 본다.

처음 작가의 작품을 읽은 건,
200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 <밤이여, 나뉘어라>였던 것 같다.
그 이전에 아마도 나는 정미경이라는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은 해마다 빼놓지 않고 읽었고, 그때 아, 이런 작가가 있었구나 했었을 거야.
어쩌면 수업시간에 한두 번 들어 본 작가의 이름과, 작품을 그냥 스치듯 지나갔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 이후 내가 작가의 작품을 거의 다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는 것.

그렇게 나는 작가의 작품들을 만났고, 좋아했다.
그렇지만 그뿐.

작가의 부고를 인터넷 기사를 통해 접했을 때, 아- 짧은 탄식이 나왔었겠지만, 나의 하루에, 일상에 막대하게 영향을 미쳤던 건 아니었을거다.
그래야 난, 고작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한 명의 독자였을 뿐이니까.

누군가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식은 각기 다를 것이고, 그게 그 사람과 얼마만큼의 연결고리가 있는지에 따라 또 달라질 테지.  그런데 이상하다. 이 소설집을 읽는 내내 차분해지고, 자꾸 아프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점점 더 느려졌다.

 

 소설가 정미경의 마지막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를 읽으면서,
한 사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마주했다.
그들은 동료이기도 했고, 후배이기도 했고, 반려자이기도 했다.
단순히 독자로서가 아니라, 삶의 한순간을 같이 보낸 이들이 보내는 애정 어린 마음.
그 마음이 고스란히 와닿는 순간들이었다.

생전에 작가가 쓴 단편 다섯 편과, 작가를 기억하는 또 다른 작가 정지아, 정이현의 추모 산문. 작가의 평생 반려자이자 동료였던 남편 김병종 화백의 추모글까지.

다섯 편의 소설 <못>,<엄마, 나는 바보예요>,<새벽까지 희미하게>,<목 놓아 우네>,<장마>는 기존에 읽어왔던 작가의 여느 소설들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지만 어쩐지 조금 더 아련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이건, 소설들을 읽고 있는 순간의 내 감정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섯 편의 소설들은 가깝지만 완벽히 타인인 관계들에 대해 들려준다.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다 이해하고 아는 것이 아니고, 타인이라고 해서 서로를 완전히 모른다고 할 수 없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들에 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 공은 자신의 욕망에 전력으로 매달림으로써 불안을 유예하는 쪽이었다. 금희의 방식은 반대였다. 미리 내려놓음으로써 불안의 싹수를 자르는 식이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다. 여름 바다에 둥둥 떠 있는 튜브 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금희는 끝을 예감했다. 어떤 일은 그랬다. 끝나버린 후에 알게 되는 게 아니라 그 일이 일어나려는 바로 그 순간 알게 된다.
- <못> 중에서 p36」

「 길어지는 침묵이 짐작보다 훨씬 아프다. 어떤 고통의 감각을 고스란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다는 생각이 심을 고통스럽게 했다. 한가지 사실만 빼곤 그에게 놀랍도록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냈다고 생각했으나 진짜 자신은 그에게 말했던 것들과 말하지 못했던 것들 사이에 있다는 생각을 내내 하고 지냈다.
- <목 놓아 우네> 중에서 p158」

「 남자는 왼손을 들어 윤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짧은 머리카락은 몇 가닥만 남기고 다시 흘러내린다. 네온의 명멸처럼 짧지만 환한 어떤 것이 가슴속에서 반짝 빛났다. 지나온 삶에서, 우연히 다가온 따뜻하고 빛나는 시간들은 언제나 너무 짧았고 그 뒤에 스미는 한기는 한층 견디기 어려웠다. 그랬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을 하찮게 여기고 싶지 않다.
- <장마> 중에서 p189」

이 글을 쓴 사람이 이제 없다, 고 생각하고 나면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사라질 줄 알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남겨질 이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처럼.

작가 정미경은 떠났다. 떠나왔던 자신의 별로, 그리고 그 떠난 자리마다 기적처럼 피어난 꽃들을 나는 바라본다. 지난 1월 18일 새벽 3시 반에 그녀는 내게 눈으로 말했다. 미안해. 나는...... 여기까지였어. 그랬을 것이다. 몸의 진액을 짜내어 살아온 삶. 더이상은 무리였을 것이고말고다.
 이제는 그녀를 놓아주어야 할 시간이다. 문학이라는, 내가 그리워만 하며 건너지 못했던 강 저편의 아슬한 능선에서 늘 푸르른 나무 한그루로 서 있던 사람. 나의 가난한 응원에도 늘 넘치게 답했던 사람. 나는 그녀의 차가워오는 이마에 마지막 키스를 했다. 잘가라 아내여. 내가 진실로 사랑하고 흠모했던 이 세상 단 한 사람의 작가여.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여.
- 추모산문 <나의 피투성이 연인> 김병종,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 읽어본다
남궁인 지음 / 난다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다의 읽어본다 시리즈는 총 다섯 권.
그중에서 앞서 읽은 요조의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과 남궁인의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 두 권을 골랐다. 그냥 내가 알고 있는(한 번이라도 저자의 글을 접한 적 있는) 친근한 저자라는 이유로.

두 권의 책을 다 일고 나니, 나머지 세 권의 책이 읽고 싶어졌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지점을 발견했는데,
같은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감정이 모두 다르다는 것.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같이 놓고 읽어보니 이게 꽤 재미있는 거다.

비슷한 시기에 여러 명이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 책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적은 글이 모두 제각각이다.
그런데 그 제각각인 사람들의 생각을 읽으면서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아, 이 사람은 그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구나. 나는 이랬는데... 이런 비교들과 함께 독서 자체가 흥미로워지는 거다.
(아마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모여 독서모임을 하고, 책을 나누는 시도를 하는 거겠지).

대부분 혼독을 하는 나는 이 흥미로운 경험이 세 권의 책으로 더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곧, 읽어본다 시리즈 나머지 세 권이 내 손에 들려 있을 듯......

 

 남궁인의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는 군더더기 없는 서평이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놀란 건, 응급의학과 의사가 이렇게 책을 읽을 시간이 많다니... 하는 생각.
환자를 보는 시간 외에 나머지 시간 대부분을 독서에 쏟아붓지 않고서는 이렇게 많은 책을 일 년에 읽어낼 수 있을까 싶다.
그러니까,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건 어쩌면 핑계(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래서인지, 아니면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이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글에 대한 감상(줄거리)와, 저자의 주관적 경험이나 느낌이 적절하게(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딱, 균형을 맞추는 듯한 느낌이 든다.

 

 

 

위의 사진은,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을 읽은 남궁인(왼쪽), 요조(오른쪽)의 기록이다.
글을 짧고 길고의 차이가 아니라, 앞에서 말했듯 같은 책을 읽고 기록하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는 일이 흥미로웠다.
나 역시, 이 소설을 읽고 짧은 감상을 적었었는데 역시나 이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글이 되었고.

이렇게 찾아볼 수 있는(겹치는 작품) 글들이 꽤 있다.
그렇게 찾아도 보고, 내가 읽고 쓴 글도 다시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한 시간들이었다.

내가 읽지 않은 책들 중 읽고 싶어지는 책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도 큰 매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