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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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살면서 '검사'를 만나본 적이 없다.
주변에 '검사'와 연닿을만한 사람도 없다.
그러다 보니 전적으로 '검사'란 직업은 내겐 알 수없는 직업이자 멀고도 멀게만 느껴지는 직업이다.
게다가 TV에서 보는 '검사'란 캐릭터는 권력과 하나 된 캐릭터 이거나, 완전 정의로운 캐릭터이거나 둘 중 하나라서 대체로 '검사'에 대한 이미지는 극과 극이 된다.

학교에서 일하면서 '변호사'를 만날 기회는 많았다.
강의를 나오는 분들도 있고, 몇 몇 일들로 자문을 받아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실제 만나본 변호사분들 대부분이 친절하고, 성실해서 상대적으로 '검사'보다는 '변호사'에 대한 이미지가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뿐이었다.  어느쪽이든 나의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만나고 싶지는 않는 사람이라는 건 동일하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알지 못하게 새겨진 어떤 편견을 한 겹 벗어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검사나 변호사나 대체로 말을 잘하는 사람들. 말을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쓰란 법은 없으나,
몇몇 읽어본 그들의 책은 대체로 재미있었다(물론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책을 냈겠지만).

이 책 <검사내전> 역시, 너무 재미있었다.
이건 뭐, 책장을 덮을 새도 없이 슉슉 책장이 넘어갔다.
육아에 지쳐 유머 코드 따위 잊은 신생아 엄마에게 이만한 재미를 주는 책이라면 얼마나 훌륭한가(지극히 개인적인 코드다).

정지 학과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거쳐 검사 생활을 시작한 저자는 '검사'가 돼야겠다는 포부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검사가 되었고,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한 만큼 '검사 생활'이 매 순간 순탄했던 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반대로 또 굳이 '검사' 생활이 못 견딜 만큼 탈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고.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책의 앞에 적힌 '생활형 검사'라는 말이. 결국 '검사'도 직장인이 아니었던가.
어디나 상사가 있고, 부하직원이 있고, 이런저러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처럼 '검사'의 생활도 그냥 직장생활과 다르지 않다.
내가 그동안 별생각은 없었지만 무의식중에 '검사'들의 세계는 뭔가 거창할 것 같아.. 했던 나의 편협한 생각이 부끄러워졌을 뿐.

책은 생활형 검사로 지내면서 다룬 사건들, 만난 사람들, 검사의 사생활, 법에 대한 이야기 등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냥 평범하게 하루하루 사는 '나'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사기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범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 사건들을, 다양한 사람들을 매일 마주하는 삶이란 어떨까... 잠시 상상해 보게 했다.
직장생활로 치자면, 야근 많고 스트레스 많은 절대 피하고 싶은 직장이다.

재미있게 읽다가 불쑥불쑥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은... 사기를 당하거나, 억울한 상황에 놓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가진 것 없는, 세상 밑바닥에 내몰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거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요리조리 피해 가며 잘만 사는데, 없는 사람들은 죄지은 것도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거.
제발, 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법이 존재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또 한 번 갖게 됐다는 거.

책 속에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라는 글이 있다.
소년 검사를 하면서 만난 학교 폭력의 세계를 경험한 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다른 부분은 아니더라도, 이 글 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와닿았다.

「인권 의식은 자신이 귀중하다는 인식이 아니다. 자기가 소중하다는 것은 굳이 안 가르쳐도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리고 목숨처럼 자신을 아끼고 사랑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주관적인 자기 환상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 대한 인지편향과 우월환상을 통해 자신은 옳고 소중하다고 확신한다. 그러니 자기에 대한 사랑이니 힐링이니 하는 것은 적당히 해도 된다. 지나치면 '나는 오늘 수고한 나에게 선물을 했다'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허세가 되어 버린다.
 인권 의식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아이들의 인권이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자신의 장래에 불이익이 되는 처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정말 알아야 하는 것은 폭력을 쓰면 친구와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이다. 왜 피해를 입은 아이들은 평생 그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고 가해를 한 아이들은 아무런 부이익 없이 살아도 되는가.-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중에서, p192

이 책 한 권이 '검사'의 모든 것을 말해줄리 없고, 모든 법을 이야기해 줄리 만무하다.
그렇지만, 세상에 이러저런 많은 일이 있구나.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이런 '검사'도 있구나. 이런 세계도 있구나. 내가 가지고 있던 편협한 시각 한 조각을 걷어내 준 느낌이다.

'법 없이도' 사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혹여라도 '법'이 필요한 순간, 적절하게 정당하게 그 '법'을 누릴 권한을 갖게 되길 바라는 마음도 생겼달까.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나는 이 책에서 받아야 할 감동의 70% 이상을 받은 것 같다. 뭐랄까 직업에 대한 저자의 소신, 사람을 대하는 저자의 따뜻한 마음, 세상에 대한 관심.... 그런 것들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달까. 그래서, 앞에 읽은 글들이 더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이 책이 검사라는 직업의 이면이나 실상을 알려주는 역할을 할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실상이란 본래 그다지 재미없는 법이다. 검사보다 멋지고 보람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사고가 난 곳이면 어디든 번개처럼 달려와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구조대원도 있고, 자신의 굽은 허리보다 더 가파른 남해 섬 비탈에서 고사리를 꺾어 데치고 말리는 촌로도 있으며, 가족들을 위해 천대와 열악한 노동 조건에도 불구하고 프레스 기계 앞에서 졸음을 쫓고 있는 이주노동자들도 있다. 그에 비하면 검사가 하는 일이란 온실 속의 화초 가꾸기 정도에 불과하다.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새벽마다 새 아침을 열어주는 청소부처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형사부 검사들이 있긴 하다. 세상을 속이는 권모술수로 승자처럼 권세를 부리거나 각광을 훔치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지만, 하루하루 촌로처럼 혹은 청소부처럼 생활로서 검사 일을 하는 검사들도 있다. 세상의 비난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늘 보람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생활형 검사로 살아봤는데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세상에는 우리보다 무거운 현재와 어두운 미래에 쫓기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이 정도가 수달 제사처럼 정리되지 않은 글을 세상에 내놓는 이유인 것 같다.
누군가 돌을 쌓아둔다고 집이 되는 것이 아니듯이 사실을 모아둔다고 과학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글을 모아 놓는다고 다 책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굳이 통찰력이나 선견지명이 없더라도 이야기는 할 수 있다. 멈춰버린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정확히 맞는다. 해결되지 않거나 비틀어진 논리들은 가끔 빗자루를 들고 양탄자 밑으로 넣은 뒤 잠시 잊어도 된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래도 세상 무너지지는 않는다. - 에필로그 <아침을 여는 청소부처럼 묵묵히 살아가는 그대들에게> 중에서, p384

논리와 이성의 천적은 부조리가 아니라 욕심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주성분은 욕심, 욕망, 욕정이다. 우리는 ‘욕심‘이라는 거친 바다위를 구멍 뚫린 ‘합리‘라는 배를 타고 가는 불안한 존재들이다. 마땅히 쉼 없이 구멍을 메우고 차오르는 욕심을 퍼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욕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그래서 우리는 욕심으로부터 논리와 이성을 지켜내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 결과 아무리 허술한 속임수라도 피해자의 욕심과 만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지구온난화를 해결해주는 무한동력 에너지 사업도, 200세 인생을 가능케 하는 세포재생 사업도, 바르기만 하면 100달러자리 지폐로 변모한다는 마법 잉크도 모두 가능해지는 것이다. 개미귀신은 늘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개미귀신이 개미에게 뿌려대는 모래는 내 마음속의 탐욕이다. 누구도 자신 안의 탐욕을 이길 수는 없다. - <욕심이라는 마음속의 장님> 중에서, p63

호메로스는 만약 인간이 자기 운명보다 더 많은 고통을 당했다면 그것은 신들 탓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의 장님 때문이라고 했다. 안 박사 일당의 유혹이 사기라는 신호는 밤하늘의 별보다 많았다. 등기부를 떼어보기만 했어도, 잔고증명서의 명의인을 살펴보기만 했어도 사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국정원이 남산에서 내곡동으로 이전한 것도 20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그 많은 정보들을, 목사님은 못 본 것이 아니라 안 본 것이다. 밤하늘에 별이 아무리 많아도 욕심이라는 간접조명이 생기면 보이지 않는다. - <욕심이라는 마음속의 장님> 중에서, p70

바보 같게도 나는 그에게 살다 보니 세상이 다 사기 같다고 말했다. 영민씨 같은 사람에게 세상은 더욱 그렇다고 했다. 청년에게 희망을 주라는 말도 사기라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식들에게 희망이 아니라 특혜를 준다. 청년에게 위로를 건넨다는 교수나 종교인도 정작 관심은 돈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정의와 법치주의를 부르짖는 검찰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사기의 주연일지 모른다. 어쩌면 개처럼 일하는 형사부 검사들의 선의와 신실함이 이 사기의 가장 화려한 기술로 악용되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늘 영민씨 같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과 기대를 훔쳐 가는지 모른다. - <국가대표 영민씨의 슬픈 웃음> 중에서, p109

인간의 존엄성이란 눈물 흘리기 좋은 감성적인 소재가 아니다.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냉철하고 엄중한 과제이자 요구이다. 존엄한 것은 함부로 대할 수 없고, 훼손될 경우 반드시 응분의 대가가 따라야 한다. 마음대로 짓밟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짓밟한 것이 오히려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간청해야 한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존엄한 것은 두려운 것이고 원시적인 것이다. 지켜지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소년전담 검사를 하면서 나는 늘 피해자에게 너는 소중하고 무엇보다 존엄하다고 말해주곤 했다. 그리고 가해자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고, 화해하거나 용서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피해를 당한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대게 두려움 때문이다. 그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존엄함과 권리를 포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존엄한 것은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슬라보예 지젝은 말했다. "진정 용서하고 망각하는 유일한 방법은 응징 혹은 정당한 징벌을 가하는 것이다. 죄인이 적절하게 징벌되고 나서야 나는 앞으로 움직일 수 있고, 그 모든 일과 작별할 수 있다." -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중에서, p193

사람은 나무와 달라서 토양이 좋다고 늘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나를 보더라도 그렇다. 욕구와 충동 속에서 사람은 선택할 수 있다. 우리의 존재는 선택이 결정짓는다. 결국 선택이 자아를 만드는 것이다.
‘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인간‘에 대한 질문과 같다고 한다. 법뿐 아니라 모든 인문학이 그럴 것이다. ‘존재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 <산도박장 박 여사의 삼등열차> 중에서, p221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검찰, 경찰, 국세청 같은 공권력 기관이 아니라 시민들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물론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는 우리나라 헌정 체제상의 한계를 짚고 넘어가야겠지만, 그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최소한 시민 스스로 자신의 힘을 국가권력에 갖다 바치는 어리석음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 어리석은 형태를 가장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고소인의 권한 확대이다. 늘어나는 고소를 당장 줄일 수 없다면 최소한 시민들 스스로 직접 분쟁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 <법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쟁 해결 방법인가> 중에서, p323

미국의 법사학자 로렌스 프리드먼은 "사회는 명백히 원하는 범죄의 양을 스스로 결정한다"라고 말했다. 범죄의 양이 많아지면 범죄에 둔감해지고 법을 경시하게 된다. 또한 범죄를 지나치게 많이 원하면 검찰이나 수사기관의 힘이 거대해진다. 그 부작용으로 검사들은 엄청난 업무 강도에 시다릴게 되었다. "그렇다면 관둬라. 검사 일 하고 싶은 사람 줄을 섰다"라거나 "왕관을 원하는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은 하지 마시라. 왕관을 써야 하는 것은 국민이다. 그게 헌법 제1조가 말하는 민주공화국이다. - <형사처벌 편의주의를 경계한다> 중에서,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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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우산 가게 미래그림책 136
미야니시 다쓰야 글.그림, 김수희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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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예윤이는 푸딩에 푹 빠져있다.
딸기 맛, 밀감 맛, 복숭아 맛, 그중에서도 바나나 맛 푸딩.
하루에 한 번씩 꼭 먹고 있고, 냉장고에 푸딩이 없으면 당장 사러 가야 한다고 난리를.. ㅜㅜ
덕분에 냉장고엔 종류별 푸딩이 쌓여져 있다.

오늘 아침밥 역시 푸딩.
밥 먹자는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바나나 맛 푸딩 하나를 맛있게 먹은 뒤 행복한 표정으로 등원했다.
한 번씩 뭐에 꽂히면 이렇게 몇 날 며칠을 같은 거만 먹는다.
그런 예윤이에게 딱 맞는 그림책을 찾아냈으니......

 

 <신기한 우산 가게>는 꼬마돼지가 숲속을 걸어가다가 발견한 <신기한 우산 가게>에서 너구리 아저씨가 건네준 우산들을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산에 그려진 그림대로 우산을 펼치면 우르르 쏟아지는 것들.
물고기 모양 우산을 펼치면 물고기가 우르르~
푸딩 그림이 그려진 우산을 펼치면 푸딩이 우르르~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던 늑대가 나타나 토끼와 돼지를 잡아먹으려 하자
돼지는 돼지 모양이 그려진 우산을 펼쳤다.
그러자 쏟아지는 돼지들.
늑대는 신이 나서 돼지들을 모두 담아 집으로 가는데......
그다음, 늑대는 어떻게 됐을까?
과연.. 돼지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까?

"엄마, 나는 푸딩 그림 그려진 우산 갖고 싶어~"
역시나...... 푸딩에 빠진 예윤이는 푸딩 우산 타령을 시작했다.
이럴 땐 함께 그림책 읽는 시간이 신나고 즐겁다. 아이와 함께 공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시간.

아이들의 상상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줄 수 있는 재미난 그림책이다.
다 읽고 나서 스케치북에 아이가 갖고 싶은 모양의 우산을 함께 그려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

책을 읽으면서 일부러 무언가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이야기할 거리를 만들어 내주는 게 요즘 내가 찾는 그림책이다.
거창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읽고, 즐거워할 수 있는 그림책.

이 그림책 역시, 다 읽은 뒤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이랑 읽겠다며 유치원 가방에 담았다.
그럼 아이에겐 정말 재미있었다는 뜻.

내 책을 고르면서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을 고르는 시간은 나에게도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슬슬 함께 서점에 가서 직접 책을 고르게 해 줘야지, 도서관도 같이 가야지 마음먹지만, 쉽지 않다.
날 좀 더 따뜻해지면 꼭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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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 완벽한 엄마보다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가 필요한 이유
권경인 지음 / 북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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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첫아이를 낳았다.
이번 주 일요일, 3월 11일이면 큰 아이는 만으로 6살이 된다.

그리고, 2018년 2월 24일 둘째 아이를 낳았다.

첫아이를 낳고 양육하면서 많은 양육 관련 책을 읽었고, 도움을 받았다.
6년이 지나고 둘째 아이를 낳자, 언제 그랬냐는 듯(경험했었냐는 듯) 모든 게 새롭다.

신생아는 어떻게 돌보는 거지? 배꼽은 언제 떨어지더라, 목욕은 어떻게 시키는 거지, 잠투정할 땐? 등등등
낯설고 모르는 것 투성이. 작고 작은 아이는 만지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매시간 아이가 숨을 잘 쉬고 있는지 코에 귀를 가져다 대 보고, 시간마다 기저귀 체크를 하면서 아이에게 적응해 가고 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는 육아와, 이제 곧 초등학생이 될.. 머지않아 사춘기를 겪게 될 큰 아이를 동시에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조금 걱정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완벽한 엄마보다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가 필요한 이유"
이 책은 위의 한 문장 때문에 읽고 싶어졌다.

늘 욕심내지 말자고 다짐하고, 죄책감을 갖지 말자 스스로 다독이면서도 그 어떤 것보다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고, 그만큼 행복하게 하는 게 바로 육아.
사랑하는 만큼 더 욕심이 나고, 그만큼 미안하고, 그만큼 불안해지는 것도 바로 육아.

그래서 또 책으로 배운다.

" 저는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를 기대합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하고 버무려져서 함께 있는 현실의 엄마, 때로는 서툴지만 또 그런 경험을 통해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실재하는 엄마,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서 존재함으로 자녀의 안전 기지가 되는 엄마라면 충분합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답고 바람직한, 현실적인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 아빠들이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제가 깨달은 것은 아이들은 완벽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부모를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인정하는 깊은 관대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라면 충분히 훌륭하고 애를 쓴 좋은 부모입니다. 때로는 흔들리고 불안하더라도 그 믿음을 의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서문> 중에서 p6"

2016년에 우연한 기회에 부모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도 대상관계이론에 근거한 교육이었는데, 이 책 역시 대상관계이론을 바탕으로 한 엄마의 역할, 양육의 마음가짐, 엄마 스스로를 돌아보기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상관계이론은 주체인 나와 대상과의 관계가 어떻게 맺어지고 이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성격을 이루는지 설명하는 이론, 특히 부모와 아이 사이의 관계의 중요성을 짚고 있다

 

 

엄마와 아이 역시 '관계' 맺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어떤 관계보다 중요한.
그 '관계'를 어떻게 맺어나갈 것이냐에 따라 아이와 잘 지낼 수 있는지, 아이가 안정된 심리상태를 가질 수 있을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 조차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은 아이와의 관계에서 역시 삐걱거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 우선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 그게 바로 아이와 엄마의 관계 맺기의 시작.

읽다 보면(대부분의 양육서가 그렇듯), 다 알 것 같은 내용이다. 어쩐지 그대로 잘 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런데 왜 자주 아이와 삐걱거리고, 나 자신에게 불만족스러워지는 걸까.

아마도 그럭저럭이 아니라 완벽한 '엄마'를 꿈꾸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왜 자신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면서도 육아에 있어서 만큼은, 엄마로는 '완벽'하기를 바라는 걸까. 어쩌면 '나' 자신에게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를 통해 만족감을 얻고 싶은 것은 아닐까. '좋은 엄마'가 되는 순간 '좋은 나',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착각 때문에 말이다.

「아이에게 가장 안 좋은 영향을 주는 부모가 바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부모입니다. 누가 나와의 관계에서 계속 죄책감을 경험한다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을까요? 우리는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거나, 느끼게 하는 사람을 관계에서 배제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됩니다. 부모가 못해준 것에 대해 계속 죄책감을 갖고 아이를 대하는 것은 가장 좋지 않은 양육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p101」

큰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자주 느꼈던 감정이 '죄책감'이었다. 일하는 엄마라서, 원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늘 미안하고, 안쓰럽고. 아이가 일곱 살이 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씩씩하고 잘 자라주었다. 엄마인 나의 죄책감 때문에 오히려 힘들었던 건 '나'였던 것 같다. 내년에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나는 또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서 힘들어할지도 모르지만, 조금 더 나 자신을 다독이고, 아이를 믿고, 의젓하게 해 나가볼 생각이다.
그리고, 둘째를 키우면서는 죄책감 대신 그보다 더더더 큰 사랑으로 감싸 안아줘야지.

책 속의 이야기는 1강부터 8강까지 진행된다.

1강,  '나 자신과 잘 지내고 계세요?'
2강,  '아이보다 나 먼저 들여다보기'
3강,  '내 관계 패턴은 어디에서 왔을까'
4강,  '누구나 처음 부모가 되었다'
5강,  '부모와 아이를 이어주는 관계의 힘'
6강,  '아이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관계 맺기 원칙'
7강,  '부모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
8강,  '퍼펙트 마더 VS 굿 이너프 마더'

결국엔 부모가 자기 자신과의 관계 맺기에 성공해야 아이와의 관계 맺기 역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안정된 상태의 부모 밑에 서라야 아이 역시 안정된 상태를 기반으로 굳건하게, 올바르게 자랄 수 있다는 것. 아, 어렵다.

아이 양육에 관한 실용서라기보다는 엄마, 부모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들이 책 속에 담겨 있다.
'나' 뿐만 아니라 '부부'가 함께 읽고, 부부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다면 더더더 책 읽은 효과가 높아질 듯.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부모교육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아이를 갖기를 준비하고 있는 연인 혹은 부부가 먼저 받아야 할 것 같다. 대부분 결혼은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하면서, 결혼 한 뒤에 부모가 되는 일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계획하지 않은 순간에 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어느 순간 '어, 부모가 되었네' 해버리고 만다. 이미 부모가 되어버린 뒤에는 울고, 보채는 아이 케어하느라 양육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접근할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고.
그 이전에 부모 교육을 받는다면 아이를 낳은 뒤에 급작스럽게 몰려올 혼란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덜 버벅거리지 않을까.

밑줄 친 부분이 너무 많다.
혹시 옮겨 둔 부분을 보고 이 책이 더 읽고 싶어진다면 주저하지 말고 읽어보시길.

아,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책 제목.
책 제목만 읽으면 어쩐지 따스한 에세이 같은 느낌이 들어서(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책에 담고 있는 큰 내용들을 드러내주기에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심리적 자본도 빈익빈 부익부입니다. 돈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듯, 심리적 이해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리적 자본을 축적하고 확장해야 합니다. 심리적 자본이 크다는 것은 성취를 향해서 긍정적으로 자기 자시을 이해하고 그로 인해 동기 부여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 답지 않은 부모는 도대체 자기가 왜 그러는지 모른 채로 아이를 다그치고, 소리를 지르고, 무슨 이유로 왜 그러는지 모르면서 가혹한 형태의 체벌을 아이에게 가합니다. ‘내가 왜 이랬지?‘ 하고 후회도 하고 죄책감도 갖지만, 정작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죠. 그래서 이런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나를 아는 것‘, 이것은 나머지 자산을 확장하기 위한 중요한 기본 토대가 됩니다. p20

자기이해는 내가 원하는 것, 정서, 욕구 등 내 삶의 판을 돌리는 중요한 힘의 원리가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판이 돌아가는 추진력의 원천, 핵심 주제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죠.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양육의 중심에 있는 중요한 욕구나 주제, 내가 아이를 통해서 확인하거나 증명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만나본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는 핵심적인 욕구나 주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그냥 의식하지 못한 채로 삶을 살아갑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요. 왜 그렇게 가족들에게 밥을 먹이려고 하는지 모르지만 열심히 밥을 합니다. 왜 그렇게까지 뭘 하라고 주장하는지 모르지만 그냥 해야 할 것 같아서 합니다. 남들과의 관계에서 뭐가 이렇게까지 불편한지 모르겠는데 그냥 참습니다. 아이를 통해서 내가 증명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데 그냥 하는 데까지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p25

엄마가 나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는 것을 몸이 기억합니다. 엄마가 나를 끊임없이 거절했다는 것도 몸이 기억합니다. 대개 우울한 엄마는 아이를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우울하면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머리를 감는 것도 너무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너무 여러 번 아이를 밀쳐내거나 응시하지 않으면, 아이의 몸이 그것을 기억합니다. 마치 자전거를 타는 법을 습득하면 몸이 기억하게 되듯 말입니다.
엄마의 우울하고 슬픈 눈빛이 아이의 몸으로 들어옵니다. 아이의 몸이 그것을 기억합니다. 이제 어른이 되어서 그러지 않아도 될 상황인데 애를 쓰고 눈치를 봅니다.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란 느낌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구조에 의해서 왜 하는지 모르고 하는 행동입니다. p31

양육이 우리 삶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내가 아이를 통해서 무엇을 하는지, 아이에게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 하지는 않는지, 내가 얼마나 괜찮은 인간이지를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에게 하고 있는 일이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아야 합니다. p45

엄마와 붙어 있어야 할 때 충분히 붙어 있었던 아이들은 엄마와 헤어져서 세상을 탐색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붙어 있어야 할 때 붙어 있지 못했던 아이, 공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아이들은 평생 같이 있고 싶은 대상을 찾느라 인생을 허비합니다.
어떤 존재든 붙어 있고 나면 떨어지는 일을 받아들입니다. 붙어 잇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함께 있기도 하고 나 혼자 있기도 하고, 없어도 지내게 되고, 이런 통합적인 관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통합을 해내기 위한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떨어지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은 온전히 붙어 있는 경험입니다. 온몸이 어떤 존재에게 안겨서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온몸이 수시로 내가 원할 때마다 접촉할 수 있는 시기는 생애 초기 6개월~1년입니다. p46

내가 잘 견디는 감정과 못 견디는 감정, 양육에서 내가 실패하는 감정과 잘 다루는 감정을 아는 것이 자기 이해입니다.
어떤 엄마들은 아이가 엄마를 좀 무시해도 잘 견딥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말로 엄마를 공격합니다. "공부해야지"하고 타이르면 "그렇게 중요하면 엄마가 공부 다시 해, 엄마가 열심히 공부해서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가"라고 합니다. 엄마는 속이 뒤집어집니다.
잘 견디는 감정, 못 견디는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부모에게는 필요합니다. 이런 감정을 빨리 조절하고 악순환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주 어릴 때는 접촉이 곧 관계입니다. 어릴 때 엄마가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긴 하지만, 이때 엄마가 아이에게 실제로 하는 것은 응시, 만져주는 접촉입니다. 물론 점차 아이가 성장하면서 언어를 통한 접촉이 이루어집니다. 성인이 되면 반드시 만져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때는 나의 진가를 알아주는 정서적 접촉이 더 중요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만져주지 않으면 잠을 자거나 제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접촉이 그만큼 관계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식욕, 수면, 기본적 위생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런 것이 주어져도 관계가 제공되지 않으면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고, 살아남아도 정상적으로 살지 못한다는 것이죠. p68

엄마와의 관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아이로 자란 아이는 세상과 만나도 자기가 중요한 사람이 될 거라는 예언을 하게 됩니다. 세상과의 관계에서도 ‘저 사람은 나를 좋게 볼 거야, 호감을 가질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엄마에게 "귀하다" "넌 잠재력이 있어"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은 아이는 살면서 뭐가 잘 안되어도,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도 ‘난 쉽게 끝나지 않아‘라고 생각합니다. 근거 없이 이렇게 생각하면 망상이지만 이 가능성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으면 이걸 붙들고 실제로 목표를 이루어냅니다. p82

아이에게 가장 안 좋은 영향을 주는 부모가 바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부모입니다. 누가 나와의 관계에서 계속 죄책감을 경험한다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을까요? 우리는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거나, 느끼게 하는 사람을 관계에서 배제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됩니다. 부모가 못해준 것에 대해 계속 죄책감을 갖고 아이를 대하는 것은 가장 좋지 않은 양육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p101

뭔가가 중요해지면 두려움이 나타납니다. 이전에는 물을 잃어버릴까, 누가 가져갈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지만 그것이 중요해지는 순간, 두려움이 나타나는 겁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관계라면, 내 안에 두려움이 나타나게 됩니다. 부모 자녀 관계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관계이니만큼 부모 자녀 사이에는 좋은 것도 있지만 두려움도 많습니다. 배우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가 중요한 만큼 두려움이 많습니다.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중요한 관계는 두려움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p103

두려움이 큰 사람은 사는 게 굉장히 어렵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어떤 두려움이 큰지, 내 배우자의 두려움, 아이의 두려움은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버려짐의 두려움, 삼켜짐의 두려움, 비어 있음의 두려움 등 이 두려움의 특징을 이해함으로써 내가 맺고 있는 관계의 갈등 원인을 살펴 더 나은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p109

좋은 부모는 아이가 원할 때 거울처럼 반응해주고, 괜찮은 대상으로서 공감을 느껴야 할 때 함께해주고, 어른이라고 우길 때 어른처럼 대해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해주면 아이는 자기 자신의 부족하거나 약한 것에 대해 좌절하지 않고 통합하는 형태로 심리적으로 성숙해가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p135

대상 제시는 엄마가 아이에게 세상을 가져다주는 방식인데, 주로 어릴 때는 젖이나 음식, 장난감을 갖다 줍니다. 아이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줘야 합니다. 굉장히 나쁜 방식이 아이가 배고플 새 없이 계속 젖을 물리는 것인데 이것은 엄마의 욕구입니다. 아이가 배고플 때 안 먹이고 엄마가 줄 수 있을 때만 주는 것도 대상 제시 실패입니다. 자주 먹는 아이가 있고, 한꺼번에 많이 먹는 아이가 있기 때문에 아이의 욕구에 맞춰서 줘야 하는데, 자기의 욕구에 의해서 대상 제시가 너무 빈번한 엄마도 있고 거의 안되는 엄마도 있습니다. p166

최적의 좌절을 주되,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형태의 좌절을 주는 것. 아이를 일정한 경계 안에서 키우고, 모자라거나 힘들게 하는 부분이 있어도 세세하게 몰입하기보다는 그럭저럭 이만하면 잘 되었다, 하고 키울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최적의 좌절 속에 성장하는 최상급의 양육입니다. p171

아이가 행복해지려면 무엇보다 부부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부부관계가 좋으면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있다고는 보장할 수 없지만, 행복할 수 있다는 건 보장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안정감을 줍니다. 내 세상이 안전하다는 것, 이것은 중요한 심리적 자본이 됩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안전하다는 것을 아이들이 경험하면 엄청난 심리적 자본을 갖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허물어지면 많은 것을 쏟아부어도 빚더미에 있는 상태에서 계속 돈을 빌려서 밑 빠진 독에 붓는 것과 같습니다. p172

부모가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걸 이야기하는 건 폭력입니다. 부모가 죽겠다는 걸 처리할 수 있는 아이는 없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을 아이는 없습니다. 아이는 너무 겁이 나서 견디는 척하는 것입니다. 속에서는 난리가 났는데 괜찮은 척하며 마음속 불안을 숨깁니다.
내 속에서 확 올라오는 걸 이야기하고 솔직하다고 우기지 말고, 진짜 일어나는 것에 대해 정직하게 경험하고 아이들과 소통하기를 바랍니다. p214

완벽한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다른 면으로 높은 불안을 경험한다는 말입니다. 불안은 어떤 감정보다도 전염성이 강한 정서입니다. 완벽한 부모는 아이에게 높은 불안을 전염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부모는 건강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말은 완벽한 부모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면 됩니다. 사랑은 굿 이너프 하면 됩니다. 너무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마세요. 너무 완벽한 관계를 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내 아이에게 ‘엄마가 항상 그 자리에 있구나‘ ‘돌아갈 내 편이 있어‘라는 안정된 믿음만 주어도 충분합니다. 너무 겁먹지 말고, 엄마로서 아빠로서 노력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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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해 대충 하는 미니멀 라이프 - 시시한 미니멀리스트의 좌충우돌 일상
밀리카 지음 / 나는북 / 201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엔 대부분의 책을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매하다 보니 간단한 소개 외에 이미지로 책을 판단할 때가 종종 있다. 표지라든지, 미리 보기 했을 때 보이는 몇 페이지에 대한 느낌 같은 것들로.

그렇게 선택한 책 중 직접 받아보고 실망하는 경우도 더러 있고, 생각했던 책이 아니라서 읽지 않고 오래 덮어주는 책도 종종 있다.

이 책 <마음을 다해 대충 하는 미니멀 라이프>는 구입할까, 말까, 오래 고민한 책 중 하나다.
최근 연달아 읽은 미니멀라이프에 관한 책들을 고를 때마다 같이 두고 고민했던.
이미지로 만난 책의 첫 느낌이, 어쩐지 얇고 가벼울 것 같았다.
앞서 몇 권의 미니멀라이프에 관한 책을 읽고, 그럼에도 결국 이 책을 구입한 건 비슷비슷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미니멀라이프에 관한 책들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이다.

이번엔 어떤 사람의 이야기일까.
어떤 사람이 어떻게 미니멀라이프를 하고 있을까.
뭐 그런 호기심.

 

다 읽은 뒤에 느낌.
음.. '첫 느낌을 너무 믿지 말자' 뭐 이런?
다른 책보다 먼저 읽을걸.. 하는 마음이 들 만큼 내 스타일의 책이었다.
미니멀라이프를 다룬 실용서라는 느낌보다는,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는, 노력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랄까.
그 이야기가 꽤 공감되고, 어떤 부분은 배우고 싶고, 같이 노력해 보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서 좋았다.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라이프와도 가까웠고.

그리고 책도 예쁘다. 저자의 집만큼이나 깔끔한 느낌. 군더더기 없이 할 말, 하고 싶은 말만 해 놓은 느낌이랄까. 중간중간 저자의 남편이 적어 놓은 <시시한 미니멀리스트 아내를 둔 남편의 일기>도 좋았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하는 미니멀라이프. 같이 사는 이들의 마음이 맞아야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미니멀라이프이기도 하니까.

 

 

 

다른 미니멀 라이프 책들을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만나게 되는 부분이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한다고 무조건 버리고, 없애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소중한 물건은 더 소중하게 아끼고 간직하게 되더라는 것. 물건 하나를 사도 좋은 것, 갖고 싶은 것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
버리고 비움으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아끼는지 진심으로 알게 된다는 것.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 나는 그게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긴 다는 건, 확실히 좋은 일이니까.

 

 

누구나 처음부터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고, 실천해온 건 아닌 것이다.
살다 보니 너무 차고 넘쳐서 감당이 안 되는 삶,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감정이든 넘쳐서 힘든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비우고 싶은 간절함이 생겨나는 거 아닐까.

물건을 비우다 보니 욕심을 비우게 되고, 욕심을 비우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에서 역시 집착을 버리게 되고, 집착을 버리게 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고, 그러면서 조금씩 삶이 가벼워지는 느낌.
나는 그 느낌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 내 삶이 조금 더 여유로워 지면 좋겠구나 싶어서 미니멀 라이프를 꿈꾼다.

저자는 책의 제목을 <마음을 다해 대충 하는 미니멀 라이프>라고 지었지만,
내용은 온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책의 마지막에 가면 <마음을 다해 대충 하는 쓰레기 없는 일주일>이라는 파트가 있는데 이 부분의 내용에 무척 관심을 갖고 읽게 됐다.

일주일 동안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살아가기, 가 가능한 일인가.
우선 의문부터.
저자 역시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일주일간 실천해보고 작게나마 긍정적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장을 보러 갈 때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건 기본이고, 야채나, 고기 등을 구입할 때 비닐을 가져오지 않기 위해서 담아 올 용기를 들고 간다. 피자나 파스타를 포장해 올 때 포장 용기 대신 집에서 그릇을 가지고 간다. 음료는 당연히 텀블러에 담아 마시고.
읽다 보면, 아.... 이렇게 하는 건 정말 쉽지 않겠다 싶다. 그럼에도 언젠가 나도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우리 아파트는 매주 금요일 밤, 토요일 오전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데 매주 버려도 버려도 어쩌면 이리 많이 나올까 싶을 때가 많다.
Zero Waste는 불가능하겠지만 나 역시 점차 점차 줄여나가는 걸 목표로 도전해 보고 싶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책은 미니멀 라이프의 방법, 수납 법이나 정리 정돈 등등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뭔가 정리되는 느낌이다.
친근하게 옆집에 놀러 가 옆집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슬쩍 둘러본 것 같은 느낌이다.
덤으로, 미니멀 라이프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할 이웃이 생긴 느낌이고.

책을 읽은 뒤 저자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 했다.
책만큼이나 간결한 포스팅이 올라오는데 사진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있으면 '아.. 얼른 나도 뭔가 좀 비워야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실용적인 내용의 미니멀 라이프 책을 찾는 게 아니라면,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나 생각을 막 갖기 시작한 이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한 따뜻한 책.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준 미니멀 라이프라 해도 다양한 '취향'중 하나라 생각할 뿐 삶을 살아가는 데 절대적인 진리나 신념이라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삶의 포지션과 취향을 선택하는 것은 존중받아야 할 개인의 자유입니다. 저 역시 여전히 들끓는 물욕을 지닌 하찮은 범인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미니멀 라이프를 주제로 책을 낸 까닭은 제가 앞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계신 분들에게 큰 격려를 받았듯 저도 누군가에게 작게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랍니다."  에필로그 중에서, p327

 

미니멀 라이프란 신기합니다. 쓸모없는 것을 비웠을 뿐인데 이전보다 내가 조금은 더 쓸모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니 말입니다. 필요 없는 것들을 비우면 과거엔 모르던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모금함에 외국 동전과 지폐를 넣고 드렸던 기도를 다시 떠올리며 다짐해봅니다. "아무쪼록 서랍 속베 방치되어 있는 동그란 외국 동전이 어느 누군가에겐 동그란 희망이 되고, 구겨진 외국 지폐가 힘든 누군가에겐 빳빳한 용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앞으로도 제 삶에 쓸모없는 과욕을 쓸모 있게 비우는 지혜를 주세요." p129

모든 인생이 그렇듯 미니멀 라이프도 각자의 내공, 철학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내공이 부족한 내가 ‘비움‘을 위한 ‘비움‘을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곤 합니다. 이전엔 필요해서가 아니라 ‘소비‘ 자체의 짜릿함에 빠져 물건을 쌓아두었다면 지금은 새로운 ‘소비‘를 위한 ‘비우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자칫 ‘소유하는 즐거움‘에 대한 집착이 ‘비우는 즐거움‘으로 슬며시 탈바꿈한 것은 아닌지를 말이지요. p157

만약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살았다면 내 삶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낄 때마다 우울하고 속상했을지도 모릅니다. 아울러 평범한 일상에 만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삶의 포커스가 ‘최대한‘에서 ‘최소한‘으로 변화되지 많은 것에 감사하게 되었답니다. 예전에는 힐링 메시지를 담은 책에 쓰인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삶‘이란 내용에 큰 감흥이 없엇고, 성공한 스타 강사들이 ‘넘쳐나도 괜찮아요‘같은 말을 하면 반항아처럼 부은 얼굴로 고개를 젓곤 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사소한 것부터 삶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뀐 건 스스로 놀라운 일입니다. p187

만약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라면 남겨진 제 흔적은 어떤 것일까 살펴봅니다. 휴대폰에 남은 남편과 나눈 메시지를 읽어봅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매일 해주었습니다. 별거 아닌 일로 티격태격 하는 부부이고 거창한 이벤트는 없지만 소박하고 사이좋게 지낸 흔적이 가득해 마음이 놓입니다.
(중략)
미니멀 라이프가 무엇을 남기느냐에 대한 질문이라면 제 답은 사랑하며 산 흔적만 남기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고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하고 간 인생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것이 염치없는 거라면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입니다. p207

앞으로 더 풍족하게 살길 바라지만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혹여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요.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일 때도 있지만 지극히 평범한 나를 사랑하고,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아가 단단해진 것을 느끼죠. 화려한 인맥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적은 인연이라도 깊은 마음을 오래도록 나누고 싶어요.
미니멀 라이프를 하면서 내가 지닌 마음의 그릇이 작다는 걸 느끼니 겸손을 알아가고, 타고난 게으름은 크게 달라진 게 없기에 더 부지런해지고 싶네요. ‘마음을 다해 대충 하는 미니멀 라이프‘란 제 모토처럼 완벽한 미니멀 라이프가 되길 욕심내기보단 모순덩어리 미니멀 라이프를 인식하며 느리더라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p220

미니멀 라이프의 정의가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라면 또 다른 정의는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제 마음속 쓸모없는 ‘교만‘이라는 이름의 덩어리를 버리려 합니다. 냉동실에 오랜 시간 쌓여 있던 정체불명의 검은 비닐봉지를 버린 것처럼 개운합니다.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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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달, 블루문 창비청소년문학 81
신운선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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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다.
'내게는 없을 것 같던 이름, 엄마'
책 표지에 둘러진 띠지에 적힌 한 문장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었지만, 그래서 이 책을 선뜻 읽어야겠다 골라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놀라게 할 줄은 몰랐다.

내게 이수연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건 이십 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였다.
'엄마'가 될 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될 수 있겠구나, 짐작하는 것과 엄마가 된다는 것은 다른 일이니까.

순진했나,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억에 남는 성교육을 받아 본 기억도 없고,
주변의 아이들 중에 남자 친구와 잠을 같이 잤다고 말하는 아이를 본 기억도 없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그냥,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시대가 변했다. 통계조사를 통해 첫 경험 나이가 열셋이라는 기사를 봤을 때, 놀라움과 함께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말도 안 돼. 내 첫 반응.
나도 어느새 그렇고 그런 어른이 된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어 버린 기사였다.

요즘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교육이 아니라 정확한 피임법을 알려주는 교육이라는걸,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키고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걸 여러 책을 통해, 매체를 통해 알게 되면서 아직 어린 딸에게 언제부터 그런 교육을 시켜야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달, 블루문>>에 등장하는 수연은
엄마에게 버림받았던 기억, 아빠에게 버림받았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채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아빠와 살던 초등학생 때 아빠는 수연을 이모 집 앞에 데려다주고 떠났다. 이쁘고 잘 사는 엄마에게 데려다줄 거라는 말과 함께.
수연의 기대와는 다르게 엄마는 수연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리곤 다시 수연을 아빠에게 돌려보냈다.

흔히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엉터리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감정들은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도망치고 싶은 기억일수록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의식 어디엔가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는 법이니까. 아홉 살 때 내가 겪은 일이 그렇다. p10

아홉 살,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아야 할 나이. 어리광을 피우고 아이답게 자라야 할 나이에 수연은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렸다. 어른들의 세계를 알아버렸다.
엄마에게서 다시 아빠에게로 돌려보내진 뒤, 수연은 아빠와도 더 이상 전처럼 어리광도 피우고, 웃기도 하던 관계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절대로 아빠처럼은 살지 않을 거였다. 아빠처럼 살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직장에서 일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멋진 연인을 만나 남들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사는 것. 별거나 이혼, 병이나 실직, 예상하지 못한 불운 등을 겪지 않고 사는 것. 그게 내 계획이었다. 계획은 이미 태어난 순간부터 어긋난 것 같았지만, 사는 게 내 뜻대로 안 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 삶의 계획을 포기할 수 없었다. p68

고3 졸업을 앞두고 수연은 자신이 임신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열여덟 살에 임신한 소녀가 세상을 대하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대하는 담담한 태도가 아닐까.
세상이 가진 편견 중, 불우한 가정환경에 처한 십 대들의 일탈도 있지 않을까. '엄마 아빠가 이혼한 애들이 그렇지 뭐. 십 대에 임신했으면 애가 뻔하지 뭐. ' 등등의 시선들.
이 소설 속 아이들은, 어리지만 적어도 자신의 삶에 대해, 친구에 대해, 사람에 대해 자신들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른들이 놀랄만한 아이들, 배워야 할 아이들. 이 소설의 매력은 거기서 극대화되는 듯하다.
수연은, 아이 아빠인 남자친구를 좋아했다. 남자친구 역시 수연을 좋아했고. 그들은 서툴렀지만 그들의 방식대로 좋아했고, 임신을 안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두려워했다.

수연은 스스로 미혼모가 쉴 수 있도록 마련된 '사랑아이집'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보살핌을 받고, 아이를 낳고 입양을 보낼 생각이었다. 아니, 그냥 그래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배가 점점 불러오고, 함께 시설에서 지내던 아이들이 출산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수연은 아이를 낳기로 마음먹었다.

두려웠을거다. 무서웠을거다.
이야기는 이제 아이를 낳아 직접 기르기로 마음먹은 수연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리고 펼쳐지지 않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떠올려보게 한다.

기나긴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할 거다.
어쩌면, 예상치 못한 불우한 일들이 닥칠 수도 있고, 세상의 편견과 끊임없이 맞서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절대, 포기하거나 쓰러지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이제는 어른들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 아이들까지 보듬어 줄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될 기회를 스스로 놓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과 어른들이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어쩌면 어른들이 더 많이 읽어야 할 책이다.

- 아기를 나보다 더 좋은 부모에게 입양 보내는 게 인생의 걸림돌을 해결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식을 버리고 싶은 부모가 없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어떤 부모는 자식보다 자신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나는 더 괴로웠다. 더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게 아기를 위한 길이라고 되뇌어도 마음속에서는 나도 어쩔 수 없나 싶었다. 홀가분하게 살기 위해 아기를 남에게 미루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그토록 미워하던 부모처럼 말이다.
지은 언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기를 안은 지은 언니의 뒷모습에는 무거움과 가벼움이 함께 얹혀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정빈이가 아기를 데리고 나가 버렸다. 도망이었다. 오후에 사무실에 내려가 보니 아기를 입양하기로 한 여자가 홀쭉한 몸으로 울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어긋남이 내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p132

- 아기는 온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은 채 내 몸속을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그때 아기가 온전히 내 안에서 나만을 의지해 자라고 있고 나를 통해 세상을 보려고 한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나에게 속했지만 나와는 다른 새로운 생명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엄마가 뭔지 잘 모르지만 까짓것 한번 해보자는 의지가 내게 서서히 들어찼다. 모양이 있다면 작은 씨앗이 순식간에 커져 단단한 아름드리나무가 되는 모습으로.
나는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나 자신을 믿고 내가 처한 상황을 뚫고 나가기로 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한 발 한 발 디뎌 보기로 했다. 내게 엄마는 남들에게처럼 의미 있는 이가 아니었지만, 나는 이 아기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보자고 했다. 어려움이 크겠지만 살아 보겠다고 하면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미약하나마 그런 자신감이 가슴에서 불끈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그동안의 온갖 갈등이 뒤로 물러서고 내가 불쑥 내 삶의 무대 앞으로 나와 선 느낌이 들었다. p143

-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일까?"
"글쎄...... 자식을 버리지 않는 엄마?"
나도 모르게 엄마를 떠올리며 말하고 있었다.
"대부분 안 버리지. 그렇다고 좋은 엄마는 아냐. 아이 입장에서는 더 좋은 사람에게 입양 가서 크는 게 나을 수도 있잖아. 안 그래? 난 어릴 때 왜 저런 부모가 내 부모일까 얼마나 속상했는데. 차라리 프랑스나 미국 같은 데 입양 가서 좋은 부모 만났으면 불어나 영어도 저절로 잘할 거고 고생도 덜할 거고. 그런 생각 가끔했어. 부모가 너무 지긋지긋하게 마음에 안 들어서."
엄마를 닮지 않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달이가 태어나 커가면서 차라리 입양을 갔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니어서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그러지 않을까? 내가 엄마를 미워한 것처럼 달이가 날 미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당장 내가 되어야 할 사람이 좋은 학생도 좋은 사람도 아닌 좋은 엄마라니! 멀고 낯설고 그리운 이름이었다. p196

- 엄마 노릇은 엄마 노릇일 뿐 내 삶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욕심일지라도, 조금 늦어지더라도 둘 다 잘 해내고 싶었다. 달이 엄마와 그냥 이수연의 삶 둘 다. (중략)
새삼 내 고민은 달라졌다. 어려움과 비난을 뚫고 어떻게 살아갈지, 나와 달이를 어떻게 지킬지가 중요해졌다. 그 무엇이 날 협박하려 해도 겁먹지 않을 것이다. 달이로 인해 고통만이 아니라 어떤 기운도 함께 온 것이 분명했다. 나는 조금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인생길게 생각하기로 했다.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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