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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달, 블루문 ㅣ 창비청소년문학 81
신운선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평점 :
멍하다.
'내게는 없을 것 같던 이름, 엄마'
책 표지에 둘러진 띠지에 적힌 한 문장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었지만, 그래서 이 책을 선뜻 읽어야겠다 골라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놀라게 할 줄은 몰랐다.
내게 이수연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만 같다.
- 아기를 나보다 더 좋은 부모에게 입양 보내는 게 인생의 걸림돌을 해결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식을 버리고 싶은 부모가 없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어떤 부모는 자식보다 자신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나는 더 괴로웠다. 더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게 아기를 위한 길이라고 되뇌어도 마음속에서는 나도 어쩔 수 없나 싶었다. 홀가분하게 살기 위해 아기를 남에게 미루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그토록 미워하던 부모처럼 말이다. 지은 언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기를 안은 지은 언니의 뒷모습에는 무거움과 가벼움이 함께 얹혀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정빈이가 아기를 데리고 나가 버렸다. 도망이었다. 오후에 사무실에 내려가 보니 아기를 입양하기로 한 여자가 홀쭉한 몸으로 울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어긋남이 내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p132
- 아기는 온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은 채 내 몸속을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그때 아기가 온전히 내 안에서 나만을 의지해 자라고 있고 나를 통해 세상을 보려고 한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나에게 속했지만 나와는 다른 새로운 생명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엄마가 뭔지 잘 모르지만 까짓것 한번 해보자는 의지가 내게 서서히 들어찼다. 모양이 있다면 작은 씨앗이 순식간에 커져 단단한 아름드리나무가 되는 모습으로. 나는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나 자신을 믿고 내가 처한 상황을 뚫고 나가기로 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한 발 한 발 디뎌 보기로 했다. 내게 엄마는 남들에게처럼 의미 있는 이가 아니었지만, 나는 이 아기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보자고 했다. 어려움이 크겠지만 살아 보겠다고 하면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미약하나마 그런 자신감이 가슴에서 불끈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그동안의 온갖 갈등이 뒤로 물러서고 내가 불쑥 내 삶의 무대 앞으로 나와 선 느낌이 들었다. p143
-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일까?" "글쎄...... 자식을 버리지 않는 엄마?" 나도 모르게 엄마를 떠올리며 말하고 있었다. "대부분 안 버리지. 그렇다고 좋은 엄마는 아냐. 아이 입장에서는 더 좋은 사람에게 입양 가서 크는 게 나을 수도 있잖아. 안 그래? 난 어릴 때 왜 저런 부모가 내 부모일까 얼마나 속상했는데. 차라리 프랑스나 미국 같은 데 입양 가서 좋은 부모 만났으면 불어나 영어도 저절로 잘할 거고 고생도 덜할 거고. 그런 생각 가끔했어. 부모가 너무 지긋지긋하게 마음에 안 들어서." 엄마를 닮지 않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달이가 태어나 커가면서 차라리 입양을 갔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니어서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그러지 않을까? 내가 엄마를 미워한 것처럼 달이가 날 미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당장 내가 되어야 할 사람이 좋은 학생도 좋은 사람도 아닌 좋은 엄마라니! 멀고 낯설고 그리운 이름이었다. p196
- 엄마 노릇은 엄마 노릇일 뿐 내 삶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욕심일지라도, 조금 늦어지더라도 둘 다 잘 해내고 싶었다. 달이 엄마와 그냥 이수연의 삶 둘 다. (중략) 새삼 내 고민은 달라졌다. 어려움과 비난을 뚫고 어떻게 살아갈지, 나와 달이를 어떻게 지킬지가 중요해졌다. 그 무엇이 날 협박하려 해도 겁먹지 않을 것이다. 달이로 인해 고통만이 아니라 어떤 기운도 함께 온 것이 분명했다. 나는 조금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인생길게 생각하기로 했다.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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