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 옴니버스 퇴사 에세이
안미영 지음 / 종이섬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만두면 나 뭐 하지~?
이런 생각 정말이지 수 없이 많이 해봤다.

그만두고 나면..  '한 달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만 할 거야. 뒹굴뒹굴하면서.
그러다가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거 하나씩 찾아서 해봐야지.'
뭐 이런 생각부터 시작해서 '잠깐만 쉬다가 다른 일해야지. 머리 안 쓰고, 그냥 몸으로 하는 일해볼까 봐.' 이런 생각까지... 주기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스물셋에 입사해, 서른아홉.
그 사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워킹맘으로 7년. 정년까지 다닌다면, 앞으로 20년쯤 남은 시간.
아, 20년을 더 다니려고?
푸하하, 정년퇴직 생각을 하고 있다니.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퇴사.
다니고 있는 직장이 기대치에 못 미쳐서 일 수도 있고, 더 늦기 전에 다른 일을 도전해 보고 싶어서 일 수도 있고, 육아 때문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퇴사를 생각할 거다.

결혼 전에는 그만두고 공부를 더 해보고 싶었다. 소설도 원 없이 써보고 싶었고, 대학원도 가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전업주부를 잠시 상상했다. 출근하는 신랑 배웅하고, 집 청소하고, 퇴근 시간 맞춰 저녁 해놓고, 신랑 퇴근하면 밥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그런 생활을.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매 순간 혼란이었다. 아이가 아플 때, 어린이집이 쉬는 날, 주구장창 이어지던 야근으로 아이의 잠든 얼굴만 볼 때.
그런데도 그 순간순간 나를 붙든 건 뭐였을까.

책임감일 수도 있고,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싶다.
아마도 책임감을 동반한 두려움이 정확한 말일 테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했고, 누구에게 손 벌리지 않고 벌어서 엄마에게 주고, 내 생활비하고 그런 생활이 너무 익숙해져서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는 거.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 같은 거.

나는 지금도 그래서 약간 못된, 꼬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퇴사하고, 다른 꿈을 쫓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듣고, 읽으면서... 그래도 저 사람들은 기댈 대가 있었을 거야. 나처럼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삶을 살진 않았을 거야. 뭐 이런 편견.
그래서 이런 책을 읽으면 나랑은 사정이 다르니까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생각해보니, 그거 부러움이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

왜 그들이라고 힘든 게 없고, 불안한 게 없고, 절망하는 순간이 없을까.
그럼에도 용기 내고, 도전해보고, 부딪쳐보고 했을 테지.
다만 나는 실패가 두려웠던 거고, 그래도 안정적인 직장생활이 나를 지탱해준다는 믿음을 놓지 않았던 거지. 모두 다른 거지. 누가 틀리고 누가 맞는 게 아니라.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에는 열 명의 이야기가 있다.
익명으로 소개된 열 명의 인물들이 퇴사 후에 각각 어떤 삶을 살았는지, 퇴사가 어떤 의미였는지, 퇴사 이후의 삶이 어땠는지, 앞으로 또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
열 명의 열 가지 이야기가 책 속에 가지런히 담겨 있다.

「이 책은 퇴사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게 효율적인지 알려주는 자기 계발서가 아니다. 다양한 인물들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했던 인생의 한 시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 경우에는 그 쉬는 시간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과정에서 일과 삶에 대해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 공유하는 책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1. 다시, 좋아하는 것을 찾는 시간 / A과장 이야기
2. 자연 속에서 배우는 시간 / K씨 이야기
3. 내 일을 준비하는 시간 / L씨 이야기
4. 덕후로 살아보는 시간 / O과장 이야기
5. 버킷리스트의 몇 가지라도 실천해보는 시간 / J실장 이야기
6. 발길 닿는 대로 보고 느끼는 시간 / S씨 이야기
7.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 M팀장 이야기
8.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투쟁하는 시간 / Y작가 이야기
9. 가장 소중한 존재와 보내는 시간 / B과장 이야기
10. 감성을 따라가보는 시간 / C씨 이야기

원하는 회사에 입사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치열하게도 살아 본 이들이 불현듯 회사를 떠났다.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다시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진짜 원했던 삶이 뭔지, 뭐가 중요한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리고 한 달이든 일 년이든 그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그들은 다시 직장을 가질 수도 있고, 내내 여행을 다니면서 살 수도 있고, 프리랜서로 살 수도 있고, 영영 일을 하지 않고 살 수도 있다.
본인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다.
그렇다면, 그 길에 뭐든 옳은 길일 테다. 스스로 고민하고 돌아보고 선택한 길.

나는 그게 가장 부럽다.
선택권이 있을 수 있는 삶. 오롯이 자신을 가장 앞에 두고 무언가 결정할 수 있는 삶.
물론, 지금의 내 삶 역시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니 내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행복하게 즐겁게 살아낼 수 있도록 느리더라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살아 내야겠지.

「지금 퇴사를 결심한 채 그 시간을 앞두고 있다면, 혹은 그 시간을 흔들리며 보내는 중이라면, 이 책에서 만난 인물들에게 위로나 조언이 될 만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굳이 퇴사가 아니더라도, 직장 생활 중 스트레스와 관계들로 인한 어려운 감정을 가지고 있거나 힘들게 하루하루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또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다는 용기를 줄 수 있는 이야기들.

‘무엇이 우리를 일하게 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화두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숙자가, 혹은 명함에 찍혀 있는 근사한 타이틀이 우리를 움직인다고 해도 틀린 대답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해본 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다.
A과장은 시스템의 한계를 느끼고 퇴사할 당시, 앞으로 음악만큼 더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차에 대해 어느 정도의 호기심은 있었지만 그것은 막연했다. 하지만 공부하며 알아가다 보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떠난 여정에서, 그녀는 새로운 길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많이 배운 것은 물론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까지하게 됐다. - <다시, 좋아하는 것을 찾는 시간> 중에서, p24

그녀에게는 언젠가 시골에 내려가 텃밭정원을 가꾸며 작은 마을 도서관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서른 즈음에 새로운 경험이 필요해 회사를 그만두고 떠났던 것처럼 다시 그런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그만큼의 용기를 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앞에서 약해지지 말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자고, 더 용기를 내보자고 마음속으로 되뇐다. 회사를 그만두고 비로소 노동의 가치를 알게 되었는데 조직의 일원으로 일하는 요즘 또다시 단지 회사의 비전에만 귀속되어 일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도 된다. 회사의 비전과 개인의 비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바로 서야만 한다는 것을 자각한다. -<자연 속에서 배우는 시간> p46

예전에 그녀에게 중요했던 건 사람들의 시선과 인정이었다. 좋은 회사와 그 안에서 자신이 가진 직함, 사람들이 알아주는 성과 같은 것들. 그 일을 좋아한다는 마음보다는 세상엔 똑똑한 사람들이 많고 다들 열심히 하니까 자신도 그만큼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일했던 시간. 반면 지금은 자신의 일이니만큼 애착이 크고 무엇보다 자기만족을 위해 일하고 있다. 사업 확장도 남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원해서 하려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지만 원동력은 완전히 다른 셈이다. - <내 일을 준비하는 시간> 중에서, p67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대상을 얼마나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을까. 덕후가 아닌 사람들이 그 마음을, 덕후들의 열정을 의심하는 경우를 본다. 아니, 의심한다기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열정이 눈에 보이는 실질적 보상이나 발전적 관계를 가져오는 게 아니므로, 비논리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탓이다. 하지만, 돈과 시간과 온 마음을 좋아하는 대상에게 쏟는다는 건 스스로의 관심과 감정에 매우 솔직하게 몰입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한 일이다. - <덕후로 살아보는 시간> 중에서, p87

회사생활이나 결혼에 대해 고민이 될 때 중요한 것은 지나치게 조바심을 내거나 겁을 먹지 않는 것이다. 해보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시도해봤을 때, 모두 실패한 줄 알았던 순간에 아주 큰 것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보인다. - <버킷리스트의 몇 가지라도 실천해보는 시간> 중에서, p110

버티는 시간은 무엇을 남길까. 혹시 낮아진 자존감, 무기력감은 아닐까.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보수에 비해 일이 힘들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하루하루 보내다 어느 순간 이 무기력감과 마주한다면, 그것을 치유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이가 들고 사회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회사로부터 등을 돌리는 결정과 판단은 빨라져야 한다. 그 이유는 한 가지, 우리의 시간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 <가장 소중한 존재와 보내는 시간> 중에서, p199

쉬어가는 시간은 분명 필요하다. 한동안 경력이 멈춘다고 우리가 가고 있는 인생길이 멈추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회사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 갇힌 걸 모른 채 매일 쳇바퀴 돌 듯 유지하는 생활 속에서는 회사 밖에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망각하게 된다. 틀을 벗어나야만 다른 세상을 만나고, 지금까지의 공간과 그곳에서의 삶이 어땠는지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 <감성을 따라가보는 시간> 중에서, p2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리틀 포레스트 1~2 세트 - 전2권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보고 싶다.
영화로 보고 싶다.

만화책 읽는 내내 든 생각은 딱 하나.
영.화.보.고.싶.다.

신생아 돌보면서 영화관 갈 생각은 정말 생각 만일뿐.
만화로라도 읽어보자 싶어 책을 보는데 책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만화책으로 보니 더더더 영화로 보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책은 뭔가 부족하다.
요리만화도 아니고, 힐링 만화도 아니고, 스토리가 잘 짜인 만화도 아닌 것이...
이것저것 조금씩 맛보기로 찔금 먹어보는 느낌이랄까.

 

 일본 작은 마을 코모리를 배경으로 도시에서 귀향한 이치코의 소소한 생활을 만화로 담아냈다.
하나하나 요리마다 계절의 색을 가득 담은 느낌.
손으로 기르고 거둬들인 재료들로 만든 소중한 음식들.
그곳에서 조용히 며칠 쉬었다 오면 좋겠다 싶은 곳이다.
계절을 담아내고, 음식을 담아내기에 흑백의 그림이 못내 아쉽다. 물론, 자연 그대로의 색을 컬러로 한다고 온전히 살려 낼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흑백의 그림으로 봐도 온통 다 먹고 싶어지던데, 영화로 보고 있으면 입안에 침이 고일 듯.

책을 보고 영화를 찾아보니 사람들의 반응도 대부분, 배고플 때 보지 말자, 영화 보고 나와서 뭐 먹었다, 이런 글들이 많던데......
꼭 봐야지, 보고 말 거야.

소개된 서른 가지가 넘는 음식 중에, 밤조림과 군고구마, 감자빵...... 계속 생각난다.
화 속에서도 저 음식들이 나오면 좋겠는데.

음식마다 담겨 있는 이치코의 이야기와,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 자연과 자연에서 난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로 상처를 치유받는 과정, 그 이야기들을 좀 더 오롯이 느껴보고 싶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한 번 책을 보고 싶은 마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껏 살면서 '검사'를 만나본 적이 없다.
주변에 '검사'와 연닿을만한 사람도 없다.
그러다 보니 전적으로 '검사'란 직업은 내겐 알 수없는 직업이자 멀고도 멀게만 느껴지는 직업이다.
게다가 TV에서 보는 '검사'란 캐릭터는 권력과 하나 된 캐릭터 이거나, 완전 정의로운 캐릭터이거나 둘 중 하나라서 대체로 '검사'에 대한 이미지는 극과 극이 된다.

학교에서 일하면서 '변호사'를 만날 기회는 많았다.
강의를 나오는 분들도 있고, 몇 몇 일들로 자문을 받아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실제 만나본 변호사분들 대부분이 친절하고, 성실해서 상대적으로 '검사'보다는 '변호사'에 대한 이미지가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뿐이었다.  어느쪽이든 나의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만나고 싶지는 않는 사람이라는 건 동일하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알지 못하게 새겨진 어떤 편견을 한 겹 벗어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검사나 변호사나 대체로 말을 잘하는 사람들. 말을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쓰란 법은 없으나,
몇몇 읽어본 그들의 책은 대체로 재미있었다(물론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책을 냈겠지만).

이 책 <검사내전> 역시, 너무 재미있었다.
이건 뭐, 책장을 덮을 새도 없이 슉슉 책장이 넘어갔다.
육아에 지쳐 유머 코드 따위 잊은 신생아 엄마에게 이만한 재미를 주는 책이라면 얼마나 훌륭한가(지극히 개인적인 코드다).

정지 학과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거쳐 검사 생활을 시작한 저자는 '검사'가 돼야겠다는 포부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검사가 되었고,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한 만큼 '검사 생활'이 매 순간 순탄했던 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반대로 또 굳이 '검사' 생활이 못 견딜 만큼 탈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고.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책의 앞에 적힌 '생활형 검사'라는 말이. 결국 '검사'도 직장인이 아니었던가.
어디나 상사가 있고, 부하직원이 있고, 이런저러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처럼 '검사'의 생활도 그냥 직장생활과 다르지 않다.
내가 그동안 별생각은 없었지만 무의식중에 '검사'들의 세계는 뭔가 거창할 것 같아.. 했던 나의 편협한 생각이 부끄러워졌을 뿐.

책은 생활형 검사로 지내면서 다룬 사건들, 만난 사람들, 검사의 사생활, 법에 대한 이야기 등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냥 평범하게 하루하루 사는 '나'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사기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범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 사건들을, 다양한 사람들을 매일 마주하는 삶이란 어떨까... 잠시 상상해 보게 했다.
직장생활로 치자면, 야근 많고 스트레스 많은 절대 피하고 싶은 직장이다.

재미있게 읽다가 불쑥불쑥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은... 사기를 당하거나, 억울한 상황에 놓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가진 것 없는, 세상 밑바닥에 내몰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거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요리조리 피해 가며 잘만 사는데, 없는 사람들은 죄지은 것도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거.
제발, 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법이 존재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또 한 번 갖게 됐다는 거.

책 속에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라는 글이 있다.
소년 검사를 하면서 만난 학교 폭력의 세계를 경험한 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다른 부분은 아니더라도, 이 글 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와닿았다.

「인권 의식은 자신이 귀중하다는 인식이 아니다. 자기가 소중하다는 것은 굳이 안 가르쳐도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리고 목숨처럼 자신을 아끼고 사랑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주관적인 자기 환상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 대한 인지편향과 우월환상을 통해 자신은 옳고 소중하다고 확신한다. 그러니 자기에 대한 사랑이니 힐링이니 하는 것은 적당히 해도 된다. 지나치면 '나는 오늘 수고한 나에게 선물을 했다'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허세가 되어 버린다.
 인권 의식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아이들의 인권이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자신의 장래에 불이익이 되는 처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정말 알아야 하는 것은 폭력을 쓰면 친구와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이다. 왜 피해를 입은 아이들은 평생 그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고 가해를 한 아이들은 아무런 부이익 없이 살아도 되는가.-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중에서, p192

이 책 한 권이 '검사'의 모든 것을 말해줄리 없고, 모든 법을 이야기해 줄리 만무하다.
그렇지만, 세상에 이러저런 많은 일이 있구나.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이런 '검사'도 있구나. 이런 세계도 있구나. 내가 가지고 있던 편협한 시각 한 조각을 걷어내 준 느낌이다.

'법 없이도' 사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혹여라도 '법'이 필요한 순간, 적절하게 정당하게 그 '법'을 누릴 권한을 갖게 되길 바라는 마음도 생겼달까.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나는 이 책에서 받아야 할 감동의 70% 이상을 받은 것 같다. 뭐랄까 직업에 대한 저자의 소신, 사람을 대하는 저자의 따뜻한 마음, 세상에 대한 관심.... 그런 것들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달까. 그래서, 앞에 읽은 글들이 더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이 책이 검사라는 직업의 이면이나 실상을 알려주는 역할을 할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실상이란 본래 그다지 재미없는 법이다. 검사보다 멋지고 보람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사고가 난 곳이면 어디든 번개처럼 달려와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구조대원도 있고, 자신의 굽은 허리보다 더 가파른 남해 섬 비탈에서 고사리를 꺾어 데치고 말리는 촌로도 있으며, 가족들을 위해 천대와 열악한 노동 조건에도 불구하고 프레스 기계 앞에서 졸음을 쫓고 있는 이주노동자들도 있다. 그에 비하면 검사가 하는 일이란 온실 속의 화초 가꾸기 정도에 불과하다.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새벽마다 새 아침을 열어주는 청소부처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형사부 검사들이 있긴 하다. 세상을 속이는 권모술수로 승자처럼 권세를 부리거나 각광을 훔치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지만, 하루하루 촌로처럼 혹은 청소부처럼 생활로서 검사 일을 하는 검사들도 있다. 세상의 비난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늘 보람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생활형 검사로 살아봤는데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세상에는 우리보다 무거운 현재와 어두운 미래에 쫓기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이 정도가 수달 제사처럼 정리되지 않은 글을 세상에 내놓는 이유인 것 같다.
누군가 돌을 쌓아둔다고 집이 되는 것이 아니듯이 사실을 모아둔다고 과학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글을 모아 놓는다고 다 책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굳이 통찰력이나 선견지명이 없더라도 이야기는 할 수 있다. 멈춰버린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정확히 맞는다. 해결되지 않거나 비틀어진 논리들은 가끔 빗자루를 들고 양탄자 밑으로 넣은 뒤 잠시 잊어도 된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래도 세상 무너지지는 않는다. - 에필로그 <아침을 여는 청소부처럼 묵묵히 살아가는 그대들에게> 중에서, p384

논리와 이성의 천적은 부조리가 아니라 욕심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주성분은 욕심, 욕망, 욕정이다. 우리는 ‘욕심‘이라는 거친 바다위를 구멍 뚫린 ‘합리‘라는 배를 타고 가는 불안한 존재들이다. 마땅히 쉼 없이 구멍을 메우고 차오르는 욕심을 퍼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욕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그래서 우리는 욕심으로부터 논리와 이성을 지켜내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 결과 아무리 허술한 속임수라도 피해자의 욕심과 만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지구온난화를 해결해주는 무한동력 에너지 사업도, 200세 인생을 가능케 하는 세포재생 사업도, 바르기만 하면 100달러자리 지폐로 변모한다는 마법 잉크도 모두 가능해지는 것이다. 개미귀신은 늘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개미귀신이 개미에게 뿌려대는 모래는 내 마음속의 탐욕이다. 누구도 자신 안의 탐욕을 이길 수는 없다. - <욕심이라는 마음속의 장님> 중에서, p63

호메로스는 만약 인간이 자기 운명보다 더 많은 고통을 당했다면 그것은 신들 탓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의 장님 때문이라고 했다. 안 박사 일당의 유혹이 사기라는 신호는 밤하늘의 별보다 많았다. 등기부를 떼어보기만 했어도, 잔고증명서의 명의인을 살펴보기만 했어도 사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국정원이 남산에서 내곡동으로 이전한 것도 20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그 많은 정보들을, 목사님은 못 본 것이 아니라 안 본 것이다. 밤하늘에 별이 아무리 많아도 욕심이라는 간접조명이 생기면 보이지 않는다. - <욕심이라는 마음속의 장님> 중에서, p70

바보 같게도 나는 그에게 살다 보니 세상이 다 사기 같다고 말했다. 영민씨 같은 사람에게 세상은 더욱 그렇다고 했다. 청년에게 희망을 주라는 말도 사기라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식들에게 희망이 아니라 특혜를 준다. 청년에게 위로를 건넨다는 교수나 종교인도 정작 관심은 돈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정의와 법치주의를 부르짖는 검찰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사기의 주연일지 모른다. 어쩌면 개처럼 일하는 형사부 검사들의 선의와 신실함이 이 사기의 가장 화려한 기술로 악용되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늘 영민씨 같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과 기대를 훔쳐 가는지 모른다. - <국가대표 영민씨의 슬픈 웃음> 중에서, p109

인간의 존엄성이란 눈물 흘리기 좋은 감성적인 소재가 아니다.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냉철하고 엄중한 과제이자 요구이다. 존엄한 것은 함부로 대할 수 없고, 훼손될 경우 반드시 응분의 대가가 따라야 한다. 마음대로 짓밟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짓밟한 것이 오히려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간청해야 한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존엄한 것은 두려운 것이고 원시적인 것이다. 지켜지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소년전담 검사를 하면서 나는 늘 피해자에게 너는 소중하고 무엇보다 존엄하다고 말해주곤 했다. 그리고 가해자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고, 화해하거나 용서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피해를 당한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대게 두려움 때문이다. 그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존엄함과 권리를 포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존엄한 것은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슬라보예 지젝은 말했다. "진정 용서하고 망각하는 유일한 방법은 응징 혹은 정당한 징벌을 가하는 것이다. 죄인이 적절하게 징벌되고 나서야 나는 앞으로 움직일 수 있고, 그 모든 일과 작별할 수 있다." -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중에서, p193

사람은 나무와 달라서 토양이 좋다고 늘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나를 보더라도 그렇다. 욕구와 충동 속에서 사람은 선택할 수 있다. 우리의 존재는 선택이 결정짓는다. 결국 선택이 자아를 만드는 것이다.
‘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인간‘에 대한 질문과 같다고 한다. 법뿐 아니라 모든 인문학이 그럴 것이다. ‘존재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 <산도박장 박 여사의 삼등열차> 중에서, p221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검찰, 경찰, 국세청 같은 공권력 기관이 아니라 시민들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물론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는 우리나라 헌정 체제상의 한계를 짚고 넘어가야겠지만, 그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최소한 시민 스스로 자신의 힘을 국가권력에 갖다 바치는 어리석음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 어리석은 형태를 가장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고소인의 권한 확대이다. 늘어나는 고소를 당장 줄일 수 없다면 최소한 시민들 스스로 직접 분쟁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 <법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쟁 해결 방법인가> 중에서, p323

미국의 법사학자 로렌스 프리드먼은 "사회는 명백히 원하는 범죄의 양을 스스로 결정한다"라고 말했다. 범죄의 양이 많아지면 범죄에 둔감해지고 법을 경시하게 된다. 또한 범죄를 지나치게 많이 원하면 검찰이나 수사기관의 힘이 거대해진다. 그 부작용으로 검사들은 엄청난 업무 강도에 시다릴게 되었다. "그렇다면 관둬라. 검사 일 하고 싶은 사람 줄을 섰다"라거나 "왕관을 원하는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은 하지 마시라. 왕관을 써야 하는 것은 국민이다. 그게 헌법 제1조가 말하는 민주공화국이다. - <형사처벌 편의주의를 경계한다> 중에서, p3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번째 달, 블루문 창비청소년문학 81
신운선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멍하다.
'내게는 없을 것 같던 이름, 엄마'
책 표지에 둘러진 띠지에 적힌 한 문장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었지만, 그래서 이 책을 선뜻 읽어야겠다 골라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놀라게 할 줄은 몰랐다.

내게 이수연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건 이십 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였다.
'엄마'가 될 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될 수 있겠구나, 짐작하는 것과 엄마가 된다는 것은 다른 일이니까.

순진했나,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억에 남는 성교육을 받아 본 기억도 없고,
주변의 아이들 중에 남자 친구와 잠을 같이 잤다고 말하는 아이를 본 기억도 없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그냥,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시대가 변했다. 통계조사를 통해 첫 경험 나이가 열셋이라는 기사를 봤을 때, 놀라움과 함께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말도 안 돼. 내 첫 반응.
나도 어느새 그렇고 그런 어른이 된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어 버린 기사였다.

요즘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교육이 아니라 정확한 피임법을 알려주는 교육이라는걸,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키고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걸 여러 책을 통해, 매체를 통해 알게 되면서 아직 어린 딸에게 언제부터 그런 교육을 시켜야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달, 블루문>>에 등장하는 수연은
엄마에게 버림받았던 기억, 아빠에게 버림받았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채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아빠와 살던 초등학생 때 아빠는 수연을 이모 집 앞에 데려다주고 떠났다. 이쁘고 잘 사는 엄마에게 데려다줄 거라는 말과 함께.
수연의 기대와는 다르게 엄마는 수연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리곤 다시 수연을 아빠에게 돌려보냈다.

흔히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엉터리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감정들은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도망치고 싶은 기억일수록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의식 어디엔가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는 법이니까. 아홉 살 때 내가 겪은 일이 그렇다. p10

아홉 살,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아야 할 나이. 어리광을 피우고 아이답게 자라야 할 나이에 수연은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렸다. 어른들의 세계를 알아버렸다.
엄마에게서 다시 아빠에게로 돌려보내진 뒤, 수연은 아빠와도 더 이상 전처럼 어리광도 피우고, 웃기도 하던 관계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절대로 아빠처럼은 살지 않을 거였다. 아빠처럼 살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직장에서 일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멋진 연인을 만나 남들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사는 것. 별거나 이혼, 병이나 실직, 예상하지 못한 불운 등을 겪지 않고 사는 것. 그게 내 계획이었다. 계획은 이미 태어난 순간부터 어긋난 것 같았지만, 사는 게 내 뜻대로 안 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 삶의 계획을 포기할 수 없었다. p68

고3 졸업을 앞두고 수연은 자신이 임신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열여덟 살에 임신한 소녀가 세상을 대하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대하는 담담한 태도가 아닐까.
세상이 가진 편견 중, 불우한 가정환경에 처한 십 대들의 일탈도 있지 않을까. '엄마 아빠가 이혼한 애들이 그렇지 뭐. 십 대에 임신했으면 애가 뻔하지 뭐. ' 등등의 시선들.
이 소설 속 아이들은, 어리지만 적어도 자신의 삶에 대해, 친구에 대해, 사람에 대해 자신들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른들이 놀랄만한 아이들, 배워야 할 아이들. 이 소설의 매력은 거기서 극대화되는 듯하다.
수연은, 아이 아빠인 남자친구를 좋아했다. 남자친구 역시 수연을 좋아했고. 그들은 서툴렀지만 그들의 방식대로 좋아했고, 임신을 안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두려워했다.

수연은 스스로 미혼모가 쉴 수 있도록 마련된 '사랑아이집'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보살핌을 받고, 아이를 낳고 입양을 보낼 생각이었다. 아니, 그냥 그래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배가 점점 불러오고, 함께 시설에서 지내던 아이들이 출산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수연은 아이를 낳기로 마음먹었다.

두려웠을거다. 무서웠을거다.
이야기는 이제 아이를 낳아 직접 기르기로 마음먹은 수연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리고 펼쳐지지 않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떠올려보게 한다.

기나긴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할 거다.
어쩌면, 예상치 못한 불우한 일들이 닥칠 수도 있고, 세상의 편견과 끊임없이 맞서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절대, 포기하거나 쓰러지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이제는 어른들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 아이들까지 보듬어 줄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될 기회를 스스로 놓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과 어른들이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어쩌면 어른들이 더 많이 읽어야 할 책이다.

- 아기를 나보다 더 좋은 부모에게 입양 보내는 게 인생의 걸림돌을 해결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식을 버리고 싶은 부모가 없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어떤 부모는 자식보다 자신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나는 더 괴로웠다. 더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게 아기를 위한 길이라고 되뇌어도 마음속에서는 나도 어쩔 수 없나 싶었다. 홀가분하게 살기 위해 아기를 남에게 미루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그토록 미워하던 부모처럼 말이다.
지은 언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기를 안은 지은 언니의 뒷모습에는 무거움과 가벼움이 함께 얹혀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정빈이가 아기를 데리고 나가 버렸다. 도망이었다. 오후에 사무실에 내려가 보니 아기를 입양하기로 한 여자가 홀쭉한 몸으로 울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어긋남이 내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p132

- 아기는 온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은 채 내 몸속을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그때 아기가 온전히 내 안에서 나만을 의지해 자라고 있고 나를 통해 세상을 보려고 한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나에게 속했지만 나와는 다른 새로운 생명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엄마가 뭔지 잘 모르지만 까짓것 한번 해보자는 의지가 내게 서서히 들어찼다. 모양이 있다면 작은 씨앗이 순식간에 커져 단단한 아름드리나무가 되는 모습으로.
나는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나 자신을 믿고 내가 처한 상황을 뚫고 나가기로 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한 발 한 발 디뎌 보기로 했다. 내게 엄마는 남들에게처럼 의미 있는 이가 아니었지만, 나는 이 아기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보자고 했다. 어려움이 크겠지만 살아 보겠다고 하면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미약하나마 그런 자신감이 가슴에서 불끈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그동안의 온갖 갈등이 뒤로 물러서고 내가 불쑥 내 삶의 무대 앞으로 나와 선 느낌이 들었다. p143

-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일까?"
"글쎄...... 자식을 버리지 않는 엄마?"
나도 모르게 엄마를 떠올리며 말하고 있었다.
"대부분 안 버리지. 그렇다고 좋은 엄마는 아냐. 아이 입장에서는 더 좋은 사람에게 입양 가서 크는 게 나을 수도 있잖아. 안 그래? 난 어릴 때 왜 저런 부모가 내 부모일까 얼마나 속상했는데. 차라리 프랑스나 미국 같은 데 입양 가서 좋은 부모 만났으면 불어나 영어도 저절로 잘할 거고 고생도 덜할 거고. 그런 생각 가끔했어. 부모가 너무 지긋지긋하게 마음에 안 들어서."
엄마를 닮지 않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달이가 태어나 커가면서 차라리 입양을 갔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니어서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그러지 않을까? 내가 엄마를 미워한 것처럼 달이가 날 미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당장 내가 되어야 할 사람이 좋은 학생도 좋은 사람도 아닌 좋은 엄마라니! 멀고 낯설고 그리운 이름이었다. p196

- 엄마 노릇은 엄마 노릇일 뿐 내 삶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욕심일지라도, 조금 늦어지더라도 둘 다 잘 해내고 싶었다. 달이 엄마와 그냥 이수연의 삶 둘 다. (중략)
새삼 내 고민은 달라졌다. 어려움과 비난을 뚫고 어떻게 살아갈지, 나와 달이를 어떻게 지킬지가 중요해졌다. 그 무엇이 날 협박하려 해도 겁먹지 않을 것이다. 달이로 인해 고통만이 아니라 어떤 기운도 함께 온 것이 분명했다. 나는 조금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인생길게 생각하기로 했다. p2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벽까지 희미하게
정미경 지음 / 창비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기억하는 작가의 글과, 이미지를 천천히 떠올려 본다.

처음 작가의 작품을 읽은 건,
200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 <밤이여, 나뉘어라>였던 것 같다.
그 이전에 아마도 나는 정미경이라는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은 해마다 빼놓지 않고 읽었고, 그때 아, 이런 작가가 있었구나 했었을 거야.
어쩌면 수업시간에 한두 번 들어 본 작가의 이름과, 작품을 그냥 스치듯 지나갔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 이후 내가 작가의 작품을 거의 다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는 것.

그렇게 나는 작가의 작품들을 만났고, 좋아했다.
그렇지만 그뿐.

작가의 부고를 인터넷 기사를 통해 접했을 때, 아- 짧은 탄식이 나왔었겠지만, 나의 하루에, 일상에 막대하게 영향을 미쳤던 건 아니었을거다.
그래야 난, 고작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한 명의 독자였을 뿐이니까.

누군가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식은 각기 다를 것이고, 그게 그 사람과 얼마만큼의 연결고리가 있는지에 따라 또 달라질 테지.  그런데 이상하다. 이 소설집을 읽는 내내 차분해지고, 자꾸 아프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점점 더 느려졌다.

 

 소설가 정미경의 마지막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를 읽으면서,
한 사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마주했다.
그들은 동료이기도 했고, 후배이기도 했고, 반려자이기도 했다.
단순히 독자로서가 아니라, 삶의 한순간을 같이 보낸 이들이 보내는 애정 어린 마음.
그 마음이 고스란히 와닿는 순간들이었다.

생전에 작가가 쓴 단편 다섯 편과, 작가를 기억하는 또 다른 작가 정지아, 정이현의 추모 산문. 작가의 평생 반려자이자 동료였던 남편 김병종 화백의 추모글까지.

다섯 편의 소설 <못>,<엄마, 나는 바보예요>,<새벽까지 희미하게>,<목 놓아 우네>,<장마>는 기존에 읽어왔던 작가의 여느 소설들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지만 어쩐지 조금 더 아련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이건, 소설들을 읽고 있는 순간의 내 감정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섯 편의 소설들은 가깝지만 완벽히 타인인 관계들에 대해 들려준다.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다 이해하고 아는 것이 아니고, 타인이라고 해서 서로를 완전히 모른다고 할 수 없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들에 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 공은 자신의 욕망에 전력으로 매달림으로써 불안을 유예하는 쪽이었다. 금희의 방식은 반대였다. 미리 내려놓음으로써 불안의 싹수를 자르는 식이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다. 여름 바다에 둥둥 떠 있는 튜브 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금희는 끝을 예감했다. 어떤 일은 그랬다. 끝나버린 후에 알게 되는 게 아니라 그 일이 일어나려는 바로 그 순간 알게 된다.
- <못> 중에서 p36」

「 길어지는 침묵이 짐작보다 훨씬 아프다. 어떤 고통의 감각을 고스란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다는 생각이 심을 고통스럽게 했다. 한가지 사실만 빼곤 그에게 놀랍도록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냈다고 생각했으나 진짜 자신은 그에게 말했던 것들과 말하지 못했던 것들 사이에 있다는 생각을 내내 하고 지냈다.
- <목 놓아 우네> 중에서 p158」

「 남자는 왼손을 들어 윤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짧은 머리카락은 몇 가닥만 남기고 다시 흘러내린다. 네온의 명멸처럼 짧지만 환한 어떤 것이 가슴속에서 반짝 빛났다. 지나온 삶에서, 우연히 다가온 따뜻하고 빛나는 시간들은 언제나 너무 짧았고 그 뒤에 스미는 한기는 한층 견디기 어려웠다. 그랬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을 하찮게 여기고 싶지 않다.
- <장마> 중에서 p189」

이 글을 쓴 사람이 이제 없다, 고 생각하고 나면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사라질 줄 알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남겨질 이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처럼.

작가 정미경은 떠났다. 떠나왔던 자신의 별로, 그리고 그 떠난 자리마다 기적처럼 피어난 꽃들을 나는 바라본다. 지난 1월 18일 새벽 3시 반에 그녀는 내게 눈으로 말했다. 미안해. 나는...... 여기까지였어. 그랬을 것이다. 몸의 진액을 짜내어 살아온 삶. 더이상은 무리였을 것이고말고다.
 이제는 그녀를 놓아주어야 할 시간이다. 문학이라는, 내가 그리워만 하며 건너지 못했던 강 저편의 아슬한 능선에서 늘 푸르른 나무 한그루로 서 있던 사람. 나의 가난한 응원에도 늘 넘치게 답했던 사람. 나는 그녀의 차가워오는 이마에 마지막 키스를 했다. 잘가라 아내여. 내가 진실로 사랑하고 흠모했던 이 세상 단 한 사람의 작가여.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여.
- 추모산문 <나의 피투성이 연인> 김병종,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