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 옴니버스 퇴사 에세이
안미영 지음 / 종이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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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면 나 뭐 하지~?
이런 생각 정말이지 수 없이 많이 해봤다.

그만두고 나면..  '한 달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만 할 거야. 뒹굴뒹굴하면서.
그러다가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거 하나씩 찾아서 해봐야지.'
뭐 이런 생각부터 시작해서 '잠깐만 쉬다가 다른 일해야지. 머리 안 쓰고, 그냥 몸으로 하는 일해볼까 봐.' 이런 생각까지... 주기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스물셋에 입사해, 서른아홉.
그 사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워킹맘으로 7년. 정년까지 다닌다면, 앞으로 20년쯤 남은 시간.
아, 20년을 더 다니려고?
푸하하, 정년퇴직 생각을 하고 있다니.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퇴사.
다니고 있는 직장이 기대치에 못 미쳐서 일 수도 있고, 더 늦기 전에 다른 일을 도전해 보고 싶어서 일 수도 있고, 육아 때문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퇴사를 생각할 거다.

결혼 전에는 그만두고 공부를 더 해보고 싶었다. 소설도 원 없이 써보고 싶었고, 대학원도 가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전업주부를 잠시 상상했다. 출근하는 신랑 배웅하고, 집 청소하고, 퇴근 시간 맞춰 저녁 해놓고, 신랑 퇴근하면 밥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그런 생활을.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매 순간 혼란이었다. 아이가 아플 때, 어린이집이 쉬는 날, 주구장창 이어지던 야근으로 아이의 잠든 얼굴만 볼 때.
그런데도 그 순간순간 나를 붙든 건 뭐였을까.

책임감일 수도 있고,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싶다.
아마도 책임감을 동반한 두려움이 정확한 말일 테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했고, 누구에게 손 벌리지 않고 벌어서 엄마에게 주고, 내 생활비하고 그런 생활이 너무 익숙해져서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는 거.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 같은 거.

나는 지금도 그래서 약간 못된, 꼬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퇴사하고, 다른 꿈을 쫓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듣고, 읽으면서... 그래도 저 사람들은 기댈 대가 있었을 거야. 나처럼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삶을 살진 않았을 거야. 뭐 이런 편견.
그래서 이런 책을 읽으면 나랑은 사정이 다르니까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생각해보니, 그거 부러움이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

왜 그들이라고 힘든 게 없고, 불안한 게 없고, 절망하는 순간이 없을까.
그럼에도 용기 내고, 도전해보고, 부딪쳐보고 했을 테지.
다만 나는 실패가 두려웠던 거고, 그래도 안정적인 직장생활이 나를 지탱해준다는 믿음을 놓지 않았던 거지. 모두 다른 거지. 누가 틀리고 누가 맞는 게 아니라.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에는 열 명의 이야기가 있다.
익명으로 소개된 열 명의 인물들이 퇴사 후에 각각 어떤 삶을 살았는지, 퇴사가 어떤 의미였는지, 퇴사 이후의 삶이 어땠는지, 앞으로 또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
열 명의 열 가지 이야기가 책 속에 가지런히 담겨 있다.

「이 책은 퇴사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게 효율적인지 알려주는 자기 계발서가 아니다. 다양한 인물들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했던 인생의 한 시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 경우에는 그 쉬는 시간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과정에서 일과 삶에 대해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 공유하는 책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1. 다시, 좋아하는 것을 찾는 시간 / A과장 이야기
2. 자연 속에서 배우는 시간 / K씨 이야기
3. 내 일을 준비하는 시간 / L씨 이야기
4. 덕후로 살아보는 시간 / O과장 이야기
5. 버킷리스트의 몇 가지라도 실천해보는 시간 / J실장 이야기
6. 발길 닿는 대로 보고 느끼는 시간 / S씨 이야기
7.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 M팀장 이야기
8.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투쟁하는 시간 / Y작가 이야기
9. 가장 소중한 존재와 보내는 시간 / B과장 이야기
10. 감성을 따라가보는 시간 / C씨 이야기

원하는 회사에 입사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치열하게도 살아 본 이들이 불현듯 회사를 떠났다.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다시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진짜 원했던 삶이 뭔지, 뭐가 중요한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리고 한 달이든 일 년이든 그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그들은 다시 직장을 가질 수도 있고, 내내 여행을 다니면서 살 수도 있고, 프리랜서로 살 수도 있고, 영영 일을 하지 않고 살 수도 있다.
본인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다.
그렇다면, 그 길에 뭐든 옳은 길일 테다. 스스로 고민하고 돌아보고 선택한 길.

나는 그게 가장 부럽다.
선택권이 있을 수 있는 삶. 오롯이 자신을 가장 앞에 두고 무언가 결정할 수 있는 삶.
물론, 지금의 내 삶 역시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니 내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행복하게 즐겁게 살아낼 수 있도록 느리더라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살아 내야겠지.

「지금 퇴사를 결심한 채 그 시간을 앞두고 있다면, 혹은 그 시간을 흔들리며 보내는 중이라면, 이 책에서 만난 인물들에게 위로나 조언이 될 만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굳이 퇴사가 아니더라도, 직장 생활 중 스트레스와 관계들로 인한 어려운 감정을 가지고 있거나 힘들게 하루하루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또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다는 용기를 줄 수 있는 이야기들.

‘무엇이 우리를 일하게 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화두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숙자가, 혹은 명함에 찍혀 있는 근사한 타이틀이 우리를 움직인다고 해도 틀린 대답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해본 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다.
A과장은 시스템의 한계를 느끼고 퇴사할 당시, 앞으로 음악만큼 더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차에 대해 어느 정도의 호기심은 있었지만 그것은 막연했다. 하지만 공부하며 알아가다 보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떠난 여정에서, 그녀는 새로운 길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많이 배운 것은 물론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까지하게 됐다. - <다시, 좋아하는 것을 찾는 시간> 중에서, p24

그녀에게는 언젠가 시골에 내려가 텃밭정원을 가꾸며 작은 마을 도서관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서른 즈음에 새로운 경험이 필요해 회사를 그만두고 떠났던 것처럼 다시 그런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그만큼의 용기를 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앞에서 약해지지 말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자고, 더 용기를 내보자고 마음속으로 되뇐다. 회사를 그만두고 비로소 노동의 가치를 알게 되었는데 조직의 일원으로 일하는 요즘 또다시 단지 회사의 비전에만 귀속되어 일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도 된다. 회사의 비전과 개인의 비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바로 서야만 한다는 것을 자각한다. -<자연 속에서 배우는 시간> p46

예전에 그녀에게 중요했던 건 사람들의 시선과 인정이었다. 좋은 회사와 그 안에서 자신이 가진 직함, 사람들이 알아주는 성과 같은 것들. 그 일을 좋아한다는 마음보다는 세상엔 똑똑한 사람들이 많고 다들 열심히 하니까 자신도 그만큼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일했던 시간. 반면 지금은 자신의 일이니만큼 애착이 크고 무엇보다 자기만족을 위해 일하고 있다. 사업 확장도 남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원해서 하려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지만 원동력은 완전히 다른 셈이다. - <내 일을 준비하는 시간> 중에서, p67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대상을 얼마나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을까. 덕후가 아닌 사람들이 그 마음을, 덕후들의 열정을 의심하는 경우를 본다. 아니, 의심한다기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열정이 눈에 보이는 실질적 보상이나 발전적 관계를 가져오는 게 아니므로, 비논리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탓이다. 하지만, 돈과 시간과 온 마음을 좋아하는 대상에게 쏟는다는 건 스스로의 관심과 감정에 매우 솔직하게 몰입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한 일이다. - <덕후로 살아보는 시간> 중에서, p87

회사생활이나 결혼에 대해 고민이 될 때 중요한 것은 지나치게 조바심을 내거나 겁을 먹지 않는 것이다. 해보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시도해봤을 때, 모두 실패한 줄 알았던 순간에 아주 큰 것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보인다. - <버킷리스트의 몇 가지라도 실천해보는 시간> 중에서, p110

버티는 시간은 무엇을 남길까. 혹시 낮아진 자존감, 무기력감은 아닐까.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보수에 비해 일이 힘들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하루하루 보내다 어느 순간 이 무기력감과 마주한다면, 그것을 치유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이가 들고 사회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회사로부터 등을 돌리는 결정과 판단은 빨라져야 한다. 그 이유는 한 가지, 우리의 시간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 <가장 소중한 존재와 보내는 시간> 중에서, p199

쉬어가는 시간은 분명 필요하다. 한동안 경력이 멈춘다고 우리가 가고 있는 인생길이 멈추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회사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 갇힌 걸 모른 채 매일 쳇바퀴 돌 듯 유지하는 생활 속에서는 회사 밖에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망각하게 된다. 틀을 벗어나야만 다른 세상을 만나고, 지금까지의 공간과 그곳에서의 삶이 어땠는지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 <감성을 따라가보는 시간> 중에서,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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