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지날 때까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피안 지날 때까지
나쓰메 소세키 지음, 심정명 옮김 / 예옥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우선 이 책 [피안 지날때 까지]라는 제목이 어떤 의미일지 너무 궁금했다.
작가는 피안은 춘분 또는 추분의 절기에서 전후 7일간이라는 의미라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것처럼 표현했다.
하지만, 작가가 어떤 의도로 제목을 지었든 나는 계절이 바뀌는 피안이라는 시점이 이 책 소설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였다.
다양한 변화가 있지만, 들뜨지 않은 듯 그리고, 자신보다는 주변에 더 관심을 기울이듯.... 그렇게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주인공인 게이타로가 등장한다. 솔직히 그가 주인공이라 말하기는 조금 어렵다.
그는 사건의 주인공이 아닐뿐 그저 관찰자에 가깝다.
마치, 그가 직장없이 휴식시간을 지니고, 도쿄에서 하숙을 하며 그저 주변에 일어나는 소소한 일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그는 특히 친구 스나가와 이웃 모리모토의 이야기에 기울이게 되고,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리모토에서 스나가 가족으로 중심을 옮겨다닌다.
게이타로가 점을 보러가서 들은 이야기 처럼, 왠지 남의 이야기이지만, 나의 이야기 같고, 등장한 듯 싶으며 어느덧 이야기는 끝난다.
이런점이 춘분, 추분의 전후 7일간이라는 피안이 시절과 무척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애매모호한 설정은 은근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탐정소설 같기도 하고, 단편 소설이야기처럼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스나가 집안을 알아가고, 스나가를 통해 경험하고 배우게 된다.
이 소설이 꽤나 오랜전인 1912년에 쓰였다는 것을 알고 나는 이 책속 분위기가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1910년대 일본은 꽤나 격동의 시기였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1905년에 을사조약으로 우리나라의 주권을 박탈당하게 되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와 [피안 지날때 까지]의 분위기가 얽혀가니, 왠지 작가의 관조적인 입장이 수긍이 가기도 하였다.

오랜 전 소설을 새로 현대에 만나는 느낌도 꽤나 근사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시대적 향기가 조금은 느껴진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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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포스터 작가정신 청소년문학 1
케이 기본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어떻게 하면 아빠를 죽일 수 있을까?"로 시작되는 첫 문구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였다.
그저 단순한 반항이나 화가나서 하는 독백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였으며, 독거미를 통한 살인을 상상하고, 아빠의 죽음앞에 덤덤한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얼마나 상처받았으면, 아빠를 죽이는 존속살인을 범죄라 생각하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상처받은 작은 새는 10살 엘렌 포스터였다.

엘렌에게는 아픈 백인 엄마와 술로 세상에 대한 불만을 대신하는 아빠 빌이 있다.
엄마는 반 자살, 반 타살에 가까운 죽음을 맞고, 엄마가 그렇게 죽어가는 옆에 엘렌은 그저 슬픔도 없이 누워있었다.
아이는 마치 감정이 없는 것처럼 군다.
그저 아버지에 대한 분노만이 있을 뿐이다.
엄마의 장례식에도, 스타레타 가족의 배려에도, 줄리아 미술 선생님과 로이 아저씨의 사랑에도 아이는 감정의 변화가 거의 없다.
아니, 솔직히 전혀 감정 기복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그 표현이 너무나 내게는 무덤덤하게 다가왔다.
이런 작은 감정의 기복은 커다란 기대도, 희망도 없는 모습같아서 더욱 마음에 무겁게 다가왔다.
하지만, 어느순간 "새엄마"라는 단어의 등장이 내게는 엘렌에 대한 조금은 안도감을 갖게 하였다.

이 책을 자세히 보면, 엘렌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은 모두 가족, 친지였다.
흑인인 아빠 빌, 자신의 딸이 흑인과 결혼하였다는 점에서 인정하지 못하는 엘렌의 엄마의 엄마, 그리고, 이모들.
이들은 모두 엘렌에게 가족이며,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모두 자신만의 이유로 엘렌의 상처와 아픔을 돌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줄리아 미술선생님과 로이 아저씨는 엘렌에게 편안함을, 목화밭에서 일하는 메이비스 아주머니에게 친절함을,
새엄마와 새 가족에게서는 소속감과 사랑을 배우게 되었다.
이런 구도는 진정한 가족이라는 것은 혈연이 아니라, 서로간의 배려와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진정한 가족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엘렌 포스터]는 성장 소설보다는 철저히 아이의 눈을 통해 어른들의 세상과 그 모순을 파헤치는 그런 사회문제를 다룬 소설이었다.
이 소설 속에는 흑인에 대한 차별도 존재하며, 아동 학대에 대한 것도 존재하며, 사회 선이라는 모순도 존재한다.
그것들을 철저히 한 어린 소녀의 눈으로 통해 걸러 드러내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시선이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크게 울리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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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코넬 울리치는 꽤나 유명한 작가였고,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존경하는 작가라는 점에서도 꽤나 이 작품의 분위기가 궁금하였다.
이 작품을 한마디로 평하면, 알프레드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 분위기와 많이 닮아 있었다.
아마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분명 이 작품도 꽤나 좋아하실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은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우선 스토리는 매우 간단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점에서도 히치콕의 작품들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한 여자가 자살을 하려고 하였다. 아름답고, 부유하게 자란 한 여자가.
그녀는 진 레이드로 조여오는 죽음의 그림자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음을 선택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녀를 구한 것은 형사 톰 숀이고, 그렇게 그들은 이 사건의 중심으로 걸어간다.
제레미아 톰킨스의 예언, 그리고 그 예언에 온 인생을 맡긴 레이드 가문.
톰킨슨은 할란 레이드의 죽음을 예언하고, 톰 숀은 상관 맥마너스를 통해 이 사건을 맡게 된다.

간단한 스토리. 하지만, 심리적 묘사와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가 밤하늘의 별들처럼 촘촘히 박혀 있었다.
이런 점에서도 히치콕의 작품들과 매우 유사하며, 마치 히치콕의 영화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건은 주로 밤같이 어둡고 침울했고, 조용했다.
분명 낮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언제나 밤같이 어두웠다.
이런 분위기도 역시 내가 본 히치콕의 흑백영화같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시간적으로도 매우 짧은 시간의 일들이 500페이지가 넘게 담겨있다는 점에서 사건의 전개가 얼마나 느린지 감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앞서 이야기 하였듯이 스토리와 사건의 전개보다는 심리적 갈등속에서 사건을 풀어나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을 막아야하는 형사들.
죽음을 향해가는 할란 레이드.
그 죽음의 시간과 장소를 정한 톰킨스.
이들간의 심리적 갈등과 긴장감이 가장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한 사건들 속에서 진행감이 빠른 스릴러를 원하는 독자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심리적 묘사에 매료된다면, 왠지 고전느낌의 스릴러를 만나는 즐거움을 느낄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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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비>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리틀 비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한 소녀가 영국 남동부 에섹스 이민자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었다.
나이지리아에서 영국으로 가는 배에 몰래 타고, 영국에 도착해 이민자 수용소에 2년째 감금되어 있는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리틀비.
나이지리아에서 죽음의 위험에서 도망치면서 만든 이름을 가진 16살 소녀이다.
리틀비가 영국배를 선택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앤드루 오루크와 새라 서머스 (새라 오루크) 부부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수용소에서 살아남으려면 예쁘거나 말을 잘해야 해'라는 충고에 그녀는 여왕식 영어를 배워 말을 잘 하기로 한다.
또한 살아남기 위해 항상 매순간 자살방법을 생각해 둔다.
작은 검은 소녀는 그렇게 죽음과 친구하고,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남자들을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단련하면서 이민자 수용소에서 나갈 날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나이지리아 가족들과의 추억과 공포로 부터 벗어나, 영국에서 자유를 갈구하는 그녀에게 작은 행운이 다가왔다.
즉 '풀려나다'라는 단어가 그녀에게 다가온 것이다.
리틀비는 그렇게 우연히 나이지리아 이베노 해변에서 만난 앤드루와 새라를 만나러 떠나게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리틀비의 생존방식에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살아남기 위해서 죽음을 아니, 자살을 떠올려야 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항상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모습이 안쓰러움과 함께 그녀가 겪은 상처의 깊이가 얼마가 깊은지 안타까웠다.
'흉터가 아름다운 이유는 죽어가는 자에게는 생기지 않는 것이 흉터이기 때문이다. 흉터의 의미는 '생존'이다.'
'공포란 영국에서는 당신이 사실 공포라는 고통을 겪고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일깨우기 위해 집어삼키는 무엇이다. 내게 그리고, 고향 친구들에게 공포는 병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포를 앓는다.'
이것이 16살 소녀의 생각이다.
소름끼치지 않는가? 그리고, 안쓰럽지 않는가?
비록 '아프다, 무섭다, 두렵다'라는 이런 감정적인 문구 한마디 없이도 이 얼마나 처절하고 비참하고 극한의 상처를 들어내는지 잘 알수 있다.
또한 '그 - 남자들이 - 와서 - '로 시작해서, '그리고 - 그들은 - 우리를 - 이곳에 - 집어넣었어요'로 끝나는 그녀의 나이지리아에서의 아픈 경험이 그녀를 냉정하고 날카로운 그러나 침착한 상처받은 야수의 모습으로 만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리틀비와 새라, 그리고 앤드루가 겪은 이베노 해변에서의 일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하였고, 그것이 새라의 사라진 왼쪽 중지 손가락과의 관령성이 매우 궁금했다.
그러나, 앤드루의 자살, 새라의 과거사, 로렌스와 새라의 감정, 앤드루와 리틀비의 영국에서의 만남 등을 읽어가면서, 내 관심사는 어느새 리틀비의 매래로 옮겨갔다.
특히 앤드루와 리틀비의 만남처럼 새라, 찰스 그리고 리틀비의 만남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읽어갔다.
마지막 찰스와 새라를 위한 리틀비의 선택은 나역시 어쩌지 못 할수 밖에 없는 선택이었지만, 리틀비의 웃음이 너무나 슬프고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우리가 흔히 누리고 있는 행복과 너무 가까이 있어서 느끼지 못하고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16세 리틀비라는 소녀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녀의 진짜 이름처럼 세상에, 온 누리에 평가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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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균형>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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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적절한 균형'이라는 책은 디나 쉬로프라는 한 여인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의 독립적인 삶을 중심으로 재봉사인 이시바 다르지, 옴뜨라카시 다르지, 그리고, 마넥 콜라의 삶이 합쳐지면서 이야기는 흘러간다.
사실 디나 쉬로프가 오빠 누스완의 고지식한 독제에 답답해 하고, 러스텀 K 달랄을 만나 결혼하는 3년은 이곳의 배경이 인도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디나 역시도, 데모와 폭동은 그저 도서관에 숨어서 스쳐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되는 그 이상의 의미가 아니었다.
누스완 오빠와 러스텀 남편의 그늘에서 살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과 오빠 누스완으로부터의 독립선언 후,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아파트 방세를 내기 위해, 세상 속에 발을 딛어야 했고, 그렇게 인도 사회의 풍파 속에서 이시바와 옴 재봉사 그리고, 마넥과의 만남이 이뤄진다.

이시바와 옴은 삼촌 조카 사이로 그들이 그리워 하는 강가 마을 고향은 결코 따스한 추억만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고마운 아시다프 아저씨가 고향에 계셨지만, 카스트 제동의 천민 계급인 무두장이 차마르인 그들에게는 고향은 둑이모치 아버지와 루파 어머니, 그리고, 이시바의 동생이자 옴의 아버지인 나라얀과 그의 아내 라다, 그리고, 옴의 여동생 둘이 잔혹하게 학살된 아픔의 현장이었다.
더구나, 그들이 옴의 맞선을 위해 돌아간 고향에서는 다시 가족계획이라는 커다란 폭풍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명의 아파트 주인, 두명의 재봉사, 그리고 학생.
이들은 그저 '국가 비상사태'의 상황을 정치인들의 권력 다툼으로 여겼으나, 결국 이시바, 옴, 마넥, 그리고, 디나의 삶을 온통 흔들어 놓게 된다.
특히 판자촌이 헐리면서 이시바와 옴은 거지로 오인되어 수용소에 억울하게 감금되기도 한다.
이 곳에서 이들은 거지 왕초, 샨카, 원숭이 주인등과의 또 다른 권력의 희생자들을 만나게 된다.
디나는 그저 아파트에서 재봉사 2명을 고용하고, 하숙을 치면서 살아가고 싶지만, 이시바, 옴 두 재봉사들의 감금은  단순 고용인의 증방 이상으로 다가온다.
또한 집주인의 횡포와 그 사이에 끼인 이브라함 징수원과의 갈등은 더욱 디나 그녀를 위기로 몰아간다.
마넥 역시 국가 비상사태에 가장 조용할 것 같지만, 그또한 아비나시 친구의 죽음을 절정ㅇ르ㅗ 그역시 인도사회 속 또하나의 흐름속에 놓인다.
디나는 마넥, 이시바, 옴과 함께 한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좁고 낡은 아파트에서 집주인이자 고용주인 디나, 고용인인 이바와 옴, 하숙을 하며 비교적 독립적인 마넥이라는 구조를 이루게 되고, 이는 인도 사회 속에서 놓인 네 명의 운명도 이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집주인과 깡패로부터 지켜야 할 것이 있고, 또 다른 회사 오베보아 수출회사 굽타부인의 고용인이 바로 다나였다.
항상 카스트 제도, 국가 비상사태, 심지어 가족 계획까지 모든 시련의 바람에 상처를 받는 피해자는 옴과 이시바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제 3자의 시선을 가지는 마넥이 있다.

변화하는 인도 시대를 배경으로 이 네명의 삶은 정말 잔인하며서도 냉혹하고, 그래도 인정이 있는 인도 사회를 보여주었다.
국가 비상사태, 카스트 제도, 가족 계획등 인도 사회의 정치, 권력의 잔인한 싸움아래 네명과 네명의 가족, 친구들은 사라져갔고, 삶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네명의 주인공이 디나의 아파트에서 함께 차타피를 나눠 먹던 행복의 순간은 안도감과 따스함으로 다가왔다.
사실 왜 작가 로힌턴 미스티리가 [적절한 균형 (A Fine Balance)]를 제목으로 정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누스완 오빠의 집으로 다시 향하는 디나처럼, 인도사회의 불균형에 대한 포기로 지은 제목일 수도 있고, 또는 반대로 인도 사회의 불균형에 일침을 가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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