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27분 책 읽어주는 남자
장-폴 디디에로랑 지음, 양영란 옮김 / 청미래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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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었던 소설중에 가장 좋았던 소설. 일본추리소설장르는 읽을때에는 재미있지만 남는게 없는 것 같고 문학은 하품이 나고.. 이 작품은 읽으면서도 재미있었고 다 읽고나서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장 폴 디디에라는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작가라고 생각하게끔 한 작품이다. 프랑스 이름이야 뭐가 우스꽝스러운지 알 수 없으나 길랭 비뇰이라는 이 책의 주인공 청년은 태어날때부터 이름때문에 서른 여섯살이 되도록 튀지 않도록 사는 투명인간으로 사는 법을 익혔을 정도라니. 이쯤되면 부모로서 자녀의 이름을 지을때에는 수많은 고심을 해야한다는 생각이다.

 

빌랭 기뇰(심술쟁이 꼭두각시)라는 뜻을 지닌 별명으로 놀림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니 이름을 말해야 하는 수많은 순간에 주인공은 얼마나 망설였을까. 암튼 그렇게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는 친구도 괴짜시인 단 하나밖에 없는 길랭이라는 서른 여섯의 청년은 모태솔로처럼 사랑을 갈구하지만 여자와 사귀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도 퇴근하는 전철에서 딱 한가지 기묘한 일들을 하고 있으니..늘 가지고 다니는 가죽 가방에서 꺼내는 단 한장의 종이. 그것은 살아남은 종이였다. 어떤 내용의 어떤 책의 한 구절이 꼽힐지 모르는 그 운명. 그것을 꺼내어 전철의 한칸에 앉은 사람들에게 읽어주는 것은 하루의 마감이나 마찬가지였고 사람들은 은근히 그 순간을 기다렸다. 그 종이는 무엇이냐. 그가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건져올린 종이였다. 책의 파쇄업무를 맡고 있는 그는 그 거대한 기계에서 축축하지만 살아남은 종이를 매번 꺼내어서는 이렇게 전철에서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소설에서도 그 종이를 읽어줄때가 가장 놀라운데 그 글들은 이상하게도 생명력이 있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집중하게 만든다. 때로는 할리퀸 문고처럼 낯뜨거운 로맨스 베드신의 한장면이 들어있을때도 있는데 그럴때 읽는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듣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매료되고..이것은 한참이 지나 할머니들이 계시는 실버타운에서 읽을때의 일이었지만. 독자인 나는 그 장면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직장에서 엄청나게 큰 책을 쌓아서 들어오는 트럭들을 막기도 하고 문을 열어주기도 하는 경비원 이봉은 12음절 정형시의 달인이다. 스스로 시를 짓기도 하는 괴짜시인이자 시 낭독자인 그는 정말이지 사람들 앞에서 그 시들을 낭독하기만 하면 남들을 꼼짝못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의 인생내내 피로스나 티투스 아가멤논 같은 고전시를 외우고 낭독하는 일을 했으니 인간문화재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현실은 큰 파쇄공장의 경비원일 뿐이다. 길랭이 할머니들의 초대를 받고 실버타운에 낭독을 하러 다닐때 이봉에게도 권해서 같이 하게 되었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이봉의 낭독에 홀딱 반하고 말 정도이다. 길랭의 유일한 친구인 이봉. 책을 매개로 한 이 소설의 매력은 정말 놀랍다. 우연히 주은 메모리에 들어있는 한 여인의 일기를 낭독하기 시작한 길랭은 그 여인을 만나고 싶어하고 소설의 후반은 그 여인의 일기 내용으로 가득하다. 길랭은 과연 그 여인을 만날 수 있을까. 소설은 잔잔하고 흐뭇한 로맨스 영화처럼 흘러가기도 한다. 이 두껍지 않은 소설속에 이같은 매력적인 부분들을 이렇게 적재적소에 배치한 작가의 역량은 정말 놀랍다. 그리고 이 책의 장점은 다 읽고 나서도, 그렇고 그런 통속적인 소설을 읽었다는 느낌이 아니라 작품상을 받을만한 작품같은 소설을 읽었다는 데에 있다. 그러면서도 로맨스 영화같은 소설이라니. 이런 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읽는다. 주변에 기꺼이 추천해 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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